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교 Manichaismus

  마니교  ~敎   Manichäismus

  242년 페르시아에 스스로를 ꡐ대예언자ꡑ로 자처하는 마니(Mani)라는 사람이 나타나, 자신은 노아, 아브라함, 조로아스터, 붓다 그리고 그리스도 이후의 계시의 마지막 전달자라고 주장하였다. 마니가 주장하는 핵심적인 내용을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해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선을 상징하는 빛의 나라와 악을 상징하는 어둠의 나라가 불공 대천의 투쟁으로 대립하고 있다. 사탄은 빛의 나라를 공격한다. 이러한 투쟁으로 말미암아 두 나라는 서로 혼합되고, 빛의 천사가 이러한 혼합으로부터 태양, 달 그리고 별을 창조해 내었다. 그리고 어둠의 나라를 지배하는 자는 첫 인간 아담과 하와를 생산한다. 인간의 모든 자녀 생산은 빛을 어둠 속으로 추방하는 데 협력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더러운 음식의 섭취를 포기해야 하고, 동시에 성적인 관례를 멀리해야 한다. 오로지 ꡐ선택된 자ꡑ만이 이러한 운명을 타고난다. 대다수의 지지자들은 오로지 마니만을 신봉해야 하며, ꡐ선택된 자ꡑ의 생계를 도와야 한다. 그리고 자주, 특히 주일에 단식해야 하고, 매일 정해진 기도를 바쳐야 한다.


  마니는 276년 페르시아의 왕에 의해 십자가에서 처형되었다. 하지만 마니교의 주장은 페르시아 전역에 걸쳐 확산되었고, 3세기에는 로마 제국에까지 확산되었다. 하지만 로마의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Diokletian)는 292년과 295년에 마니교를 신봉하면 엄벌에 처한다는 위협으로 마니교를 금지시켰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치세하에 그리스도교가 국가 종교로 부상할 때 마니의 주장은 일종의 밀교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374년 히포의 아우구스티노는 마니교를 신봉하였으나, 383년 세례를 받기 전 마니교로부터 탈퇴하였다. 아우구스티노는 히포의 주교로서 여러 저술을 통해 마니의 주장에 반대하여 투쟁하였다.


  교황 레오 1세의 재임시 마니교는 다수의 그리스도교인들을 사로잡기도 하였다. 그리고 마니교와 프리실리아누스주의(Priszillianism)와의 연계도 발생하였다. 교황 레오 1세는 마니교를 극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다수의 시노드를 소집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마니교의 오류를 극복하기 위하여 국가의 협조도 요청하였다. 황제는 449년 6월 19일 마니교의 오류에 대적하여 엄정하게 법을 집행할 것을 명령하는 규정을 반포하기도 하였다. 마니교는 상이한 이름으로 상당 기간 동안 생명력을 이어 갔고, 심지어 결혼에 관한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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