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유아 세례 강론
오늘, 아주 싱싱한 새싹과도 같은 귀여운 자녀를 안고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부모님들!/ 그리고 대부모님들과 함께 진심으로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자녀를 낳음으로써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역할과 의무를 이행한 것입 니다. 그런데 이 자녀들의 생명은 여러분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소유물이 아닙 니다. 이 자녀들의 생명뿐만이 아니라 우리 인간 모두의 생명은 하느님께서 우리에 게 주신 아주 고귀한 선물이므로 우리 인간은 모두 하느님께 참으로 감사할 줄 알 아야 하겠습니다.
이제 잠시 후에 이 어린이들이 받게 될 세례성사는 예수께서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통해 온전히 하느님께 자신을 내 맡김으로서 성취한 부활의 영광에 세례성 사를 받음으로써 참여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처럼 우리도 우리의 헛된 욕망 과 세속적 삶에 집착하는 습성을 끊고 오직 그리스도께 신앙을 고백하여 이 세상에 대하여 죽음으로써 새로운 영적 생명으로 재생되는 은혜를 입게 되는 성사가 됩니 다.
세례성사는 이와 같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며 다른 성사를 받을 수 있게 되는 입문의 성사인 것입니다. 즉 사람이 출생함으로써 국적을 취득하고 한 국가의 시민이 되듯이 유아들도 세례를 받음으로써 교회의 일원이 되고 하느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례성사는 오직 한번만 받을 수 있고 이 성사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혼에 하느님의 소유물이라는 날인을 받게 됩니다.
유아세례의 시작은 사도시대 교회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처럼 유아세례는 교회가 과거부터 행하여왔고 지금도 행하고 있으며/ 성사의 거행자체가 신앙의 규범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유아세례가 교회에 대한 의식과 신앙고백을 요구하는 성사이기 때문 에 교회에서는 유아세례를 거행하기 전에 부모들이 정식 과정을 밟아 재교육을 받도록 하는 것을 제도화하였습니다.
오늘 복음(마르코 10,13-16)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부모들이 아이를 안고 예수를 찾아 왔을 때/ 제자들이 그들의 접근을 막았으나/ 예수께서는 오히려 그들을 환영 하시고 그들의 청을 들어 축복해 주시며/ 아이들도 하느님 나라에 한 몫을 차지할 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같은 어른이라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 십니다.
또한 여기에는 부모님들은 솔선수범하여 자녀들을 그리스도에게까지 이끌어 줄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의 신앙은 부모님들에게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겠 습니다. 여러분들은 부모이기에 앞서 하느님의 창조의지에 의해 창조된 자녀를 위 해서 파견된 하느님의 협력자들입니다.
오늘날은 사회의 구조상 핵가족이 등장함으로써 자녀들이 가정에서의 사회성을 배우지 못하므로 도덕적으로 탈선하기가 쉽고 부모들의 지나친 호의나 또는 무관심 으로 가치관을 잃어버리기가 쉽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더더구나 신앙까지도 소 홀히 하기가 쉽습니다.
어린이들은 있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모든 것을 포용합니다. 웃사람들이 하 는 것은 다 옳은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어린이에게는 진실을 가르 치고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어떤 한 어머니가 양파 두 개를 두 개의 컵에 각각 넣고 길렀답니다. 한쪽 컵의 양파에게는 정성과 사랑을 가득 담고 물을 주면서 길렀고, 다른쪽 컵의 양파에게는 미움과 증오를 가득 담고 물을 주면서 길렀습니다. 그 결과 정성과 사랑을 주면서 기른 것은 무럭 무럭 보기 좋게 잘 자라는데 미움과 증오심으로 기른 것은 아주 못난이처럼 자라다가 그만 죽어 버렸답니다.
이처럼 사랑은 미움을 넘어서며, 그것은 생명력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되시는 여러분들이 이 자녀들에게 베풀어 주고 이끌어 주어야 하 는 것은/ 재산이나 물질적인 욕망이 아닙니다. 오직 진실과 사랑으로써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지혜로운 삶을 물려주고, 하느님이시면서도 가장 겸손한 인간이 셨던 예수님의 삶을 이 자녀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대부모 역시 이 어린이들에게 복음의 실천을 자신의 생활과 사회생활로 친절히 보여주고 그들이 어려움과 고통 중에 있을 때 도와주며, 세례성사 생활이 잘 자라도록 감독해 주는 일이 대부모의 직무임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세례 후 그리스도와 교회로부터 얻은 신앙이 생활화되어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유아세례의 경우도 앞으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할 때, 세례 때에 요구되는 신앙의 표징으로서는 충분합니다. 그러나 세례때 얻은 신앙이 빠른 시일 내에 생활화 될 수 있을 때,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임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둘이 있는 곳에 항상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주님께 향하는 생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사는 생활, 사랑에 푹 젖어서 사는 생활이 되도록 기도하고 적극적인 노력을 하도록 합시다. 아멘.
6-2. 어린이 세례 예식 강론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오늘 우리의 귀여운 아기들이 세례성사를 통하여 새롭게 태어나는 뜻깊은 예식을 거행하고 있습니다. 이 예식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어린 자녀들에게 영원한 참 생명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특히 우리가 방금 들은 복음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참 생명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각기 그 나름대로의 고유한 생명을 얻어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은 이 생명은 우리 인간들에 의해서 만들어 진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과 같이 과학이 아무리 발달하였다 할지라도 우리 인간의 힘으로서는 생명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로켓트를 달나라에 보내 우주의 신비를 탐구하는 인간이지만, 우리는 나비 한마리 조차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닌 이 생명은 야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무상으로 베푸신 선물로서 우리가 받은 것입니다. 야훼 하느님만이 생명의 원천이시며 수여자이십니다. 그분만이 사람과 짐승과 모든 생물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시며 생명있는 모든 것은 다 그분의 손 안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여기있는 우리의 귀여운 어린 자녀들 역시 야훼 하느님께서 여러분 가정 모두에게 은총으로 베푸신 생명의 선물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명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원죄의 결과로 인해 우리의 영원한 참 생명을 잃어버리고 죽음으로 한정지워진 유한한 삶만을 영위할 수밖에 없는 가련한 처지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피할 수 없이 닥쳐오는 것은 죽음이라는 운명의 사슬입니다.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영생을 갈구하여, 불로초를 찾으려 했던 진시황제도 죽음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인간이라 할 지라도 죽음이라는 장벽 앞에서는 자신이 나약하고 유한한 존재임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은 새로운 생명에로 나아가는 관문이며 시작임을 알고 있습니다.
죽음을 넘어서는 삶… 이것은 영원히 계속되는 생명으로 영원한 생명, 영생이라 하겠습니다. 여기에서 영원함이란 오직 한분이신 하느님 이외에는 붙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영생이란 하느님의 삶이며 영생에 들어간다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삶에 들어간다는 것이고/ 바로 하느님과 같은 삶을 소유하며 누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하느님의 능력이 사람에게 들어와 변화시켜 주실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새로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죽게 되는데 죽음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은 다음에 오는 세계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낳음을 받음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물이란 깨끗하게 씻겨지는 것을 의미하며, 성령으로 난다는 것은 깨끗하게 씻기워진 것을 성령의 능력으로 새로운 삶을 불러 일으켜 줌으로써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명은 어디까지나 언젠가 죽고, 소멸할 육신의 한계를 넘을 수 없는 것이지만 성령의 생명은 인간의 능력과 삶이 다를 수 없는 그 이상을 하느님께서 주시는 삶인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사랑할 때에 이룩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뜻을 우리 자신 안에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거듭 낳음을 받게 되는 것이며 하느님의 자녀와 하늘나라의 시민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부모님들은 잠시 후면 물과 성령으로 새로히 태어나게 될 우리의 귀여운 자녀들이 온전히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의 사랑을 따를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성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헤로데를 피해 에집트로 피난 가신 후, 다시 나자렛에 돌아와서 지낸 어린시절에 대해 말하고 있기를 “아기는 날로 튼튼하게 자라면서 지혜가 풍부해지고 하느님의 은총을 받고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건강하게 자라는 것은 체육을, 지혜가 가득찼다는 것은 지육(智育)을, 하느님의 은총을 받고 있었다는 것은 덕육(德育) 즉 종교교육을 뜻합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성모님과 요셉의 말씀에 순종하시면서 교육을 완전하게 받으시면서 성장하신 것입니다. 잘된 교육은 가르치고(敎) 길러서(育) 사람 됨됨이를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교육이 가르치는 일은 대단한데 기르는 일에는 소홀한 것 같습니다. 게다가, 가르치는 것도 그저 지식전달에 치중하고 지혜를 심어주는 일에는 결함이 많은 것 같습니다.
만일 지식만 전달한다면 그것은 교육이라기 보다는 짐승을 키우는 사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만약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먹이고 입히고 돈이나 주어서 학교에 보내면, 할일을 다 한 것으로 안다면 이는 참된 교육이 아닙니다.
진정한 교육은 자녀들에게 깊은 애정을 갖고 이들에게 지혜, 건강, 성덕을 심어주는 일입니다. 따라서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학교 교육뿐 아니라 신앙교육에도 충실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줄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더우기, 자녀들은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맡겨 주신 보화이기 때문에 내 것이 아님을 깨달아 이들을 올바로 키워서 주인이 돌아 오셨을 때 즉 데려가실 때, 자랑스럽게 내드릴 수 있도록 성실하게 꾸준히 키워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부모님들은 부족한 일손을 덜어주는 주일학교의 교육에도 커다란 관심을 가져야 하며, 또한 자녀들의 보금자리인 가정이 성가정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대부 대모 역시 영적인 아버지 어머니로써 부모님들과 똑같이 이 어린 자녀들이 올바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이끌어 주면서 이들이 대부모님들을 통해 한층 더 그리스도의 뒤를 따를 수 있도록 모범을 보여주어야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6-3. 유아 세례 강론
오늘은 여러분의 자녀들이 또 하나의 새로운 생명체로 태어나는 날입니다. 아직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이 어린이들에게 왜 교회가 세례를 베푸는지 그 이유를 오늘 복음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아니하면 아무도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고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아니하면 아무도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천지창조가 물과 성령으로 이룩되었듯이 원죄로 타락된 인간에게는 물과 성령으로 새로이 태어나는 재창조가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구원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믿는 교회는 유아들에게도 세례를 베풀어 왔습니다. 결백한 유아들에게 성급히 세례를 베푸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초대교회의 교부들은 유아들은 비록 본죄가 없다해도 그리스도의 은총이 결핍된 자가 있기 때문에 세례를 주어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절대적 필요성에서 교부들은 결핍상태를 연역해냈고 이 결핍상태에 대하여 본인이 아무런 책임이 없다 하더라도 그의 영적생활에 차질이 생기는 것은 사실이고, 이것은 본죄의 결과와 같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결핍상태를 유추적으로 죄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죄라는 말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 결핍의 근본적인 심각성을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이들 유아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은 구세주 그리스도의 절대적 필요성을 고백하는 한 행위이기도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실 때 신앙이 선행조건으로 요구되기도 했지만, 다른 이의 확고한 믿음으로 치유의 은총을 받은 예도 많고, 초대교회에서 공동체의 대담자인 사도들이 그들의 신앙으로 많은 병자들을 낫게 하기도 하였듯이, 비록 이 어린이들이 자신의 신앙으로 응답하진 못하지만 이 어린이들도 여러분과 교회의 신앙으로 하느님 안에 새로이 태어나는 은총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교회와 부모님들의 배려가 이 어린이들에게는 그 어떤 혜택이나 선물보다도 값진 것입니다. 참된 교회의 신앙을 가진 부모님이면 하느님의 은총 속에 새로이 태어나는 이 세례의 성사를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로 여기시리라 믿습니다.
앞으로 이 어린이들이 자라나서 신앙교육을 받게 되고 스스로의 신앙을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까지 부모님과 대부, 대모님들은 이 어린이들의 건강한 영적 성장에 대한 책임이 주어져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책임은 무엇보다 여러분들의 신앙생활의 자세와 모범에 밀접히 결부되어 있다는 것을 꼭 명심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번 여러분의 자녀들이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게 됨을 축하드립니다.
6-4. 유아 세례 강론
오늘은 참으로 기쁜 날입니다. 귀여운 아기들이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아들, 딸이 되는 기쁜 날입니다. 이처럼 기쁜 날을 맞이하여, 먼저 부모님들과 대부모님들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드립니다.
아기에게 주는 세례인 유아세례는 우리 교회의 오랜 전통입니다. 우리 교회는 거의 이천년 동안 이 유아세례를 베풀어 왔고, 오늘도 베풀고 있습니다.
교회가 이처럼 오랜 전통을 가지고 오늘날까지 유아세례를 베풀어 온 이유는, 유아의 믿음 때문인 것은 물론 아닙니다.
사실 유아는 정신적인 기능의 부족으로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교회가 오늘날까지 유아세례를 베풀고 있는 이유는 유아의 믿음 때문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믿음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은 세상의 어떤 보물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값진 보화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처럼 값진 신앙의 보화를 우리의 사랑스런 자녀들에게도 기꺼이 나누어주고 싶은 것입니다. 아니, 나누어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비록 이 어린것들이 의식이 없어, 이처럼 값진 신앙의 보화를 알아보지 못할지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유아세례는 어디까지나, 어른들이 자녀들과 함께 신앙의 보화를 나누는 일의 시작에 불과하며, 첫 개시에 불과합니다. 유아에게 세례를 주는 일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은,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어린이가 성장하는 동안 그 어린이를 그리스도교적인 교육으로 일깨워 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장하는 어린이가 유아세례로써 받은 신앙의 유산을 진리로 알아볼 수 있게 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교적인 교육을 통해서만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저 일반적인 관례에 따라 세례를 받았다고는 하나 아무런 그리스도교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자라나는 어린이를 참으로 그리스도인이요, 교회의 일원이라고 불러도 좋을지는 자못 의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님과 대부모님들은 합심해서 자라는 어린이를 그리스도교적인 교육으로 일깨워 줌으로써, 그들과 신앙의 보화를 나누는 일을 계속해야만 할 것입니다. “믿음은 나누면 나눌수록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누면 나눌수록 커지는 법입니다.”
6-5. 보례예식 : 환영 인사말(166항)
오늘 어린이 보례예식에 참석하러 오신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그리고 생후에 건강상의 이유로 지난 3개월 전에 대세를 받도록 하고 이제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으로 건강을 회복하여, 오늘 이렇게 교회 공동체 앞에 공식적으로 입교하도록 여러 가지 노고와 애쓰신 어린이의 부모님과 대부모님 안녕하십니까!
무엇보다 먼저, 오늘 이러한 복되고 기쁜 자리를 마련토록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아울러 생후에 건강이 좋지 않은 어린이로 인해, 근심과 불안 속에서도 침착하고 그리고 지체없이 교회의 이름으로 대세를 받도록 하신 어린이 부모님의 견고한 신앙의 행위에 심심한 찬양을 드리는 바입니다.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그 생명을 귀히 여기시며 따뜻이 돌보아 주심을 이 자리를 통해 다시금 체험하면서, 우리 모두는 그분의 자비하심과 사랑에 깊은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동안 어린이의 건강으로 인해 가져야했던 걱정과 불안들이 이제 말끔히 씻어지고, 기쁨과 희망을 되찾게 된 어린이의 부모님께 교회 공동체의 이름으로 축하를 드립니다.
오늘 우리가 거행하는 이 보례예식은, 신앙의 위기나, 부모의 불화, 또는 건강상의 특별한 이유로 인해 미리 대세를 받은 어린이들을 교회 공동체가 공적으로 받아들이고, 교회 공동체의 지체가 되었음을 온 교회에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즉 대세를 통해 어린이가 이미 교회의 자녀가 되었지만, 이미 받은 대세의 경우에는 정말로 위급한 중에 정식으로 모든 예절을 갖추지 않고, 세례성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물로써 이마를 씻고, 기도문을 외우는 가장 본질적인 부분만을 집행했던 것입니다.
원래 교회가 제정해 놓은 세례성사에는 물로 씻는 가장 본질적인 부분 외에도, 여러 가지 상징적인 예식들을 통해 세례성사의 중대성과 세례성사의 성스러움을 밝혀줍니다. 그래서 오늘 이 보례예식은, 대세만을 받았던 어린이에게 대세를 보충해주고, 완전한 성사로 완성시켜 주는 것입니다.
오늘 보례를 받는 어린이의 부모님과 대부 대모!
이제 여러분은 이 예식을 통해서 여러분의 신앙을 공적으로 드러내 보이셨고, 어린이를 교회의 자녀로 온전히 맡기셨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도 이 어린이를 신앙의 정신으로 교육시켜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따라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신앙인의 올바른 삶을 심어주는 의무를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 어린이의 성장 과정과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어떠한 환난과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오로지 하느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고, 마지막날에 보여주실, 하느님의 영광을 바라면서 이 세상을 오로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의 정신으로 살아가야 하겠고, 이 어린이에게도 그렇게 교육시켜야 할 것입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고, 좋은 일을 우리 가운데 시작하신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며, 오늘 이 자리에서 교회 공동체의 자녀로 공적으로 받아들여진 어린이와 그리고 부모님과 대부모님께 교회 공동체 전체의 이름으로 다시 한번 축하를 드립니다.
이제 앞으로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풍성한 은총과 사랑 안에서 더더욱 신자로서의 성숙한 삶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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