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배(마르띠노)

 



  이중배(李中培) 마르띠노는 소론에 속하는 전주 이씨 집안의 자손으로 여주 고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곧기는 하지만 난폭하고 성을 잘 내는 성격과, 의술(醫術)과 비상한 힘과 용기, 분에 넘치는 야심으로 유명하였다. 그는 여행할 때에 아무리 가까운 거리라도 낮에는 쉬고 밤에만 걷는 기벽이 있었고, 아무 거리낌없이 난폭하고 불의한 행동을 자주 하였다 한다. 그는 절친한 친구 김건순(金健淳) 요사팟의 권고로 신앙에 인도되었는데, 김건순은 정약종(丁若鍾) 아우구스띠노와 협력하여 천주교 교리에 대한 책을 쓰다가 완성하지는 못한 바로 그 사람이다. 두 친구는 함께 천주교인이 되어 성세(聖洗)를 받았다. 그때부터 이중배 마르띠노는 새 사람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난폭한 성격을 제어하는 데 성공하고, 다만 그의 정직과 굳셈만을 보존하였다. 그의 용감한 신심은 열심히 넘쳐 자기의 신앙을 드러내 놓고 고백하여 그가 입교시킨 아버지와 아내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도 그의 신앙을 숨기지 않고 자기의 종교 본분을 지켜 나갔다.


  여주 읍내에 사는 그의 사촌 원경도(元景道) 요한도 그와 친하게 지냈던 김건순 요사팟에 의하여 입교하였으며, 그의 온 가족도 그의 본을 따라 천주교를 신봉하게 되었다.


  경신(庚申 1800) 3월에 이중배 마르띠노와 원경도 요한은 그들의 친구 정종호(鄭宗浩)의 집으로 부활축일을 지내러 갔다. 모두 천주교인인 정종호는 자기 집안에 그들을 기꺼이 맞아들였다. 개를 잡고 술을 많이 장만하여, 부활날에는 가족과 손님들이 이웃에 사는 몇몇 교우들과 어울려 길가에 모여, 모두 큰 소리로 ‘알렐루야’와 ‘復活三鍾經’을 외고 나서, 바가지를 두드려 가며 기도문을 노래하였다. 그런 다음에 가지고 간 고기와 술로 음식을 먹고, 식사가 끝난 다음에 다시 노래를 시작하였다. 이렇게 신앙 행사와 즐거운 잔치로 흐드러지게 하루가 지날 때 이를 본 외교인들로부터 고발을 들은 수령이 그들을 잡으러 포졸들을 보냈다. 그들은 모두 잡혀서 옥으로 끌려갔다. 이중배 마르띠노도 역시 무서운 유혹을 당하여야 하였다. 그의 늙은 아버지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옥으로 그를 찾아 와서, 그의 손을 잡고 말하였다. ꡒ너는 그래 백발이 성성한 네 아비를 버리고 죽고자 하느냐ꡓ이중배 마르띠노는 대답하였다. ꡒ아버님, 저는 효성의 본분을 결코 잊지는 않습니다. 아마 제 처신이 별로 용가해 보이지는 않을 것입니다만 아버님도 저와 마찬가지로 교우이시니, 우리는 사물을 더 높은 시야에서 보아야 합니다. 인정에 끌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배반하는 것이 옳겠습니까? 아버님 자신이 판단하십시오.ꡓ    


  하느님은 이 영웅적인 신앙을 병 고치는 은혜로 상 주신 듯 하다. 과연 이중배 마르띠노에게 비록 의술이 어느 정도 있었다고 하지만, 목격자들이 증언한 이 사실, 즉 그의 옥에 와서 진찰을 받은 병자들이 모두가 나아서 돌아갔다는 사실을 누구도 쉽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의 명성이 멀리 퍼져 병자들이 떼를 지어 몰려와서 옥문 앞은 장마당과 같을 지경이었다. 관장은 감히 그것을 막을 수 없었으니, 그의 관속 중에도 병이 나은 사람이 여럿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건순 요사팟은 이중배 마르띠노가 행한 치료에 대하여 십상팔구 병자가 나았다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그 후로는 열이면 열, 백이면 백이 모두 나아서 완전히 치료되지 않고 돌아간 병자는 하나도 없었다. 옥졸들이 그의 의학 서적을 보자고 청하니 이중배 마르띠노는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ꡒ나는 독특한 처방은 아무 것도 없고 다만 천주를 섬기기만 할 뿐이오. 당신들이 의술을 배우고 싶으면 우선 나처러 천주를 믿어야 하오.ꡓꡒ당신이 책을 모두 불살라 버렸다고 주장하니, 우리가 어떻게 배울 수 있겠소ꡓ이중배 마르띠노는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ꡒ나는 마음 속에 타지 않는 책들이 있으니, 당신들을 가르쳐서 천주교를 신봉하게 하는 데 충분하고도 남소.ꡓ 


  오랫동안 갇혀 있고 또 끊임없이 형벌을 받는데 지친 교우 여럿이 차차 냉담하여지고 용기를 잃어갔다. 항상 불길처럼 타오르는 열성을 가진 이중배 마르띠노는 그들을 권고하고 격려하기를 그치지 않아,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ꡒ우리는 동시에 잡혔으니 모두가 같은 날 천주를 위하여 죽을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이겠소.ꡓ그러나 그의 노력과 그의 열심한 친구들의 기구도 완전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여, 함께 갇혀 있던 동료들 중 몇몇 사람은 배교하는 말을 하여 석방이 되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하느님께서는 옥졸들 중의 한 사람이 은총에 감화되어, 당장에 입교하여 열심한 교우가 되기를 허락하셨다.


  1800년 10월에 그는 감사 앞에 출두하였는데, 감사는 맨 처음에는 배교의 말 한 마디만 하면 그들을 자유의 몸이 되게 하겠다고 말하며 부드러운 말로 그들을 이겨 보려고 하였다.


  6개월 이상이나 있던 교우들은 보름에 한번씩 관장 앞에 출두하여 신문을 받고, 점점 더 심한 고문을 당해야 하였다. 이 거듭되는 형벌로 사방이 헤어진 원경도 요한의 몸이 여러번 기적적으로 나았었다고 한다. 원경도 요한의 가족은 여러번 그의 마음을 움직여 보려고 늙은 여종 하나가 자주 그를 찾아와서, 그의 어머니와 아내의 정상을 몹시 슬프게 전하여 주었다. 하루는 그가 가족의 이야기를 듣고 다른 때보다도 더 마음이 흔들리는 것 같이 보였는데, 이때 이중배 마르띠노가 그를 도우러 와서 그 늙은이를 어떻게나 무서운 눈으로 흘겨 보았는지 그 여자는겁에 질려 달아나 감히 다시 오지 못하였다.    


  이렇듯 1년 가까이를 옥에 갇혀 있게 되면서 교우들은 하나 둘 마음이 약해져 신앙을 지킬 용기를 잃어 가게 되었다. 게다가 신유박해가 일어나면서 각처에서 교우들이 체포되거나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이 옥에까지 알려졌다.


  그러므로 마르띠노가 그처럼 열정적으로 격려했지만, 배교하는 신자들이 늘어나 마르띠노와 요한, 그리고 새로 체포되어 온 최창주(마르첼리노) 등 몇몇만이 남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순교 열정은 굳어져만 갔고, 이를 알게 된 경기 감사는 마침내 조정으로부터 사형 판결에 대한 재가를 얻어내고 말았다.


  그리고 며칠 후 마르띠노는 동료들과 함께 여주 관문에서 남쪽으로 1리 떨어진 곳에서 군중들이 모인 가운데 죽임을 당하게 되었으니, 당시 그의 나이는 50세 가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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