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벤나 Ravenna

  라벤나 Ravenna

  고트족의 왕 대 테오도리크(Teoderich, 493~526년)는 이탈리아 북부 지역을 점령하였다. 519년경 테오도리크는 가톨릭을 신봉하는 자신의 신하들이 자기보다는 비잔틴의 국왕에게로 기울어질 수 있다는 의심을 가지게 되었다(테오도리크는 아리안족 출신이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테오도리크 왕은 교황 요한 1세를 라벤나의 감옥에 집어넣었고, 교황 요한 1세는 거기서 서거하였다. 이러한 불의한 처사는 고트족에게 반감을 불러일으켰고, 그 결과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용이하게 라벤나를 정복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였다. 이탈리아 정부는 비잔틴 황제의 위임으로 총독을 임명하였다. 이 총독은 라벤나에 정주하였다.


  568년 라벤나는 랑고바르드족의 공격을 방어하였고, 그리스인들이 라벤나를 장악하였다. 교황 보니파시오 5세 재임시(619~625년) 비잔틴의 황제로부터 총독에 임명된 라벤나의 대주교는 자신의 통치하던 지역을 황제의 주권으로부터 분리하여 독립시키려고 시도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교황 비탈리아노(Vitalian) 재임시에 동로마의 황제 콘스탄스 2세는 666년 단성론을 둘러싼 논쟁의 와중에 라벤나의 총독에게 또 다른 특권을 부여하였다(이 특권은 680/682년에 다시금 철회되었다). 즉 라벤나는 서방 교회로부터 분리되어 독립되어야 한다는 특권을 부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랑고바르드족은 751년 라벤나를 공격하여 탈취하는 데 성공하였다. 교황 스테파노 2세는 동로마 황제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교황 스테파노 2세는 피핀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피핀은 교황의 요청을 받아들여 라벤나를 다시 탈환하여 교황에게 넘겨주었다. 교황 레오 4세 재임시에 라벤나의 대주교 엘레우테리오(Eelutherius)는 853년 다시 독립을 시도하면서 교회의 재산을 탕진하였다. 이미 오래 전부터 황제의 제국에 속해 있던 라벤나는 로마로부터의 독립 의지를 키워 왔고, 비잔틴의 황제는 이러한 독립 의지를 부추겨 왔다. 라벤나에서 개최되었던 시노드에서 교황 레오 4세는 독일의 황제 루트비히 2세의 지지를 받아 라벤나의 대주교에게 독립 의지의 포기를 설득하였다.


  하지만 싸움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교황 니콜라오 1세 재이시에 라벤나의 대주교는 861년 다시금 로마로부터 독립하려고 시도하였다. 교황 니콜라오 1세는 황제 루트비히 2세의 임석하에 라벤나에서 시노드를 개최하였으나 합의점에 도달하지는 못하였다. 라벤나의 대주교 요한이 자신의 요구를 계속 주장하자 861년 그는 로마로 소환되었고, 교황에 의해 파문되었다. 교황 니콜라오 1세는 직접 라벤나를 방문하여 개입하였다. 그 결과 라벤나의 대주교는 교황에게 복종해야 하며, 2년마다 로마를 방문하여야 하며, 라벤나 대주교 휘하의 주교들과 로마와의 관계 유지를 방해해서는 안 되게 되었다. 967년 오토 1세 국왕은 오래 전부터 동로마 제국에 속해 있던 라벤나를 교황 요한 13세에게 넘겨주었다. 이로써 라벤나는 영원히 서방과 로마 교회에 속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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