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국가 Kirchenstaat

  교회 국가  敎會國家 Kirchenstaat

  교회 국가란 중세기 때 교황의 통치권 아래 예속되어 있던 예전의 국가 영지를 의미한다. 그 중심은 베드로의 세습 영지였다. 고대 말경부터 수많은 가문들이 자신의 소유 토지를 교황, 즉 ꡐ성 베드로ꡑ에게 기부하였다. 이 기부된 토지들은 특히 이탈리아 남부, 중부 그리고 시칠리아에 위치해 있었다. 이들 지역은 8세기에 이르기까지는 비잔틴의 정치적 통치권 아래 예속되어 있었다. 이들 지역에 대한 통치권 행사를 둘러싸고 격렬한 전쟁도 있었다.


  754년에는 피핀의 증여를 통해 라벤나(Ravenna), 리미니(Rimini), 페사로(Pesaro) 그리고 안코나(Ancona) 지역이 추가되었다. 이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둘러싼 전쟁은 중세기 내내 계속되었다. 콘스탄티누스의 증여에도 불구하고 교회 국가에 속하는 지역은 독일 황제의 보호를 받아 왔다. 이 지역은 항상 랑고바르드족 그리고 노르만족으로부터 위협을 받아 왔기 때문에 독일의 황제들이 보호 의무를 지게 되었다. 1213년 황제 프리드리히(Friedrich) 2세는 교황 인노첸시오 3세에게 교회 국가에 속하는 지역을 문서로 확인해 주었다. 하지만 로마의 귀족 가문들에 의해 발생하게 된 새로운 전쟁은 교회 국가의 위치를 불확실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교황 율리오 2세(Julius Ⅱ, 1503~1513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교회 국가는 안정을 되찾았다. 뿐만 아니라 그사이 파르마(Parma)와 페루자(Perugia) 지역을 더 획득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교황들의 친인척 중용으로 말미암아 교회 국가에 속했던 일부 지역은 여러 가문으로 양도되기도 하였다. 1809년 나폴레옹 1세는 교회 국가를 이탈리아 왕국에 합병시켰다. 프랑스 혁명의 여파로 제후와 국가의 소유권에 변화가 뒤따랐다. 그 결과 교회 국가의 지역은 줄어들었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의 평화를 실현시킨 비엔나 회의는 1815년 교회 국가를 다시금 회복시켰다. 하지만 회복된 교회 국가는 1866년 이탈리아의 통일로 인해 사라졌다. 1870년 교회 국가는 새로운 국가 이탈리아의 일부가 되었다. 이때부터 교황들은 스스로를 ꡐ바티칸의 포로ꡑ로 여겼고, 교황 비오 9세부터 교황 요한 23세에 이르기까지 더 이상 바티칸 시국을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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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국가 Kirchenstaat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교회 국가  敎會國家 Kirchenstaat

      교회 국가란 중세기 때 교황의 통치권 아래 예속되어 있던 예전의 국가 영지를 의미한다. 그 중심은 베드로의 세습 영지였다. 고대 말경부터 수많은 가문들이 자신의 소유 토지를 교황, 즉 ꡐ성 베드로ꡑ에게 기부하였다. 이 기부된 토지들은 특히 이탈리아 남부, 중부 그리고 시칠리아에 위치해 있었다. 이들 지역은 8세기에 이르기까지는 비잔틴의 정치적 통치권 아래 예속되어 있었다. 이들 지역에 대한 통치권 행사를 둘러싸고 격렬한 전쟁도 있었다.

      754년에는 피핀의 증여를 통해 라벤나(Ravenna), 리미니(Rimini), 페사로(Pesaro) 그리고 안코나(Ancona) 지역이 추가되었다. 이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둘러싼 전쟁은 중세기 내내 계속되었다. 콘스탄티누스의 증여에도 불구하고 교회 국가에 속하는 지역은 독일 황제의 보호를 받아 왔다. 이 지역은 항상 랑고바르드족 그리고 노르만족으로부터 위협을 받아 왔기 때문에 독일의 황제들이 보호 의무를 지게 되었다. 1213년 황제 프리드리히(Friedrich) 2세는 교황 인노첸시오 3세에게 교회 국가에 속하는 지역을 문서로 확인해 주었다. 하지만 로마의 귀족 가문들에 의해 발생하게 된 새로운 전쟁은 교회 국가의 위치를 불확실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교황 율리오 2세(Julius Ⅱ, 1503~1513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교회 국가는 안정을 되찾았다. 뿐만 아니라 그사이 파르마(Parma)와 페루자(Perugia) 지역을 더 획득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교황들의 친인척 중용으로 말미암아 교회 국가에 속했던 일부 지역은 여러 가문으로 양도되기도 하였다. 1809년 나폴레옹 1세는 교회 국가를 이탈리아 왕국에 합병시켰다. 프랑스 혁명의 여파로 제후와 국가의 소유권에 변화가 뒤따랐다. 그 결과 교회 국가의 지역은 줄어들었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의 평화를 실현시킨 비엔나 회의는 1815년 교회 국가를 다시금 회복시켰다. 하지만 회복된 교회 국가는 1866년 이탈리아의 통일로 인해 사라졌다. 1870년 교회 국가는 새로운 국가 이탈리아의 일부가 되었다. 이때부터 교황들은 스스로를 ꡐ바티칸의 포로ꡑ로 여겼고, 교황 비오 9세부터 교황 요한 23세에 이르기까지 더 이상 바티칸 시국을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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