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타락

1. 원죄(원죄); 아담과 하와
첫 인간 아담(Adamu: “흙” “먼지”란 뜻이다)과 하와(Hawa, Eve: “지어미” “인류의 어머니”란 뜻이다) 는 뱀의 꼬임에 빠져 하느님이 금하신 열매를 따먹음으로써 죄를 지었습니다. (창세기 3장 참조) 하느님께서 따먹지 말라고 이르신 생명나무 열매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는 눈이 밝아져서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깨닫고 무화가 나뭇잎을 역어 앞을 가리운 다음 하느님의 눈에 띄이지 않게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야훼 하느님께서 아담을 부르셨습니다. “아담아, 너 어디있느냐?” 오늘도 하느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영희야! 너 어디 있느냐?” “철수야! 너 어디 있느냐?” 우리는 우리 자신이 있어야 할 삶의 현장에 존재하고 있는지? 아니면 죄 때문에 하느님이 두려워 숨어 있는지? 돌아 보아야 합니다. 아담은 대답합니다. “당신께서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듣고 알몸을 드러내기가 두려워 숨었습니다.” 죄를 지은 인간은 이제 하느님 앞에 알몸을 드러내기가 두려워집니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 하느님 앞에 두려운 죄지은 인간의 수치와 고뇌가 여기 있습니다.
하느님은 아담에게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나 아담은 “당신께서 저에게 짝지워주신 여자가 그 나무에서 열매를 따주기에 먹었을 따름입니다.” 아담은 자기의 죄과를 고백한 것이 아니라 “당신께서 저에게 짝지워 주신 여자가” 주어서 먹었다고 말하므로써 하와에게 죄의 원인을 돌릴 뿐 아니라 창조주이신 하느님께도 그 죄의 책임을 돌립니다. 죄의 결과에 대한 책임으로 아담에게 선고가 내립니다.

(1) 저주받은 땅: 땅은 쭈를 받아 죽도록 고생해야 먹고 살리라.
들에서 나는 곡식을 먹어야 할 터인데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리라.(창세기 3, 17-18 참조)
(2) 노동과 죽음의 선고: 너는 흙에서 난 몸이니 흙으로 돌아가기까지 이마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먹으리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거라. (창세 3, 19 참조)

하와에게도 변명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하와는 말합니다. “뱀에게 속아서 따 먹었습니다.” 하느님처럼 되고자 한 자기의 교만과 호기심의 기과인 죄에 대하여 한마디도 말하지 않고, 미물인 뱀에게 책임을 돌립니다. 하와에게도 하느님의 선고가 내려집니다.

(1) 출산의 고통: 너는 아기를 낳을 때 몹시 고생하리라.
고생하지않고는 아기를 낳지 못하리라.(창세 3, 16절 참조)
(2) 예속의 고통: 남편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싶겠지만 도리어 남편의 손아귀에 들리라.(창세 3, 16절 참조)

뱀에게는 이유를 불문하고 즉각적인 선고가 내려집니다.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온갖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서 너는 저주를 받아 죽기까지 배로 기어 다니며 흙을 먹어야 하리라. 나는 너를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네 후손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너는 그 발꿈치를 물려고 하다가 도리어 여자의 후손에게 머리를 밟히리라.(창세 3, 14-15절 참조)

인간은 교만한 마음 때문에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고, 받았던 축복을 저주로 만듭니다. 이것이 바로 원죄이며, 원죈느 아담의 후손에게 계속되어 내려옵니다. 원죄란 인간 개인의 죄뿐만 아니라 인류에게 공통적으로 전해지는 악에로의 경향 즉 하느님의 뜻임을 분명히 알면서도 그것을 고의로 저버리고 하느님이 제한해 놓으신 인간의 조건 마저도 거부하며 하느님의 뜻을 인간의 뜻에 종속시키려 함으로써 하느님을 거스르는 것을 말합니다.

1) 악에로의 경향
인간은 하느님의 명을 거역하고 죄를 지었습니다. 그 결과 인류는 고통과 시련에 던져져서 구원을 필요로 하게 되었으며, 하느님께서는 인류의 구원을 약속하십니다. 천지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은 이 세상 모든 피조물을 보시고 매우 좋다고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이 세상 모든 피조물을 맡기시고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당신 창조 사업의 협력자로 인간을 부르신 하느님은 인간ㅇ 이 세상과 조화를 이루며 다스리고 살도록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이 커다란 축복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인간은 선을 바라면서도 악에로 기울어 가는 내적 분열을 일으키고 하느님을 배신합니다. 사도 바울로는 로마서 7장 19절과 20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내가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는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런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결국 이런 일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들어있는 죄입니다.”
인간에게는 악에로 기우는 경향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2) 악의원인
사람들은 이 세상을 불완전과 인간의 내적 분열, 악의 현존에 대해 일반적으로 “하느니이 인간을 불완전하게 창조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악에 대하여 인간은 책임이 없고 그 책임은 하느님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서에서는 죄의 원인을 하느님과 같아지려는 인간의 교만함이라고 봅니다. “그 나무 열매를 따먹기만 하면 너희의 눈이 밝아져서 하느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이 아시고 그렇게 말하신 것이다.” 뱀의 유혹을 받은 하와는 그 나무를 쳐다보고 사람을 영리하게 해 줄 것 같아서 그 열매를 따먹고 남편인 아담에게도 따줍니다. 아담은 그것을 받아 먹음으로써 원죄의 공범자가 됩니다.
3) 죄의 연대성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대한 반항과 불순종으로 인한 죄는 인간이 사회성 때문에 모든 인류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사도 바울로는 이점을 “한 인간이 죄를 지어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왔고 죄는 또한 죽음을 불러 들인 것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죽음이 온 인류에게 미치게 되었습니다.”라고 로마서 5장 12절에서 명백히 밝히고 있습니다.

한 인간이 교만하여 죄를 지음으로써 하느님과인간의 관계는 물론이고 인간끼리의 관계까지도 파괴되었습니다. 하느님과의 부조화를 가져오며 이때에 인간은 죄책감을 느끼게 됩니다. 자신의 도덕적 실패로 말미암아 착하고 의로우신 하느님 앞에 당당히 설 수 없음을 깨닫고 하느님 면전에서 숨으며 (창세 3장 8절), 고통과 죄책감에서 벗어나려고 핑계를 대고 그 멍에를 벗겨줄 이를 찾는 것(창세 3장 12-14절)은 아담과 하와만이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던 인간이 에덴 동산에서 받았던 축복과 원죄 이후 인간이 받은 저주에 대하여 도표를 그려본다면 다음과 같다.

◉ < 축복과 저주 >
에덴 동산의 축복(조화)
원죄이후의 저주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
-하느님과 함께 사는 축복받은 아담
인간과 인간관계
-아담과 하와는 한몸이었다;일치된 인간관계
인간과 자연관계 – 공존관계
하느님과 인간관계
-하느님으로부터 숨는 아담
인간과 인간관계
-하와 탓으로; 깨어진 인간관계
인간과 자연관계 – 약육강식의 관계


4) 하느님의 자비
하느님께서는 죄를 지은 인간에게 왜 그렇게 되었는지 원인을 물으시고 여자를 죄에로 유혹한 뱀과 인간사이에 싸움이 벌어지겠지만 결국은 인간의 후손이 승리하게 될 것이라고 구원을 약속하십니다.(창세 3장 15절 참조)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용서해 주실 뿐만 아니라 당신을 거역함으로써 겪게 되는 고통스럽고 죄스런 상태에서 인간을 해방시켜 주시려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 말씀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외하여 구세주 그리스도께서 오시리라는 첫 번째 예언을 봅니다. 이것을 가리켜 원시복음이라고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원죄로 인하여 축복의 땅 에덴에서 쫓겨나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무성한 땅에서 땅을 갈아 농사를 짓게 됩니다. 에덴의 동쪽은 인류가 최초로 농경문화를 시작하게 된 기원을 원인론적으로 설명하고있습니다. 하느미께서 에덴 동산에서 아담을 쫓아내신 다음 동쪽에 거룹들을세우시고 돌아가는 불칼을 장치하여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목을 지키게 하십니다. (창세 1, 20-24절 참조) 이제 인간으 생명은 하느님의 손 안에 달려 있습니다. 인간의 교만이 하느님처럼 되기를 원하여 원죄를 짓게 되었으나 그래도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차선책을 마련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생명이란 이제 인간에 으하여 죄지우지 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아 들어야 합니다.

2. 인류 최초의 살인; 카인과 아벨(창세 4장)
최조의 인간 아담과 하와는 카인과 아벨이라는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카인은 밭을 가는 농부요, 이벨은 양을 치는 목자가 됩니다. 카인은 때가 되어 땅에서 난 곡식을 야훼께 예물로 바치고 아벨은 양떼 가운데 맏배의 기름을 바칩니다. 그런데 야훼께서는 아벨과 그가 바친 예물은 반기시고 카인의 예물은 반기지 않으십니다. 카인은 질투로 인하여 아벨을 미워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질투하는 인간 카인에게 경고를 내리십니다. “너는 왜 그렇게 화가 났느냐? 네가 잘했다면 왜 얼굴을 쳐들지 못하는냐?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잘못먹었다면 죄가 네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너를 노릴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그 죄에 굴레를 씌워야 한다.”
하느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카인은 아벨을 꾀어내어 들에 데리고 나가서 달려들어 아벨을 쳐죽입니다. 하느님께서 카인을 부르십니다. “카인아! 네 아우 아벨이 어디있느냐?” 오늘도 하느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태호야! 네 친구 영수는 어디있느냐?” 함께 살아야 할 이웃을 쳐없애는 인간에게 하느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네 친구는 어디 있느냐?” 이웃의 공존을 파괴하는 인간 행위에 대하여 오늘도 하느님은 끊임없이 우리를 부르십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카인의 대답은 남이야 어찌든 나만 잘살면 된다는 우리의 이기심을 대변합니다. 하느님의 꾸짖음이 뒤따릅니다. “네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 너는 저주를 받은 몸이니 이 땅에서 물러나야 한다…. 너는 세상을 떠돌아 다니는 신세가 될 것이다.” 떠돌이가 된 인간 카인! 하느님을 독차지하려다가 오히려 저주를 받아 정착지없이 떠도는 신세가 된 인간의 처참한 모습이 여기 있습니다. 질투 때문에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욕심 때문에 모든 것을 잃게되는 인간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살인자 카인에게까지도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그에게 인호를 박아주시어 아무도 그를 해치지 못하게 보호하십니다.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알아 듣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온갖 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3. 노아의 홍수(창세 6장-10장)와 신세계
인간의 끊임없는 타락은 마침내 홍수를 통하여 세상을 정화하시는 하느님의 계획을 실현시킵니다. 의인 노아를 통해 홍수에 대비하게 하시고 인간의 구원을 위한 약속의 표지로 이 지상에 무지개를 걸어 두십니다. 노아의 후손에게서 인종이 퍼져 나와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갑니다.

4. 바벨탑 이야기(창세 11장 참조) – 흩어진 인종과 언어
노아의 홍수로 세상이 정화되고 신세계는 시작되었건만 인간은 하나의 언어와 낱말을 쓰면서 어느새 오만방자하여 하늘 끝까지 오른는 바벨탑을 쌓습니다. 하느님과 같아지려는 욕망은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계속되고 과학과 문명의 발달은 하느님 없이도 구원이 가능한 양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교만을 쳐부수시고자 인종과 언어를 흩어 놓으십니다. 바벨탑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경고를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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