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네 후손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너는 그 발꿈치를 물려고 하다가 도리어 여자의 후손에게 머리를 밟히리라.”(창세 3,15)
인류의 첫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배은망덕함으로 하느님께 죄를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비로우신 하느님은 그들을 죄속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인간을 죄에서 다시 구원해 줄 구세주를 그들에게 약속하셨다. “네 후손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너는 그 발꿈치를 물려고 하다가 도리어 여자의 후손에게 머리를 밟히리라.”(창세 3,15). 이로써 구세주를 목표로 한 하느님의 위대한 인류 구원사업은 시작되었다. 이제부터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 인간에게 구세주를 보내시기 위하여 역사 안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준비해 오셨는가를 보기 위해 구약성경을 따라서 역사의 시초에까지 올라가 보기로 하자.
1. 아브라함의 선택
기원전 18,9세기 경(청동기 시대), 바빌로니아 남부의 우르(Ur)라는 지방에는 아브람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하느님은 구세주를 보내시기 위한 준비의 첫 단계로서 그를 부르셨다.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리라. 너에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떨치게 하리라. 네 이름은 남에게 복을 끼쳐 주는 이름이 될 것이다.’”(창세 12,1-2)
이에 아브람은 주저하지 않고 하느님의 명을 따라 ‘보여줄 땅’(가나안)으로 떠났다. 피상적으로 본다면 그 당시에 유목민들이 천막을 거두고 짐승들을 몰아 다른 곳으로 떠난다는 것은 목초지를 이동한다는 것 외에 큰 의미가 없겠으나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아브람의 순명은 사실 모든 세대에 영향을 미치는 일대 변혁의 시작이 되었다. 아브람이 하느님께 순명하여 고향을 떠나 미지의 땅으로 향했다는 창세기의 기사는 우리에게 몇 가지 중요한 점을 제시해 준다.
첫째, 하느님은 당신 마음대로 아브람을 선택하셔서 당신이 세우실 새로운 민족의 조상으로 삼으셨다는 점이다. 사실 아브람은 세계사에 이름도 없던 일개 유목민 족장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하느님은 많은 유능한 사람들을 제쳐 놓으시고 그를 택하셨다. 이것은 인간의 구원이 온전히 하느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잘 말해준다.
둘째,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아브람의 순명이다.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이미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에 인간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순응할 수도 있고 거역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브람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추호의 의심도 없이 곧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순응했다. 이것이 바로 믿음과 불신, 삶과 죽음 사이에서 인간이 내려야 하는 결단이다.
셋째, 아브람이 하느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큰 희생을 지불해야만 했다는 점이다. 그 당시에 부모와 고향을 떠나 전혀 알지도 못하는 곳으로 간다는 것은 일종의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는 희생을 감수 인내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의 축복받은 조상이 될 수 있었다.
2. 하느님의 계약과 축복
어느날 하느님은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꿔 주셨다.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삼으리니, 네 이름은 이제 아브람이 아니라 아브라함이라 불리리라”(창세 17,5). 그 당시에 누가 이름을 지어 준다고 하면 그것은 그 사람을 소유하는 것이며 그에게 어떤 사명을 주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느님이 아브람에게 아브라함, 즉 ‘모든 백성의 아버지’라는 이름을 주신 것은 하느님께서 모든 백성을 소유하시고 그에게 특수한 사명을 주셨다는 것과 같다.
그 다음 하느님은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으셨다. “나는 너에게서 많은 자손이 태어나 큰 민족을 이루게 하고 왕손도 너에게서 나오게 하리라. 나는 너와 네 후손의 하느님이 되어 주기로 너와 대대로 네 뒤를 이을 후손들과 나 사이에 나의 계약을 세워 이를 영원한 계약으로 삼으리라.”(창세17,6-7). 아브라함은 이미 늙었고 부인 역시 수태치 못하는 여자였기 때문에 자손이 번성하리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하느님께 신뢰하여 아들 이사악을 얻었다. 그러나 창세기 22장은 아브라함이 자기의 외아들 이사악으로 인하여 혹독한 시련을 당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자신의 모든 희생인 외아들을 죽여 하느님께 바치느냐 아니면 하느님을 거역하고 외아들을 살리느냐 하는 갈림길에서 그는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사흘을 걸어서 하느님이 일러 주신 곳에 가까이 온 그들 부자의 대화는 그때의 처절한 모습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창세 22,7-9). 아브라함이 아들을 쳐 죽이려 칼을 높이 든 순간 그의 굳은 믿음을 보신 하느님은 이사악을 구출하시고 대신 양을 바치도록 하셨다(창세 22,10-13). 이와 같은 시련을 겪고 난 후에야 아브라함은 결국 모든 믿는 사람의 표본이 되었으며 구세주를 탄생시킬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 사도 바울로는 다음과 같이 외쳤다. “아브라함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믿어서 마침내 ‘네 자손은 저렇게 번성하리라’고 하신 말씀대로 ‘만민의 조상’이 되었습니다”(로마 4,18)).
아브라함의 믿음은 이해타산적인 것이 아니었다. 믿기에 앞서 내게 돌아올 이익이나 손해를 계산하는 태도는 진정한 믿음의 태도가 아니다. 과연 우리의 믿음은 어떤가 반성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3. 아브라함 후손들의 사적
이사악은 아내 리브가에게서 쌍둥이 아들을 낳았는데 하느님은 아우 야곱에게 축복하기를 원하셨다.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야곱은 어느날 밤새도록 천사와 씨름을 하여 그를 이겼다. 그때부터 하느님은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바꿔 주셨으니(창세 35,9-10 참조) 이스라엘은 ‘하느님과 겨룬 자’란 뜻이다. 야곱은 열 두 아들을 두었다가 그가 열 두 아들들 중에서 요셉을 가장 사랑하는 것을 시기한 다른 형제들은 요셉을 이집트의 상인들에게 팔아 넘겼다. 그러나 하느님은 요셉을 축복하셔서 그로 하여금 이집트의 재상이 되게 하셨다. 한편, 가나안 땅에 남아 있던 야곱의 집안과 그의 아들들은 한때 큰 흉년을 맞아 요셉이 있는 이집트로 이주해야 했고 거기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차차 번성해 나갔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구약성경은 하느님이 역사 안에서 기묘한 방법으로 당신 친히 선택하신 사람들을 돌보신 사적을 묘사하고 있다. “구약의 계획은 무엇보다도 인류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와 메시아 왕국의 내림을 준비하고 미리 알리며(루가 22,44; 요한 5,39; 1베드 1,10 참조) 여러 가지 모상으로 표시하기 위한 것이 주요한 목적이었다. 구약성경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실현된 구원의 시대 이전에 살던 인류 상황에 맞추어서 하느님과 인간에게 관한 지식과 인간에게 대한 공의하시고 자비하신 하느님의 태도를 모든 이에게 알리는 것이다”(계시 15).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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