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테살2,1-16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선교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선교

1. 말씀읽기: 1테살2,1-16

1 형제 여러분, 우리가 여러분을 찾아간 일이 헛되지 않았음을 여러분 자신도 잘 알고 있습니다. 2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는 전에 필리피에서 고난을 겪고 모욕을 당하였지만, 오히려 우리 하느님 안에서 용기를 얻어 격렬히 투쟁하면서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3 우리의 설교는 그릇된 생각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불순한 동기에서 나온 것도 아니며, 속임수로 한 것도 아닙니다.

4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인정하여 맡기신 복음을 그대로 전합니다.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을 시험하시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는 것입니다. 5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는 한 번도 아첨하는 말을 하지 않았고 구실을 붙여 탐욕을 부리지도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그 증인이십니다.

6 우리는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찾지도 않았습니다. 여러분에게서도 찾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찾지 않았습니다. 7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위엄 있게 처신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에서, 자녀들을 품에 안은 어머니처럼 온화하게 처신하였습니다. 8 우리는 이처럼 여러분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의 복음을 여러분과 함께 나눌 뿐만 아니라 여러분을 위하여 우리 자신까지 바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여러분은 그토록 우리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9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의 수고와 고생을 잘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하느님의 복음을 여러분에게 선포하였습니다. 10 우리가 신자 여러분에게 얼마나 경건하고 의롭게 또 흠 잡힐 데 없이 처신하였는지, 여러분이 증인이고 하느님께서도 증인이십니다. 11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는 아버지가 자녀들을 대하듯 여러분 하나하나를 대하면서, 12 당신의 나라와 영광으로 여러분을 부르시는 하느님께 합당하게 살아가라고 여러분에게 권고하고 격려하며 역설하였습니다.

13 우리는 또한 끊임없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신자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14 형제 여러분, 사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유다의 하느님 교회들을 본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곳 신자들이 유다인에게서 받은 것과 똑같은 고난을 여러분도 여러분의 동족에게서 받았기 때문입니다.

15 유다인들은 주 예수님을 죽이고 예언자들도 죽였으며, 우리까지 박해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마음에 들지 않는 자들이고 모든 사람을 적대하는 자들로서,

16 우리가 다른 민족들에게 말씀을 전하여 구원을 받게 하려는 일을 방해합니다. 이렇게 그들은 자기들의 죄를 계속 쌓아 갑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에게 진노가 닥쳤습니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2. 말씀연구

복음을 전하는 이들은 복음을 받아들인 신앙인들의 영적 성숙을 통해 행복해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이들은 박해자들과 맞서 싸우지 않고, 오히려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겨 드립니다. 그들의 폭력을 믿음과 온유로 받아들이고, 이겨냅니다. 하지만 말씀을 전하는 이들과 말씀을 받아들이는 이들이 구원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면, 박해자들과 거부자들은 멸망을 향해, 하느님의 진노를 향해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뻐하며, 그것이 잘하는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나는 구원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까? 하느님의 진노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깊이 돌아 봅시다.



1 형제 여러분, 우리가 여러분을 찾아간 일이 헛되지 않았음을 여러분 자신도 잘 알고 있습니다. 2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는 전에 필리피에서 고난을 겪고 모욕을 당하였지만, 오히려 우리 하느님 안에서 용기를 얻어 격렬히 투쟁하면서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바오로 사도 일행은 테살로니카의 유다인들로부터 많은 고난과 모욕을 겪었습니다. 테살로니카의 유다인들은 복음을 전하는 바오로 일행을 시기하여 소동(사도17,5-9)을 일으켰고, 고통을 주었습니다.1) 하지만 바오로 일행은 그것에 굴하지 않고 “격렬히 투쟁”하면서 테살로니카에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3 우리의 설교는 그릇된 생각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불순한 동기에서 나온 것도 아니며, 속임수로 한 것도 아닙니다. 4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인정하여 맡기신 복음을 그대로 전합니다.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을 시험하시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선포한 복음이 하느님께서 전해주신 그대로 전했음을 강조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로부터 선택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인정하여 맡기신 복음”이라는 것은 하느님께서 시험한 끝에 “아하! 이 정도면 되겠구나.”해서 복음 선포를 맡겼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설교는 그릇된 생각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불순한 동기에서 나온 것도 아니며, 속임수로 한 것도 아닙니다.”라는 고백을 통해, 하느님께로부터 시험을 받아 사명을 부여받을 때와 지금 사명을 수행할 때의 모습이 같다는 것을 당당하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5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는 한 번도 아첨하는 말을 하지 않았고 구실을 붙여 탐욕을 부리지도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그 증인이십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이들은 복음을 선포하도록 부르신 분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부르신 이들의 뼛속까지도 꿰뚫어 보시는 분이십니다. 복음을 전하는 이들도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그 마음을 잃지 않을 때, 이처럼 당당하게 주님의 복음을 온 세상에 선포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이들은 아첨하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구실로 탐욕을 부리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복음을 전하는지는 “아첨을 하지는 않는지, 탐욕을 부리지는 않는지”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6 우리는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찾지도 않았습니다. 여러분에게서도 찾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찾지 않았습니다. 7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위엄 있게 처신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에서, 자녀들을 품에 안은 어머니처럼 온화하게 처신하였습니다.

또한 복음을 전하는 이들은 사람들에게서 자신의 영광을 찾지도 않습니다. 하느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다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위엄”을 자랑할 수도 있지만, 겸손의 삶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고, 섬기러 파견되었기에 “자녀들을 품에 안은 어머니처럼 온화하게 처신”하는 것입니다. 이 온화함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을 받은 이들, 권한과 권위를 지닌 이들이 지닌 것으로, 결코 군림하지 않는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덕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서 영광을 찾는 삶은 복음을 선포하는 이의 자세가 아니고, 자녀들을 품에 안은 어머니처럼 온화하게 처신하지 못하는 복음선포자는 하느님의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을 선포하는 이”임을 알 수 있습니다.



8 우리는 이처럼 여러분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의 복음을 여러분과 함께 나눌 뿐만 아니라 여러분을 위하여 우리 자신까지 바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여러분은 그토록 우리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복음을 선포하는 이들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기에, 그들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어머니가 어린 자녀를 지키기 위해 사나운 맹수와도 싸울 수 있는 것처럼, 어머니가 자식을 살리기 위해 자신은 굶주리면서도 자식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내어 놓는 것처럼, 그 마음으로 하느님 백성을 사랑하고 돌보는 것입니다. 그 삶이 바로 복음을 선포하는 이들의 삶입니다.



이것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자신의 삶으로 하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그 사랑으로 내가 구원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이들도, 복음을 받아들이는 이들도 그 사랑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그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9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의 수고와 고생을 잘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하느님의 복음을 여러분에게 선포하였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여러 번에 걸쳐서 자기가 설립한 교회에서 물질적인 도움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합니다(참조: 사도20,33-35;1코린11,7-10; 2테살3,7-9). 바오로 사도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복음을 선포하면서도 부지런히 자기의 생업(천막 짜는 일)을 계속하였기 때문입니다.2)

바오로 사도가 신자들의 물질적 도움을 거절한 이유는 “물질적 도움을 통하여 신자들이 오해를 불러일으킬까봐, 사도가 복음을 전하는 대가로 돈을 받는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까봐” 이며, 복음을 전하면서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다니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10 우리가 신자 여러분에게 얼마나 경건하고 의롭게 또 흠 잡힐 데 없이 처신하였는지, 여러분이 증인이고 하느님께서도 증인이십니다. 11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는 아버지가 자녀들을 대하듯 여러분 하나하나를 대하면서, 12 당신의 나라와 영광으로 여러분을 부르시는 하느님께 합당하게 살아가라고 여러분에게 권고하고 격려하며 역설하였습니다.

목자는 신자들의 부모입니다. 신자들은 목자의 자녀들입니다. 그래서 신자들은 목자에게서 길을 찾고, 목자는 신자들에게 하느님께 이르는 길을 가르쳐 주고, 인도해 줍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 일을 성실하게 하였음을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다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오로 사도가 테살로니카 공동체가 알고 있는 것을 다시 상기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테살로니카 공동체에게 무엇을 바래서일까요? 결코 아닙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이 부르심 받은 사람으로서 합당하게 살아가도록 격려와 권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13 우리는 또한 끊임없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신자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바로오 사도는 테살로니카 공동체 때문에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왜냐하면 사도들이 전하는 말을 테살로니카 공동체가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선포자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복음선포자의 말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때, 그의 믿음은 자리를 잡게 되고, 큰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하느님의 말씀은 말씀을 받아들인 하느님의 자녀를 더욱 성장시키고, 의롭게 변화시켜 주며, 참된 하느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십니다.



14 형제 여러분, 사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유다의 하느님 교회들을 본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곳 신자들이 유다인에게서 받은 것과 똑같은 고난을 여러분도 여러분의 동족에게서 받았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 공동체가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유다의 하느님 교회들을 본받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본받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수난 당하심을 내 삶으로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 모든 이들의 구원을 위하여 희생제사를 드리신 삶을 내 삶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을 고난으로 생각하지 않고, 주님 때문에 당하게 되는 기쁨으로 생각하며,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신앙인들의 삶입니다.



15 유다인들은 주 예수님을 죽이고 예언자들도 죽였으며, 우리까지 박해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마음에 들지 않는 자들이고 모든 사람을 적대하는 자들로서, 16 우리가 다른 민족들에게 말씀을 전하여 구원을 받게 하려는 일을 방해합니다. 이렇게 그들은 자기들의 죄를 계속 쌓아 갑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에게 진노가 닥쳤습니다.

바오로 사도 일행은 유다인들로부터 박해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테살로니카에서는 유다인들로부터 내쫓김까지 당했던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믿는 유다인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유다인들은 사도들이 다른 민족들에게 말씀을 전하여 구원을 받게 하려는 일을 방해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자기들의 죄를 계속 쌓아 갔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유다인이었고, 자신이 받은 기쁜 소식을 먼저 동족인 유다인들에게 전하였습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은 바오로 사도를 받아들이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것을 방해하였으며, 더 나아가 박해하고,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사실 유다인들은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으로서 복음의 전달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복음의 방해자, 박해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에게 진노가 닥쳤습니다. 하느님의 진노는 하느님의 심판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믿음은 구원을 받게 하고, 구원에 훼방을 놓는 이들은 하느님의 진노 아래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그렇게 하느님의 진노를 끌어당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예언자들을 죽이고, 복음을 선포하는 사도들을 박해하고, 죽였습니다.



목자는 목자로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뜻을 찾을 수 있고, 그래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박해하면서도 하느님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멸망을 향해 달려가면서도 구원을 바라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복음을 전하는 이들은 바오로사도의 열정을 본받아, 주님의 마음으로 주님 백성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내가 해야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신앙생활 안에서 형제자매들을 바라보면서 기쁠 때는 언제입니까? 언제 함께 기뻐하게 됩니까?



②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 찬성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옳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계산된 생각이나 이익 때문에 반대하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켜, 함께 옳은 일을 할 수 있을까요? 특별히 바오로 사도를 반대하는 유다인들에게 해 줄 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어떻게 해야 그들이 구원을 향해 달려갈 수 있을까요?



4. 말씀으로 기도하기



이 글은 카테고리: 성경, 성경 공부, 테살로니카 전서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1테살2,1-16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선교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선교

    1. 말씀읽기: 1테살2,1-16

    1 형제 여러분, 우리가 여러분을 찾아간 일이 헛되지 않았음을 여러분 자신도 잘 알고 있습니다. 2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는 전에 필리피에서 고난을 겪고 모욕을 당하였지만, 오히려 우리 하느님 안에서 용기를 얻어 격렬히 투쟁하면서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3 우리의 설교는 그릇된 생각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불순한 동기에서 나온 것도 아니며, 속임수로 한 것도 아닙니다.

    4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인정하여 맡기신 복음을 그대로 전합니다.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을 시험하시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는 것입니다. 5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는 한 번도 아첨하는 말을 하지 않았고 구실을 붙여 탐욕을 부리지도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그 증인이십니다.

    6 우리는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찾지도 않았습니다. 여러분에게서도 찾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찾지 않았습니다. 7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위엄 있게 처신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에서, 자녀들을 품에 안은 어머니처럼 온화하게 처신하였습니다. 8 우리는 이처럼 여러분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의 복음을 여러분과 함께 나눌 뿐만 아니라 여러분을 위하여 우리 자신까지 바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여러분은 그토록 우리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9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의 수고와 고생을 잘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하느님의 복음을 여러분에게 선포하였습니다. 10 우리가 신자 여러분에게 얼마나 경건하고 의롭게 또 흠 잡힐 데 없이 처신하였는지, 여러분이 증인이고 하느님께서도 증인이십니다. 11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는 아버지가 자녀들을 대하듯 여러분 하나하나를 대하면서, 12 당신의 나라와 영광으로 여러분을 부르시는 하느님께 합당하게 살아가라고 여러분에게 권고하고 격려하며 역설하였습니다.

    13 우리는 또한 끊임없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신자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14 형제 여러분, 사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유다의 하느님 교회들을 본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곳 신자들이 유다인에게서 받은 것과 똑같은 고난을 여러분도 여러분의 동족에게서 받았기 때문입니다.

    15 유다인들은 주 예수님을 죽이고 예언자들도 죽였으며, 우리까지 박해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마음에 들지 않는 자들이고 모든 사람을 적대하는 자들로서,

    16 우리가 다른 민족들에게 말씀을 전하여 구원을 받게 하려는 일을 방해합니다. 이렇게 그들은 자기들의 죄를 계속 쌓아 갑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에게 진노가 닥쳤습니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2. 말씀연구

    복음을 전하는 이들은 복음을 받아들인 신앙인들의 영적 성숙을 통해 행복해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이들은 박해자들과 맞서 싸우지 않고, 오히려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겨 드립니다. 그들의 폭력을 믿음과 온유로 받아들이고, 이겨냅니다. 하지만 말씀을 전하는 이들과 말씀을 받아들이는 이들이 구원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면, 박해자들과 거부자들은 멸망을 향해, 하느님의 진노를 향해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뻐하며, 그것이 잘하는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나는 구원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까? 하느님의 진노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깊이 돌아 봅시다.


    1 형제 여러분, 우리가 여러분을 찾아간 일이 헛되지 않았음을 여러분 자신도 잘 알고 있습니다. 2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는 전에 필리피에서 고난을 겪고 모욕을 당하였지만, 오히려 우리 하느님 안에서 용기를 얻어 격렬히 투쟁하면서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바오로 사도 일행은 테살로니카의 유다인들로부터 많은 고난과 모욕을 겪었습니다. 테살로니카의 유다인들은 복음을 전하는 바오로 일행을 시기하여 소동(사도17,5-9)을 일으켰고, 고통을 주었습니다.1) 하지만 바오로 일행은 그것에 굴하지 않고 “격렬히 투쟁”하면서 테살로니카에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3 우리의 설교는 그릇된 생각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불순한 동기에서 나온 것도 아니며, 속임수로 한 것도 아닙니다. 4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인정하여 맡기신 복음을 그대로 전합니다.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을 시험하시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선포한 복음이 하느님께서 전해주신 그대로 전했음을 강조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로부터 선택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인정하여 맡기신 복음”이라는 것은 하느님께서 시험한 끝에 “아하! 이 정도면 되겠구나.”해서 복음 선포를 맡겼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설교는 그릇된 생각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불순한 동기에서 나온 것도 아니며, 속임수로 한 것도 아닙니다.”라는 고백을 통해, 하느님께로부터 시험을 받아 사명을 부여받을 때와 지금 사명을 수행할 때의 모습이 같다는 것을 당당하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5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는 한 번도 아첨하는 말을 하지 않았고 구실을 붙여 탐욕을 부리지도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그 증인이십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이들은 복음을 선포하도록 부르신 분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부르신 이들의 뼛속까지도 꿰뚫어 보시는 분이십니다. 복음을 전하는 이들도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그 마음을 잃지 않을 때, 이처럼 당당하게 주님의 복음을 온 세상에 선포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이들은 아첨하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구실로 탐욕을 부리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복음을 전하는지는 “아첨을 하지는 않는지, 탐욕을 부리지는 않는지”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6 우리는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찾지도 않았습니다. 여러분에게서도 찾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찾지 않았습니다. 7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위엄 있게 처신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에서, 자녀들을 품에 안은 어머니처럼 온화하게 처신하였습니다.

    또한 복음을 전하는 이들은 사람들에게서 자신의 영광을 찾지도 않습니다. 하느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다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위엄”을 자랑할 수도 있지만, 겸손의 삶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고, 섬기러 파견되었기에 “자녀들을 품에 안은 어머니처럼 온화하게 처신”하는 것입니다. 이 온화함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을 받은 이들, 권한과 권위를 지닌 이들이 지닌 것으로, 결코 군림하지 않는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덕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서 영광을 찾는 삶은 복음을 선포하는 이의 자세가 아니고, 자녀들을 품에 안은 어머니처럼 온화하게 처신하지 못하는 복음선포자는 하느님의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을 선포하는 이”임을 알 수 있습니다.


    8 우리는 이처럼 여러분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의 복음을 여러분과 함께 나눌 뿐만 아니라 여러분을 위하여 우리 자신까지 바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여러분은 그토록 우리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복음을 선포하는 이들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기에, 그들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어머니가 어린 자녀를 지키기 위해 사나운 맹수와도 싸울 수 있는 것처럼, 어머니가 자식을 살리기 위해 자신은 굶주리면서도 자식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내어 놓는 것처럼, 그 마음으로 하느님 백성을 사랑하고 돌보는 것입니다. 그 삶이 바로 복음을 선포하는 이들의 삶입니다.


    이것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자신의 삶으로 하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그 사랑으로 내가 구원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이들도, 복음을 받아들이는 이들도 그 사랑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그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9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의 수고와 고생을 잘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하느님의 복음을 여러분에게 선포하였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여러 번에 걸쳐서 자기가 설립한 교회에서 물질적인 도움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합니다(참조: 사도20,33-35;1코린11,7-10; 2테살3,7-9). 바오로 사도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복음을 선포하면서도 부지런히 자기의 생업(천막 짜는 일)을 계속하였기 때문입니다.2)

    바오로 사도가 신자들의 물질적 도움을 거절한 이유는 “물질적 도움을 통하여 신자들이 오해를 불러일으킬까봐, 사도가 복음을 전하는 대가로 돈을 받는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까봐” 이며, 복음을 전하면서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다니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10 우리가 신자 여러분에게 얼마나 경건하고 의롭게 또 흠 잡힐 데 없이 처신하였는지, 여러분이 증인이고 하느님께서도 증인이십니다. 11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는 아버지가 자녀들을 대하듯 여러분 하나하나를 대하면서, 12 당신의 나라와 영광으로 여러분을 부르시는 하느님께 합당하게 살아가라고 여러분에게 권고하고 격려하며 역설하였습니다.

    목자는 신자들의 부모입니다. 신자들은 목자의 자녀들입니다. 그래서 신자들은 목자에게서 길을 찾고, 목자는 신자들에게 하느님께 이르는 길을 가르쳐 주고, 인도해 줍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 일을 성실하게 하였음을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다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오로 사도가 테살로니카 공동체가 알고 있는 것을 다시 상기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테살로니카 공동체에게 무엇을 바래서일까요? 결코 아닙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이 부르심 받은 사람으로서 합당하게 살아가도록 격려와 권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13 우리는 또한 끊임없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신자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바로오 사도는 테살로니카 공동체 때문에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왜냐하면 사도들이 전하는 말을 테살로니카 공동체가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선포자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복음선포자의 말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때, 그의 믿음은 자리를 잡게 되고, 큰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하느님의 말씀은 말씀을 받아들인 하느님의 자녀를 더욱 성장시키고, 의롭게 변화시켜 주며, 참된 하느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십니다.


    14 형제 여러분, 사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유다의 하느님 교회들을 본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곳 신자들이 유다인에게서 받은 것과 똑같은 고난을 여러분도 여러분의 동족에게서 받았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 공동체가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유다의 하느님 교회들을 본받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본받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수난 당하심을 내 삶으로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 모든 이들의 구원을 위하여 희생제사를 드리신 삶을 내 삶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을 고난으로 생각하지 않고, 주님 때문에 당하게 되는 기쁨으로 생각하며,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신앙인들의 삶입니다.


    15 유다인들은 주 예수님을 죽이고 예언자들도 죽였으며, 우리까지 박해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마음에 들지 않는 자들이고 모든 사람을 적대하는 자들로서, 16 우리가 다른 민족들에게 말씀을 전하여 구원을 받게 하려는 일을 방해합니다. 이렇게 그들은 자기들의 죄를 계속 쌓아 갑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에게 진노가 닥쳤습니다.

    바오로 사도 일행은 유다인들로부터 박해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테살로니카에서는 유다인들로부터 내쫓김까지 당했던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믿는 유다인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유다인들은 사도들이 다른 민족들에게 말씀을 전하여 구원을 받게 하려는 일을 방해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자기들의 죄를 계속 쌓아 갔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유다인이었고, 자신이 받은 기쁜 소식을 먼저 동족인 유다인들에게 전하였습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은 바오로 사도를 받아들이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것을 방해하였으며, 더 나아가 박해하고,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사실 유다인들은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으로서 복음의 전달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복음의 방해자, 박해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에게 진노가 닥쳤습니다. 하느님의 진노는 하느님의 심판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믿음은 구원을 받게 하고, 구원에 훼방을 놓는 이들은 하느님의 진노 아래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그렇게 하느님의 진노를 끌어당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예언자들을 죽이고, 복음을 선포하는 사도들을 박해하고, 죽였습니다.


    목자는 목자로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뜻을 찾을 수 있고, 그래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박해하면서도 하느님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멸망을 향해 달려가면서도 구원을 바라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복음을 전하는 이들은 바오로사도의 열정을 본받아, 주님의 마음으로 주님 백성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내가 해야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신앙생활 안에서 형제자매들을 바라보면서 기쁠 때는 언제입니까? 언제 함께 기뻐하게 됩니까?


    ②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 찬성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옳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계산된 생각이나 이익 때문에 반대하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켜, 함께 옳은 일을 할 수 있을까요? 특별히 바오로 사도를 반대하는 유다인들에게 해 줄 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어떻게 해야 그들이 구원을 향해 달려갈 수 있을까요?


    4. 말씀으로 기도하기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