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가 바라는 사제상

 










福音三德(정결)에 관한 그룹 토의


현대 사회 특히 性의 노출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독신에 대한 정립이 필요하다. 또한 신학생은 만나는 대상이 한정되어 있다. 따라서 신학생들에게 있어 性에 대한 생각은 때로 강박관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래서 이성을 대하는 방법에 있어서 無知한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우리들에게는 정결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독신생활에서 오는 고독을 이겨낼 수 있는 처방이 필요하다.




독신은 전통으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통보다 한 단계 더 높은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나라를 위한 즉, 더 큰 것을 위한 선택이며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이다. 그러므로 평생을 걸쳐 노력해야 할 과제이며 자만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지켜 나가야 할 것이다. 독신 생활에 대한 과대한 집착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충동 억제를 위한 취미활동의 무절제, 혹은 대리만족을 위하여 허름하게 용인하고 넘어갈 수 있는 富와 풍족한 사제 생활은 다시 한 번 무엇을 포기한 것인지, 무엇을 버렸는지를 뒤돌아 보게 한다. 따라서 정결과 청빈은 함께 추구되며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정결 문제에 대처함에 있어 자신의 욕정을 포함해서 對 女性관계에서 자신의 내부의 움직임을 잘 살피고 건전한 취미와 운동, 신학생들과의 만남 특히 기도를 통해 승화시켜야 하며 아울러 이 문제는 지식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며 자신의 뚜렷한 기준을 가지고 많은 조언들을 참고해서 자신에게 맞는 방법들을 개발하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독신제도의 아름다움을 잘 알고 있다. 이는 또 다른 더 높은 가치를 알려주는 우리의 증거이며, 하느님 나라의 영광을 앞당겨 증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대한 집착으로 인하여 또 다른 문제를 야기시키는 일은 피하여야 할 것이다. 한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가난이나 순명은 분명 실수가 용납되는 것 들이다. 그러나 정결 문제는 고의적이 아니다 하더라도 실수가 용납되지 않으며 만약의 경우 거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들은 끊임없는 기도와 대화를 통하여 그분께 의지하고 새로이 일어설 수 있는 은총을 겸손되이 청해야 할 것이다. 













사제상에 관한 그룹 토의


  평신도(신학생)가 바라는 사제상


–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은 사제


– 기도하는 사제


– 성사와 전례 집전에 성실한 사제


– 모든 이의 아픔을 달래줄 수 있는 사제


– 강론에 있어 이론에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에 근거하고 신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사제


– 말과 행동이 일치(言行一致)하는 사제


– 성서를 자주 대하는 사제


– 노력하는 사제


– 겸손한 사제


– 상식적인 사제




  우리의 노력들


사제는 公人으로서 많은 사람들을 대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제는 더욱 인간다워야 한다. 우리는 지금 선배 신부님들께 여러 모습들을 바라고 있지만 그것은 또한 우리가 장차 되어져야 할 모습들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모습들을 마음 속에만 품고 있다고 해서 사제가 되는 날 우리가 변화되는 것은 아니다. 바로 지금의 우리 모습이 미래의 자신의 모습임을 깨닫고, 바라기보다는 자신 안에서 그 모습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각자의 고유한 사제상을 지니고, 그를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는 현대의 여러 학문들을 접하고 그것들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자신의 잘못된 모습들(예를 들면 예의 문제)은 과감히 고쳐 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 순간의 충동이 아니라 쉼없는 노력이 동반되어야 하며, 신학생으로서의 삶, 사제로서의 삶이 나의 원의만에 의한 것이 아님을 알고 항상 기도 속에서 하느님의 이끄심에 따라야 할 것이다. 또한 바로 이웃의 그리스도인 형제들과의 삶과 대화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늘 새롭게 형성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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