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구약성서의 환자치유.
구약성서에서 고통과 질병은 일차적으로 죄와 관련된다. 즉 저지른 죄악과 잘못에 대한 벌이요 징계로 생각했다. 이러한 고통과 질병의 원인과 의미 설명이 병자에게는 한층 더 괴로움을 가져다주었으며 당대인들 앞에서 불명예를 갖다 주었다. 죄인으로 여겨진 환자들은 공동체에서 소외되었으며 치유가 되었을 때 비로소 다시 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런 의미에서 환자치유는 구원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의인이 겪는 고통과 질병은 그런 식으로 설명될 수 없었다. 이에 구약은 다른 해답을 찾으려 노력해야 했다. 그 결과 구약은 인류의 죄, 죄의 연대성을 말하게 되었다. ‘그는 우리가 앓을 병을 대신 앓아 주었으며, 우리가 당할 고통을 대신 당해주었다’(이사 53,4)는 것이다. 이렇게 구약은 질병을 자신이나 공동체가 살아 계신 하느님을 거부하는 죄의 결과로 보고 있다. 따라서 환자치유는 단지 육체적인 치유뿐 아니라 죄로부터의 구원의 상징으로 등장했다. 이런 의미에서 예언자들은 도래할 구세주의 구원을 말하며 자주 병자들의 치유약속과 결부시킨다.
2). 신약성서
예수는 병자들과 고통받고 있는 자들을 보시고 깊은 동정심과 자비심을 갖고 그들을 실제로 도와주고 치유해 주었다. 예수는 질병 중에서 작용하는 사탄의 힘을 보았다. 따라서 병을 치료하고 마귀를 쫓아냄은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그 주권에 대한 자기의 선포와 실현의 한 부분, 즉 메시아적 행위였다. 따라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가서 하늘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시오. … 병든 이들은 고쳐주고(마태 10,7-8).” 또한 죄가 질병과 관계 있음을 예수님은 여러 곳에서 말씀하신다. 베드로의 집에서 치유 받은 중풍병자에게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아들아, 네 죄가 용서받았다(마르 2,5)”였다. 또 치유 받은 자를 성전에서 만나신 예수는 “당신은 건강한 몸이 되었소. 더는 죄를 짓지마시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더 형편없게 될지도 모릅니다(요한 5,14)”고 말씀하였다. 따라서 예수가 병을 고쳐 준다는 것은 육체적 및 의학적인 병의 치료뿐 아니라 언제나 정신적이고 종교적이며 전인적인 치료를 말한다. 육체적 치유는 영혼의 치유에서 따라오는 것이다. 그렇기에 예수는 병의 치료를 요청하는 사람에게 먼저 믿음과 신앙을 요구하셨고 그 다음 기적적 행위를 명령이나, 손으로 만지거나, 안수를 하거나, 침을 바른다든지 하는 외적인 표지를 통하여 고쳐 주셨다. 또한 예수는 그들과 연대의식을 가지고 그들을 자신과 동일시한다(내가 병들었을 때 돌보아 주었다 : 마태 25,36). 그분은 우리의 병고를 대신 떠맡은 고난받는 야훼의 종이다. 아픈 사람들을 측은히 여기시며 아파하는 사람들과 함께 아파하신다. 그래서 병자성사가 주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십자가의 고통을 받아들이신 그분이 지금 고통을 당하는 환자와 함께 계시는 주님의 현존이다. 병자는 욥과 같이 자신의 고통이 주님의 현존을 체험하는 것이고 주님의 남은 고난을 제 몸으로 채움으로 구원의 도구가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야고보서 5, 14-16은 병자성사의 구체적 행위와 표징을 전하는 전형적인 성서대목이다. “여러분 중에 앓는 사람이 있으면 교회의 원로들을 청하십시오. 원로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른 후에 그를 위하여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자를 낫게 할 것이며 주님께서는 그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또 그가 지은 죄가 있으면 그 죄는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 이는 유대교와 초기 그리스도교 안에서 시행된 관습을 받아들인 것이다. 여기서의 병자란 실제로 질병에 걸려서 병상생활을 하거나 적어도 거동이 힘든 상태에 있는 의식 있는 병자를 뜻하는 것이지 죽음에 임박한 임종자를 뜻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교회 원로들은 주님의 이름을 따라서 그의 능력으로 행동했다. 기름 바름은 적어도 육체적인 치료의 효과적인 표징이요 그 자체로서 여러 가지 영양학적 재료라는 것은 오늘날에도 널리 인정되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순수한 육체적 치료라기 보다는 병자의 상태를 종교적으로 관찰하고 병자와 관계되는 구원과 종교적 무기력과 영적 허약함의 치유를 뜻하는 것으로 본다. 교회의 장로의 직무인 ‘신앙의 기도’가 요구되고 실천되어야 한다는 자명성과 교회적인 도유의 표지행위에 병자의 상황에 따른 넓은 의미의 구원의 효과를 인정하는 확실성에서 교회는 후에 병자도유의 성사성의 개념을 취한 것이다. 이는 분명히 이미 사도시대부터 직무적으로 ‘주님의 이름으로’ 시행되던 예식이었음을 증명해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