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스토리우스주의 Nestorianismus

  네스토리우스주의  Nestorianismus

  네스토리우스주의의 경우 초대 교회의 다른 이단설 – 아리우스주의, 단일 유출설, 단성론, 단의론 등 – 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안에 내재하는 신성과 인성의 단일성 또는 상이성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관계에 대해 정의를 내린 바 있다. 451년 칼케돈 공의회는 ꡒ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은 혼합되지 않고 불변하며, 분리되지 않고 나누어지지 않는다ꡓ라고 상세하게 부연하였다. 이로써 칼케돈 공의회는 그리스도 안에 내재하는 신성과 인성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그사이 등장한 이단설을 겨냥하고 있었다. ꡒ혼합되지 않고 불변하다ꡓ는 것은 단일 유출설, 단성론 그리고 단의론에 이의를 제기하기 위한 것이었고, ꡒ분리되지 않고 나누어지지 않는다ꡓ는 것은 네스토리우스주의를 겨냥한 것이었다.


  알렉산드리아에는 매우 유명한 신학 학파가 있었다. 이 학파는 그리스도 안에 내재하는 신성과 인성은 내적으로 일치를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로써 구세주(그리스도)의 본질 단일성과 동시에 구세주의 구원 활동을 문제 삼았다. 그래서 하느님의 제2위격의 인간화는 없었고, 단지 한 인간 안에 말씀의 내재만이 있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428년 이후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총대주교였던 네스토리우스가 이러한 주장을 대변하였을 때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네스토리우스는 자신의 설교를 통해 ꡐ천주의 어머니ꡑ라는 마리아의 호칭에 이의를 제기하였다. 마리아는 단지 인간 예수를 출산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 치릴로는 325년 니케아 공의회와 381년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가 결정한 대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일치를 주장하였다. 치릴로의 청원에 따라 교황 첼레스티노(Coelestin) 1세는 이미 430년 로마에서 개최되었던 시노드에서 네스토리우스의 주장을 단죄하였다. 교황 첼레스티노 1세는 네스토리우스로 하여금 10일 이내에 자신의 주장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였다. 동시에 교황은 치릴로에게 이 요구의 실행을 위임하였다. 치릴로는 교황의 이름으로 네스토리우스의 주장 가운데 12개의 명제를 단죄하였다. 네스토리우스는 이러한 단죄에 저항하였고, 안티오키아 총대주교와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는 서로 대립의 상태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황제 테오도시우스는 431년 성령 강림 대축일을 기해 에페소 공의회를 소집하였다. 치릴로는 모든 주교들이 공의회에 참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431년 6월 22일 공의회를 개회하였다. 이날 공의회에 참석한 198명의 주교들은 네스토리우스에 대한 단죄를 승인하였다. 또한 네스토리우스는 면직되었다. 안티오키아의 총대주교는 며칠 늦게 공의회에 도착하였다. 그는 ꡐ소공의회ꡑ를 개최하여 치릴로를 파직시켰다. 황제 테오도시우스는 2가지 결정 모두를 추인하였고, 치릴로는 물론 네스토리우스도 체포되어 구금되었다. 결국 교황 첼레스티노 1세와 식스토 3세가 안티오키아의 총대주교는 네스토리우스의 면직을 인정하고 ꡐ마리아는 천주의 어머니ꡑ라는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신앙의 진술을 수용해야 한다고 결정함으로써 사태는 진정의 국면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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