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歌辭
우리 문학 가운데서 가사만큼 장르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던 양식은 없었던 것 같다.1) 이는 논의자들의 견해차 뿐만이 아니고 가사 자체가 지니고 있는 복잡미묘한 성격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가사는 4・4조의 연속체 문학이라고 개념 규정하지마는 그 행수에 제한을 두지 않는 점, 그 내용이 주정적인 작품도 있지만 그밖에 객관적, 서사적, 교술적 성격을 띤 작품이 많은 점, 漢文流의 辭, 賦, 序, 記에 가까운 면이 있는 점 등 시가로 규정하기에는 애매모호한 요소가 많다고 하겠다.2) 지금까지 논의된 제설들을 종합해 보면 시가 장르설, 수필 장르설,교술 장르설,복합 장르설 그리고 가사장르 독립설 등으로 요약해 볼 수 있겠는데 그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고 천주 가사가 어떤 장르에 속하는지 생각해 보겠다.
우선 가사가 시가 장르에 속한다는 의견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가사는 ①두개의 댓귀, 즉 4음보 1행의 연속체로 된 운문이라는 점 ②1음보의 음수율이 3・4조 혹은 4・4조가 주류를 이룬다는 점 ③마지막 시행이 시조의 종장처럼 되어 있는 점 ④묘사나 표현에서 시가적 감흥을 느낄 수 있다는 점 ⑤서정성이 풍부한 작품도 있다는 점 ⑥시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歌唱으로 불리워졌다는 점 ⑦그 제목에 있어 ‘歌’나 ‘曲’을 많이 사용하였다는 점 등을 특징으로 지니기에 시가문학에 속한다고 주장한다.3)
두번째로 수필 장르에 속한다는 의견은 ①가사형태의 무제한한 확장 ②산문 발생의 유치 ③그 행수의 무제한적 존재 ④객관적 서사적인 서술방법 ⑤적당한 분량 ⑥운율적 형식은 도외시해도 좋음 등의 논거를 제시한다.4)
셋째 교술장르에 속한다는 의견은 문학 장르를 기존의 3분법에서 4분법으로 나누자는 의견으로 “4분법은 문학 작품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포괄하는 점에서 3분법보다 나은 것이라고 할 수”5)있는데 이 교술 장르는 경기체가, 가사, 수필,가전체, 기록, 전기 따위가 두루 포함될 수 있는 작품 영역이라 하겠다.
넷째로 가사가 복합장르에 속한다는 의견이 있는데 이는 가사는 어느 한 장르로 귀속시킬 수가 없고 여러 가지 요소가 융합된 복합장르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①가사는 시가와 문필의 兩性格을 동시에 具備한 특수한 형태의 문학임 ②주관적인 감정을 노래한 것은 시가로서의 가사이고 객관적 서사적인 사물을 서술한 것은 수필로서의 가사임 ③서정적 가사와 문필적 가사 존재 ④문학으로서의 가사와 비문학으로서의 가사가 존재 ⑤서정적 서정, 서사적 서정, 교술적 서정 등으로 구분이 가능함 등의 논거를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가사장르 독립설은 가사는 어디까지나 가사이지 그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이론으로서 가사가 서정과 서사, 교술이 융합된 복합성을 지닌 문학 장르라는 특성을 고려하여, 類槪念上 가사라는 특정한 장르를 따로 설정해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한다.6)
지금까지 아주 개략적으로 가사 장르에 대한 여러가지 견해들을 살펴 보았다. 앞서 이야기하였듯이 가사의 장르에 대한 논의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임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본고에서 다루고 있는 天主歌辭만을 따로 떼어 생각해볼 때 필자는 天主歌辭가 시가문학장르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원용문의 다른 장르설에 대한 상세한 비판을 통하여 가사가 시가문학 장르에 속한다고 결론 내렸음7) 뿐만 아니라 뒤에 다시 다루게 되겠지만 天主歌辭가 지어진 조선 후기의 가사들이 전반적으로 歌唱으로 불리워졌음에 주목하는 까닭이다.
가사의 명칭에 대한 논의는 고전문학의 다른 분야보다 논란의 폭이 적다.8) 더군다나 본고에서 다루고 있는 天主歌辭만을 제한하여 살펴볼 때는 그 명칭에 있어 크게 이론이 없을 것으로 사료되기에 개략적인 논의들만을 살펴보기로 한다.
가사는 ①歌詞 ②歌辭 ③長歌 등으로 불렸는데 각각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歌詞는 조선조 이전에는 주로 노랫말을 의미하고, 다시 조선조 특히 정송강의 시기에 이르러서는 우리 고유의 문학형태인 가사작품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9)
다음으로 歌辭의 용례를 살펴보기로 한다.10) 우리 나라 문헌에서의 사용례를 보면 ‘辭’와 ‘詞’는 거의 구별없이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즉 향가의 가사를‘辭’또는 詞’라 하고, 고려가요 「동동」을 비롯하여 「北殿」과 용비어천가 등을 모두 歌詞라고 했다. 송강의 가사를 「宋江歌詞」 혹은 「宋江歌辭」라 하여 歌辭와 歌詞를 혼용해 왔으며, 고산유고에는 「歌辭」라는 항목 속에 「山中新曲」,「山中續新曲」, 「漁父四時詞」 등 시조를 포함시키기도 했다.11)
끝으로 「長歌」의 용례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사용된 용어들은 「長歌」, 「長短歌」, 「長短篇」, 「長短歌曲」 등이니, 이러한 명칭들은 작품의 외형상의 형태를 그 길이로 구분한 명칭들이기에 결코 장르상의 가사 명칭으로 쓰인 것은 아니라고 본다.12)
이러한 가사의 명칭에 대한 논의에 있어 “고려시기의 가사는 음악성이 강하다는 점에서 「歌詞」라고 표기했고 조선의 노래는 이들 고려가사와 구분하기 위해서 異字同義인 「辭」자로 써서 「歌辭」라고 표기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왜냐하면 고려가요에 대하여는 「歌詞」라는 표기만 있고 「歌辭」라는 표기가 없기 때문이다.(중략) 조선 후기에 와서야 「歌詞」라는 용어는 사라지고 「歌辭」라는 용어만이 장가인 「가사」와 단가인 「시조」를 지칭하는 문학용어로 사용되었던 것 같다.”13) 그러나 노랫말을 의미하는 가사만은 여전히 ‘歌詞’로 표기14)되는 등의 예외 사항들이 있기에 본고에서는 “가사에는 주로 ‘歌詞’와 ‘歌辭’의 두가지 표기가 있다. 이 둘의 개념을 구별하여 쓰자는 의견도 있으나 아직은 구별하지 않고 쓰는 것이 일반적인 통례로 되어 있다”15)는 설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단지 천주가사가 「歌辭」라고 계속적으로 쓰여져 왔다는 관례에 따라 천주가사의 경우에는 「歌辭」라고 통일하기를 제안하는 바이다.
가사의 발생에 대하여 살펴보면 대략 두가지 기원설이 있는데 “조선조 초기 정극인(丁克仁, 1401-1481)의 ꡔ상춘곡(賞春曲)ꡕ으로부터 시작하였다는 설이 있고, 한편으로는 고려말의 명승(名僧) 나옹화상(懶翁和尙,1320-1376)의 ꡔ서왕가(西往歌)ꡕ에서 비롯하였다는 설이 있다.”16) 일반적으로 학계에서는 정극인의 ꡔ賞春曲ꡕ을 그 시작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 두 작품은 창작 연대보다 훨씬 후대에 문자로 정착되어었기 때문에, 작품을 통하여 그 전후를 가리기는 어렵다. 그리고 고려 말기에도 가사 성립이 가능한 토대가 형성되어 있었고 조선왕조에 들어와서는 많은 佛僧 들이 가사를 창작하였음을 고려해 볼 때 나름대로 나옹화상의 ꡔ서왕가ꡕ에서 시작되었다는 설도 충분한 개연성을 가진다고 하겠다.17) 이 밖에도 李秉岐는 高麗 中葉의 李奎報의 ꡔ東明王篇ꡕ이나 李承休의 ꡔ帝王韻記ꡕ, 혹은 吳世文의 ꡔ歷代歌ꡕ등까지 소급하여 상고하고자 한다.18)
가사의 기원에 대한 논의에 있어 주요한 견해는 별곡이 붕괴되면서 이루어졌다는 설과 ꡔ용비어천가ꡕꡔ월인천강지곡ꡕ 등의 악장에서 이루어졌다는 설,그리고 교술 민요가 기록 문학으로 전환되면서 이루어진 장르라는 설이 있다.19)
문학사에서 시대 구분을 시도하는 것은 그 잡다하고 무질서한 문학적 사상들을 종적으로 체계를 세워 생성·발전·변천 과정 들을 규명해 보려는 데 있다.20) 하지만 이러한 문학사의 구분은 연구자가 어떠한 사관을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 뿐만 아니라 그 연구자의 인생관,세계관,가치관 등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게 되고 실상 그 구분 역시 다양하다.
따라서 여러가지 구분이 있겠으나 본고에서는 작가와 내용에 중심을 두면서 시대구분을 한 정병욱의 가사문학사를 받아들이면서 원용문의 시조문학사와의 관계를 고려한 구분법을 병행하여 4기로 나름대로 나누어 보겠다. 그리고 특히 천주가사와 관련이 있는 제 2기와 3기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겠다.
①조선왕조 전기의 양반 가사가 중심이 되던 시기(정음 창제-임란 이전)
②임란 이후 사대부가사의 동요 시기(임란 이후-영조 대)
③조선왕조 후기의 평민 가사가 중심이 되던 시기(영조 이후-갑오경장)
④개화기 가사 시대(갑오경장-개화기)
여기에서 제 1기는 시조문학사와 비교하여 볼 때 주로 正音創製 이후 임진왜란 이전까지 약 150년 간을 의미하며, 주로 양반가사가 발전했던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는 安貧樂道하는 군자의 미덕을 자연 속에서 읊어 내기도 하였고 군신 사이의 충의 이념을 남녀 사이의 애정에 비유하여 읊어 내기도 하였다. 이 밖에도 기행가사,유배가사,교훈가사 등이 혼재하는 시기였다.21)
제 2기는 임진왜란 이후 영조 대까지 대략 130여년 간의 시기이다. 임진왜란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및 각 방면에 획기적인 변혁을 초래하였으며 국문학에도 많은 변화22)를 일으켰다. 이러한 양대 전란을 겪은 후 필수적으로 수반된 것이 자기 반성 내지 자기 비판의 기운이었던 것이니, 모든 부분에서 새로운 방향을 찾고자 하는 實事求是의 학풍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은 가사문학에도 영향을 주게 되어 전쟁가사와 비판가사가 다수 등장하였다.23) 이는 “전란이 거듭 닥쳐와 태평성대의 환상이 흔들리는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사대부는 문학의 기존 갈래 중에서 가사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었다.(중략) 실제로 겪은 대로 늘어놓아야 어울리고, 산문으로 기술하고 말자니 미진했으며, 탄식을 곁들인 노래로 자세하게 나타내야만 실감을 돋굴 수 있었는데, 가사가 그런 요건을 두루 다 갖추었”24)기 때문이다.
제 3기는 영조 이후 갑오경장까지 대략 170여년 간이 여기에 해당되는데 이 기간에 가장 중요한 사건은 실학사상이 융성기를 맞이했다는 것이다. 이 실학은 붕괴되어 가던 봉건적 질서의 재편성을 휘한 구조개혁의 기도였고, 당시의 역사적 현실을 대담하게 비판한 문학관이자 사상체계였다. 새로 등장한 실학파들은 현실적인 문제들,즉 정치의 길, 지방제도, 재정, 경제, 과거제도, 학제, 병제, 관제 등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그들의 장래에 대한 이상과 구상을 논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은 도학의 시대가 이미 가고 실학과 서학의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증명케 해준다. 영조 이후 일세를 풍미한 이러한 실학은 공리공론을 배격하고 실사를 구하며 국민의 복리후생을 제일의 과제로 삼았던 것이다.
이 시기의 가사문학을 개략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조 초기에는 가사의 작가가 학자와 관료 계급에 국한되었다고 하겠으나 후기로 내려오면서 서민계급과 부녀자들까지도 가사를 짓는 작업에 동참하게 되었다. 아울러 이 시기에는 기행가사와 유배가사도 발달하게 되었으며, 장편가사들이 많이 쓰여졌다. 그 내용도 서정보다는 서사를, 창보다는 낭송에 그쳐서 수필적인 성격이 농후하다고 하겠다. 한편으로 종교가사들이 많이 창작되었는데 천주가사,불교가사,도교가사,동학가사 등이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남녀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애정가사도 많이 창작되었다. 이렇듯이 양반가사들 외에 수천 편을 헤아리는 내방가사와 평민가사가 이시기에 지어졌으니 이 제 3기는 그 작가층이 양반,평민,부녀자에 이르기까지 확대되어, 그 당시의 가사는 명실공히 국민문학으로서의 위치를 굳혀가고 있었던 것이다.25)
제 4기는 잠정적으로 설정하여 갑오경장 이후에서 민족 해방까지의 약 50년간인데 이 시기의 주를 이루는 가사는 이른바 개화기 가사로서 개화 독립의 의지를 강하게 나타냈던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주로 신문들과 기관지를 통하여 많이 발표되었다.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