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도시대 이후의 교회의 특징
사도 이후 시대의 교회의 특징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교회의 관습은 아직도 유대교적 또느 유대계 그리스도교적 색채를 띠고 있었습니다.
둘째, 교계제도가 최종적으로 확립되어 주교, 장로(신부), 부제 등의 성직 계급이 등장하였습니다.
셋째, 그리스도교 신학이 영지주의 이단과 투쟁하면서 정립되었고, 복음이 로마제국 영토 확장에 따라 널리 전파되어 교세가 급속히 성장하였습니다.
넷째, 그리스도교의 이러한 확장으로 그리스도교는 로마제국의 황제들에게 정치적 불안감을 안겨주어 200년간의 박해를 불러왔습니다.
2. 교회박해의 원인
로마제국의 그리스도교 박해의 원인을 살펴보면 대개 다음과 같습니다.
1) 유일신교와 다신교의 충돌
로마는 국가의 이교적인 경신예식에 참석하고 황제숭배를 요구했는데 이는 그리스도교인들도 이교의 로마인들이 보기에는 무신론자이며, 국가의 적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었다.
2) 황제들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국가 위기의식
로마인들은 자연의 재해, 패전등이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국가의 신에게 제사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책임을 전가하여 미움을 폭발시켰다. 또 일반 대중들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심은 인간의 육신을 먹고 있으며, 그들이 서로 형제 자매라고 하는 것은 근친상간의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비난했습니다.
3) 황제들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국가 위기의식
로마 제국의 통치자들은 범세계적이고 초국가적인 향방의 그리스도교는 국가를 전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문에 혹독한 백해는 시작되었고 많은 교부들과 사도들이 신앙의 증인으로 죽어갔으며, 교회는 파괴되었습니다. 이 박해는 AD 311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3. 공인된 교회
1) AD 311년 갈레리오 황제는 그의 박해가 효과가 없음을 인정하였습니다.
2) AD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에 의해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내에서 공인되었습니다. 그후 그리스도교는 로마제국들의 호의를 받으며 세계적 종교로써 성장하기에 이릅니다.
3) AD 329년 마침내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포고령을 내려 그리스도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선포하여 그리스도교는 여러분야에서 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이때 수많은 수도원이 창설되어 영성에 대한 도움을 주었으며 공의회가 그리스도교의 중요한 조직으로 등장합니다. 또 신앙생활의 활성화로 전례가 발전하기 시작했고, 그 밖의 교리 논쟁은 일련의 공의회를 통해 해결되었으며 최종적 정통 교리가 정립되었습니다.
4) 5세기 중반 국경지대의 게르만족이 이동하여 로마제국이 멸망하자 그리스도교 자체도 붕괴될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는 선교의 열의를 잃지 않고 유럽세계의 새 주인인 게르만족을 개종시켰습니다. 특히 서부 게르만 계통의 프랑크족의 개종은 유럽사의 큰 사건이었습니다. 정치적, 문화적, 종교적으로 고대 그리스 문화권과 게르만 민족이 융합하여 새로운 중세 문화를 탄생시켰고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고유한 민족적 특성을 지니면서 같은 신앙위에서 일치된 중세기 그리스도교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사도 이후 시대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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