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의 가난
‘초대교회’의 가난을 살펴보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제시된 ‘가난’에 대한 실천적인 문제를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제시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초대교회’라는 말 자체는 상당히 애매모호한 표현이다. 먼저 이를 광범위하게 정의하자면, 예수의 부활 승천 후부터 313년 밀라노 칙령이 내려져 그리스도교가 수면 위로 부상하기 전까지, 그 길고 긴 박해의 시간을 견디면서 신앙의 선배들이 지켜낸 신앙 공동체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초대교회’가 제한적인 의미로 쓰였을 때는 최초의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을 가리키고, 그 중에서도 특히 예루살렘 모교회를 뜻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여기에서는 후자의 뜻을 따르기로 한다.
사도행전을 집필한 복음서 작가 루가는 (루가 복음서의 서문(1, 1-4)과 사도행전의 서문(1, 1-5)을 비교하면 두 작품이 한 작가의 손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다) 세 번에 걸쳐 예루살렘 모교회의 모습을 요약문 형식으로 보도한다(사도 2, 42-47;4, 32-35;5, 12-16). 이들 중 앞의 두 가지가 ‘가난’에 대한 요약 문인데 세 요약문 중에 둘을 할애할 정도로 ‘가난’이란 예루살렘 모교회의 정체성을 부여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1)
이 두 가지 요약 문은 크게 두 가지로 ‘가난’의 형태를 나눌 수 있다. 그 하나는 자기 재산의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재산의 공동소유를 지향한다. 개개 그리스도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사유재산권의 포기인 셈이다(사도 2, 44;4, 32). 전자의 ‘가난’을 초대교회 공동체의 경제 원칙이라고 한다면, 후자의 ‘가난’은 그 실천율이라 할 것이요,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자발적으로 재산을 팔아 사도들에게 가져온 일이 먼저 있었다면, 전자의 ‘가난’은 후차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신학적인 의미부여가 될 것이다. 여하튼 이렇게 모여진 돈을 바탕으로 초대교회는 내것 네것이 따로 없는 이른바 ‘소유공동체’를 이룩해 냈다.
소유공동체를 기치로 내건 초대교회는 두 요약문에서 진정한 하느님의 교회로 부각된다. 이를테면 “한마음 한정신으로”(사도 4, 32)란 구약성서의 신명기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으로 공동체가 하느님을 가장 이상적으로 섬기는 상태를 가리키고(신명 6, 5;10, 12;11, 13.18;13, 4), “그들 가운데 궁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사도 4, 34)는 신명기 15장 4절을 글자 그대로 인용한 말이다. 즉 구약 시대로부터 내려오던 하느님의 약속이 궁극적으로 초대교회를 통해서 실현되었으며, 이는 이스라엘을 돌보시리라는 하느님의 의지가 비로소 이루어졌음을 뜻하기도 한다.2)
이러한 공동체의 모습은 순수 인간적인 차원을 뛰어넘어 “큰 은혜가 그들 모두에게 있었기”(사도 4, 33b)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겠다. 이로써 저자가 전해 주고자 하는 내용은 절정에 달한다. 예루살렘 공동체가 단순한 친교에 바탕을 두고 ‘한마음’이 된 것이 아니라, 믿음에 기초하여 ‘한마음 한정신’이 되었음이 강조되고 있음에 유의해야 된다. 이 공동체가 ‘한마음’이 되는 데는 무엇보다도 ‘영의 강림’이 그 도화선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사도 4, 32-35은 2, 42-47과 더불어 초대 교회의 참 삶의 모습, 곧 그들의 이웃 사랑을 요약해 주는 장면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정신은 곤궁한 이들을 도우려는 사랑에 근거한다. ‘재물’이 매우 적극적이고도 긍정적으로 사용되는 가운데 공동체 건설에 직접 기여하고 있음이 이들 두 요약문에서 잘 반영되고 있다.3)
그렇다면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공동체를 위하여 헌신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루가는 사도들이 전한 예수의 부활을 믿고 사람들이 큰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사도 4, 33). 예수의 복음을 전달받고 그리스도인이 된 후, 그들의 마음이 한없이 너그러워져서 자기 재산을 자발적으로 내놓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초대교회의 ‘소유공동체’란 ‘철저히 이타적(利他的)으로 살라’(‘가난’ 그 자체에 의미가 있을 수는 없다. 무엇을 위한 ‘가난’인가가 중요한 것이다)는 예수의 가르침에 근거해 탄생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4)
복음서 작가 루가는 선뜻 재산을 내놓고 가난을 택하는 일이 오로지 예수의 복음을 통해서 삶이 완전히 변화된 그리스도인들이었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한다. 무제한의 형제적 사랑으로, 또한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예수의 지상명령으로 인해 내부적인 결속력을 굳게 다진 공동체였기 때문에 불가능해 보이던 ‘소유공동체’가 예루살렘 모교회에서 기적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초대교회의 가난
‘초대교회’의 가난을 살펴보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제시된 ‘가난’에 대한 실천적인 문제를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제시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초대교회’라는 말 자체는 상당히 애매모호한 표현이다. 먼저 이를 광범위하게 정의하자면, 예수의 부활 승천 후부터 313년 밀라노 칙령이 내려져 그리스도교가 수면 위로 부상하기 전까지, 그 길고 긴 박해의 시간을 견디면서 신앙의 선배들이 지켜낸 신앙 공동체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초대교회’가 제한적인 의미로 쓰였을 때는 최초의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을 가리키고, 그 중에서도 특히 예루살렘 모교회를 뜻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여기에서는 후자의 뜻을 따르기로 한다.
사도행전을 집필한 복음서 작가 루가는 (루가 복음서의 서문(1, 1-4)과 사도행전의 서문(1, 1-5)을 비교하면 두 작품이 한 작가의 손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다) 세 번에 걸쳐 예루살렘 모교회의 모습을 요약문 형식으로 보도한다(사도 2, 42-47;4, 32-35;5, 12-16). 이들 중 앞의 두 가지가 ‘가난’에 대한 요약 문인데 세 요약문 중에 둘을 할애할 정도로 ‘가난’이란 예루살렘 모교회의 정체성을 부여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1)
이 두 가지 요약 문은 크게 두 가지로 ‘가난’의 형태를 나눌 수 있다. 그 하나는 자기 재산의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재산의 공동소유를 지향한다. 개개 그리스도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사유재산권의 포기인 셈이다(사도 2, 44;4, 32). 전자의 ‘가난’을 초대교회 공동체의 경제 원칙이라고 한다면, 후자의 ‘가난’은 그 실천율이라 할 것이요,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자발적으로 재산을 팔아 사도들에게 가져온 일이 먼저 있었다면, 전자의 ‘가난’은 후차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신학적인 의미부여가 될 것이다. 여하튼 이렇게 모여진 돈을 바탕으로 초대교회는 내것 네것이 따로 없는 이른바 ‘소유공동체’를 이룩해 냈다.
소유공동체를 기치로 내건 초대교회는 두 요약문에서 진정한 하느님의 교회로 부각된다. 이를테면 “한마음 한정신으로”(사도 4, 32)란 구약성서의 신명기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으로 공동체가 하느님을 가장 이상적으로 섬기는 상태를 가리키고(신명 6, 5;10, 12;11, 13.18;13, 4), “그들 가운데 궁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사도 4, 34)는 신명기 15장 4절을 글자 그대로 인용한 말이다. 즉 구약 시대로부터 내려오던 하느님의 약속이 궁극적으로 초대교회를 통해서 실현되었으며, 이는 이스라엘을 돌보시리라는 하느님의 의지가 비로소 이루어졌음을 뜻하기도 한다.2)
이러한 공동체의 모습은 순수 인간적인 차원을 뛰어넘어 “큰 은혜가 그들 모두에게 있었기”(사도 4, 33b)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겠다. 이로써 저자가 전해 주고자 하는 내용은 절정에 달한다. 예루살렘 공동체가 단순한 친교에 바탕을 두고 ‘한마음’이 된 것이 아니라, 믿음에 기초하여 ‘한마음 한정신’이 되었음이 강조되고 있음에 유의해야 된다. 이 공동체가 ‘한마음’이 되는 데는 무엇보다도 ‘영의 강림’이 그 도화선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사도 4, 32-35은 2, 42-47과 더불어 초대 교회의 참 삶의 모습, 곧 그들의 이웃 사랑을 요약해 주는 장면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정신은 곤궁한 이들을 도우려는 사랑에 근거한다. ‘재물’이 매우 적극적이고도 긍정적으로 사용되는 가운데 공동체 건설에 직접 기여하고 있음이 이들 두 요약문에서 잘 반영되고 있다.3)
그렇다면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공동체를 위하여 헌신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루가는 사도들이 전한 예수의 부활을 믿고 사람들이 큰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사도 4, 33). 예수의 복음을 전달받고 그리스도인이 된 후, 그들의 마음이 한없이 너그러워져서 자기 재산을 자발적으로 내놓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초대교회의 ‘소유공동체’란 ‘철저히 이타적(利他的)으로 살라’(‘가난’ 그 자체에 의미가 있을 수는 없다. 무엇을 위한 ‘가난’인가가 중요한 것이다)는 예수의 가르침에 근거해 탄생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4)
복음서 작가 루가는 선뜻 재산을 내놓고 가난을 택하는 일이 오로지 예수의 복음을 통해서 삶이 완전히 변화된 그리스도인들이었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한다. 무제한의 형제적 사랑으로, 또한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예수의 지상명령으로 인해 내부적인 결속력을 굳게 다진 공동체였기 때문에 불가능해 보이던 ‘소유공동체’가 예루살렘 모교회에서 기적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