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사울

 

  내포지방의 사도라 불리는 이존창의 고향이다. 순교자 이존창(루도비코은) 농민 출신 학자로서 초기 교회 창설자의 한 사람인 권일신에게서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그는 열렬한 신앙심과 학구심을 가져 초기 교회의 가성직단(假聖職團)의 일원이 되었으며, 고향인 충청도 지방의 전교임무를 맡았다. 그는 가족은 물론 내포지방 일대에 복음을 널리 전함으로써 후일 내포의 사도로 불리기까지 하였다. 가성직제도가 교리에 어긋남을 깨닫고는, 신부영입을 위해 윤유일(尹有一), 지황(池璜)등에게 여비를 주어 중국 북경으로 보내 마침내 주문모 신부를 맞아들일 수 있었다. 그는 17891년 신해박해(정조15년) 때 잡혀 심한 고문과 꾀임에 빠져 한때 배교했으나, 그 뒤 양심의 가책으로 내포지방을 떠나 홍산으로 이사하여, 전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전보다 더욱 열심히 신앙을 지키며 전교에 힘썼다. 그 결과 내포와 그 인근지방은 다른 어느 곳 보다도 천주교가 성했고, 따라서 박해때마다 수많은 순교자를 배출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성인 김대건 신부의 집안도 그의 전교로 입교하였는데, 김대건 신부의 할머니는 그의 조카딸이 되며, 최양업 신부도 그의 생질의 손자이다. 더우기 오늘날 조선 교우의 거의가 그가 개종시킨 교우들의 자손이라고 할 수 있으리 만큼 그의 전교상의 공헌은 지대하다.


  1795년말에 이르러 그는 다시금 지방관리들에게 체포되었고, 고향인 천안으로  옮겨져 6년 동안 연금생활을 하다가, 1801년 3월 18일에  다시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 그리하여 4월 8일 정약종과 함께 사형선고를 받고, 충청도의 감사가 있는 공주로 호송되어 50세의 일기로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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