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을 위한 구원
1. 말씀읽기: 로마10,5-18
5 모세는 율법에서 오는 의로움에 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실천하는 이는 그것들로 살 것이다.” 6 그러나 믿음에서 오는 의로움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누가 하늘로 올라가리오?’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모시고 내려오라는 것입니다. 7 또 말합니다. “‘누가 지하로 내려가리오?’ 하지 마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모시고 올라오라는 것입니다. 8 의로움은 또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 말씀은 너희에게 가까이 있다. 너희 입과 너희 마음에 있다.” 이것이 우리가 선포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9 그대가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0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11 성경도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하고 말합니다. 12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13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4 그런데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15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16 그러나 모든 사람이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사야도 “주님, 저희가 전한 말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18 그러나 나는 묻습니다. 그들이 들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까? 물론 들었습니다.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갔다.”
19 나는 또 묻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입니까? 우선 모세가 말합니다. “나는 민족도 아닌 무리를 너희가 시기하게 하고 어리석은 민족에게 너희가 분노하게 하리라.” 20 이사야는 심지어 이렇게까지 말합니다. “나를 찾지도 않는 자들을 내가 만나 주었고 나에 관하여 묻지도 않는 자들에게 나를 드러내 보였다.” 21 그러나 이스라엘에 관해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복종하지 않고 반항하는 백성에게 나는 온종일 팔을 벌리고 있었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 말씀연구
모든 유다인들은 의로움은 하느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은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총으로 의롭게 됨을 몰랐습니다. 즉 의로움은 율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다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하느님의 크신 사랑과 의로움에 대해, 그리고 믿음이란 무엇인지와 복음을 전하는 이들의 기쁨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 봅시다.
5 모세는 율법에서 오는 의로움에 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실천하는 이는 그것들로 살 것이다.”
모세는 율법을(그것들을) 실천하는 이는 그것으로(율법을 지키는 것) 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율법을 온전히 지킴을 통해서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통해서 의롭게 된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6 그러나 믿음에서 오는 의로움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누가 하늘로 올라가리오?’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모시고 내려오라는 것입니다.
“누가 하늘로 올라가리오?”라는 말은 모세가 율법을 듣고 율법을 지키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이스라엘 백성을 확신시키기 위해 한 말입니다.1) 하느님의 말씀을 그저 실천하면 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한 말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니 생명을 택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의로움을 얻기 위해 하늘이나 죽은 자들의 세계로 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사도들이 선포한 복음을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받아들이면 되는 것입니다.
7 또 말합니다. “‘누가 지하로 내려가리오?’ 하지 마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모시고 올라오라는 것입니다.
“지하”(그리스 말-아비쏘스)는 “바닥이 없는, 깊이를 알 수 없는”을 뜻하는데, 정관사와 함께 쓰이면 “심연”, 또는 “지하세계”를 가리킵니다.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아무로 의로움에 이르기 위해 죽은 자들의 세계로 내려가서 모셔올 필요가 없고, 그저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된다는 것입니다.
8 의로움은 또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 말씀은 너희에게 가까이 있다. 너희 입과 너희 마음에 있다.” 이것이 우리가 선포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의로움에 이르는 말씀, 나를 구원하는 말씀은 내 가까이에 있고, 내 입에 있으며, 내 마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세도 가르쳐 주었으니(참조: 신명기 30,14) 사도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 할지라도 모세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사도가 선포하는 “믿음의 말씀”인 것입니다.
9 그대가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0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그렇다면 구원은 어떻게 얻는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통해서만이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바오로 사도는 선포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심을 고백하고, 예수님께서 세상 모든 이들의 구원을 위하여 수난과 죽음을 당하셨다가 삼일 만에 다시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는 것, 주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것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믿음은 다음과 같은 성격을 지닙니다.
① 믿음은 복음을 전하는 이들이 선포하는 구원의 기쁜 소식에 대한 응답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이들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메시지를 그대로 전할 뿐이기에(갈라1,11-12), 그것을 듣는 이들은 그 메시지를 있든 그대로, 곧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1테살2,13). 왜냐하면 믿음은 인간의 지혜, 또는 사도들의 명성이나 위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능력에 바탕을 둔 것이기 때문입니다(1코린2,1-5;1테살1,5).
② 믿음의 본래의 대상은 그리스도의 신비입니다. 곧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시키시고, 모든 인간의 유일한 주님이시며 구원자로 삼으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구원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③ 믿음은 복음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고, 하느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믿음의 순종”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말한다면 믿음은 순종인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굳은 믿음을 가지고, 언제나 성실하게 약속을 지키시는 하느님께 순종하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④ 하느님께서는 믿음을 통하여 사람을 의롭게 만드십니다. 의로움은 믿음에서 오는 것이고, 믿음을 통하여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의로움은 자신의 공로나 선행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믿는 이들에게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자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성령 안에서 살아갈 때,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고백할 수 있으며, 구원은 전적으로 하느님께로부터 나온다는 것과, 내가 믿고 있는 그 자체마저도 은총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⑤ 믿음을 통한 의화는 아브라함에게 내리신 약속의 완수입니다(로마서4,1-25;갈라3,6-18). 아브라함의 참된 후손은 혈통이 아니라 믿음으로 이루어진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더 이상 아브람이라 불리지 않을 것이다. 이제 너의 이름은 아브라함이다. 내가 너를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로 만들었기 때문이다.”(창세15,5) 라고 약속하셨고, 이제 모든 민족들이 구원에로 부르심을 받아,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믿음의 아버지로 공경하기 때문입니다.
⑥ 믿음을 통하여 받은 의로움은 죄를 용서받는 것이고, 하느님과 이루는 화해이며,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게 됩니다. 이렇게 믿음을 고백하는 이들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교회 공동체 안으로 들어와 성령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입으로 고백하고, 마음으로 믿는 바를 삶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⑦ 믿음은 구원에 대한 희망을 자아내게 합니다.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구원을 향하여 달려가게 만들고, 현세에서 주어지는 어떤 환난도 인내하게 하며, 그 인내를 통해 자기 자신을 수양합니다. 그렇게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삶을 통하여 믿는 이들이 받게 될 영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확신에 찬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11 성경도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3) 하고 말합니다.
주님께서 내 편이신데 누가 감히 나에게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당신의 약속을 성실하게 지키시는 분이신데 어떻게 구원을 두고 헛된 것을 말하겠습니까? 내가 믿고 있는 구원에 대한 희망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며, 이 희망은 결코 나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12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13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4 그런데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바오로 사도는 복음을 거부하는 유다인들을 구약성경의 예언을 통하여 그들을 비판하고 가르칩니다. 그들이 복음을 거부한 이유는 이사야 예언자가 이미 예언한 것이 이루어진 것입니다(이사야53,1). 믿을 기회가 모든 이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유다인들이 생각하기에 어리석어 보이는 이방인들은 복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구원을 얻었는데, 유다인들은 이 구원을 거부한 것입니다(이사야65,1-2). 믿음은 은총입니다. 그러므로 이 은총을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15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복음을 전하는 이들은 자신이 받은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복음을 전하는 기쁨을 마치 유다인들이 바빌론 유배에서 해방되어 시온으로 돌아온다는 “기쁜 소식을 알리는 사람”4)에 비유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고, 죄의 용서를 위하여 몸소 희생제사를 드렸으며, 믿는 이들에게는 누구나 구원을 베푸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전하라고 사도들을 부르셨고, 바오로 사도는 그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16 그러나 모든 사람이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사야도 “주님, 저희가 전한 말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기뻐하며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였습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박해한 것처럼, 바오로 사도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을 인용하여 유다인들의 굳은 마음을 경고하는 것입니다.5)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들음은 단순히 듣는 행위가 아니라 듣는 내용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들음에서 온다는 것은 듣는 말에서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하시는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의 입을 통하여 직접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을 주님께로부터 들었기에 주님을 믿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 주변에는 나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을 내가 안다면, 나는 그들을 선포를 주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예언자로 대하는 이는 예언자가 받을 상을 받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예언자는 자신의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내 옆에 있는 이들을 예언자로 생각하고, 그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인다면 나는 멸망이 아니라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구원의 길로 향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빛속을 거니는 것입니다.
18 그러나 나는 묻습니다. 그들이 들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까? 물론 들었습니다.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갔다.”
들은 적이 없다고 말하는 그들은 유다인들을 가리킵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귀를 막고, 불신의 길을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이 듣지 않은 소리는 온 세상 끝까지 퍼져 나갔습니다.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갔다.” 는 것은 시편 19,5를 인용한 것인데, 그들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렇게 복음을 선포했기에 세상 모든 이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이 전파되었고, 지금 나 또한 굳은 믿음을 간직하고 주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19 나는 또 묻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입니까? 우선 모세가 말합니다. “나는 민족도 아닌 무리를 너희가 시기하게 하고 어리석은 민족에게 너희가 분노하게 하리라.”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을 숭배하여 제물을 바치자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분노하시어 당신 백성을 물리치셨습니다(참조: 신명32,17-21).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나 또한 내 백성이 아닌 자들로 그들을 질투하게 하고, 어리석은 민족으로 그들을 분노하게 하리라.”(신명기32,21)하셨습니다.
따라서 모세의 율법과 이사야(예언자들)의 예언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깨달을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기를 거부하였고, 다른 민족들의 회심으로 유다인들의 그러한 불신과 불경이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난 것입니다.
20 이사야는 심지어 이렇게까지 말합니다. “나를 찾지도 않는 자들을 내가 만나 주었고 나에 관하여 묻지도 않는 자들에게 나를 드러내 보였다.”
이사야 예언자는 우상 숭배자들에게 내린 벌에서 “묻지도 않는 자들에게 나는 문의를 받아 줄 준비가 되어 있었고, 나를 찾지도 않는 자들에게 나는 만나 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이사야65,1)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선택된 민족들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들에게도 선택된 백성의 특권을 주셨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1 그러나 이스라엘에 관해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복종하지 않고 반항하는 백성에게 나는 온종일 팔을 벌리고 있었다.”
“온종일 팔을 벌리고 있었다.”는 것은 다가오지 않는 백성을 향해서 변함없이 사랑을 베풀고 계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백성을 향하여 변함없이 구원의 손길을 내미시는 분. 그분이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집나간 자녀를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처럼, 그렇게 변함없는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변함없이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 아버지를 굳은 믿음을 가지고 섬겨야 합니다. 온 세상 사람들에게 내가 믿고 있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선포해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이들이 주님께로 몰려야 주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믿음이란 무엇이고, 내가 선포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② “팔을 벌리고 기다리고 계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에 어떻게 응답을 해야 할까요?
4. 말씀으로 기도하기

모든 사람을 위한 구원
1. 말씀읽기: 로마10,5-18
5 모세는 율법에서 오는 의로움에 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실천하는 이는 그것들로 살 것이다.” 6 그러나 믿음에서 오는 의로움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누가 하늘로 올라가리오?’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모시고 내려오라는 것입니다. 7 또 말합니다. “‘누가 지하로 내려가리오?’ 하지 마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모시고 올라오라는 것입니다. 8 의로움은 또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 말씀은 너희에게 가까이 있다. 너희 입과 너희 마음에 있다.” 이것이 우리가 선포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9 그대가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0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11 성경도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하고 말합니다. 12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13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4 그런데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15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16 그러나 모든 사람이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사야도 “주님, 저희가 전한 말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18 그러나 나는 묻습니다. 그들이 들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까? 물론 들었습니다.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갔다.”
19 나는 또 묻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입니까? 우선 모세가 말합니다. “나는 민족도 아닌 무리를 너희가 시기하게 하고 어리석은 민족에게 너희가 분노하게 하리라.” 20 이사야는 심지어 이렇게까지 말합니다. “나를 찾지도 않는 자들을 내가 만나 주었고 나에 관하여 묻지도 않는 자들에게 나를 드러내 보였다.” 21 그러나 이스라엘에 관해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복종하지 않고 반항하는 백성에게 나는 온종일 팔을 벌리고 있었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 말씀연구
모든 유다인들은 의로움은 하느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은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총으로 의롭게 됨을 몰랐습니다. 즉 의로움은 율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다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하느님의 크신 사랑과 의로움에 대해, 그리고 믿음이란 무엇인지와 복음을 전하는 이들의 기쁨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 봅시다.
5 모세는 율법에서 오는 의로움에 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실천하는 이는 그것들로 살 것이다.”
모세는 율법을(그것들을) 실천하는 이는 그것으로(율법을 지키는 것) 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율법을 온전히 지킴을 통해서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통해서 의롭게 된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6 그러나 믿음에서 오는 의로움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누가 하늘로 올라가리오?’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모시고 내려오라는 것입니다.
“누가 하늘로 올라가리오?”라는 말은 모세가 율법을 듣고 율법을 지키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이스라엘 백성을 확신시키기 위해 한 말입니다.1) 하느님의 말씀을 그저 실천하면 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한 말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니 생명을 택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의로움을 얻기 위해 하늘이나 죽은 자들의 세계로 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사도들이 선포한 복음을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받아들이면 되는 것입니다.
7 또 말합니다. “‘누가 지하로 내려가리오?’ 하지 마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모시고 올라오라는 것입니다.
“지하”(그리스 말-아비쏘스)는 “바닥이 없는, 깊이를 알 수 없는”을 뜻하는데, 정관사와 함께 쓰이면 “심연”, 또는 “지하세계”를 가리킵니다.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아무로 의로움에 이르기 위해 죽은 자들의 세계로 내려가서 모셔올 필요가 없고, 그저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된다는 것입니다.
8 의로움은 또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 말씀은 너희에게 가까이 있다. 너희 입과 너희 마음에 있다.” 이것이 우리가 선포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의로움에 이르는 말씀, 나를 구원하는 말씀은 내 가까이에 있고, 내 입에 있으며, 내 마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세도 가르쳐 주었으니(참조: 신명기 30,14) 사도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 할지라도 모세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사도가 선포하는 “믿음의 말씀”인 것입니다.
9 그대가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0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그렇다면 구원은 어떻게 얻는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통해서만이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바오로 사도는 선포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심을 고백하고, 예수님께서 세상 모든 이들의 구원을 위하여 수난과 죽음을 당하셨다가 삼일 만에 다시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는 것, 주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것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믿음은 다음과 같은 성격을 지닙니다.
① 믿음은 복음을 전하는 이들이 선포하는 구원의 기쁜 소식에 대한 응답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이들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메시지를 그대로 전할 뿐이기에(갈라1,11-12), 그것을 듣는 이들은 그 메시지를 있든 그대로, 곧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1테살2,13). 왜냐하면 믿음은 인간의 지혜, 또는 사도들의 명성이나 위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능력에 바탕을 둔 것이기 때문입니다(1코린2,1-5;1테살1,5).
② 믿음의 본래의 대상은 그리스도의 신비입니다. 곧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시키시고, 모든 인간의 유일한 주님이시며 구원자로 삼으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구원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③ 믿음은 복음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고, 하느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믿음의 순종”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말한다면 믿음은 순종인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굳은 믿음을 가지고, 언제나 성실하게 약속을 지키시는 하느님께 순종하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④ 하느님께서는 믿음을 통하여 사람을 의롭게 만드십니다. 의로움은 믿음에서 오는 것이고, 믿음을 통하여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의로움은 자신의 공로나 선행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믿는 이들에게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자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성령 안에서 살아갈 때,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고백할 수 있으며, 구원은 전적으로 하느님께로부터 나온다는 것과, 내가 믿고 있는 그 자체마저도 은총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⑤ 믿음을 통한 의화는 아브라함에게 내리신 약속의 완수입니다(로마서4,1-25;갈라3,6-18). 아브라함의 참된 후손은 혈통이 아니라 믿음으로 이루어진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더 이상 아브람이라 불리지 않을 것이다. 이제 너의 이름은 아브라함이다. 내가 너를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로 만들었기 때문이다.”(창세15,5) 라고 약속하셨고, 이제 모든 민족들이 구원에로 부르심을 받아,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믿음의 아버지로 공경하기 때문입니다.
⑥ 믿음을 통하여 받은 의로움은 죄를 용서받는 것이고, 하느님과 이루는 화해이며,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게 됩니다. 이렇게 믿음을 고백하는 이들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교회 공동체 안으로 들어와 성령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입으로 고백하고, 마음으로 믿는 바를 삶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⑦ 믿음은 구원에 대한 희망을 자아내게 합니다.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구원을 향하여 달려가게 만들고, 현세에서 주어지는 어떤 환난도 인내하게 하며, 그 인내를 통해 자기 자신을 수양합니다. 그렇게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삶을 통하여 믿는 이들이 받게 될 영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확신에 찬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11 성경도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3) 하고 말합니다.
주님께서 내 편이신데 누가 감히 나에게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당신의 약속을 성실하게 지키시는 분이신데 어떻게 구원을 두고 헛된 것을 말하겠습니까? 내가 믿고 있는 구원에 대한 희망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며, 이 희망은 결코 나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12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13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4 그런데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바오로 사도는 복음을 거부하는 유다인들을 구약성경의 예언을 통하여 그들을 비판하고 가르칩니다. 그들이 복음을 거부한 이유는 이사야 예언자가 이미 예언한 것이 이루어진 것입니다(이사야53,1). 믿을 기회가 모든 이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유다인들이 생각하기에 어리석어 보이는 이방인들은 복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구원을 얻었는데, 유다인들은 이 구원을 거부한 것입니다(이사야65,1-2). 믿음은 은총입니다. 그러므로 이 은총을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15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복음을 전하는 이들은 자신이 받은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복음을 전하는 기쁨을 마치 유다인들이 바빌론 유배에서 해방되어 시온으로 돌아온다는 “기쁜 소식을 알리는 사람”4)에 비유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고, 죄의 용서를 위하여 몸소 희생제사를 드렸으며, 믿는 이들에게는 누구나 구원을 베푸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전하라고 사도들을 부르셨고, 바오로 사도는 그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16 그러나 모든 사람이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사야도 “주님, 저희가 전한 말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기뻐하며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였습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박해한 것처럼, 바오로 사도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을 인용하여 유다인들의 굳은 마음을 경고하는 것입니다.5)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들음은 단순히 듣는 행위가 아니라 듣는 내용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들음에서 온다는 것은 듣는 말에서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하시는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의 입을 통하여 직접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을 주님께로부터 들었기에 주님을 믿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 주변에는 나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을 내가 안다면, 나는 그들을 선포를 주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예언자로 대하는 이는 예언자가 받을 상을 받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예언자는 자신의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내 옆에 있는 이들을 예언자로 생각하고, 그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인다면 나는 멸망이 아니라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구원의 길로 향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빛속을 거니는 것입니다.
18 그러나 나는 묻습니다. 그들이 들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까? 물론 들었습니다.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갔다.”
들은 적이 없다고 말하는 그들은 유다인들을 가리킵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귀를 막고, 불신의 길을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이 듣지 않은 소리는 온 세상 끝까지 퍼져 나갔습니다.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갔다.” 는 것은 시편 19,5를 인용한 것인데, 그들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렇게 복음을 선포했기에 세상 모든 이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이 전파되었고, 지금 나 또한 굳은 믿음을 간직하고 주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19 나는 또 묻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입니까? 우선 모세가 말합니다. “나는 민족도 아닌 무리를 너희가 시기하게 하고 어리석은 민족에게 너희가 분노하게 하리라.”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을 숭배하여 제물을 바치자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분노하시어 당신 백성을 물리치셨습니다(참조: 신명32,17-21).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나 또한 내 백성이 아닌 자들로 그들을 질투하게 하고, 어리석은 민족으로 그들을 분노하게 하리라.”(신명기32,21)하셨습니다.
따라서 모세의 율법과 이사야(예언자들)의 예언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깨달을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기를 거부하였고, 다른 민족들의 회심으로 유다인들의 그러한 불신과 불경이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난 것입니다.
20 이사야는 심지어 이렇게까지 말합니다. “나를 찾지도 않는 자들을 내가 만나 주었고 나에 관하여 묻지도 않는 자들에게 나를 드러내 보였다.”
이사야 예언자는 우상 숭배자들에게 내린 벌에서 “묻지도 않는 자들에게 나는 문의를 받아 줄 준비가 되어 있었고, 나를 찾지도 않는 자들에게 나는 만나 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이사야65,1)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선택된 민족들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들에게도 선택된 백성의 특권을 주셨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1 그러나 이스라엘에 관해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복종하지 않고 반항하는 백성에게 나는 온종일 팔을 벌리고 있었다.”
“온종일 팔을 벌리고 있었다.”는 것은 다가오지 않는 백성을 향해서 변함없이 사랑을 베풀고 계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백성을 향하여 변함없이 구원의 손길을 내미시는 분. 그분이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집나간 자녀를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처럼, 그렇게 변함없는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변함없이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 아버지를 굳은 믿음을 가지고 섬겨야 합니다. 온 세상 사람들에게 내가 믿고 있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선포해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이들이 주님께로 몰려야 주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믿음이란 무엇이고, 내가 선포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② “팔을 벌리고 기다리고 계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에 어떻게 응답을 해야 할까요?
4. 말씀으로 기도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