요한 2,1-11;예수님의 첫 기적;카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예수님의 첫 기적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이 포도주로

1. 말씀읽기: 요한 2,1-11

카나의 혼인 잔치

1 사흘째 되는 날, 갈릴래아 카나에서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에 계셨다.

2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그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으셨다.

3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 하였다.

4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5 그분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말하였다.

6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정결례에 쓰는 돌로 된 물독 여섯 개가 놓여 있었는데, 모두 두세 동이들이였다.

7 예수님께서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채워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물독마다 가득 채우자,

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이제는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 하셨다. 그들은 곧 그것을 날라 갔다.

9 과방장은 포도주가 된 물을 맛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지만, 물을 퍼 간 일꾼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과방장이 신랑을 불러

10 그에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하면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셨군요.”

11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12 그 뒤에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카파르나움으로 내려가셨다. 그러나 그곳에 여러 날 머무르지는 않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예수님의 첫 기적은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것입니다. 혼인잔치에 물이 떨어지자 어머니께서는 예수님께 청하셨고, 예수님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바꾸셔서 혼인잔치를 축복하시고 풍요롭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 말씀을 통하여 혼인잔치의 의미와 포도주의 의미에 대해서 알게 될 것입니다.



1 사흘째 되는 날, 갈릴래아 카나에서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에 계셨다.

3일 되었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 3일이 언제부터인가 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대개는 나타나엘을 부르신 후 3일후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떠나시기 직전에 나타나엘을 부르시고 3일 걸려서 가나에 이르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르단 강에서 가나에 이르기까지의 거리는 약 90km-100km이다. 그러므로 3일을 요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혼인잔치라는 배경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구약성경에서 야훼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결혼이라는 표상은 계약 관계를 묘사하기 위해 가끔 사용되었습니다(호세아 2,7이하). 이 표상은 메시아시대에까지 연장됩니다. 메시아 시대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마치 신랑이 신부를 두고 기뻐하듯이 기뻐하실 완성과 확인의 때입니다(이사야 62,2-5). 이 표상은 신약성경에도 나옵니다. 메시아 시대적 완성을 극화하고, 생생하고 함축성 있는 예는 요한묵시록에 나옵니다. “할렐루야! 주 우리 하느님, 전능하신 분께서 다스리기 시작하셨다. 7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자. 어린양의 혼인날이 되어 그분의 신부는 몸단장을 끝냈다. ’(묵시 19,6-7)



2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그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으셨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지방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첫 번째 기적’을 행하십니다. 이 기적에서 중요한 점은 예수님께서 세례 사건과 함께 이 기적으로써 당신께서 바로 신적인 권능을 지니신 분임을 공적으로 드러내셨다는데 있습니다. 또한 주님의 어머니께서는 단순히 그분 곁에 머무르시는 분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시는데 고유한 역할을 수행하고 계셨다는 점입니다. 더구나 이 첫 번째 기적이 ‘혼인잔치’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합니다. 성경에서 혼인잔치는 매우 큰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경에서 ‘혼인’(婚姻)은 하느님과 당신 백성 사이에 맺은 계약을 상징하는 고유한 표현입니다. 특히 예언자들은 이스라엘과 맺으신 하느님과의 계약을 혼인의 단일성과 불가해소성에 바탕을 둔 한 충실한 부부 사랑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상을 배경으로 예언자들은 당시 이스라엘이 겪어야 했던 멸망과 유배를 그들이 하느님과 맺은 계약에 충실하지 못한 결과로 보았고(예레 22,9), 이를 마치 부인의 간음 때문에 실패로 돌아간 결혼 생활에 비유하였습니다(호세 2,4; 에제 16,15-43).



  그러나 비록 구약 시대에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계약이 파괴되었지만,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해서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계약’이 있을 것임을 여러 곳에서 예고하셨습니다(예레 31,31-34; 33,20-26). 호세아 예언자는 이것을 신부(新婦)로 하여금 사랑과 정의, 충실을 갖게 하고 인간과 전 피조물 사이에 평화를 회복시킬 수 있는 새로운 약혼의 형태로 묘사하고 있으며(호세 2,20-24), 이사야 예언자는 이러한 계약의 모습을 미래에 맞이하게 될 야훼와 새 예루살렘 사이의 혼인잔치로 표현하였습니다(이사 54장).



종말에 성취되리라 믿었던 완전하고도 새로운 계약은 드디어 모든 사람들을 위해 수난의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완성을 향해 진행되고 있는 이 계약은 장차 천상 예루살렘에서 있을 참다운 신랑이신 ‘어린 양’과 그의 새로운 신부인 교회와의 흥겨운 혼인잔치에서 완성될 것입니다(묵시 21,2.9).



  하느님 나라의 새로움을 가져오신 예수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셨듯이 이 세상을 변화시키실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부부 관계가 혼인 생활 안에서 서로 부딪치고 용서하고 서로의 깊이에 숨어 있는 진실을 알게 됨으로써 결국 사랑으로 하나가 되듯이,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신부인 교회와의 혼인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실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혼인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세상의 질서를 낳는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3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 하였다.

 잔치는 당시 풍속대로 1주일 이상이었습니다. 그 동안에는 미리 준비한 것이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당시에는 포도주 같은 것도 많이 사용했으므로 끝날 즈음에 포도주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온 경우는 술이 떨어져서 난처한 환경에 있으므로 성모님께서 무관심 하실 수 없는 어떤 관련이 있기 때문에 어려운 것을 면해 달라고 하시는 의향으로 예수님께 사정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혼인잔치에서 가장 필요한 음료인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떨어지다’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더 이상 없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그리스어로 이 말은 ‘열등하다’라는 뜻도 아울러 지닙니다. 이것은 구약의 유다교가 그 한계에 이르러 더 이상 사람들에게 환희와 영감을 주지 못하던 상태를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 구약의 율법은 하느님 나라의 혼인잔치의 즐거움을 결코 완성시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약의 유다교와 율법을 상징하는 ‘물’이 신약의 그리스도교와 복음을 상징하는 ‘포도주’로 변했다는 사실은 그리스도교가 유다교를 이미 앞질렀다는 사실과 함께 복음이 율법을 갱신했음을 의미합니다.



4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잔치 도중에 술이 떨어진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잔치의 흥을 깨뜨리는 결정적인 타격입니다. 잔치 주인들의 당황하고 무안함을 해소시켜 주려고 마음을 쓴 나머지 마리아는 예수님께 그 상황을 고쳐 놓기 위해 기적적인 어떤 것을 요구하시는 듯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마리아는 둘 다 이 이야기에서 마지막 시대의 인물들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어머니의 요구는 심오한 영신적 필요에서 나오고, 또한 구약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씀이고, 이스라엘의 희망을 채워주기 위해서는 새로운 메시아 시대의 술이 요청된다는 말씀입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구약에 묘사된 이스라엘의 충실한 “남은 자들”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충실한 남은 자들은 하느님의 구원을 겸손하게 충성심을 가지고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성모님의 은근한 청탁에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어머니 저나 어머니에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직 제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때” 즉 “공적 임무를 드러낼 때, 자신의 영광을 드러낼 때”는  인간적인 부탁에 의해서 좌지우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단호하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때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정해놓으셨기에, 그 누구도 그 때를 변경시키거나 아버지의 명령을 철회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예수님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당신 어머니의 요구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복음서 전체를 통하여 예수님의 시간은 당신 수난 및 아버지께로 다시 돌아가 영광 받으심의 시간입니다. 구원의 때가 다 채워지는 것은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때 입니다. 따라서 이 시간은 그 어떤 인간도 알 수 없고, 그 어떤 인간에게도 통제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모님께서는 아주 부드럽게 말씀하시지만 예수님은 참 냉정하게 말씀하고 계신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원문에 보면 어머니라고 표현되어 있지 않고 “여인이여! 그것이 당신과 저에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라고 표현되어 있다. 어떻게 어머니에게 그런 무례한 말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성경을 잘 들여다보면 오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스인과 소아시아인들은 가장 친밀한 사람을 부를 때 “여인”이란 말을 썼다고 합니다. 즉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성모님께 얼굴에는 웃음을 띠면서 어머니께 갖추어야 할 애정과 존경을 모두 드리면서 정중하게 거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 예수님의 답변은 무례하거나 꾸짖는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답변은 어머니의 참견에 말려들고 싶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아마도 “어머니의 걱정거리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아래에 있는 어머니를 “여인이여”라고 부르셨습니다(요한 19,26

아이가 어머니에게 친근감을 표현하기 위해서 어머니 이름을 부릅니다. “누구씨!” 그런데 이것은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친할 때만, 특별한 상황에서만 사용되는 말이라는 것을 내가 기억한다면 예수님과 어머니 사이의 관계와 상황을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5 그분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의 답변을 너무도 잘 이해하는 그 어머니는 충실한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하느님의 신비스런 뜻에 오직 승복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성모님께서 종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라고 한 말씀은 창세기에서 파라오와 모든 이집트인들이 요셉에게 순종한 것을 상기시킵니다. 백성이 파라오에게 흉년과 기근이 덮쳐왔을 때 빵을 달라고 아우성을 치자, 파라오는 백성에게 ‘요셉에게로 가서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창세 41,55)고 말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자기 청을 들어 주리라고 확신하고 있다. 예수님께 청원을 드려서 거절당한 예는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6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정결례에 쓰는 돌로 된 물독 여섯 개가 놓여 있었는데, 모두 두세 동이들이였다.

잔치에 ‘여섯 개’의 돌 항아리가 있었다는 것은 ‘일곱’이라는 완전한 숫자에 미달된 구약의 불안전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여기에 또 하나의 돌 항아리를 추가하시지 않고 이미 있었던 여섯 개의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워서 그 물을 매우 질 좋은 포도주로 변화 시키셨습니다. 이것은 구약의 율법이 폐지된 것이 아니라 신약의 복음 안으로 흡수되어 완성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갈릴래아에서 물은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포도주로 변했습니다. 즉 율법은 물러나고 은총이 뒤를 이었습니다. 그림자는 지나가고 실재가 현존하게 되며 육적인 것은 영적인 것과 대조를 이루고 구약은 신약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는 복된 사도가 “보라, 낡은 것은 사라지고 새 것이 나타났다.”라고 말하는 바와 같습니다. 또한 물동이에 담겨진 물이 과거의 것을 조금도 잃지 않고 이제는 과거의 것이 아닌 새 것이 되기 시작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 율법은 그것으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분명해지고 완성되었습니다.



7 예수님께서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채워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물독마다 가득 채우자,

하인들의 자세는 신앙인의 자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모님이 하인들에게 포도주가 떨어졌으니 예수님께서 시키는 대로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정결예식에 쓰는 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시자 하인들은 아무 말 없이 물을 채웠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퍼서 잔치 맡은 사람에게 갖다 주어라 하고 말씀하시자 하인들은 그것을 갖다 주었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보기에는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아마 우리라면 “예수님! 시방 뭔 소리 하시는 것입니까? 지금 필요한 것은 술이지 물이 아닙니다. 아무리 요즘 세상에 술에 물 타서 장사를 한다고 하지만 원액 100%  물로 장사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바보입니까?” 라고 항의했을 것입니다.



 잔치집에 술이 떨어지는 절박한 상황을 나몰라라 하지 않으시고 예수님께서는 물을 술로 만드시는 기적을 행하십니다.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직 예수님께만 매달릴 때 예수님은 우리의 간절한 청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들어주십니다. 이것을 우리는 굳게 믿어야 합니다. 이것을 알고 있기에 성모님도 하인들이게 “예수님이 시키는 대로 하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성모님께서는 예수님께 “예수님! 저 자녀가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라고 간구해 주시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절박한 상황을 가엾이 여기시어 우리의 간청을 들어주실 것입니다.



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이제는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 하셨다. 그들은 곧 그것을 날라 갔다.

카나에서, 예수님에 의하여 변화된 물은 유대인들의 정결 예절에 쓰이던 물이었다. 종교 예절인 정결 예절은 메시아 시대의 술을 가져오신 예수님의 현존으로 말미암아 그 의미를 잃고 말았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몸소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을 깨끗하게 정화시키실 것이다.



9 과방장은 포도주가 된 물을 맛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지만, 물을 퍼 간 일꾼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과방장이 신랑을 불러

과방장은 잔치 기간 동안 음식을 관리합니다. 잔치집의 과방장은 하인들 중의 우두머리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랑과는 친하고, 다른 하인들과는 모르는 것 같습니다. 즉 하인들이 우물에서 물을 길어온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방장을 손님 중의 한 사람으로서 “술책임자”로, 사회자로, 연회장 등으로 지정된 사람이라고 가정할 수 있습니다.



10 그에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하면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셨군요.”

“포도주는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시편 104,15)라는 성경 말씀처럼 포도주가 넉넉히 제공된 것은 하느님의 축복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는 표징이고, 구세주가 가져오실 구원과 행복을 상징합니다(창세 49,11-12; 이사 62,8-9; 65,21 참조). 그러므로 잔치맡은 이의 입을 통해 보증된 “제일 좋은 포도주”는 당신이 가져오신 신약의 은총이 넘치도록 풍부하고, 다른 무엇보다도 뛰어나고 탁월한 것임을 입증하는 동시에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혼인잔치가 더없이 행복하고 값질 것임을 미리 암시하는 것입니다.



11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가나 기적 이야기가 지닌 종말론적 의도는 그 기적 자체의 본질에 의하여 심화됩니다. 술이 매우 넘치게 준비되었습니다. 술은 상징적으로 마지막 때를 묘사하는 일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범죄를 일삼는 죄지은 백성을 벌하시러 오셔서 그들로부터 술을 빼앗으십니다(신명기 28,39-아무리 애써서 포도원을 가꾸고 심어도 벌레가 갉아 먹어 마실 포도주도 저장해 둘 포도주도 없으리라). 아모스 예언자에 의하여 파괴와 인과응보의 때로 간주된 주님의 날은 이스라엘 가문이 자기네 차지가 되지 못하고 거기에서 빚은 술을 마시지도 못하고 포도원에서 땅을 치며 통곡할 날이 될 것입니다(참조: 아모5,17).



    또 한편으로는 술이 넘치게 풍성한 것은 행복과 구원 약속이 됩니다. 아모스가 본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명상은 산에서는 햇포도주가 흘러내리고 언덕마다 무르익은 곡식이 물결치는(9,13) 땅을 봅니다. 이사야는 만백성을 위해서 시온 산위에 차려질 ‘포도주의 잔치’를 선포하였습니다(이사25,6).

    이 같은 배경을 염두에 둘 때, 가나에서 일어나는 기적은 메시아 시대에 일어나기로 되어 있는 포도주의 기적이요, 잔치 맡은 이가 감탄한 것처럼 지금까지 숨겨놓은 좋은 술이요, 종말에 쏟아부어질 풍성한 술인 것입니다.



  혼인잔치에서 흥겨움을 더해 줄 수 없었던 돌 항아리 속의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예수님께서는 이 표징을 통해 앞으로 이루실 당신의 사명을 드러내십니다. 그 사명이란 이 세상에 구원을 가져오지 못하면서도 사람들을 옭아매고 구속하였던 구약의 율법을 참된 자유와 생명을 누릴 수 있게 하는 ‘사랑의 법’으로 변화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의 보다 더 깊은 뜻은 이 기적을 통해서 당신 안에 그러한 변화를 일으키실 능력을 있다는 것을 제자들이 믿음으로써 당신의 사명을 이해하고 받아들도록 하는 데 있었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자신들이 떠간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을 알고 있는 시중꾼들을 포함하여 그 잔치에 함께 있었던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지에 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다만 사건의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그분을 믿게 되었다는 것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 잔치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 영광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분의 영광은 단지 그것을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물독에 물을 채우라고 하시는 당신의 말씀과 함께 물은 힘을 얻고, 색깔을 취하며, 좋은 향기를 퍼뜨리며 맛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물은 완전히 변해서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이런 변화는 창조주만이 하실 수 있는 능력이었습니다. 한 처음에 물과 얼음과 눈을 만드신 분의 능력 말입니다. 이것을 보고 제자들은 믿음을 얻었습니다. 제자들은 단순히 눈앞에 펼쳐진 일만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이 믿은 것은 예수님이 지극히 높으신 분의 외아들이라는 점입니다.



12 그 뒤에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카파르나움으로 내려가셨다. 그러나 그곳에 여러 날 머무르지는 않으셨다.

 가파르나움은 갈릴래아 강변에 있었고, 가나에서 거기로 가는 것은 당연히 내려가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잠시 동안 가족들과 함께 머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앞으로는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족은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들이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순간, 십자가 아래에서 어머니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1.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기뻐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그리고 왜 기뻐했을까요?



2. 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하인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그리고 이 다음에 그것이 술이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얼마나 놀랐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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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2,1-11;예수님의 첫 기적;카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예수님의 첫 기적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이 포도주로

    1. 말씀읽기: 요한 2,1-11

    카나의 혼인 잔치

    1 사흘째 되는 날, 갈릴래아 카나에서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에 계셨다.

    2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그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으셨다.

    3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 하였다.

    4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5 그분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말하였다.

    6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정결례에 쓰는 돌로 된 물독 여섯 개가 놓여 있었는데, 모두 두세 동이들이였다.

    7 예수님께서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채워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물독마다 가득 채우자,

    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이제는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 하셨다. 그들은 곧 그것을 날라 갔다.

    9 과방장은 포도주가 된 물을 맛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지만, 물을 퍼 간 일꾼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과방장이 신랑을 불러

    10 그에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하면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셨군요.”

    11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12 그 뒤에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카파르나움으로 내려가셨다. 그러나 그곳에 여러 날 머무르지는 않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예수님의 첫 기적은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것입니다. 혼인잔치에 물이 떨어지자 어머니께서는 예수님께 청하셨고, 예수님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바꾸셔서 혼인잔치를 축복하시고 풍요롭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 말씀을 통하여 혼인잔치의 의미와 포도주의 의미에 대해서 알게 될 것입니다.


    1 사흘째 되는 날, 갈릴래아 카나에서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에 계셨다.

    3일 되었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 3일이 언제부터인가 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대개는 나타나엘을 부르신 후 3일후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떠나시기 직전에 나타나엘을 부르시고 3일 걸려서 가나에 이르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르단 강에서 가나에 이르기까지의 거리는 약 90km-100km이다. 그러므로 3일을 요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혼인잔치라는 배경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구약성경에서 야훼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결혼이라는 표상은 계약 관계를 묘사하기 위해 가끔 사용되었습니다(호세아 2,7이하). 이 표상은 메시아시대에까지 연장됩니다. 메시아 시대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마치 신랑이 신부를 두고 기뻐하듯이 기뻐하실 완성과 확인의 때입니다(이사야 62,2-5). 이 표상은 신약성경에도 나옵니다. 메시아 시대적 완성을 극화하고, 생생하고 함축성 있는 예는 요한묵시록에 나옵니다. “할렐루야! 주 우리 하느님, 전능하신 분께서 다스리기 시작하셨다. 7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자. 어린양의 혼인날이 되어 그분의 신부는 몸단장을 끝냈다. ’(묵시 19,6-7)


    2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그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으셨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지방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첫 번째 기적’을 행하십니다. 이 기적에서 중요한 점은 예수님께서 세례 사건과 함께 이 기적으로써 당신께서 바로 신적인 권능을 지니신 분임을 공적으로 드러내셨다는데 있습니다. 또한 주님의 어머니께서는 단순히 그분 곁에 머무르시는 분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시는데 고유한 역할을 수행하고 계셨다는 점입니다. 더구나 이 첫 번째 기적이 ‘혼인잔치’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합니다. 성경에서 혼인잔치는 매우 큰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경에서 ‘혼인’(婚姻)은 하느님과 당신 백성 사이에 맺은 계약을 상징하는 고유한 표현입니다. 특히 예언자들은 이스라엘과 맺으신 하느님과의 계약을 혼인의 단일성과 불가해소성에 바탕을 둔 한 충실한 부부 사랑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상을 배경으로 예언자들은 당시 이스라엘이 겪어야 했던 멸망과 유배를 그들이 하느님과 맺은 계약에 충실하지 못한 결과로 보았고(예레 22,9), 이를 마치 부인의 간음 때문에 실패로 돌아간 결혼 생활에 비유하였습니다(호세 2,4; 에제 16,15-43).


      그러나 비록 구약 시대에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계약이 파괴되었지만,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해서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계약’이 있을 것임을 여러 곳에서 예고하셨습니다(예레 31,31-34; 33,20-26). 호세아 예언자는 이것을 신부(新婦)로 하여금 사랑과 정의, 충실을 갖게 하고 인간과 전 피조물 사이에 평화를 회복시킬 수 있는 새로운 약혼의 형태로 묘사하고 있으며(호세 2,20-24), 이사야 예언자는 이러한 계약의 모습을 미래에 맞이하게 될 야훼와 새 예루살렘 사이의 혼인잔치로 표현하였습니다(이사 54장).


    종말에 성취되리라 믿었던 완전하고도 새로운 계약은 드디어 모든 사람들을 위해 수난의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완성을 향해 진행되고 있는 이 계약은 장차 천상 예루살렘에서 있을 참다운 신랑이신 ‘어린 양’과 그의 새로운 신부인 교회와의 흥겨운 혼인잔치에서 완성될 것입니다(묵시 21,2.9).


      하느님 나라의 새로움을 가져오신 예수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셨듯이 이 세상을 변화시키실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부부 관계가 혼인 생활 안에서 서로 부딪치고 용서하고 서로의 깊이에 숨어 있는 진실을 알게 됨으로써 결국 사랑으로 하나가 되듯이,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신부인 교회와의 혼인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실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혼인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세상의 질서를 낳는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3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 하였다.

     잔치는 당시 풍속대로 1주일 이상이었습니다. 그 동안에는 미리 준비한 것이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당시에는 포도주 같은 것도 많이 사용했으므로 끝날 즈음에 포도주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온 경우는 술이 떨어져서 난처한 환경에 있으므로 성모님께서 무관심 하실 수 없는 어떤 관련이 있기 때문에 어려운 것을 면해 달라고 하시는 의향으로 예수님께 사정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혼인잔치에서 가장 필요한 음료인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떨어지다’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더 이상 없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그리스어로 이 말은 ‘열등하다’라는 뜻도 아울러 지닙니다. 이것은 구약의 유다교가 그 한계에 이르러 더 이상 사람들에게 환희와 영감을 주지 못하던 상태를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 구약의 율법은 하느님 나라의 혼인잔치의 즐거움을 결코 완성시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약의 유다교와 율법을 상징하는 ‘물’이 신약의 그리스도교와 복음을 상징하는 ‘포도주’로 변했다는 사실은 그리스도교가 유다교를 이미 앞질렀다는 사실과 함께 복음이 율법을 갱신했음을 의미합니다.


    4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잔치 도중에 술이 떨어진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잔치의 흥을 깨뜨리는 결정적인 타격입니다. 잔치 주인들의 당황하고 무안함을 해소시켜 주려고 마음을 쓴 나머지 마리아는 예수님께 그 상황을 고쳐 놓기 위해 기적적인 어떤 것을 요구하시는 듯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마리아는 둘 다 이 이야기에서 마지막 시대의 인물들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어머니의 요구는 심오한 영신적 필요에서 나오고, 또한 구약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씀이고, 이스라엘의 희망을 채워주기 위해서는 새로운 메시아 시대의 술이 요청된다는 말씀입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구약에 묘사된 이스라엘의 충실한 “남은 자들”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충실한 남은 자들은 하느님의 구원을 겸손하게 충성심을 가지고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성모님의 은근한 청탁에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어머니 저나 어머니에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직 제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때” 즉 “공적 임무를 드러낼 때, 자신의 영광을 드러낼 때”는  인간적인 부탁에 의해서 좌지우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단호하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때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정해놓으셨기에, 그 누구도 그 때를 변경시키거나 아버지의 명령을 철회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예수님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당신 어머니의 요구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복음서 전체를 통하여 예수님의 시간은 당신 수난 및 아버지께로 다시 돌아가 영광 받으심의 시간입니다. 구원의 때가 다 채워지는 것은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때 입니다. 따라서 이 시간은 그 어떤 인간도 알 수 없고, 그 어떤 인간에게도 통제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모님께서는 아주 부드럽게 말씀하시지만 예수님은 참 냉정하게 말씀하고 계신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원문에 보면 어머니라고 표현되어 있지 않고 “여인이여! 그것이 당신과 저에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라고 표현되어 있다. 어떻게 어머니에게 그런 무례한 말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성경을 잘 들여다보면 오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스인과 소아시아인들은 가장 친밀한 사람을 부를 때 “여인”이란 말을 썼다고 합니다. 즉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성모님께 얼굴에는 웃음을 띠면서 어머니께 갖추어야 할 애정과 존경을 모두 드리면서 정중하게 거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 예수님의 답변은 무례하거나 꾸짖는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답변은 어머니의 참견에 말려들고 싶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아마도 “어머니의 걱정거리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아래에 있는 어머니를 “여인이여”라고 부르셨습니다(요한 19,26

    아이가 어머니에게 친근감을 표현하기 위해서 어머니 이름을 부릅니다. “누구씨!” 그런데 이것은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친할 때만, 특별한 상황에서만 사용되는 말이라는 것을 내가 기억한다면 예수님과 어머니 사이의 관계와 상황을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5 그분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의 답변을 너무도 잘 이해하는 그 어머니는 충실한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하느님의 신비스런 뜻에 오직 승복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성모님께서 종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라고 한 말씀은 창세기에서 파라오와 모든 이집트인들이 요셉에게 순종한 것을 상기시킵니다. 백성이 파라오에게 흉년과 기근이 덮쳐왔을 때 빵을 달라고 아우성을 치자, 파라오는 백성에게 ‘요셉에게로 가서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창세 41,55)고 말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자기 청을 들어 주리라고 확신하고 있다. 예수님께 청원을 드려서 거절당한 예는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6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정결례에 쓰는 돌로 된 물독 여섯 개가 놓여 있었는데, 모두 두세 동이들이였다.

    잔치에 ‘여섯 개’의 돌 항아리가 있었다는 것은 ‘일곱’이라는 완전한 숫자에 미달된 구약의 불안전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여기에 또 하나의 돌 항아리를 추가하시지 않고 이미 있었던 여섯 개의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워서 그 물을 매우 질 좋은 포도주로 변화 시키셨습니다. 이것은 구약의 율법이 폐지된 것이 아니라 신약의 복음 안으로 흡수되어 완성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갈릴래아에서 물은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포도주로 변했습니다. 즉 율법은 물러나고 은총이 뒤를 이었습니다. 그림자는 지나가고 실재가 현존하게 되며 육적인 것은 영적인 것과 대조를 이루고 구약은 신약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는 복된 사도가 “보라, 낡은 것은 사라지고 새 것이 나타났다.”라고 말하는 바와 같습니다. 또한 물동이에 담겨진 물이 과거의 것을 조금도 잃지 않고 이제는 과거의 것이 아닌 새 것이 되기 시작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 율법은 그것으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분명해지고 완성되었습니다.


    7 예수님께서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채워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물독마다 가득 채우자,

    하인들의 자세는 신앙인의 자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모님이 하인들에게 포도주가 떨어졌으니 예수님께서 시키는 대로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정결예식에 쓰는 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시자 하인들은 아무 말 없이 물을 채웠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퍼서 잔치 맡은 사람에게 갖다 주어라 하고 말씀하시자 하인들은 그것을 갖다 주었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보기에는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아마 우리라면 “예수님! 시방 뭔 소리 하시는 것입니까? 지금 필요한 것은 술이지 물이 아닙니다. 아무리 요즘 세상에 술에 물 타서 장사를 한다고 하지만 원액 100%  물로 장사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바보입니까?” 라고 항의했을 것입니다.


     잔치집에 술이 떨어지는 절박한 상황을 나몰라라 하지 않으시고 예수님께서는 물을 술로 만드시는 기적을 행하십니다.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직 예수님께만 매달릴 때 예수님은 우리의 간절한 청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들어주십니다. 이것을 우리는 굳게 믿어야 합니다. 이것을 알고 있기에 성모님도 하인들이게 “예수님이 시키는 대로 하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성모님께서는 예수님께 “예수님! 저 자녀가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라고 간구해 주시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절박한 상황을 가엾이 여기시어 우리의 간청을 들어주실 것입니다.


    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이제는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 하셨다. 그들은 곧 그것을 날라 갔다.

    카나에서, 예수님에 의하여 변화된 물은 유대인들의 정결 예절에 쓰이던 물이었다. 종교 예절인 정결 예절은 메시아 시대의 술을 가져오신 예수님의 현존으로 말미암아 그 의미를 잃고 말았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몸소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을 깨끗하게 정화시키실 것이다.


    9 과방장은 포도주가 된 물을 맛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지만, 물을 퍼 간 일꾼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과방장이 신랑을 불러

    과방장은 잔치 기간 동안 음식을 관리합니다. 잔치집의 과방장은 하인들 중의 우두머리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랑과는 친하고, 다른 하인들과는 모르는 것 같습니다. 즉 하인들이 우물에서 물을 길어온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방장을 손님 중의 한 사람으로서 “술책임자”로, 사회자로, 연회장 등으로 지정된 사람이라고 가정할 수 있습니다.


    10 그에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하면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셨군요.”

    “포도주는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시편 104,15)라는 성경 말씀처럼 포도주가 넉넉히 제공된 것은 하느님의 축복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는 표징이고, 구세주가 가져오실 구원과 행복을 상징합니다(창세 49,11-12; 이사 62,8-9; 65,21 참조). 그러므로 잔치맡은 이의 입을 통해 보증된 “제일 좋은 포도주”는 당신이 가져오신 신약의 은총이 넘치도록 풍부하고, 다른 무엇보다도 뛰어나고 탁월한 것임을 입증하는 동시에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혼인잔치가 더없이 행복하고 값질 것임을 미리 암시하는 것입니다.


    11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가나 기적 이야기가 지닌 종말론적 의도는 그 기적 자체의 본질에 의하여 심화됩니다. 술이 매우 넘치게 준비되었습니다. 술은 상징적으로 마지막 때를 묘사하는 일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범죄를 일삼는 죄지은 백성을 벌하시러 오셔서 그들로부터 술을 빼앗으십니다(신명기 28,39-아무리 애써서 포도원을 가꾸고 심어도 벌레가 갉아 먹어 마실 포도주도 저장해 둘 포도주도 없으리라). 아모스 예언자에 의하여 파괴와 인과응보의 때로 간주된 주님의 날은 이스라엘 가문이 자기네 차지가 되지 못하고 거기에서 빚은 술을 마시지도 못하고 포도원에서 땅을 치며 통곡할 날이 될 것입니다(참조: 아모5,17).


        또 한편으로는 술이 넘치게 풍성한 것은 행복과 구원 약속이 됩니다. 아모스가 본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명상은 산에서는 햇포도주가 흘러내리고 언덕마다 무르익은 곡식이 물결치는(9,13) 땅을 봅니다. 이사야는 만백성을 위해서 시온 산위에 차려질 ‘포도주의 잔치’를 선포하였습니다(이사25,6).

        이 같은 배경을 염두에 둘 때, 가나에서 일어나는 기적은 메시아 시대에 일어나기로 되어 있는 포도주의 기적이요, 잔치 맡은 이가 감탄한 것처럼 지금까지 숨겨놓은 좋은 술이요, 종말에 쏟아부어질 풍성한 술인 것입니다.


      혼인잔치에서 흥겨움을 더해 줄 수 없었던 돌 항아리 속의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예수님께서는 이 표징을 통해 앞으로 이루실 당신의 사명을 드러내십니다. 그 사명이란 이 세상에 구원을 가져오지 못하면서도 사람들을 옭아매고 구속하였던 구약의 율법을 참된 자유와 생명을 누릴 수 있게 하는 ‘사랑의 법’으로 변화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의 보다 더 깊은 뜻은 이 기적을 통해서 당신 안에 그러한 변화를 일으키실 능력을 있다는 것을 제자들이 믿음으로써 당신의 사명을 이해하고 받아들도록 하는 데 있었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자신들이 떠간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을 알고 있는 시중꾼들을 포함하여 그 잔치에 함께 있었던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지에 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다만 사건의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그분을 믿게 되었다는 것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 잔치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 영광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분의 영광은 단지 그것을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물독에 물을 채우라고 하시는 당신의 말씀과 함께 물은 힘을 얻고, 색깔을 취하며, 좋은 향기를 퍼뜨리며 맛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물은 완전히 변해서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이런 변화는 창조주만이 하실 수 있는 능력이었습니다. 한 처음에 물과 얼음과 눈을 만드신 분의 능력 말입니다. 이것을 보고 제자들은 믿음을 얻었습니다. 제자들은 단순히 눈앞에 펼쳐진 일만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이 믿은 것은 예수님이 지극히 높으신 분의 외아들이라는 점입니다.


    12 그 뒤에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카파르나움으로 내려가셨다. 그러나 그곳에 여러 날 머무르지는 않으셨다.

     가파르나움은 갈릴래아 강변에 있었고, 가나에서 거기로 가는 것은 당연히 내려가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잠시 동안 가족들과 함께 머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앞으로는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족은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들이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순간, 십자가 아래에서 어머니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1.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기뻐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그리고 왜 기뻐했을까요?


    2. 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하인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그리고 이 다음에 그것이 술이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얼마나 놀랐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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