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
교부들은 고해(참회)성사를 “배가 난파된 다음에 만난 두번째 구조의 널판지”라고 일컬었다. 세례성사를 통해서 큰 홍수에 비유될 수 있는 비구원의 상황으로부터 구조된 다음에 재차 범죄하였을 경우에 참회의 성사가 다시 한번 구원의 기회를 준다는 뜻이다. 세례를 통해서 새로운 삶에로의 전환이 이루어지지만, 인간의 나약성 때문에 거듭 범죄한 이들에게 고해성사는 죄스러운 과거를 청산하고 다시 새출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던 것이다.
오늘날의 신자들은 고해성사를 죄에서의 해방으로 체험하고 있는가? 서구교회에서는 지난 수십년 이래로 고해성사를 받는 신자들이 급격히 줄어 들고 있는 형편이다. 주일에는 물론 부활, 성탄 축일에도 고해소를 찾는 이들이 많지 않다. 이와는 반대로 한국에서는 주일 미사 때나 봄, 가을 판공 때에 여전히 많은 신자들이 고해성사를 보고 있다. 그런데 외양으로만 보면 문제가 없는 듯 하지만 실상 여러 가지 의문점들이 제기되고 있다.
* 적어도 일년에 한번은 고해성사를 받아야 한다는 교회법 규정 때문에, 부활과 성탄을 위한 판공성사 때문에 의무적으로, 억지로 임하지는 않는가? 이 경우 고해성사는 해마다 싫어도 어쩔 수 없이 치루어 버리는 ‘연중행사’에 지나지는 않는가? 성서에서 나타난 것처럼 죄의 사함이 기쁨과 해방 체험으로 연결될 수는 없을까?
* 막연한 불안감과 죄의식을 진지하게 대처하기 보다는 이를 고해소에서 얼른 쏟아 버림으로써 얼마 동안의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는 가벼운 태도는 없는가? 이 경우는 고해성사가 ‘진통제’의 역할과 유사할 것이다. 작은 고통이라도 진통제로 모면하듯이, 조금만 불안해도 고해성사로 해결하는 것은 아닌가? 병을 근본적으로 고치기 위해서는 병의 증상에 주목하고 증상이 가르키는 원인을 찾아 치료를 해야한다. 마찬가지로 막연한 불안감이나 죄의식의 원인을 캐어서 근본적인 잘못을 찾아내어 참회를 해야만 영신적인 치유가 가능하다.
* 고해성사가 자신을 깨닫고 새롭게 되는 기회가 되는가? 사람은 실수와 잘못을 통해서 자신을 깊이 통찰할 수 있다. 기왕에 지은 죄를 고해성사를 통해서 털어버리는 차원으로 끝나지 않고 자신을 심도있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 죄 고백은 그저 생활 속에서 사(私)생활에서 범하는 잘못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는가? ‘미사 몇주 궐했습니다’, ‘고해성사하지 않고 영성체 했습니다’, ‘아침, 저녁 기도 바치지 않았습니다’, ‘금육제를 어겼습니다’, ‘미워하고 욕했습니다’ 등등. 사생활 차원의 죄에 대한 성찰도 간과할 수 없으나, 그와 함께 생각해야 할 것은 사회 생활에서 범하는 잘못이다. 사회 구조적인 죄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가졌는가, 공공의 차원에서 범하는 잘못을 인식하고 있는가? 예를 들어서 부정부패, 부실 공사, 살인과 직결된 음주 운전, 사회적인 불의에 무관심 등에 대해 통회하고 고해성사를 보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고해성사가 용서의 기쁨과 죄에서의 해방감을 전해주지 못하고 단지 의무규정으로만 인식되거나, 죄의식에 시달리게만 하는 부담스러운 제도로 여겨진다면, 한국 교회도 언제가는 서구의 교회처럼 고해소를 찾는 이들이 사라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