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의 뜻을 찾아서(3)

 

“가롤로야! 아브라함 성조께서 하나뿐인 아들을 바치실 때 마음의 고통이 없었겠느냐? 아마도 성조께서 아들 이사악을 바치시려고 가신 길은 번뇌와 고통과 자신에 대한 자책의 피로 물들었을 것이다.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그 길이 바로 나의 길이 되는 것 같구나. 내가 가는 길은 필경 너를 죽음으로 이끌 것이니라. 너뿐만 아니라 네 어머니와 네 동생들도 말이다. 자식은 부모를 버릴 수 있을지언정 부모는 자식을 버릴 수 없는 것이니라. 자기 하고싶은 대로하고, 가족은 나 몰라라 한다면 그것이 부모로서 할 도리가 아닌 것이니라. ”



“아버님! 그것이 어찌 저희를 버리는 것이라 말씀하시옵니까? 천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아버님께서 하시고자 함이며,  천주님께로부터 받은 생명을 천주님께로 다시 돌려드리는 것이 아버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이 아니옵니까? 아브라함 성조에게 하나뿐인 아들을 바치라고 말씀하신 천주님의 마음이야 어떠하셨겠사옵니까? 우리의 머리칼까지도 세어 두시는 천주님이시옵니다. 저는 아버님의 아들이지만 천주님의 자녀이옵니다. 아버님께서 저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천주님께서도 그렇게 저희를 사랑하실 것이옵니다. 어머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저희 때문에 천주님의 일이 가로막혀서야 되겠사옵니까?




정약종 아우구스티노는 아들 가롤로와 부인 유소사 체칠리아의 말을 듣고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으로부터 신앙을 배워 익혔지만 자신보다 더 큰 신앙을 아들과 부인을 바라보면서 천주님의 오묘한 신비를 찬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우구스티노는 아들과 부인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다만 천주님을 찬미할 뿐이었다.




아우구스티노는 무거운 입을 열었다.




“그래! 우리를 통해서 천주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하자꾸나. 우리가 인간적인 나약함 때문에 천주님의 뜻을 거역할 수야 없지 않겠느냐? 우리 가족에게 어떤 어려움이 닥친다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을 천주님의 뜻 안에서 받아 들일 수 있도록 더욱 기도하자꾸나.”




그들은 그들안에서 천주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간절한 기도를 바쳤다. 아마도 어린 하상 바오로와 정정혜 엘리사벳도 꿈속에서 함께 기도했으리.




“…….”




잠자리에 든 약종 아우구스티노는 아내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아내에게는 미안했지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약종 아우구스티노는 작은 소리로 그녀에게 말하였다.




“부인! 미안하오!”




“서방님!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옵니다. 왜냐하면 그가 말하기도 전에 상대방은 벌써 알고 있었기 때문이요, 그가 무엇을 하든지 그것까지도 사랑하기 때문이라 하옵니다. 저는 서방님께서 무엇을 하시던 믿고 따를 뿐이옵니다. 천주님을 믿는 다는 것이 사랑한다는 것 아니겠사옵니까? 언젠가 서방님께서는 내가 얼마나 천주님을 사랑하고 있는지는 내가 얼마만큼 이웃을 사랑하고 있느냐로 알 수 있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사옵니까? 제가 남편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찌 천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사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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