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매춘의 역사 – 세계사

 

세계사




흔히들 매매춘이라는 현상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발생되었으며, 인간이 존재하는 곳이면 언제 어디서나 발생할 수 밖에 없었고, 근절되기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러한 매매춘이라는 현상을 역사적으로 고찰할 수 있는 출발점은 고대(古代)로 보여진다. 고대에 있어서 매매춘 현상의 대명사로 꼽을 수 있는 나라는 그리이스이다. 그리이스에서 매춘(賣春)을 한다는 것은 전혀 창피스러운 일도 아니었으며, 윤리적으로 지탄받을 일도 아닌것으로 간주되어 일상의 일로 생각될 정도였다. 특히 “돈을 주고 살 수있는 것은 불명예를 두려워할 필요없이 사도된다.”라는 원칙이 통용되었으며,1) 더구나 대부분의 매춘부들이 노예의 신분이었기에 이러한 원칙이 더 잘 적용될 수 있었다. 그리이스에는 3가지 형태의 매춘(賣春)이 있었다. 첫째는 성전에 속한 구역에서 여자 노예들에 의해 이루어진 종교적 매춘이 있었고, 둘째로 창가나 길거리에서 매매가 이루어지는 세속적 매춘, 셋째로 여자노예들이나 일반적인 매춘부들보다 사회적 지위나 교양수준이 높았던 정부(Hätrae)제도가 있었다. 이 세번째 형태에 속하는 여자들은 구매자인 남자와 性的접촉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여흥을 돋우고 함께 토론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2) 여기에서 특히 종교적 매춘은 바빌로니아에서 처음 행하여지다가 그리이스로 전해졌는데, 이는 수메르인들, 아시리아-바빌론 영역, 에집트, 이스라엘인들이 정착했던 가나안-페니키아 지역에서도 활발히 행하여 졌으며, 현재 인도에서 여전히 행하여 지고있으며,3) 중세기에 들어와서는 기독교 사상의 영향으로 매매춘 행위가 극렬한 반대에 부딪히지만 봉건주의의 흥망 과정에서 영주와 일부 타락한 교회 성직자들에 의하여 농노들과 신자들, 그리고 노예들을 대상으로 여전히 매매춘이 행하여 졌다. 특히 근대에 들어서서 매매춘의 형태는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경제적 구조가 탄생함으로써 새로운 양상을 띄게 된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그리고 부(富)의 편중이라는 부정적인면을 가지는 자본주의의 확산으로 생산물의 분배에서 제외되거나 소외된 이들중에 여자들이 먹고 살기 위하여 대량으로 매춘(賣春)이라는 방법을 선택하게 되고, 자본주의에 의한 상업주의의 영향으로 인간 자체를 유용성과 교환가치의 측면에서  평가하게 되어 매춘여성들에 대한 비인간화 현상과 고립현상이 더욱 심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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