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동정이신 하느님의 모친 마리아

 

2. 평생 동정이신 하느님의 모친 마리아




    4세기에 하느님의 모친 칭호를 확장시키고 에페소 공의회에서 분명해진 신앙 운동은 또한 새로운 방법으로 마리아의 동정성을 고찰하도록 이끌어 주었다. 지금까지는 예수의 동정 잉태만이 제기되었다. 지금부터는 예수의 어머니의 동정성이 하느님의 모친의 동정성으로 인식되어, 자기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절대적인 봉헌과 다른 모든 육적인 밀접 관계에서 예외적인 성격을 띄는 관계로 이해된다. 따라서 마리아의 동정 모성과 신적 모성은 그녀의 동정성을 자기 아들에 대한 그녀의 신뢰 표지인 영원한 동정성으로 보는 ‘절대’ 평가 기준의 원인이 된다. 하느님의 모친 동정 마리아는 급속도로 전례와 공의회에서 고전적인 표현이 되는 ‘평생 동정이신’ 어머니라 불리어지게 된다. 우리는 4세기 말에 살라민(Salamine)의 긴 신경1) 안에서 이를 이미 발견한다. 가장 분명한 교의적인 증언은 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553)에서 발견된다 :




    어떤 사람이 하느님이신 말씀의 두 탄생이 있다고 고백하지 않는다면 단죄를 받아야 한다. 첫 번째 탄생은 세기가 있기 이전에 아버지로부터 비롯되는 시간외적이고 비육체적인 탄생이며, 두 번째 탄생은 마지막 시기에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평생 동정이시며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신 하느님의 모친에게서 육화하셨으며 그녀에게서 태어나신 동일한 말씀의 탄생이다.2)




    다시 말해서, 한편으로는 마리아가 그녀의 전 생애 동안 동정으로 지냈으며 다른 아이를 가지지 않았다는 뜻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마리아가 예수 탄생 순간에 동정이었다는 것을 뜻한다.




    가. 출산 이후의 마리아의 동정성(post partum) 




    마리아가 평생 동정이라고 말하는 것은 예수의 잉태 전에도 후에도 그녀는 육체적인 관계를 몰랐으며 다른 어떤 아이도 갖지 않았다는 것을 말한다. 신앙에 대한 이러한 확신이 교회 안에서 문제없이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몇몇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예수의 동정 잉태에 대해 적극적인 옹호자였던 3세기의 떼르뚤리아누스는 마리아의 다른 아들에 관련된 것처럼 보이는 어머니의 장면과 예수의 형제들(마태 12,46/…)에 대해 해설한다. 그리고 마리아가 결혼하였기 때문에 여인이라고 불리었다고(갈라 4,4) 추정한다3). 반대로 오리게네스는 이러한 생각을 거부하면서, ‘마리아에 대해 올바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마리아는 예수 이외에 다른 아들을 가지지 않았다4)’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마리아의 영원한 동정성에 대한 교의적인 동기를 이미 분명하게 표명한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자유로운 견해라는 사실을 부언한다 :




    예수의 형제들에 대해, 어떤 이들은 그들이 마리아 이전에 있었던 첫 번째 부인에게서 태어난 요셉의 아들들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이론을 지지하는 자들은 마리아의 영원한 동정성에 대한 믿음을 고수하려 한다. 그들은 ‘거룩한 영이 너에게 내리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능력이 그분의 보호 아래 너를 감쌀 것이다’라는 말씀에 맞갖다고 여겨진 이 몸이 거룩함의 영을 받은 후에 남자와의 잠자리를 함께 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로서는 예수 안에서 독신생활로 인한 남성 정절의 맏물을 보고 마리아 안에서 여성 정절의 맏물을 보는 것이 이치에 맞다고 생각한다.5)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6)’란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4세기의 살라민(Salamine)의 에피파니우스는 몇몇 아라비아 공동체에 존속하는 견해를 – 그러나 용어상 넓은 의미로 – ‘이단’의 개념 하에 둔다. 그 견해에 따르면 마리아가 요셉과 함께 부부 관계를 가졌을 것이라는 것이다7). 마찬가지로 예수의 형제들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가졌던 씨지쿠스(Cyzicus)의 에우노미우스(Eunomius)도 신앙의 이름으로 맹렬히 논박되었다8). 392년에 보노수스(Bonosus)가 마리아의 영원한 동정성을 부인하지만 그는 이단으로 단죄된다9).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리아의 영원한 동정성은 4세기 말에 동방에서 신앙에 속한 것으로 인정받는 경향으로 발전한다. 요한 크리소스또무스도 마리아는 평생 동정으로 남아있었다고 생각한다.


    서방에서는, 베로나의 제논(Zénon)이나 밀라노의 암브로시오처럼 힐라리우스도 마리아에게서 지속되는 이러한 동정성을 인정한다. 380년 로마에서 헬비디우스(Helvidius)가 마리아가 여러 자녀를 가졌다는 것을 증거로 제시하기 위해 하나의 소논문을 쓴다 : 그는 마리아를 훌륭한 가정의 한 어머니로 찬양하였다. 그의 목적은 동정성이 혼인보다 우위에 있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였다. 예로니모는 하나의 팜플렛을 통하여 심하게 그를 반대하며 답하는데10), 여기서 그는 성서와 전통을 증거로 제시한다. 마찬가지로 암브로시오도 동정성에 비해 혼인의 우월성을 주장하며 공격하는 조비니엔(Jovinien)을 밀라노에서 단죄하게 한다11).


    동방과 서방의 증언에 따라, 우리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릴 수 있다 : 마리아의 지속적인 동정성은 3세기에는 자유로운 견해의 대상이었으며, 4세기에는 지배적인 견해로 확장되었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그때 이단자들처럼 여겨졌다. 이러한 흐름은 에페소 공의회 얼마 전인 5세기초에 완결된다. 이때 예수 탄생 후 마리아의 동정성은 신앙의 공통적인 선언이 된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이러한 사실들은 성서에 바탕을 둔 역사적 통찰과 관련된 것이 아니다. 예수의 형제에 대한 언급이 오히려 이의를 제기하는 계기가 되지만, 마리아의 예수에 대한 관계와 예수가 개입한 것에 대한 고찰의 계기도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언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다시 복음으로 되돌아와 복음이 ‘예수의 형제들’에 대해 말하는 것을 해석하도록 끌어들이고 이끌어준다.


      


    나. ‘예수의 형제들’에 대한 성서 자료




    ‘예수의 형제들’에 대한 언급은 신약 성서 안에 자주 나온다(마르 3,31/… ; 마르 6,3/… ; 요한 2,12 ; 7,3.5.10 ; 1고린 9,5 ; 사도 1,14 ; 갈라 1,19). ‘예수의 형제들’에 대한 고전적인 답변은 다음과 같다 : 예수의 사촌들이거나 더 넓은 의미로 그의 인척 구성원들이다. 아라메아어는 ‘사촌’을 지칭하기 위한 단어를 갖고 있지 않다. 이러한 증거들이 구약 성서에도 자주 나타난다 : 아브라함은 그의 조카인 롯의 형제로 말해진다(창세 13,8 ; 14,14.16). 수많은 전통 언어들이 오늘날 아직도 이러한 경우를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제가 현대의 역사적인 분석에 반대되는가? 적어도 복음서 본문들을 살펴보면 분명한 경우가 드러난다. 마태 13,55은 예수의 네 형제들을 명명한다 : 야고버, 요셉, 시몬과 유다. 마르 15,40에서는 ‘작은 야고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에 대해 말한다. 여기서 마리아는 분명히 예수의 어머니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마르 15,47과 16,1에서, 같은 마리아가 요세와 야고버의 어머니로서 막달라 마리아와 구별된다. 예수의 형제와 자매들의 그룹(마르 13,56)이 더욱 중요하다. 이는 초대 공동체들 안에서 어떤 역할을 했던 것처럼 보이는 그의 인척과 관련이 있다. 교회의 교부들은 예수가 자기 어머니를 십자가 상에서 요한에게 맡겼다면 그녀는 자기를 돌볼 수 있는 다른 자녀들을 갖지 않았다는 것에 주목한다.


    그러므로 예수가 엄격한 의미에서 형제들, 다시 말해서 그의 어머니 마리아의 다른 아들들을 가졌었다는 역사적 증거를 대기란 불가능하다. 따라서 고전적인 추정이 현대 탐구에 의해 확고히 확인됨을 본다. 그러나 마리아가 다른 자녀를 가졌다는 엄격한 역사적 증거를 제시하기도 불가능하다. 신약 성서는 여기에 대해 분명히 말하지 않는다. 이러한 역사적인 징후들에 정당하게 근거하거나 반대 증명의 경우에도 물론 받아들일 수 있는 신앙의 확신이 신적 모성으로 지음받은 마리아의 예수에 대한 관계 이해의 심화 안에서 자기의 마지막 정당성을 발견할 수 있다.




    다. 예수 탄생의 순간에 동정이신 마리아(in partu)




    출산 안에서(in partu) – 출산 행위 안에서 – 마리아의 동정성에 대한 확신이 예수의 탄생을 기적적인 것으로 소개하는 위경 복음의 이야기 안에 애매한 방법으로 표명되어 있다12). 이러한 이야기들은 영지주의와 가현주의로 오염되어 있으며13) 종교적이며 문화적인 선입견의 이름으로 이러한 사건을 동행하는 육체적인 속박에서 자유로운 탄생을 예수에게 제공한다. 여기서 예수의 육체는 이미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리스도 사건의 두 시기인 ‘육에 따른’ 시기와 ‘영에 따른’ 시기를 중시하지 않는다. 결국 영지주의자들은 마리아의 동정성과 모성 사이에 혼란을 조장한다. 떼르뚤리아누스처럼, 영지주의자들과의 투쟁에 맹렬하게 가담한 교회의 몇몇 교부들은 강하게 마리아의 실재 모성을 주장하기 위해 항거하며 그녀의 출산은 전적으로 정상적이라고 말했다 :




    남자에 관한 한 그녀는 동정녀이지만 출산의 관점에서는 동정녀가 아니다. […] 출산한 그녀가 출산한 것은 (분명한데) 동정녀로서 잉태하였다면 출산에 있어서는 기혼녀(처럼) 된 것이다. 사실 육체가 열려졌다는 (자연)법칙에 따라 그녀는 기혼녀(처럼) 된 것이다.14)




    따라서 떼르뚤리아누스의 입장은 동정성과 마리아의 태가 예수의 탄생으로 ‘열리게 되었다’는 사실 사이에서 비양립성을 본다. 그러나 이 비양립성이 실재적인가?


    시간이 흘러 가현주의의 위기가 지나간 다음, 교회의 몇몇 교부들은 마리아의 영원한 동정성에 대한 확신을 동정성의 외적 표지인 기적적인 출산의 표현에 관련시켰고, 그때 ‘태의 폐쇄’는 그 교부들에게 마리아의 순결성에 있어서  필요불가결한 것처럼 보였었다. 밀라노의 암브로시오는 조바니엔(Jovinien)과의 투쟁으로부터 출발하여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갔다15). 마리아에 대한 그의 신학은 서방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교부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그 당시 가끔 오래된 위경들에서 빌려올 수 있었던 표본들보다는 마리아의 존재를 주재하는 동정성의 규범이다.


    이때부터 마리아의 출산 순간의 동정성에 대한 긍정에 있어서 두 의미를 구별하는 민감한 영역 안으로 들어선다 : 첫째는 가톨릭 신앙에 속하고, 둘째는 자유로운 견해이다. 첫째 의미는 예수의 탄생이 그의 어머니의 동정성에 아무런 상처를 입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견지하는데, 왜냐하면 한편으로는 그녀는 유대 율법의 관점에서(루가 2,22 참조) 흠이 없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들과의 관계에서 행한 어머니의 봉헌 규범과 동정성의 규범이 존속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서, 마리아의 동정성은 그녀의 모성과 양립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이 모성이 어느 한 순간도 부부 형태의 성적 활동에 관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리아의 동정 순결이 존속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탄생이 마리아의 모태를 열었다면, – 루가 복음이 ‘모태를 열고 나온 모든 남성’(루가 2,23)이라는 레위기의 양식을 마리아에게 적용하면서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 이 출산은 마리아에게서 그녀의 동정성을 조금도 빼앗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이러한 탄생이 마리아에게 있어서 동정성의 의무를 내포한다는 의미로 그 동정성을 거룩하게 하기도 했다.


    ‘평생 동정이신’이라는 표현에 의한 목적하는 의미와 옛 문헌들에 나타나는 바가 다음과 같다. 대(大) 레오 교황은 칼체돈 공의회에서 선언될 ‘플라비아누스에게 보낸 책’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 하느님의 아들이 “동정 어머니의 모태 안에서 성령으로 잉태되었다. 그녀가 하느님의 아들을 세상에 낳았으며, 그녀가 그분을 잉태하였을 때 더럽혀지지 않았던 것처럼 그녀의 동정성은 전적으로 무사했다.16)” 이것이 가톨릭 교도권에 의해 취해진 의미이며17), 바티칸 제2차 공의회에서 재천명되었다. 결국 이 공의회는 마리아의 ‘육체적인’ 순결에 대한 너무 세분된 양식을 거부하고, ‘마리아의 동정 순결성을 손상시키지 않고 축성된 그녀의 맏아들18)’에 대해서 말하면서 전통적인 전례 양식을 다시 취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둘째 의미는, 찢어지는 부분이 없이 출산하면서 기적적이고 고통이 없는 해산에 대한 표현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는 교회 내에서 하나의 독실하고 자유로운 견해에 관련된 것이며, 이러한 표현이 세기를 거쳐 수많은 신학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할지라도 교회의 신앙에는 속하지 않는다. 1952년과 1960년 사이에 이 주제에 대한 논쟁이 신학자들간에 있었으며, 성청은 이러한 표현을 ‘통탄스러운 노골적인 표현19)’이라고 평가하면서 종결짓기를 촉구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실재적 동정성에 대한 정의이다. 동정성은 성적인 부부관계 영역의 구체적인 실행을 포기함으로써 성립된다. 부부관계는 한 사람이 사랑 안에서 상대편에게 자신의 내적인 선물을 베푸는 행위를 책임 지운다. 동정성도 스스로 부여되는 동기의 자기 가치를 취한다. 그러므로 한 여인의 동정성을 단지 외적이고 신체적인 표지일 수 있는 것만으로 혼돈하지 말아야 한다. 칼 라너(K. Rahner)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이를 교의의 의무적인 내용처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해설 과정 안에서, 가능한 한 신앙의 유산 전체를 활용하면서 사도적 전통의 분명한 증언들을 신중한 방법으로 이끌어내도록 두어야 한다. 사도적 전통의 기준에서 출발하면서, 다른 제안들 안에 함축적으로 포함된 내용으로서 이처럼 증명할 수 없는 것은 신앙에 속하는 것으로서 의무적이라고 선포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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