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스칼리니 가문 Tusculaner

 투스칼리니 가문  ~家門  Tusculaner

  11세기 초엽에 교황들은 로마의 귀족 가문에 완전히 예속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크레셴티(Crescentier) 가문이 교황과 교황좌를 지배했으나 1012년 실권을 상실하였다. 그 후 투스칼리니 가문이 실권을 행사하기 시작하였다. 이 가문은 3명의 교황을 배출하였다. 교황 베네딕토 8세는 교회의 개혁에, 특히 사제 결혼과 교회 재산의 탕진을 둘러싼 개혁에 열정적으로 헌신하였다. 베네딕토 8세의 후임자는 요한 19세로서 그의 동생이었다. 요한 19세가 교황으로 선출될 당시 그는 아직도 평신도였다. 그는 모든 규정을 무시하고 하루 만에 모든 서품을 받았다. 팔리움의 수여와 관련해서 교황 요한 19세는 거액의 금전을 요구하였다. 1027년 교황 요한 19세는 콘라트 2세를 황제로 대관시켰다.


  요한 19세의 후임자로는 투스칼리니 가문을 이끌던 알베리크(Alberich)의 아들 – 베네딕토 9세 – 이 지명되었다. 베네딕토 9세가 교황으로 선출되었을 때 그는 겨우 18세였다. 교황 베네딕토 9세는 황제 콘라트 2세의 손아귀에서 놀아난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다. 1045년 5월 교황 베네딕토 9세는 교황직을 포기하고 수석 사제 그라시아노(Johannes Gratianus)에게 거액을 받고 교황직을 매매하였다. 그라시아노는 그레고리오 6세라는 이름으로 교황직에 등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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