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유스띠노-생애

 

9. 성 유스띠노




9.1. 생애


유스띠노는 2세기 호교론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신학자이다. 그의 생애에 대해 자세히 알수는 없지만, ꡔ트리폰과의 대화ꡕ에 묘사되어 있는 자신의 입교과정과 그에 관한 순교록을 통해 어느 정도의 골격을 잡을 수 있다. 그는 100에서 110년 사이에 팔레스티나의 플라비아 네오폴리스(지금의 나브루스)에서 이교가정의 부모로부터 태어났으며, 진리를 찾아나서는 구도자의 자세로 꾸준히 탐구하는 학구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스토아 철학, 아리스토텔레스 학파, 피타고라스 학파 그리고 플라톤 사상에 연이어 몰두해 보았지만 끝내 만족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어느날 유스띠노는 체사리아의 바닷가에서 한 노인을 만나 인간의 모든 사상, 플라톤 사상에도 그 한계와 부족함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세상의 구세주로 믿는 그리스도교에 귀의하게 되었다.


그는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토로한다. ꡔ그분은 이 모든 것과, 여기에서 다 이야기할 수 없는 다른 것들도 들려주고 나서는 나에게 이것들에 대해 숙고해 보라고 권하면서 떠나갔다. 그후 나는 그분을 더이상 뵙지 못했다. 그런데 내 영혼안에 갑자기 섬광이 일어났고, 나는 예언자들 그리고 그리스도의 친구들에 대해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그분의 말씀을 마음속으로 곰곰히 되새기면서 이 철학이야말로 참되고 유익한 유일한 철학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철학자가 된 과정과 이유이다. 나는 모든 이가 나와 같은 체험을 하여 구세주의 가르침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말기를 바란다ꡕ(트리폰과의 대화 8). 여기서 말하는 ꡔ철학ꡕ(philosophia)이란 ꡔ진리를 사랑하는 것ꡕ을 뜻한다. 그가 그리스도교에 심취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순교자들의 영웅적인 태도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ꡔ플라톤 학파의 제자였을때 나 자신이 그리스도인들을 비난했었는데,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에 직면하여서도 용감한 그들을 보면서, 나는 그들이 악이나 탐욕가운데 살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ꡕ(제 2호교론 12). 그는 이제 구도자로서가 아니라 진리의 설파자, 신앙의 설교가로 길을 바꾸어 한 평생을 하느님께 봉헌하게 된다. 그는 평신도였으나 스승이며 복음의 사도가 된 것이다. 유스띠노가 그리스도교에 입문한 것은 130년 경이다.


그는 132년과 135년 사이에 에페소에서 유다인 트리폰과 종교에 관한 토론을 가졌으며, 이것을 토대로 155년에 ꡔ트리폰과의 대화ꡕ를 저술하였다. 그후 생애의 절반을 로마에 머물렀으며, 로마의 자기 집에서 교리를 가르치는 학교(schola)를 세웠다. 그의 제자들 중에는 후에 호교론자가 된 타찌아노가 있었다. 유스띠노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에 항의하는 2편의 ꡔ호교론ꡕ을 썼으나, 165년에 로마의 율리우스 루스티꾸스 집정관에 고발되어 다른 6명의 동료와 함께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로마교회는 그의 축일을 6월 1일에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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