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건 신부의 성장지
골배마실 은이는 김 신부의 첫 공소
김 대건 안드레아의 조부 김택현은 1827년 정해난을 피해 고향인 충남 당진군 솔뫼에서 가족들을 데리고 인적이 드문 오지 골배마실로 옮겨왔다. 이때 7세였던 김 안드레아는 마카오로 떠나기 전인 15세까지 이곳에서 자랐는데 김 안드레아 사제가 되어 귀국하고서도 옆 마을 은이로 와서 공소를 치뤘다. 은이는 1821년 모방 나 신부가 은이 공소에서 신자들을 돌보았던 곳이고, 그후 김 신부가 은이를 중심으로 근방 2,30리 떨어진 곳까지 험한 산길을 밤으로만 찾아다니며 전교하다가 다시 페레올 고주교의 명에 의해 최양업 신부와, 매스뜨르 이 신부의 입국을 돕기 위해 해주 앞바다로 1846. 5.14 떠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