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까의 아르노비우스-생애

 

25. 시까의 아르노비우스




25.1. 생애


아프리카교회는 치쁘리아누스 주교 이후 40년간 뚜렷한 신학자가 없었으나 3세기 말에 아르노비우스를 맞게 된다. 북아프리카 누미디아의 시까출신인 아르노비우스는 오랫동안 수사학 교사로 일하면서 그리스도교를 맹렬히 반대 하였었다. 그러나 그의 나이 50세되던 295년경에 꿈속에서 현시를 받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다음에는 열렬한 호교론자가 되었다. 그의 꿈의 내용과 개종 동기를 명확히 알 수 없지만, 그는 개종한 다음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ꡔ오, 나는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얼마나 눈먼자였던가! 나는 대장장이들이 망치로 두드려 만든 형상들, 코끼리의 뼈들, 그림들, 고목(古木)에 걸려있는 넝마쪽들을 섬겨왔었다. 사실 나는 올리브 기름에 절어 있는 바위를 쳐다보고는, 마치 어떤 신적 능력이 그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깊은 존경심을 드러내곤 하였다. 아무 이성적 요소도 없는 그런 바위에 대고 나는 말을 하고 복을 빌었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 신들이 나무나 돌이나 뼈의 조각들에 불과한 이런 물질에 거처하겠는가 하는 의문을 품고, 그것들을 불손하게 다루기도 하였다. 위대한 스승이신 그리스도의 인도에 따라 이제 진리의 길에 들어선 나는 이제 이 모든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다만 그분에게서 기쁜 생활을 영위할 큰 은혜를 받았고 그분께 바람으로써 언젠가는 다가올 「그 날」에 희망을 두고 있을 뿐이다ꡕ(이교민족들 논박 1,39). 한편 교회는 디오끌레씨아누스 황제의 말기인 303년에 매우 혹독한 박해를 받게 되었다. 재난과 질병, 기아와 전쟁 등이 계속되는 까닭은 그리스도인들이 우상숭배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한 고발에 대항하여 아르노비우스는 그의 걸작인 ꡔ이교민족들 논박ꡕ을 통해 박해의 부당성과 이교(異敎)의 비합리성을 지적하였다. 그는 평신도로서 후배양성에 헌신하다가 327년에 사망하였다. 그의 대표적인 제자로 다음 호에 소개하게될 락탄씨우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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