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비질리오 교황 Vigilius 537~555
동로마 제국 장군 벨라사리우스의 압력으로 비질리오는 537년 3월 29일 교황으로 천거되었다. 교황 비질리오는 명예를 탐하는 야심을 지녔으면서도, 심약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비잔틴의 교회 정책과 관련해서 노리갯감이 되었다. 또한 신학적 논쟁에 있어서도 교황 비질리오는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였다. 아마도 짐작컨대 교황으로 선출될 경우 단성론을 승인하겠다는 것을 비밀리에 약속한 것으로 추측된다. 물론 교황 비질리오는 협박 때문에 그렇게 약속했었을 것이다. 교황 비질리오는 553년 황제에 의해 소집된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가 개최될 당시 콘스탄티노폴리스에 거주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의회 참석을 거부했고, 특사도 파견하지 않았다. 황제의 압력으로 공의회는 교황 비질리오를 파문했다. 하지만 비질리오는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개최된 제5차 공의회를 보편 공의회로 승인했고, 그 대가로 그에 대한 파문은 취소되었다. 교황 비질리오는 다시 로마로 귀환할 수 있었으나, 555년 6월 7일 귀환 도중에 시라쿠사(Syrakus)에서 서거하였다. 교황 비질리오의 재위 기간은 교회사에 있어서 가장 암울한 시기에 속한다. 교황권은 부당하게도 비잔틴의 황제권에 예속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교황 비질리오는 계속된 표리부동한 태도 때문에 모든 신뢰를 잃어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