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이 우리 안에서 활동하신다
“그분은 곧 진리의 성령이시다.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일 수 없지만 너희는 그 분을 알고 있다. 그분이 너희와 함께 살며 너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요한 14,17)
1. 모든 사람 안에 활동하시는 성령
인생은 고해(苦海)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인생에 행복보다는 고통이 더 많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사실 우리는 생활의 구석구석에서 고통을 받는다. 나와 함께 사는 이웃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이상이 때때로 나를 괴롭힌다. 오늘날에는 세계의 급격한 변화가 우리를 괴롭힌다. 수백만의 생명을 앗아가는 전쟁, 기아와 빈곤이 현존하는 세계의 현실 속에서 우리는 자주 실망하고 어떤 때에는 인생의 의미마저 상실해 버린다. 지금까지의 나의 업적과 명성, 그리고 무한한 욕구가 순식간에 무너져 버릴 것 같은 나의 죽음도 커다란 고통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고통 속에서도 쉽게 희망의 용기를 잃을 수 없음을 안다. 고통과 불행, 그리고 죽음의 조건 속에서도 나와 타인과 세계를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인생이 고해라면 우리는 왜 이러한 인생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것일까? 자신의 모든 것이 끝장나 버릴 것 같은 죽음을 앞에 두고도 사람들은 세기를 통한 꾸준한 노력으로 과학, 예술, 학문 등 모든 분야에 걸쳐 놀라운 발전을 이룩하였다. 도대체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우리는 이것을 성령의 역사(役事)하심이라고 믿는다. 이와같이 성령은 모든 사람 안에서 활동하신다. 그러나 성령의 작용은 이보다 더 심오하다.
2. 성화은총과 도움의 은총
아담과 하와가 지은 원죄로 말미암아 인류는 하느님이 주신 은총을 상실하고 죄와 고통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싱싱하게 자라던 나무의 뿌리가 썩어 잎이 시들고 꽃봉오리는 떨어지고 이제 생명력 자제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을 위해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성령을 지금 여러분이 보고 듣는 대로 우리에게 주심으로써”(사도 2,33) 우리는 죄와 죽음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명력을 지니게 되었다. 시들었던 가지에서 순이 돋고 꽃봉오리가 맺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성령의 작용은 단지 싹을 돋우고 꽃봉오리를 맺게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성령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뿐 아니라 이제 당신을 따라 사는 모든 사람을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여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하셨다(로마 8,14-16). 예수님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되었듯이(루가 l,35 참조) 우리도 성신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원조 아담과 하와를 범죄케 했던 유혹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하느님과 같이 되어 선과 악을 알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이 유혹에 빠진 아담과 하와는 결국 하느님과의 관계를 잃고 온 인류를 죄와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의 이러한 상태를 회복시켜 그리스도와 한 형제가 되게 하고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게 하셨으며(1고린 3,23 ) 모든 것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게 하셨다(1고린 2,9). 바로 인간을 하느님과 같이 되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부터 자연의 힘으로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으로 살아가게 되었고, 하느님의 힘으로 살기에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까지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이 바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다. 이 믿음으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을 발견하게 되었고 우리가 그 안에서 숨쉬고 움직이고 살아가기에 우리의 현세 생활도 우리의 영원한 운명도 하느님 손 안에 있다는 신뢰심을 갖게 되었다. 우리가 하느님께 의탁하고 있는 한 하느님은 우리를 버리시지 않으신다는 굳은 신뢰심이 있기에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지 되었다. 이 희망은 바로 하느님께 대한 희망이다. 더욱이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하느님의 사랑”(로마 5,5)을 부어 주셨기에 이제 우리는 무엇을 사랑해야 되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이 되었다.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웃을, 형제를, 그리고 원수까지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이 된 것이다(마태 5,44 참조). 그래서 갖가지 고통과 미움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도 우리는 사랑의 분위기에 잠길 수 있게 되었다. 성령의 은총으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지니게 된 우리 영혼은 이제 하느님을 향하여 힘차게 생명의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와같은 성령의 은총을 ‘성화 은총’이라 부른다. 이 은총은 모든 사람들에게 거저 주어진다. 그러나 우리의 나약함 때문에 이 은총을 받지 못하는가 하면 때로는 성령을 거역하는 경우도 있다(사도 7,51).
따라서 우리는 이 은총을 받기에 합당한 자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노력할 때 성령께서는 우리가 이 은총을 헛되이 받지 않도록 ‘도움의 은총’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견고케 하신다. 이 도움의 은총 속에는 성령께서 ‘은밀히 행사하시는 경고와 권고’가 있다. 그릇된 일을 경고하고 선한 일을 권고하는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거룩한 생활을 시작할 수도 없고, 진보할 수도 없고, 영원한 구원에 도달할 수도 없다.”(레오 13세, 성령 37) 이 ‘도움의 은총’은 우리의 생활 깊숙이 파고드는 일상적인 은총이기도 하다. 이 은총은 가정, 학교, 직장 등 어디에나 다 적용되며 모든 사람들 즉 노동자, 회사원, 군인, 학자, 정치가, 학생들 모두가 이 은총으로 자기의 직책에 성실하여 책임 있는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바울로 사도는 이 은총을 매우 분명하게 묘사하고 있다. “성령께서 맺어 주시는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그리고 절제입니다”(갈라 5,22) 이 모든 것은 바로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사람들의 생활에서 표현되는 덕이다. 병자와 고통받는 이를 돌보는 사람들의 몰아적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의 열매인 기쁨, 고통과 역경 속에서 참고 견디는 꿋꿋한 인내, 이웃에 대한 친절, 착한 양심과 진실한 생활 태도,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성령께서 이루시는 열매인 것이다.
이와같이 성령은 원죄로 말미암아 잃었던 생명을 다시 찾아 주실 뿐 아니라 그 생명을 가꾸고 보존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은총도 베푸신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러한 모든 “은혜의 창조주이신 자신이 바로 최고의 은혜”라는 사실이다(레오 13세, 성령 33)
3. 우리 안에 생활하시는 성령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는 의로운 사람 안에는 성령이 함께 하시며 그들 안에 계시게 된다(요한 14,17).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게 되면 그와 함께 아버지도, 예수님도 계시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버지와 나는 그를 찾아가 그와 함께 살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요한 14,23). 이로써 우리는 하느님의 성전이 되며 성령의 궁전이 된다. “여러분은 자신이 하느님의 성전이며 하느님의 성령께서 자기 안에 살아 계신다는 것을 모르십니까”(1고린 3,16)
이와같이 우리 안에 사시는 성령이야말로 “지극해 높으신 천주님의 은혜”이다(레오 13세, 성령33) 이분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보다 더욱 밀접히 예수님과 일치하게 하신다. 이제 예수님은 아버지와 함께 우리 안에 사무쳐 오실 수 있고 우리 안에 계시면서 우리의 슬픔과 기쁨, 강함과 나약함, 생명과 죽음을 함께 나누어 주시게 되었다. 우리는 예수님과 가까이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살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아셨기에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가시면서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더 유익하다.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그 협조자가 너희에게 오시지 않을 것이다”하고 말씀하신 것이다(요한 16,7) 떠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제 예수님은 성령을 통해 모든 사람 안에 머무시게 되었다. 예수님을 내 마음속에 사시게 하는 길은,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하며 감상에 젖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마주 오시는 성령을 받아들이는 데 있다.
모든 생명과 희망이 비롯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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