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뜻대로

 

주문모 신부는 기도를 계속했다.




“비록 저희가 나약하여 배교한다 하더라도 저희의 작은 믿음을 저버리지 마시고,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모인 이들은 모두 “아멘”으로 응답했다.




기도가 끝나자 주문모 신부는 형제들에게 서툴게 안부를 물었다.




“요즘 정세가 어수선하다고 골롬바 자매에게 들었습니다. 주일 미사에 참례하시는 분들의 숫자도 줄었습니다. 배교하시는 분들도 있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시골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신 분들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전국에 박해령이 내린 후로 많은 형제들이 신앙을 떠났습니다. 물론 저도 드릴 말씀은 없지만 나약한 형제들과 불순한 동기로 천주님을 믿게 된 이들이 떠난 듯 합니다.”




이승훈 베드로는 자신도 전에 배교한 경험이 있기에 그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제가 행동이 부자연스러우니 너무도 답답합니다. 이 땅에 복음을 전하러 와서 제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박해자들의 눈을 피해서 나는 이렇게 숨어서 지내고,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주문모 신부는 괴로운 듯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하였다. 정약종 아우구스티노가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신부님! 신부님께서 이 땅에 계시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저희 신자들에게는 힘이 됩니다. 이 넓은 조선 땅에 천주님을 믿는 이들은 많으나 그분께로 가는 길을 올바로 가르쳐 주실 분은 오직 신부님밖에 안 계십니다. 캄캄한 밤중에 뱃사람들에게 길을 가르쳐주는 것이 자그마한 별빛인 것처럼 신부님께서도 저희에게는 빛이십니다. 그 빛이 꺼지면 저희는 길을 잃게 됩니다.”




“나는 목자로서 양들을 돌보기 위해서 이 땅에 왔습니다. 그러나 목자가 이리가 나타나자 양은 돌보지 않고 자신의 안전만을 돌본다면 그 목자는 참된 목자가 아닙니다. 그런 목자가 양들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오히려 없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지요. 예수님께서는 저에게 무엇을 바라실까요? 형제․자매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내가 무엇을해야 할까요? 앞으로도 나 때문에 죽을 사람들이 있을텐데 말입니다…. ”




주문모 신부는 자조 섞인 말로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그러자 강완숙 골롬바는 결코 그것이 아님을 힘주어 말했다.




“신부님! 제가 신부님을 모신지가 벌써 6년째가 되는 듯 합니다. 신부님을 모셨다는 것이 발각되면 저 또한 죽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언제나 긴장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처지이기에 제 나약한 육신이 좀더 안락한 삶을 요구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신부님과 함께 하는 생활이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닌 듯 합니다. 하지만 제가 천주님을 믿고 있기에 저는 이 생활에서 기쁨을 얻고 있습니다. 제가 이 땅에 천주님의 말씀을 전하러 오신 신부님을 모실 수 있어서 너무도 행복합니다. 감히 저희의 처지를 성모님과 비교한다는 것이 커다란 죄를 짓는 듯 하지만, 아마 성모님께서도 예수님의 어머니셨지만 인간적으로는 행복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당신 아드님을 향한 음모와 죽음의 그림자와 그리고 죽음을 보아야 했기에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겠습니까? 하지만 성모님께서는 행복하셨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일을 하셨기 때문이지요.”




최창현 요한이 강 골롬바의 말에 동조하면 주문모 신부에게 말했다.




“신부님께서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고국을 떠나서 멀리 타향에서 믿지 않은 이들의 눈을 피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시는 것.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다면야 신부님보다 더 불행하신 분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신부님께서 이곳에 계신 것이 어디 신부님의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서 입니까? 모두 저희를 위해서가 아닙니까?  신부님께서는 양들을 버리고 숨어 계신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양들을 돌보기 위해서 노력하고 계신 것입니다. 신부님! 부디 그런 생각은 다시는 하지 마시옵소서.”






형제들의 진심이 담긴 말을 들은 주문모 신부는 너무도 감격했다. 자신 때문에 죽을지도 모르는 이들이 오히려 그것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그리고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에 대한 사랑이 변함없다는 것이 너무도 기뻤다. 그는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천주님! 감사합니다. 보잘 것 없는 저를 사제로 불러주시어 이렇듯 큰사랑을 베풀어 주시는군요. 이들이 저를 사랑하는 만큼, 저도 이들에게 사랑을 주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당신의 사제로서 제 목숨 바쳐 당신의 일을 하겠나이다. 이 땅에 당신의 말씀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거름이 되겠나이다. 부디 나약한 저를 도와주소서.”






  주문모 신부는 그래도 조정의 소식을 가까이에서 접하고 있는 이승훈 베드로에게 물었다.




“베드로 형제! 이 박해는 언제 끝날 것 같습니까?” “신부님!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쉽게 지나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노론 벽파가 남인들을 모두 몰아내고서야 끝날 듯 싶습니다. 이제 칼을 잡았으니 눈앞에 거스르는 것들은 모두 베어버리겠지요.”




“이 나라 조선은 당파 때문에 망할 것입니다. 한 세력이 일어나 다른 세력을 몰아내고, 시간이 지난 후 물러났던 세력이 다시 일어나 반대세력을 몰아내고, 결국 보복은 보복으로 이어져 끝없는 싸움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 끝없는 악순환의 혼돈을 바로잡을 수 있으신 분은 오직 천주님 밖에는 안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랑을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어 놓은 사랑.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할 수 있는 사랑. 오른 뺨을 맞으면 왼 뺨마저 대 줄 수 있는 사랑. 이것이 있다면 이 폭력은 악순환은 끝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문모 신부의 탄식섞인 말에 정약종은 아우구스티노는




“그런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성서에서 동방박사들이 헤로데에게 유다인의 왕으로 나신 아기 예수님을 찾아왔다고 이야기하자 헤로데는 자신의 왕위를 지키기 위해서 베들레헴에 있는 두 살 이하의 무죄한 어린아이들을 죽여버린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조정의 신료들도 헤로데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제 동생 약종은 지금 신앙을 버리고 있는 상태인데도, 그래서 유배도 갔다 왔는데도 시기와 모략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생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친구도 이제는 약용을 죽이기 위해 별의별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은 친구지요. 그런데 신부님! 그런데도 우리는 그들을 사랑해야 합니까? 우리 신자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이 글은 카테고리: catholicdictionary3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당신의 뜻대로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주문모 신부는 기도를 계속했다.


    “비록 저희가 나약하여 배교한다 하더라도 저희의 작은 믿음을 저버리지 마시고,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모인 이들은 모두 “아멘”으로 응답했다.


    기도가 끝나자 주문모 신부는 형제들에게 서툴게 안부를 물었다.


    “요즘 정세가 어수선하다고 골롬바 자매에게 들었습니다. 주일 미사에 참례하시는 분들의 숫자도 줄었습니다. 배교하시는 분들도 있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시골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신 분들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전국에 박해령이 내린 후로 많은 형제들이 신앙을 떠났습니다. 물론 저도 드릴 말씀은 없지만 나약한 형제들과 불순한 동기로 천주님을 믿게 된 이들이 떠난 듯 합니다.”


    이승훈 베드로는 자신도 전에 배교한 경험이 있기에 그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제가 행동이 부자연스러우니 너무도 답답합니다. 이 땅에 복음을 전하러 와서 제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박해자들의 눈을 피해서 나는 이렇게 숨어서 지내고,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주문모 신부는 괴로운 듯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하였다. 정약종 아우구스티노가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신부님! 신부님께서 이 땅에 계시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저희 신자들에게는 힘이 됩니다. 이 넓은 조선 땅에 천주님을 믿는 이들은 많으나 그분께로 가는 길을 올바로 가르쳐 주실 분은 오직 신부님밖에 안 계십니다. 캄캄한 밤중에 뱃사람들에게 길을 가르쳐주는 것이 자그마한 별빛인 것처럼 신부님께서도 저희에게는 빛이십니다. 그 빛이 꺼지면 저희는 길을 잃게 됩니다.”


    “나는 목자로서 양들을 돌보기 위해서 이 땅에 왔습니다. 그러나 목자가 이리가 나타나자 양은 돌보지 않고 자신의 안전만을 돌본다면 그 목자는 참된 목자가 아닙니다. 그런 목자가 양들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오히려 없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지요. 예수님께서는 저에게 무엇을 바라실까요? 형제․자매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내가 무엇을해야 할까요? 앞으로도 나 때문에 죽을 사람들이 있을텐데 말입니다…. ”


    주문모 신부는 자조 섞인 말로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그러자 강완숙 골롬바는 결코 그것이 아님을 힘주어 말했다.


    “신부님! 제가 신부님을 모신지가 벌써 6년째가 되는 듯 합니다. 신부님을 모셨다는 것이 발각되면 저 또한 죽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언제나 긴장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처지이기에 제 나약한 육신이 좀더 안락한 삶을 요구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신부님과 함께 하는 생활이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닌 듯 합니다. 하지만 제가 천주님을 믿고 있기에 저는 이 생활에서 기쁨을 얻고 있습니다. 제가 이 땅에 천주님의 말씀을 전하러 오신 신부님을 모실 수 있어서 너무도 행복합니다. 감히 저희의 처지를 성모님과 비교한다는 것이 커다란 죄를 짓는 듯 하지만, 아마 성모님께서도 예수님의 어머니셨지만 인간적으로는 행복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당신 아드님을 향한 음모와 죽음의 그림자와 그리고 죽음을 보아야 했기에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겠습니까? 하지만 성모님께서는 행복하셨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일을 하셨기 때문이지요.”


    최창현 요한이 강 골롬바의 말에 동조하면 주문모 신부에게 말했다.


    “신부님께서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고국을 떠나서 멀리 타향에서 믿지 않은 이들의 눈을 피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시는 것.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다면야 신부님보다 더 불행하신 분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신부님께서 이곳에 계신 것이 어디 신부님의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서 입니까? 모두 저희를 위해서가 아닙니까?  신부님께서는 양들을 버리고 숨어 계신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양들을 돌보기 위해서 노력하고 계신 것입니다. 신부님! 부디 그런 생각은 다시는 하지 마시옵소서.”



    형제들의 진심이 담긴 말을 들은 주문모 신부는 너무도 감격했다. 자신 때문에 죽을지도 모르는 이들이 오히려 그것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그리고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에 대한 사랑이 변함없다는 것이 너무도 기뻤다. 그는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천주님! 감사합니다. 보잘 것 없는 저를 사제로 불러주시어 이렇듯 큰사랑을 베풀어 주시는군요. 이들이 저를 사랑하는 만큼, 저도 이들에게 사랑을 주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당신의 사제로서 제 목숨 바쳐 당신의 일을 하겠나이다. 이 땅에 당신의 말씀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거름이 되겠나이다. 부디 나약한 저를 도와주소서.”



      주문모 신부는 그래도 조정의 소식을 가까이에서 접하고 있는 이승훈 베드로에게 물었다.


    “베드로 형제! 이 박해는 언제 끝날 것 같습니까?” “신부님!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쉽게 지나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노론 벽파가 남인들을 모두 몰아내고서야 끝날 듯 싶습니다. 이제 칼을 잡았으니 눈앞에 거스르는 것들은 모두 베어버리겠지요.”


    “이 나라 조선은 당파 때문에 망할 것입니다. 한 세력이 일어나 다른 세력을 몰아내고, 시간이 지난 후 물러났던 세력이 다시 일어나 반대세력을 몰아내고, 결국 보복은 보복으로 이어져 끝없는 싸움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 끝없는 악순환의 혼돈을 바로잡을 수 있으신 분은 오직 천주님 밖에는 안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랑을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어 놓은 사랑.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할 수 있는 사랑. 오른 뺨을 맞으면 왼 뺨마저 대 줄 수 있는 사랑. 이것이 있다면 이 폭력은 악순환은 끝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문모 신부의 탄식섞인 말에 정약종은 아우구스티노는


    “그런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성서에서 동방박사들이 헤로데에게 유다인의 왕으로 나신 아기 예수님을 찾아왔다고 이야기하자 헤로데는 자신의 왕위를 지키기 위해서 베들레헴에 있는 두 살 이하의 무죄한 어린아이들을 죽여버린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조정의 신료들도 헤로데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제 동생 약종은 지금 신앙을 버리고 있는 상태인데도, 그래서 유배도 갔다 왔는데도 시기와 모략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생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친구도 이제는 약용을 죽이기 위해 별의별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은 친구지요. 그런데 신부님! 그런데도 우리는 그들을 사랑해야 합니까? 우리 신자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