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 베드로의 갈등(2)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친 이승훈 베드로는 결국 배교를 하게 된다. 우리 나라 최초의 영세자. 그가 무너진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을 억지로 떼어놓는 다고 해서 그 사랑이 식지 않는 것과 같이 이승훈 베드로는 때를 기다린 듯 하다. 예수님께서도 초월적인 의지를 가진 그런 완전한 사람을 선택하시지 않고, 나약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나 당신께로 오는 사람을 선택하신 것이다. 베드로 사도 위에 교회를 세우셨지만,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정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로 돌아와서는 큰 힘이 되어 교회의 기둥이 되었던 것과 같이 이승훈 베드로도 그렇게 신앙을 부정하였지만 마침내는 그분께로 돌아와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신자들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우리는 매 순간 신앙을 택할 것인지 배교를 택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되지만, 많은 경우는 배교 쪽을 택한다. 갈등의 상황이 주어질 때 고통보다는 기쁨을, 어려움에 처해지기보다는 그 순간을 모면할 수 있는 길을 찾게 된다. 그런데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너무도 급박한 문제로 배교를 입에 담았지만, 그분들의 후손인 나는 너무도 쉬운 문제에도 좌절하면서 배교 하게 된다. 그분들의 신앙을 본받았다면 한번쯤은 더 생각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 이 다음에 성사한번 보지…”


혹시 이런 생각이  나를 지배하는 것은 아닌지. 그러나 우리의 신앙의 선조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어쩔 수 없이 배교 하였지만 그것 때문에 언제나 괴로워했고, 마침내는 순교의 잔을 받아들인 것을 바라본다면 나의 신앙을 함부로 내동댕이치는 그런 행동은 결코 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의 짧은 신앙여정이 화살처럼 그렇게 승훈의 뇌리를 스치고 있을 때, 강 골롬바는 승훈의 마음을 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결코 배교하지 않고 순교의 잔을 마실 것임을 알 수가 있었다. 그의 운명이 자신의 운명임을 알고 있는 강 골롬바는 마음속으로 그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었다. “주님! 베드로 형제에게 힘을 주십시오. 비록 몇 번 배교를 하였다 할지라도 지금은 저렇듯 당신을 사랑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에게 힘을 주시어 이 번 만큼은 당신 사랑을 증거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십시오.”




마음의 긴 침묵을 깬 승훈은 다른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아니 보이지 않는 기도의 힘을 입어서 그렇게 말하였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만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두 순교한다면 이 조선 땅의 어린양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피할 수 있으신 분들은 박해가 끝날 때까지 피해 계시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그리고 신부님도 거처를 옮기심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혹시라도 신부님께 무슨 변고가 닥친다면 이 땅의 어린양들은 누구를 의지한단 말입니까?”




“베드로 형제님의 말씀이 옳은 것 같습니다. 사실 아직까진 이곳이 신부님께는 안전한 곳이기는 하나 언제가는 이곳도 위험한 곳으로 변하겠지요. 신부님께서 안전하게 계실 만한 곳을 물색하셔서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아우구스티노 회장님! 회장님께서 가지고 계신 신부님의 물품들은 잘 보관하고 계신지요?”




“골롬바 자매님!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좀더 안전한 장소로 옮기려고 생각중입니다. 그나저나 밤이 너무 늦은 듯 합니다. 신부님께서도 쉬셔야지요. 자! 이제 일어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형제님들! 그럼 우리 이 만남을 기도로 끝냅시다.”




주문모 신부는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모두들 무릎을 꿇었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천주님! 당신께서는 저희가 당신의 뜻을 따르기를 원하시오니, 저희로 하여금 당신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고, 당신의 뜻을 따를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나약한 육신의 유혹에서 저희를 구해 주시고, 박해자들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저희에게 주소서. 이 모든 것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하나이다. 아멘”




기도가 끝나자 모두들 신부님께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이승훈 베드로는 일어나지 않았다.




“신부님! 오늘이 저와 신부님과의 마지막 만남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두려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굳은 결심은 하고 있지만 이번에도 제가 배교를 하면…”




이승훈 베드로는 말을 잇지 못하였다.




“베드로 형제님! 사실 내가 형제의 입장이라도 괴로울 것입니다. 형제님은 그 고통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고통을 알고 있으면서도 다시 그걸 받아들이려 한다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배교를 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순교를 했습니다. 순교라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배교라는 것 또한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실 저도 두렵습니다. 머나먼 이국 땅에 와서 죽음을 당한다는 생각을 하면 두렵습니다. 하지만 내 삶이 죽음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기에 나는 이  삶을 택한 것입니다. 베드로 형제님! 우리의 삶은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형제님께서 다시 배교를 하던, 순교를 하던 간에 천주님께서는 형제님을 사랑하실 것입니다. 천주님께서는 결과만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이 결코 아니십니다. 천주님께서는 우리가 나약한 의지 때문에 마지막에 배교했다 해서 우리를 저버리실 분은 결코 아니십니다. 우리에게 분명 또다시 기회를 주실 분이십니다. 그것이 이 세상에서든, 저 세상에서든….”




“신부님! 사랑은 항구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그것이 없었습니다. 매번 빈 말만 되풀이 한 제 자신이 너무도 부끄럽습니다. 저 자신이 그러지 못하면서 형제들 앞에서 가르쳤다는 것이 너무도 부끄럽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신부님께 고백성사를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저의 나약한 모든 허물을 벗어버리고 이 순간부터는 깨끗한 마음으로, 항구한 마음으로 천주님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이승훈 베드로는 무릎을 꿇고 성호경을 그었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죄를 고백했다. 주문모 신부는 두 눈을 감고 그의 고백을 들었다. 작은 호롱불이 그들을 비추었다. 그 빛은 승훈의 마음을 비추었고, 승훈을 볼 수 있도록 비추었다. 그리고 승훈의 갈 길을 비추어주었다.




호롱 안에 기름을 넣고 심지를 통하여 기름을 태우는 작은 호롱불. 호롱이 방 한가운데를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기름을 모두 태워서 꺼저버린다 해도 다시 채워질 수 있는 것이니, 그것이 아까워 빛을 발하지 못한다면 결국 한쪽 구석으로 치워지게 되는 것이다. 생명도 그분께서 채워주시는 것이니, 이승에서 모두 타올라 꺼져버렸다 해도 그분께서 다시 채워주실 것이니. 그것도 영원히 꺼지지 않는 기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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