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락탄씨우스
26.1. 생애
락탄씨우스의 이름은 루치우스 체칠리우스 피르미아누스이며 락탄씨우스는 그의 별명인데,일반적으로 락탄씨우스로 불리운다. 그는 260년경 북아프리카의 이교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씨카의 아르노비우스에게서 교육을 받은 다음 유능한 수사학 교사로 일하였다. 마침 디오끌레씨아누스 황제가 소아시아의 니꼬데미아에 새로운 왕도(王都)를 건설하고 왕립 학교를 세웠는데, 락탄씨우스는 이 학교의 수사학 교사로 초빙 받게 되었다. 그러나 니꼬데미아는 희랍어를 통용어로 사용하고 있었고, 라틴어가 그곳 사람들에게 별로 매력을 주지 못하였기 때문에 락틴씨우스는 여가를 이용하여 집필 생활에 몰두하였다. 300년경 그는 이곳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 한편 교회는 40년간 박해 없이 평화를 누려 왔었는데, 303년 디오클레싸아누스 황제는 혹독한 박해를 가하기 시작하였다. 락탄씨우스는 피신하여 죽음의 위기를 모면하였고, 305년에는 수도를 떠나 고향 아프리카로 돌아왔다. 311년에 갈레리우스 황제가 박해를 중단하자 락탄씨우스는 다시 니꼬데미아에 와서 정착하게 되었고, 콘스딴띠누스 대제의 집권 이후에는 황제의 특명으로 왕중교사가 되어 317년경부터 황제의 큰아들인 끄리스뿌스의 개인 교사로 일하다가 321년에 사망하였다. 중세의 인문 학자들은 그를 「크리스챤 치체로」라고 부를 정도로 그의 라틴어 문장력은 뛰어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