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실본당 [한] 佳室本堂

소재지는 경북 칠곡군 왜관면 낙산리(慶北 漆谷郡 倭館面 洛山里, 현倭館邑 落山洞). 현 왜관읍 낙산본당의 전신. 1904년 대구본당 (현 桂山童本堂)에서 분할 창설, 초대 본당주임으로 그 해 입국한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 파이아스(Camille Cyprien Paillhasse, 가밀로, 河敬朝) 신부가 부임하였다. 파이아스 신부가 처음에 주재한 신나무골[枝川面 蓮花里, 옛 中花]은 대구교구(大邱敎區)의 요람지로서 1886년 경상도 담당 선교사로 임명된 로베르(Achille Paul Robert, 金保祿) 신부가 1888년까지 체류, 이어서 보두네(Calixte Xavier Baudounet, 尹少勿) 신부와 조조(Moyses Jozeau, 趙得夏) 신부가 각각 머무르던 곳이다. 파이아스 신부는 1896년과 1897년 사이에 부산에서 낙동강을 통해 낙산 사이를 왕해하는 선박의 선착장이 가까운 낙산리 노곡(蘆谷)으로 본당을 이전, 기와집 한 채를 매입하여 성당으로 사용하였다. 창설 당시의 본당 관할구역은 칠곡, 선산, 성주, 김천, 문경 등지로 공소는 모두 17개소, 파이아스 신부가 처음 주재했던 신나무골의 신자수는 70명, 관할구역 총신자수는 777명이었다. 파이아스 신부는 1898년 ! 황해도 장연(長淵)의 두섭[道習]본당으로 전임되고, 2대 본당주임으로 김성학(金聖學, 알렉시오) 신부가 부임, 3년간 전교활동을 하다가 1901년 김천(金泉)본당으로 전임하였다. 3대 본당주임으로 1901년 5월에 부임한 조아요(Louis Alphonse Marie Joyau, 玉裕雅) 신부는 1903년 성당을 증축, 사제관을 건립했으며, 부임 당시 800∼900명이던 신자수가 몇 해 만에 1,400명으로 늘어나는 큰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병(癩病)에 걸려 1907년 1월 12일 30세의 젊은 나이로 병사, 본당주임 소세(Hyppolyte Joseph Sacet, 蘇世德) 신부가 부임하였다. 원래 서울교구에 속해 있던 가실 본당은 1911년 4월 창설된 대구 대목구에 편입되었고, 그 당시의 본당 신자총수는 1,649명, 공소수는 36개, 본당 소재지인 가실의 신자수는 270명이었다. 그 해 가을에 소세 신부는 대구본당 로베르 신부의 발병(發病)으로 그 곳 주임이 되어 전임, 5대 투르뇌(Victor Louis Tourneux, 呂東宣) 신부가 부임, 1944년까지 33년간 재임하하다. 그는 부임한 지 13년만인 1923년 벽돌 양옥 성당 신축공사에 착공, 1925년에 준공, 1928년 9월에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현재 본당주임인 19대 송만협(요셉) 신부는 1978년에 부임했고, 본당주보는 성녀 안나, 신자수는 719명(1984년 현재), 공소는 3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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