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고 철학자 파스칼은 정의하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 한마디로 모두를 설명할 수는 없는 복잡 미묘한 존재입니다. 오늘 첫 시간에 우리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우리 자신이 인간이고 우리는 이미 그 해답을 알고 있는 것 같으나 실제로 나 자신에게 인간이라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고 보면 그 대답이 얼마나 어렵고 힘이드는지 모릅니다. 먼저 여러분이 알고 계신대로 인간이란 무엇인가? 설명해 보시겠습니까? 우리 모두 인간이고 우리자신이 인간에 대하여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각자의 생각을 옆사람과 나누어 보십시오.
1.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에 대한 물음은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세월동안 반복된 물음입니다. 이 문제는 오늘날까지도 인간 존재와 함께 제기되는 보편적인 물음이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인간에 대한 물음은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에게 항상 새로운 관심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내가 무엇을 알 수 있는가?” 그는 이 물음에 대하여 순수 이성 비판을 가지고 태답했습니다. “내가무엇을 가지고 희망할 수 있는가?” 그는 이 물음에 대하여 순수 이성의 한계내에서 종교를 가지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하여는 “처음의 질문은 마지막 질문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근본적으로이 질문들은 모두 인간학에서 생각할 수 있다.”라고 대답함으로써 인간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구체적인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임마누엘 칸트가 “인간학에서 생각할 수 있다.”고 했던 인간학이란 무엇일까요?
1. 인간학이란?
인간에 대한 연구를 인간학이라고 하는데 주로 3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1) 물질적이고 신체적 측면에서인간을 연구하는 신체적 인간학
2) 인간의 역사적 기원이라는 관점에서 연구하는 민속 지리학적 문화적 인간학
3) 인간의 궁극원리를 찾는 관점에서 인간을 연구하는 철학적 종교학적 인간학
그 외에도 생물학적 인간은 해부학적 인간학, 생리학적 인간학, 병리학적 인간학, 동물학적 인간학, 고생물학적 인간학, 정신적 인간학, 심리학적 인간학, 사와문화적 인간학 등으로 세분화 되어 있고, 철학적 인간학, 종교학적 인간학, 신학적 인간학 등 다양한 학문으로 발전되어 왔습니다. 인간학에 대한 많은 자료들을 여기에서 다 공부할 수는 없으므로 개별적으로 참고 서적을 읽기를 권고 하면서 성서에서는 인간을 어떻게 가르치시는지를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2. 성서에서 나오는 인간
1)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 (창세 1, 25; 5, 1; 9, 6) – nefesh(영혼-살아있는 존재)
2) 영육 두 요소의 단일 유기체인 인간 (요나 2, 6; 잠언 12, 10; 13, 2; 에제 36, 26; 애가 2, 11; 시편 16, 7-9)
nefesh – 목구멍 (요나 2, 6)
– 입맛, 갈망 (잠언 12, 10; 13, 2)
3) 공존관계를 지니고 살아가는 인간
하느님과 공존하는 인간 – 이사야 64, 1; 에제 16, 4-8; 이사야54, 5
타인과 공존하는 인간 – 열왕하 23, 3; 예레 1, 5; 레위 19, 9-18; 창세 2, 18-24
4) 죄 많은 인간 – 창세 3, 5; 에제 28; 다니엘; 예레 31; 에제 36; 시편 51
5) 남자와 여자로 창조된 인간 – 창세 1, 27; 2, 18-25
6) 구원 받은 존재로서의 인간 – 요한 3, 16-17
3. 나를 찾는 인간
1) 나스룻딘 (이슬람교 스승)
나스룻딘이 나귀를 타고 마을 거리를 휘달리고 있었다. 그때 제자들의 눈이 휘둥그래져서 “어딜가십니까? 스승님!”하고 물었다. 그는 “내 나귀를 찾고 있소.” 하고 휙 지나가며 대답하였다.
2) 임제 선사 (불교 스님)
하루는 임제선사가 무엇을 열심히 찾고 있었다. 제자들이 “스님! 무엇을 찾으십니까?” 하자 “내뭄을 찾고 있다.” 하였다. 제자들은 미처 깨닫지 못하고 돌아서서 웃었다.
나스룻딘과 임제선사가 찾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들이 찾고 있는 것은 바로 “나”였던 것이다.
3) 소크라테스 (희랍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젊었을 때 일어난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의 제자 카이혼이 하루는 신전에 가서 “소크라테스 보다 더 지혜있는 사람이 있겠습니까?”하고 신에게 물었다. 그러자 신은 “그런 사람은 없다.”고 대답하였다. 이 말을 들은 소크라테스는 대단히 놀랐다. 그는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으로 알고 있었는데 오히려 신이 자기를 제일 지혜있는 사람이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그 이유를 알아볼 생각에서 그 이튿날부터 아테네에 있느 모든 유명한 학자와 정치가와 예술가를 방문하여 그들의 지혜로운 의견을 들으러 다녔다. 그러나 그들은 각 방면에서 각지 지혜있는 체만 하고 있었을 뿐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소크라테스는 신이 자기에게 제일 지혜가 많다고 한 것은 자기가 무지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이유로 칭찬해 주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 일화는 우리가 알고 있다고 하는 것이 진정으로 보잘 것 없음을 말해 준다. 그래서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 나왔다.
4) 죠 해리스 (심리학자)
심리학자 죠 해시스는 유명한 Joe Harris Window 라는 그림을 통하여 인간에 대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1 – 나도 알고 남도 아는 부분 (감각)
2 – 나에 대해 남은 모르고 나만이 아는 부분
(정서)
3 – 나에대해 남은 알고 나는 모르는 부분
(지성)
4 – 나에 대해 남도 나도 모르는 부분 (의지)
2. 위대하고도 비참한 인간
1. 삶의 의미를 묻는 인간
인간은 누구나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 삶의 보람을 찾아 느끼며 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충만한 성취감과 보람을 느낄 때에 비로소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잠깐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한 남성이 유년 시절과 학창시절을 보내고 직장에 청춘을 불사르고 그 노력의 대가로 웬만큼 승진도 합니다. 한 여성이 소녀시절의 고운 꿈을 간직한채 결혼하여 자녀들을 낳아 키우고 남편을 뒷바라지 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 덕분에 자녀들도 탈없이 성장하고 남편도 착실히 기반을 다져가고 있습니다. 이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자신의 삶에 자신을 가지고 흐뭇해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느날 문득 의문이 꼬히를 물고 찾아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정신없이 뛰고 있으며, 오늘날까지 왜 이토록 고생하며 살아야 했던가? 아이들에게나 아내(혹은 남편)에게 나는 꼭 필요한 존재인가? 이러다가 갑자기 죽기라도 한다면 나만 억울하지 않겠는가?”
이런 저런 의문 끝에 마침내는 자기가 왜 살고 있으며 왜 살아야 하는지를 묻기에 이른다. 이러한 물음 제기가 되어서 들여다 보게 되는 인간이란 존재는 생각할수록 수수께끼와 같기만 하다. 때로는 위대하고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한없이 약하고 결점 투성이인 비참한 존재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2. 위대한 인간
현대 과학과 기계문명의 발달은 인간의 위대함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습니다. 불과 30년 전만 하더라도 토끼가 떡방아를 찧고 있으리라고 상상되던 달나라에도 인간이 다녀 왔습니다. 메스콤과 교통수단의 발달로 전 세계를 한 마을로 여겨 우리는 그야말로 지구촌 생활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손가락 하나만 움직이면 건물이나 기계 따위는 고스란히 남겨 놓은 채, 사람과 목숨이 있는 것만을 순식간에 없애 버린다는 중성자탄도 발명되었습니다. 또 인간 심장을 만들어 이식하는가 하면 이제는 사람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의학자들도 있습니다. 과연 인간은 자기 두뇌의 힘을 자랑할만 합니다. 또 세상 만물을 지배하고 정복할 수 있다고 자신을 가질만 합니다.
3. 비참한 인간
과학과 기계문명의 발달이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혜택을 주었지만 우리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하거나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물질적으로 아무리 풍족하다고 해도 여전히 굶주려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갖가지 질병을 낫게하고 생명까지도 연장해준 의학이지만, 인간의 죽음을 극복하거나 죽음의 본질과 죽은 후의 일에 대해 명백하게 해명하지는 못합니다. 이렇게 과학이나 의학은 인간의 근본문제인 삶과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뿐더러 인간을 죽음의 불안과 절망으로부터 구원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서로 죽이고 전쟁을 일으키는등, 자신에게 주어진 창의력을 인간답게, 인간을 위해서 사용하지도 못하고 인류의 역사를 올바로 이끌어 가지오 못하고 있습니다. 이미 과학과 기계문명은 현대인의 우상으로서의 한계를 드러냈고, 인간은 자신의 비참함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4. 요청되는 절대자
과학과 기계문명의 발달은 새로은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대인은 발달의 의미와 보람과 그 향방을 묻게 되었고 인간의 근본문제를 다시 캐고 들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은 무엇이고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이며 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런 물음에 끊임없이 대답을 찾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절대자 혹은 구원자의 손길을 절실하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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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고 철학자 파스칼은 정의하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 한마디로 모두를 설명할 수는 없는 복잡 미묘한 존재입니다. 오늘 첫 시간에 우리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우리 자신이 인간이고 우리는 이미 그 해답을 알고 있는 것 같으나 실제로 나 자신에게 인간이라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고 보면 그 대답이 얼마나 어렵고 힘이드는지 모릅니다. 먼저 여러분이 알고 계신대로 인간이란 무엇인가? 설명해 보시겠습니까? 우리 모두 인간이고 우리자신이 인간에 대하여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각자의 생각을 옆사람과 나누어 보십시오.
1.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에 대한 물음은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세월동안 반복된 물음입니다. 이 문제는 오늘날까지도 인간 존재와 함께 제기되는 보편적인 물음이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인간에 대한 물음은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에게 항상 새로운 관심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내가 무엇을 알 수 있는가?” 그는 이 물음에 대하여 순수 이성 비판을 가지고 태답했습니다. “내가무엇을 가지고 희망할 수 있는가?” 그는 이 물음에 대하여 순수 이성의 한계내에서 종교를 가지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하여는 “처음의 질문은 마지막 질문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근본적으로이 질문들은 모두 인간학에서 생각할 수 있다.”라고 대답함으로써 인간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구체적인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임마누엘 칸트가 “인간학에서 생각할 수 있다.”고 했던 인간학이란 무엇일까요?
1. 인간학이란?
인간에 대한 연구를 인간학이라고 하는데 주로 3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1) 물질적이고 신체적 측면에서인간을 연구하는 신체적 인간학
2) 인간의 역사적 기원이라는 관점에서 연구하는 민속 지리학적 문화적 인간학
3) 인간의 궁극원리를 찾는 관점에서 인간을 연구하는 철학적 종교학적 인간학
그 외에도 생물학적 인간은 해부학적 인간학, 생리학적 인간학, 병리학적 인간학, 동물학적 인간학, 고생물학적 인간학, 정신적 인간학, 심리학적 인간학, 사와문화적 인간학 등으로 세분화 되어 있고, 철학적 인간학, 종교학적 인간학, 신학적 인간학 등 다양한 학문으로 발전되어 왔습니다. 인간학에 대한 많은 자료들을 여기에서 다 공부할 수는 없으므로 개별적으로 참고 서적을 읽기를 권고 하면서 성서에서는 인간을 어떻게 가르치시는지를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2. 성서에서 나오는 인간
1)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 (창세 1, 25; 5, 1; 9, 6) – nefesh(영혼-살아있는 존재)
2) 영육 두 요소의 단일 유기체인 인간 (요나 2, 6; 잠언 12, 10; 13, 2; 에제 36, 26; 애가 2, 11; 시편 16, 7-9)
nefesh – 목구멍 (요나 2, 6)
– 입맛, 갈망 (잠언 12, 10; 13, 2)
3) 공존관계를 지니고 살아가는 인간
하느님과 공존하는 인간 – 이사야 64, 1; 에제 16, 4-8; 이사야54, 5
타인과 공존하는 인간 – 열왕하 23, 3; 예레 1, 5; 레위 19, 9-18; 창세 2, 18-24
4) 죄 많은 인간 – 창세 3, 5; 에제 28; 다니엘; 예레 31; 에제 36; 시편 51
5) 남자와 여자로 창조된 인간 – 창세 1, 27; 2, 18-25
6) 구원 받은 존재로서의 인간 – 요한 3, 16-17
3. 나를 찾는 인간
1) 나스룻딘 (이슬람교 스승)
나스룻딘이 나귀를 타고 마을 거리를 휘달리고 있었다. 그때 제자들의 눈이 휘둥그래져서 “어딜가십니까? 스승님!”하고 물었다. 그는 “내 나귀를 찾고 있소.” 하고 휙 지나가며 대답하였다.
2) 임제 선사 (불교 스님)
하루는 임제선사가 무엇을 열심히 찾고 있었다. 제자들이 “스님! 무엇을 찾으십니까?” 하자 “내뭄을 찾고 있다.” 하였다. 제자들은 미처 깨닫지 못하고 돌아서서 웃었다.
나스룻딘과 임제선사가 찾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들이 찾고 있는 것은 바로 “나”였던 것이다.
3) 소크라테스 (희랍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젊었을 때 일어난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의 제자 카이혼이 하루는 신전에 가서 “소크라테스 보다 더 지혜있는 사람이 있겠습니까?”하고 신에게 물었다. 그러자 신은 “그런 사람은 없다.”고 대답하였다. 이 말을 들은 소크라테스는 대단히 놀랐다. 그는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으로 알고 있었는데 오히려 신이 자기를 제일 지혜있는 사람이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그 이유를 알아볼 생각에서 그 이튿날부터 아테네에 있느 모든 유명한 학자와 정치가와 예술가를 방문하여 그들의 지혜로운 의견을 들으러 다녔다. 그러나 그들은 각 방면에서 각지 지혜있는 체만 하고 있었을 뿐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소크라테스는 신이 자기에게 제일 지혜가 많다고 한 것은 자기가 무지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이유로 칭찬해 주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 일화는 우리가 알고 있다고 하는 것이 진정으로 보잘 것 없음을 말해 준다. 그래서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 나왔다.
4) 죠 해리스 (심리학자)
심리학자 죠 해시스는 유명한 Joe Harris Window 라는 그림을 통하여 인간에 대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1 – 나도 알고 남도 아는 부분 (감각)
2 – 나에 대해 남은 모르고 나만이 아는 부분
(정서)
3 – 나에대해 남은 알고 나는 모르는 부분
(지성)
4 – 나에 대해 남도 나도 모르는 부분 (의지)
2. 위대하고도 비참한 인간
1. 삶의 의미를 묻는 인간
인간은 누구나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 삶의 보람을 찾아 느끼며 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충만한 성취감과 보람을 느낄 때에 비로소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잠깐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한 남성이 유년 시절과 학창시절을 보내고 직장에 청춘을 불사르고 그 노력의 대가로 웬만큼 승진도 합니다. 한 여성이 소녀시절의 고운 꿈을 간직한채 결혼하여 자녀들을 낳아 키우고 남편을 뒷바라지 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 덕분에 자녀들도 탈없이 성장하고 남편도 착실히 기반을 다져가고 있습니다. 이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자신의 삶에 자신을 가지고 흐뭇해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느날 문득 의문이 꼬히를 물고 찾아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정신없이 뛰고 있으며, 오늘날까지 왜 이토록 고생하며 살아야 했던가? 아이들에게나 아내(혹은 남편)에게 나는 꼭 필요한 존재인가? 이러다가 갑자기 죽기라도 한다면 나만 억울하지 않겠는가?”
이런 저런 의문 끝에 마침내는 자기가 왜 살고 있으며 왜 살아야 하는지를 묻기에 이른다. 이러한 물음 제기가 되어서 들여다 보게 되는 인간이란 존재는 생각할수록 수수께끼와 같기만 하다. 때로는 위대하고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한없이 약하고 결점 투성이인 비참한 존재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2. 위대한 인간
현대 과학과 기계문명의 발달은 인간의 위대함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습니다. 불과 30년 전만 하더라도 토끼가 떡방아를 찧고 있으리라고 상상되던 달나라에도 인간이 다녀 왔습니다. 메스콤과 교통수단의 발달로 전 세계를 한 마을로 여겨 우리는 그야말로 지구촌 생활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손가락 하나만 움직이면 건물이나 기계 따위는 고스란히 남겨 놓은 채, 사람과 목숨이 있는 것만을 순식간에 없애 버린다는 중성자탄도 발명되었습니다. 또 인간 심장을 만들어 이식하는가 하면 이제는 사람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의학자들도 있습니다. 과연 인간은 자기 두뇌의 힘을 자랑할만 합니다. 또 세상 만물을 지배하고 정복할 수 있다고 자신을 가질만 합니다.
3. 비참한 인간
과학과 기계문명의 발달이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혜택을 주었지만 우리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하거나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물질적으로 아무리 풍족하다고 해도 여전히 굶주려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갖가지 질병을 낫게하고 생명까지도 연장해준 의학이지만, 인간의 죽음을 극복하거나 죽음의 본질과 죽은 후의 일에 대해 명백하게 해명하지는 못합니다. 이렇게 과학이나 의학은 인간의 근본문제인 삶과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뿐더러 인간을 죽음의 불안과 절망으로부터 구원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서로 죽이고 전쟁을 일으키는등, 자신에게 주어진 창의력을 인간답게, 인간을 위해서 사용하지도 못하고 인류의 역사를 올바로 이끌어 가지오 못하고 있습니다. 이미 과학과 기계문명은 현대인의 우상으로서의 한계를 드러냈고, 인간은 자신의 비참함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4. 요청되는 절대자
과학과 기계문명의 발달은 새로은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대인은 발달의 의미와 보람과 그 향방을 묻게 되었고 인간의 근본문제를 다시 캐고 들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은 무엇이고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이며 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런 물음에 끊임없이 대답을 찾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절대자 혹은 구원자의 손길을 절실하게 요청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