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라 함은 신문 · 라디오 · 텔레비전 · 영화 등의 기계적인 기술수단을 이용하여 특정하지 않은 다수의 대중에게 기호로써 대량으로 정신적 내용을 전달하는 과정을 말한다. 매스컴의 일반적 성격으로서는 전달자가 거대한 조직체라는 것, 매체(媒體)의 전달기술의 급속한 발달, 전달의 흐름이 전달자로부터 피전달자로 일방통행적이라는 것, 내용의 다양성, 피전달자가 특정하지 않은 익명의 대중이라는 것을 들 수 있다. 매스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용어는 미국에서 1940년 전후부터 사용되기 시작했으나 유네스코헌장에서 사용된 것을 계기로 2차 대전 후 급격히 사용되었다. 현대사회는 분명히 매스컴, 즉 홍보의 시대다. 따라서 가톨릭 교회에서도 홍보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에게 언제나 어디서나 복음의 기쁜 소식을 ‘만민’에게 전하라고 하셨다(마태 28:19-20, 10:27, 루가 12:3). 교회는 이렇게 하느님의 말씀을 널리 알려야 할 사명을 받았다. 만민을 대상으로 하는 오늘날의 교회의 사도직은 현대의 발전된 홍보수단을 이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무수한 대중에게 복음의 교훈과 명령을 전달할 수 있는 현대 홍보수단의 장점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할 수 없다. 따라서 교회는 1963년 12월 4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하여 Inter Mirifica(매스 미디어에 관한 교령)를 발표하였고, 1971년 5월 23일에는 교황청 매스컴위원회에서 Communio et Progressio(일치와 발전)라는 홍보수단에 관한 사목훈령을 발표하였다.
매스 미디어에 관한 교령은 교회가 홍보와 홍보수단에 대하여 갖는 개괄적이며 총괄적인 입장을 말해주고 있다. 교회는 현대 매스 미디어의 장단점을 다 알고 인정하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권장하고 또 한편으로는 걱정을 하고 있다.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데 있어 교회는 매스 미디어를 이용해야 하며 매스 미디어를 올바로 사용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은 교회의 의무라고 규정짓고 있다. 매스 미디어를 올바르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알고 지켜야 할 윤리질서의 법규가 있다. 교회는 객관적 윤리 질서에 절대적 수위권을 인정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인간의 모든 질서는 아무리 고상하고 높은 것이라 할지라도 윤리질서야 말로 그것들을 모두 적당히 조화시켜 주며 그것들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매스컴에 종사하는 모든 이가 그것을 이용함에 있어서 올바른 양심을 형성해야 하는 것이다.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사람은 자기의 조건에 따라 알아야 할 일에 관한 보도의 권리를 가지고 있으나 그 권리는 진리와 정의와 사랑에 기초를 두고 행사되어야 하며 보도의 방법에 있어서도 윤리적이고 합당해야 한다. 매스 미디어의 수혜자들은 절제와 규율을 지키는 훈련을 해야 하며 선택의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선택의 의무를 이행함에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옳고 좋은 것은 옹호하고 장려하며 칭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하며 나쁘고 영신적 해나 공익에 위배되는 것은 피하고 가차없는 비판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교회는 시대와 환경이 요구되는 대로 매스 미디어를 사도직 활동에 효과적으로 사용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 홍보수단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널리 주지시켜 홍보매체의 이용과 발전에 적극 협력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사제나 수도자나 또는 평신자들을 양성하여 사도직의 목적을 위하여 매스 미디어를 사용하고 지도하기에 상응한 자격을 갖추도록 해야 하며 가톨릭의 사회관, 윤리관 등 필요한 지식을 갖추고 환경에 따라 고유한 교육과 훈련을 받도록 해야 한다. 거룩한 교회는 이 회칙을 통해서 가톨릭적 매스 미디어를 유지하며 협조할 의미가 모든 신자들에게 있음을 천명한다. 이 정신에 따라 한국 주교회의 안에도 매스컴위원회가 공식기구로 설치되어 있다.
홍보수단에 대한 사목훈령은 공의회의 명령에 따라 마련된 것으로서 매스 미디어에 관한 교령보다는 보다 구체적이나 이 사목훈령은 아직도 기본적 원리 원칙과 일반적 사목 지침만을 제시하고 상세한 규정은 피하고 있다. 구체적 내용은 계속 변하고 발전하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달리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목 훈령에서 교회는 홍보와 홍보수단의 주요 목적은 인간 사회의 ‘일치와 발전’이라고 규정짓고 홍보수단도 ‘하느님의 선물’의 하나로 간주했다. 홍보수단은 비록 그 대상이 각 개인이지만 그 영향은 사회 전체에 미친다. 그러기에 이 홍보와 관계된 문제는 그 어느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사회적 문제요 교회적 문제이며 나아가서는 인류의 공동과제라고 할 수 있다.
홍보는 본질적으로 인간 사이의 교류를 깊게 함으로써 공동체 의식을 길러 준다. 그리하여 인간 사회의 일치를 증진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과 마음이 잘못 되거나 선의가 없으면 반대의 결과도 낼 수 있다. 따라서 창조와 강생구속의 역사 안에서 홍보수단의 정당한 위치를 깨닫고 그것을 올바로 사용하려 한다면 전인적인 인간과 홍보와 홍보수단의 깊고 건전한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인간 사회 안에서 홍보활동이 차지하는 주요 역할을 깊이 연구해야 한다.
교황 비오 12세는 여론이란 “사람을 마음과 판단에 공통적으로, 또 다소나마 자동적으로 반영된 실제 사건과 상황들의 자연스러운 메아리”라고 정의하였다(1950. 2. 17. 가톨릭 기자들에게 하신 훈시, 사목 59). 사회의 일치와 발전은 여론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여론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언론의 자유가 필수적이다. 언론의 자유는 인간성에 직결되어 있는 것으로서 그 필요성과 당위성을 주장하는 교회는 그 자유, 그 권리에도 한계가 있음을 잊지 않고 지적하고 있다. 개인과 사회의 권리를 보호할 권리, 개인과 가정의 생활을 보호할 내비(內秘)의 권리, 직업과 공익이 요구하는 비밀 보장의 권리 등이 존중되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홍보수단에 관해서 기계는 기계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기계로써 최대의 효과를 거두려면 홍보종사자와 수혜자가 다 같이 철저한 훈련을 받아야 한다. 홍보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은 홍보수혜자들의 의무이다. 수혜자들이 수동적 자세를 탈피하고 적극적 자세로 각자의 의견과 느낌을 말할 때에 일반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홍보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홍보수단은 흔히 교회와 세속간의 지름길이기 때문에 이것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하느님이 주신 탤런트를 당에 묻어 버리는 셈이다”라고 교회는 역설한다.
홍보수단은 세 가지 방법으로 교회를 도와준다. 즉, ① 교회 자신을 현대 세계에 보여 주게 하고, ② 교회 안의 대화를 증진시키고, ③ 현대의 정신과 사람들을 교회에 소개해 준다. 홍보수단은 교회의 강론대가 아니며 따라서 교회의 표현수준은 적어도 세속 작품들과 동등해야 한다는 사실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커뮤니케이션을 교회와 연계시킬 때에 사람들은 흔히 커뮤니케이션은 사회과학의 한 분야로서 교회가 교회의 사명을 이행하는 데에 사용할 가치가 있는 것 중의 하나로 생각하며 2차적인 것으로 많이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에 논의되는 커뮤니케이션 신학을 보면 교회는 커뮤니케이션의 신비 위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은 자기 탓으로 창조주를 배신하였기 때문에 죄의 결과로 생긴 혼란으로 인해 불화와 동족상잔의 싸움을 하며 서로의 교류가 끊어졌다(창세 4:1-16, 11:1-9). 그러나 구원의 역사가 시작될 때에(창세 3:15, 10:1-17, 12:1-3), 하느님 자신이 사람과 접촉하시고, 때가 차자 당신을 인간에게 알려주시며(히브 1:1-2)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요한 1:1-14). 즉 하느님의 오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육체를 갖는다는 것 즉 이 하느님의 육화는 교회로 하여금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한다.
하느님의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한 삶은 통해서 사람에게 전해진다. 하느님의 위격으로서의 예수님은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분으로서의 하느님이시다. 육화한 말씀으로서의 예수님은 우리 가운데에 육체를 가지고 계시면서 말과 행동과 삶의 모든 형태를 통해서, 특히 죽음과 부활이라는 극적인 사건을 통해서 ‘커뮤니케이션’ 하고 계신다. 예수님의 경우에 ‘The medium is the message’라는 말이 적중함을 볼 수 있다. 사목헌장은 ‘교회는 일치의 성사’라고 천명하였다. 교회는 사람을 하느님과 일치시키고 또 사람 각자의 마음을 열어 서로 일치하게 하기 위하여 존재한다. 하메르(Jerome Hamer)는 “교회는 일치다”고 하였다. 일치를 이루고, 또 그 일치를 유지하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이라면 즉 교회는 커뮤니케이션(The Church is communication)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교회가 이 세상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존재하며 ‘들어야 믿음’이 생긴다는 사실을(로마 10:17) 생각할 때에 교회와 커뮤니케이션은 그 존재 기원으로부터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하겠다. 그리고 교회는 일반사회에서 통용되는 용어 ‘mass communications’란 말은 비인간적이며 비인격적이라 하여 보다 인간적이고 인격적인 말로 바꾸어 ‘social communications’라고 사용하고 있다. 학자들 가운데도 ‘mass’라는 말의 비인간성을 지적하여 ‘public communications’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말씀이신 하느님, 삼위일체와 성삼위의 관계, 강생구속, 교회의 창설과 교회의 존재 이유를 생각할 때에 커뮤니케이션과 커뮤니케이션 관계 분야는 교회의 속성의 하나로 간주되어야 하며 교회는 홍보와 홍보매체를 사목방법의 권장사항이 아니고 의무사항으로 다루어야 한다. (吳智英)
[참고문헌] Lumen Gentium, 1964. 11. 21 / Evangelium Nuntiandi, 1975. 12. 8 / Inter Mirifica, 1963. 12. 4 / Communio et Progressio, 1971. 5. 23 / John Coleman, Reaching out, The wide world of UNDA, vol. IX No.9 1982 / Avery Dulles, The Church is Communications, Multimedia internation al publication, 1972 / Jerome Hamer, The church is a communion, Sheed & Ward, New York 1964 / M. McLuhan, Understanding media, Signet Book’s ed., New York 196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