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복음
1. 말씀읽기: 1코린토1,18-31
18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19 사실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지혜롭다는 자들의 지혜를 부수어 버리고 슬기롭다는 자들의 슬기를 치워 버리리라.” 20 지혜로운 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율법 학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의 논객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느님께서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은 것으로 만들어 버리지 않으셨습니까?
21 사실 세상은 하느님의 지혜를 보면서도 자기의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복음 선포의 어리석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22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23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24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25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26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속된 기준으로 보아 지혜로운 이가 많지 않았고 유력한 이도 많지 않았으며 가문이 좋은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27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28 하느님께서는 있는 것을 무력하게 만드시려고, 이 세상의 비천한 것과 천대받는 것 곧 없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29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3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과 거룩함과 속량이 되셨습니다. 31 그래서 성경에도 “자랑하려는 자는 주님 안에서 자랑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 말씀연구
지혜롭고 슬기로운 이들은 어떤 사람일까요?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어떤 분이실까요? 세상의 지혜를 찾는 이들에게 예수님은 주님으로 고백되지 못하고, 세상의 슬기를 간직한 이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는 이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안에서 지혜와 슬기를 얻은 이들은 세상 사람들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그들이 자랑하는 것에 관심 갖지 않고, 그들이 소유하고자 하는 것에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자녀들은 주님 안에서 구원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엇이 구원에 도움이 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을 자랑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18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19 사실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지혜롭다는 자들의 지혜를 부수어 버리고 슬기롭다는 자들의 슬기를 치워 버리리라.”1)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이라는 존재를 부담스러워했고, 자신들의 권위를 위협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병자를 치유해 주시고, 죄인들을 용서해 주시는 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백성들에게 참된 목자가 되어 주신 분. 마귀들을 쫓아내고, 죽은 이들을 살려 주시는 분. 그리고 자신들이 어지럽게 해 놓고, 시장 통으로 만들어 놓은 성전을 정화시키신 분. 그래서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없애버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거짓 증거들을 만들어 예수님을 모함하고, 하느님을 모독한다고 말하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 계신 예수님을 향하여 조롱까지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였으니 예수님! 당신도 스스로 구원해 보시오.”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유혹과 모욕을 이겨내시고 십자가 위에서 희생제사를 드리셨고, 하느님과 인간을 화해시키기 위한 희생제물이 되셨으며, 하늘의 문을 활짝 열어 놓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믿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백성의 지도자들,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은 율법을 완전하게 지킴으로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았습니다. 근본 정신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은 삶을 살았으면서도 스스로는 똑똑하다고, 자신들의 행위가 지혜롭다고 생각하며, 자신들의 구원을 장담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이들을 박해하였습니다. 그러나 인간 스스로는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나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만이 나를 구원하실 수 있기에, 나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지혜롭다는 자들이 보기에는 어리석어 보이는 행동입니다. 그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하느님의 능력이며 지혜이심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들의 지혜와 슬기는 구원에 전혀 쓸모가 없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20 지혜로운 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율법 학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의 논객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느님께서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은 것으로 만들어 버리지 않으셨습니까?
이 지혜는 인간 지성의 활동을 가리키는데, 바오로 사도는 이러한 지혜 자체를 비판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의 지성도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인간의 지혜는 제한적이고 불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유한한 범위 내에서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유한한 지혜가 자신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지혜를 이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저 하느님께서 알려 주시는 것만 알 뿐이지, 스스로 하느님을 능가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만한 지혜는 스스로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는데, 바오로 사도는 이러한 어리석은 지혜를 단죄하는 것입니다. 태양 앞에 반딧불이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21 사실 세상은 하느님의 지혜를 보면서도 자기의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복음 선포의 어리석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22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이들, 그래서 하느님 나라의 열쇠를 관리하며, 백성의 지도자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예수님을 알아 뵙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표징과 기적들을 보여주셨지만, 유다인들은 자신들이 믿을 수 있는 표징을 보여 달라며 애써 외면하였고,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기쁜소식을 전하셨지만,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이 죄인이라고 단정한 세리와 창녀들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였고, 율법도 모르는 저주받은 족속이라고 단죄한 가난한 이들이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였습니다. 마음을 열면 보이는 것을 지혜롭다는 자들은 못 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23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외아드님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되시어 몸소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고,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몸소 십자가 위에서 희생제물이 되셨습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해 목숨을 바친 어린양이 되셨습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알아 뵙지 못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이들을 박해하였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구원을 주시는 분임을 알았고, 예수 그리스를 믿어서 구원을 얻었습니다.
하느님의 지혜는 인간을 사랑하시기에 인간의 눈높이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낮추어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런데 유다인들에게는 자신들의 손으로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죄를 고백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집짓는 이들이 내 버린 돌이 하느님 나라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셨습니다. 그 머릿돌이 걸림돌이 되는 이들은 결국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방인들은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실 수가 있는가? 그런 메시아라면 우리가 믿어야 하는가? 믿는 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결국 유다인이나 그리스인들이나 모두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시며, 그리스도이신 표징과 구체적인 증거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자신들의 지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조건을 내세우는 것은 참된 신앙에로 나아갈 수 없게 됩니다. 그 예를 유다인들이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수많은 표징을 보여주셨지만, 그들은 믿을 마음이 없었기에 계속해서 하늘에서 오는 표징들을 보여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24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25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구원에 대한 선포는 유다인들이나 그리스인들에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부족함과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자신들의 약함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고백하지 못하면 하느님의 지혜는 어리석어 보이고, 하느님의 강함은 더없이 약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지고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바라보는 이들은 하느님의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졌음을 알게 되고, 감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로 나아가게 됩니다.
26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속된 기준으로 보아 지혜로운 이가 많지 않았고 유력한 이도 많지 않았으며 가문이 좋은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27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찾고, 귀에 들리는 것만을 들으며, 만질 수 있는 것만을 느낄 수 있었던 이들이 이제 복음을 받아들여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알게 되었고, 그 신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자녀로서 고귀한 품위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르심을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나는 세상적인 지혜가 출중해서 부르심을 받은 것도 아니고, 명예나 지위가 있어서 부르심을 받은 것도 아니고, 좋은 가문의 사람이기에 부르심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된 것은 오로지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서 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가치를 보시고 나를 부르신 것이 아니라 부족하지만 작은 믿음을 고백했기에 나를 부르시어 하느님의 자녀라는 고귀한 품위에 올려 주셨고, 구원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28 하느님께서는 있는 것을 무력하게 만드시려고, 이 세상의 비천한 것과 천대받는 것 곧 없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29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내가 나를 알면 나는 보잘 것 없음을 보게 됩니다. 나에게서 하느님을 빼고 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됩니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주님께서 고귀하게 만들어 주셨으니 나는 나를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교만해서도 안 됩니다. 그래서 자랑하려면 그리스도 예수님을 자랑해야 하고, 자랑하려면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한없는 사랑과 자비를 자랑해야 합니다.
3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과 거룩함과 속량이 되셨습니다. 31 그래서 성경에도 “자랑하려는 자는 주님 안에서 자랑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고,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예수님 안에서 살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시작된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사랑을 알아차리고, 믿음을 고백한다면 비록 세상에서는 내세울 것이 없는 인간이라 할지라도 하느님의 자녀라는 고귀한 신분으로 변하게 됨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인간의 지혜로는 결코 알아차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이것이 자신에게 큰 은총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선택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지혜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배웠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의로움과 거룩함과 속량이 되셨습니다.
① 의로움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계약을 언제나 성실하게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하느님의 참된 자녀로 살아가고자 할 때,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총으로 의롭게 됩니다. 그리하여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모습으로 서게 되고, 하느님께로부터 구원의 영광을 받게 됩니다.
② 거룩함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선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는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게 되고, 거룩하게 된 이들은 속된 것들을 멀리하게 됩니다. 그리고 거룩하신 하느님의 자녀로서 합당한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속된 것들로부터 구별되어야하고, 그렇게 거룩한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거룩하시니 우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몸소 수난과 죽음을 겪으셨고, 부활하셨습니다.
③ 속량2)은 죄의 종살이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몸값을 치르시고 해방시키시어 자유를 주셨고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빚을 져서 남의 집 종이 되었을 때, 그 빛을 대신 갚아 주고 나를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을 속량이라고 하고, 그렇게 속량해 주신 분을 속량자라고 하며, 나를 속량하기 위해 지불한 돈을 속량전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죄의 종살이에서 나를 풀어주시기에 위해 당신 몸을 속량전으로 내어 놓고, 나를 속량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나의 속량자가 되십니다. 나의 구원자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오로지 주님만을 자랑할 수밖에 없고, 주님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어리석음의 상징이 아니라 나의 구원과 지혜의 상징인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지혜로운 사람과 슬기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나는 어떤 지혜와 슬기를 찾고 있습니까?
② 나를 구원자이신 예수님께 나는 어떤 삶을 봉헌하고 있습니까?
4. 실천사항
① 하느님 앞에서 지혜롭고 슬기로운 삶을 살아가기
② 십자가를 바라보며,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하기
③ 의로운 삶과 거룩한 삶의 구체적인 방안을 적어보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십자가의 복음
1. 말씀읽기: 1코린토1,18-31
18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19 사실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지혜롭다는 자들의 지혜를 부수어 버리고 슬기롭다는 자들의 슬기를 치워 버리리라.” 20 지혜로운 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율법 학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의 논객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느님께서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은 것으로 만들어 버리지 않으셨습니까?
21 사실 세상은 하느님의 지혜를 보면서도 자기의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복음 선포의 어리석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22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23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24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25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26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속된 기준으로 보아 지혜로운 이가 많지 않았고 유력한 이도 많지 않았으며 가문이 좋은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27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28 하느님께서는 있는 것을 무력하게 만드시려고, 이 세상의 비천한 것과 천대받는 것 곧 없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29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3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과 거룩함과 속량이 되셨습니다. 31 그래서 성경에도 “자랑하려는 자는 주님 안에서 자랑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 말씀연구
지혜롭고 슬기로운 이들은 어떤 사람일까요?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어떤 분이실까요? 세상의 지혜를 찾는 이들에게 예수님은 주님으로 고백되지 못하고, 세상의 슬기를 간직한 이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는 이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안에서 지혜와 슬기를 얻은 이들은 세상 사람들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그들이 자랑하는 것에 관심 갖지 않고, 그들이 소유하고자 하는 것에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자녀들은 주님 안에서 구원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엇이 구원에 도움이 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을 자랑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18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19 사실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지혜롭다는 자들의 지혜를 부수어 버리고 슬기롭다는 자들의 슬기를 치워 버리리라.”1)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이라는 존재를 부담스러워했고, 자신들의 권위를 위협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병자를 치유해 주시고, 죄인들을 용서해 주시는 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백성들에게 참된 목자가 되어 주신 분. 마귀들을 쫓아내고, 죽은 이들을 살려 주시는 분. 그리고 자신들이 어지럽게 해 놓고, 시장 통으로 만들어 놓은 성전을 정화시키신 분. 그래서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없애버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거짓 증거들을 만들어 예수님을 모함하고, 하느님을 모독한다고 말하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 계신 예수님을 향하여 조롱까지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였으니 예수님! 당신도 스스로 구원해 보시오.”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유혹과 모욕을 이겨내시고 십자가 위에서 희생제사를 드리셨고, 하느님과 인간을 화해시키기 위한 희생제물이 되셨으며, 하늘의 문을 활짝 열어 놓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믿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백성의 지도자들,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은 율법을 완전하게 지킴으로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았습니다. 근본 정신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은 삶을 살았으면서도 스스로는 똑똑하다고, 자신들의 행위가 지혜롭다고 생각하며, 자신들의 구원을 장담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이들을 박해하였습니다. 그러나 인간 스스로는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나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만이 나를 구원하실 수 있기에, 나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지혜롭다는 자들이 보기에는 어리석어 보이는 행동입니다. 그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하느님의 능력이며 지혜이심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들의 지혜와 슬기는 구원에 전혀 쓸모가 없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20 지혜로운 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율법 학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의 논객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느님께서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은 것으로 만들어 버리지 않으셨습니까?
이 지혜는 인간 지성의 활동을 가리키는데, 바오로 사도는 이러한 지혜 자체를 비판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의 지성도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인간의 지혜는 제한적이고 불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유한한 범위 내에서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유한한 지혜가 자신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지혜를 이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저 하느님께서 알려 주시는 것만 알 뿐이지, 스스로 하느님을 능가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만한 지혜는 스스로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는데, 바오로 사도는 이러한 어리석은 지혜를 단죄하는 것입니다. 태양 앞에 반딧불이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21 사실 세상은 하느님의 지혜를 보면서도 자기의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복음 선포의 어리석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22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이들, 그래서 하느님 나라의 열쇠를 관리하며, 백성의 지도자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예수님을 알아 뵙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표징과 기적들을 보여주셨지만, 유다인들은 자신들이 믿을 수 있는 표징을 보여 달라며 애써 외면하였고,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기쁜소식을 전하셨지만,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이 죄인이라고 단정한 세리와 창녀들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였고, 율법도 모르는 저주받은 족속이라고 단죄한 가난한 이들이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였습니다. 마음을 열면 보이는 것을 지혜롭다는 자들은 못 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23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외아드님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되시어 몸소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고,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몸소 십자가 위에서 희생제물이 되셨습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해 목숨을 바친 어린양이 되셨습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알아 뵙지 못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이들을 박해하였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구원을 주시는 분임을 알았고, 예수 그리스를 믿어서 구원을 얻었습니다.
하느님의 지혜는 인간을 사랑하시기에 인간의 눈높이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낮추어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런데 유다인들에게는 자신들의 손으로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죄를 고백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집짓는 이들이 내 버린 돌이 하느님 나라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셨습니다. 그 머릿돌이 걸림돌이 되는 이들은 결국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방인들은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실 수가 있는가? 그런 메시아라면 우리가 믿어야 하는가? 믿는 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결국 유다인이나 그리스인들이나 모두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시며, 그리스도이신 표징과 구체적인 증거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자신들의 지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조건을 내세우는 것은 참된 신앙에로 나아갈 수 없게 됩니다. 그 예를 유다인들이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수많은 표징을 보여주셨지만, 그들은 믿을 마음이 없었기에 계속해서 하늘에서 오는 표징들을 보여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24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25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구원에 대한 선포는 유다인들이나 그리스인들에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부족함과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자신들의 약함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고백하지 못하면 하느님의 지혜는 어리석어 보이고, 하느님의 강함은 더없이 약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지고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바라보는 이들은 하느님의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졌음을 알게 되고, 감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로 나아가게 됩니다.
26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속된 기준으로 보아 지혜로운 이가 많지 않았고 유력한 이도 많지 않았으며 가문이 좋은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27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찾고, 귀에 들리는 것만을 들으며, 만질 수 있는 것만을 느낄 수 있었던 이들이 이제 복음을 받아들여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알게 되었고, 그 신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자녀로서 고귀한 품위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르심을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나는 세상적인 지혜가 출중해서 부르심을 받은 것도 아니고, 명예나 지위가 있어서 부르심을 받은 것도 아니고, 좋은 가문의 사람이기에 부르심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된 것은 오로지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서 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가치를 보시고 나를 부르신 것이 아니라 부족하지만 작은 믿음을 고백했기에 나를 부르시어 하느님의 자녀라는 고귀한 품위에 올려 주셨고, 구원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28 하느님께서는 있는 것을 무력하게 만드시려고, 이 세상의 비천한 것과 천대받는 것 곧 없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29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내가 나를 알면 나는 보잘 것 없음을 보게 됩니다. 나에게서 하느님을 빼고 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됩니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주님께서 고귀하게 만들어 주셨으니 나는 나를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교만해서도 안 됩니다. 그래서 자랑하려면 그리스도 예수님을 자랑해야 하고, 자랑하려면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한없는 사랑과 자비를 자랑해야 합니다.
3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과 거룩함과 속량이 되셨습니다. 31 그래서 성경에도 “자랑하려는 자는 주님 안에서 자랑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고,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예수님 안에서 살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시작된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사랑을 알아차리고, 믿음을 고백한다면 비록 세상에서는 내세울 것이 없는 인간이라 할지라도 하느님의 자녀라는 고귀한 신분으로 변하게 됨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인간의 지혜로는 결코 알아차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이것이 자신에게 큰 은총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선택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지혜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배웠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의로움과 거룩함과 속량이 되셨습니다.
① 의로움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계약을 언제나 성실하게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하느님의 참된 자녀로 살아가고자 할 때,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총으로 의롭게 됩니다. 그리하여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모습으로 서게 되고, 하느님께로부터 구원의 영광을 받게 됩니다.
② 거룩함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선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는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게 되고, 거룩하게 된 이들은 속된 것들을 멀리하게 됩니다. 그리고 거룩하신 하느님의 자녀로서 합당한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속된 것들로부터 구별되어야하고, 그렇게 거룩한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거룩하시니 우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몸소 수난과 죽음을 겪으셨고, 부활하셨습니다.
③ 속량2)은 죄의 종살이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몸값을 치르시고 해방시키시어 자유를 주셨고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빚을 져서 남의 집 종이 되었을 때, 그 빛을 대신 갚아 주고 나를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을 속량이라고 하고, 그렇게 속량해 주신 분을 속량자라고 하며, 나를 속량하기 위해 지불한 돈을 속량전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죄의 종살이에서 나를 풀어주시기에 위해 당신 몸을 속량전으로 내어 놓고, 나를 속량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나의 속량자가 되십니다. 나의 구원자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오로지 주님만을 자랑할 수밖에 없고, 주님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어리석음의 상징이 아니라 나의 구원과 지혜의 상징인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지혜로운 사람과 슬기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나는 어떤 지혜와 슬기를 찾고 있습니까?
② 나를 구원자이신 예수님께 나는 어떤 삶을 봉헌하고 있습니까?
4. 실천사항
① 하느님 앞에서 지혜롭고 슬기로운 삶을 살아가기
② 십자가를 바라보며,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하기
③ 의로운 삶과 거룩한 삶의 구체적인 방안을 적어보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