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개혁 시대의 교회

1517년 10월 31일 독일의 성 아우구스띠노 은수사회 수사신부이며, 성서학 교수였던 마르틴 루터는 대사남용에 항의하면서 대사 교리의 재정립을 제의하기 위해 그의 교구장과 동료 교수신부에게 편지를 보낸다. 이 편지는 유명한 95개 조항의 신앙 명제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정통신앙의 지저를 흔들어 놓았으며 그리스도교계를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로 분열 시키는 종교개혁 시대를 열었습니다.

1 마르틴 루터
1483년 10월 10일 독일 신성 로마제국 아이스렌벤에서 출생한 그는 번쩍이는 뇌우속에서 번개불에 놀라 죽음이 임박했다는 위기의식 속에서 수도자가 되기로 다짐하고 에르프르트의 성 아우구스띤 은수사회에 입회하였습니다.
1506년 수도 서원을 하고 다음해 사제가 되었습니다. 신학 연구활동을 활발히 하였던 그의 초기 생애 속에서 그는 경건한 신앙인, 모범적인 수도자, 열성적 사목자로서 활동을 하였습니다. 루터는 성 베드로 대성전 “전대사” 시행과정에서 대사 남용에 충격을 받고 1517년 교회의 관습에 따라 그의 교구장과 독일의 대사시행을 책임진 고위 성직자에게 항의하는 편지와 대사 남용을 논박하는 신학 명제인 “95개항 명제”를 작성하여 보냄으로써 그 유명한 대사 논쟁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 대사 논쟁이 바로 개신교 탄생의 기원이 됩니다.
루터는 사목자로서 설교를 통해 대사교리와 구원론을 설명하면서 대사 설교가들을 비판하고 신자들에게 대사남용의 위험을 경고하였습니다. 그는 “우리 영혼은 선을 행할 수 있는 어떤 힘도 없다. 원죄를 지닌 후 사람은 고칠수 없는 고질에 걸렸고, 완전히 부패한 것이다. 따라서 어떤 착한 일도 할 수 없다. 특히 참다운 보속이란 도저히 실행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가톨릭 교리을 배척하게 됩니다. 또한 인간의 영혼은 온전히 부패한 것이고 그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나 의로와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위해서는 예수그리스도의 공덕이 병풍과도 같이 인간의 죄를 덮어주는 것이므로 오직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만 있으면 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고신극기, 재, 소재의 엄수, 고백성사, 자선사업, 덕행 등이 구원의 조건일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아무런 조건없이 그리스도의 자비에 대한 신뢰만이 필요하며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선행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순수한 자비만이 우리를 구하는 것이다.”라고 요약하였습니다.

2. 대사논쟁(大赦論爭)
대사란 인류구원 과정에 있어서 보조 수단으로 교회가 간직하고 있는 예수그리스도의 무한한 성혈 공로와 성인들의 넘치는 보속 공로를 갖고서 신자가 현세에서 또는 죽은 후에 연옥에서 받아야 하는 죄의 잠벌을 사해주는 것입니다. 즉 죄를 범한 신자가 고백성사를 통해 죄의 잘못을 용서받고 영원한 벌에서 벗어났지만 자기 죄로 인해 생긴벌을 받아야 하는데 이러한 죄벌은 우선 고백신부가 북과하는 보속을 실천함으로써 탕감되는데 현세에서 보속을 하지 못하면 연옥에서 보속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교회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보속을 면제해 주는 것을 대사라고 합니다.
대사는 교황이나 주교가 줄 수 있는데 전대사와 한대사가 있습니다. 전대사(全大赦)란 죄인이 받아야 할 벌을 전부 없애주는 것이고, 한대사(限大赦)란 그 벌의 일부를 없애 주는 것을 말합니다. 전대사와 한대사를 연옥에서 고통받는 영혼들을 위해 대신 받을 때 그것을 대원이라고 합니다.
1) 대사제도
대사제도는 초대교회 박해시대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교회의 보속 규정에 의하면 죄인은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일정기간(40일, 80일, 300일 또는 몇 년)동안 자신의 죄를 보속하는 속죄기간을 거쳐야 사면을 받았습니다. 박해기간에는 이 규정을 지키기가 힘이 들었고 후에 신자들이 다시 교회에 들어오는데 일종의 장애 요소로도 작용하였습니다. 그래서 특별한 경우 주교들은 속죄기간을 단축하여 주기도 했는데 이 속죄기간 단축이 대사의 기원을 이룹니다.
그 후 속죄 기간의 단축이 아니라 속죄를 사면하는 관습이 생겨났고 이는 이름바 대사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그후 십자군 운동이 일어나면서 대사는 십자군 전쟁에 참여하는 사람이나 십자군을 위해 재산을 기부하는 사람ㅁ에게 주어졌고, 십자군운동이 끝난 후에도 일정한 공익 사업을 위해 기부하는 사람에게 대사가 주어졌습니다. 이것이 중세말 “대사설교가들”이 대사를 남용하면서 소위 면죄부(免罪符)라고 알려진 증서를 발매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이 바로 루터의 95개항의 항의 명제가 나온 원인입니다.
당시 교황 율리오 2세(1503-1513년)는 1506년 로마 대성전 개축에 착수하였느데 규모가 커서 막대한 비용이 들자 율리오 2세와 레오 10세(1513-1521년)는 전대사를 반포하고 신자들의 재정지원을 청했습니다. 불행이 잦은 대사 반포로 대사 선전자들 주변에 탐욕이 깃들이게 되고 이 대사를 기회로 돈벌이를 하는 폐단이 생겨 사람들 사이에서 비난이 일어났습니다.
15세기 중엽에는 대사가 교회의 중요한 수입원으로 오용되었습니다. 설교가들은 성공적 모금을 위한 과대 선전으로 대사의 효과를 남용하였고 이 과정에서 죄의 잘못과 죄의 벌에 대한 구분이 불투명해졌습니다. 그 때문에 무지한 신자들은 대사를 구원과 혼동하여 대사 부여를 약속하는 고해성사표를 천국통행증으로 오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신자들은 고해성사표에서 강조하는 대사를 얻기위한 내적 정화를 등한시하고 돈이면 구원될수 있다는 생각을 갖기에 이르렀습니다. 잘못된 대사 교리가 중세 말기의 지배적인 견해였고, 여기에 근거한 대사시행과 대사 판매 행위는 비난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공식적으로 이러한 과장된 교리를 밝힌 적은 없습니다.

<전대사를 얻기 위한 조건>
당시 대사 증서 혹은 대사부라고 불리던 고해성사표에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붙어있었습니다.
1. 신자는 자신의 선을 수행하여야 하는데 자기의 경제 사정과 사회적 신분에 맞는 규정금액을 지불했다.
2. 신자는 고해성사를 봐야 하는데 고해신부는 고해소에서 교황에게 유보된 죄에 대해서도 사죄를 선포할 수 있는 특권을 받았다.
3. 신자는 사죄를 얻기 위해 반드시 자기 죄에 대하여 통회해야 했다.

결국 교회 안에서 잘못된 대사 시행에 대하여 개혁의 소리가 높았고 대사의 본래의미를 재확인하고 정립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볼 때 루터가 대사 교리에 대한 95개항의 명제를 공표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사건이라고 볼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루터의 사상과 대사의 논쟁은 결국 루터의 파문과 함께 그리스도교가 양분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렇게 파생된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독일의 루터 종교개혁을 위시하여 스위스의 쯔빙글리 종교개혁과 칼빈의 종교개혁 그리고 재세례파의 급진적 종교개혁을 가져왔고 영국에서는 국교회가 탄생하였습니다.

이 글은 카테고리: catholicdictionary3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