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파노 3세 교황 Stephan 3.

 106. 스테파노 3세 교황 Stephan Ⅲ.  768~772

교황 바오로 1세 서거 후 두 명의 교황-즉 콘스탄티노 2세와 필립보-이 공존하였으나, 두 명 모두 로마 귀족 가문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오래 지탱할 수 없었다. 그래서 768년 8월 7일에 있었던 정상적인 교황 선거 절차를 거쳐 스테파노 3세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이틀 후 서품식을 치렀다. 교황 스테파노 3세는 프랑크 제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던 지금까지의 노선을 그대로 견지하였다. 769년 스테파노 3세 교황은 교황 선거를 위한 새로운 규정을 발표하였다. 이 규정에 따르면 오로지 성직자만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고, 오로지 주교 추기경과 사제 추기경만이 교황으로 선출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로써 교황 선출과 관련하여 평신도들의 영향을 배제시켰다.


  그사이 교황은 정치적인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었다. 프랑크 제국의 국왕 피핀의 서거 후, 그의 두 아들 칼 대제와 칼만이 제국의 통치권을 이어받았다. 하지만 두 아들은 서로 불화와 갈등의 관계에 직면하였다. 교황 스테파노 3세는 칼이 랑고바르드족에게 접근하는 것에-칼은 랑고바르드 국왕의 딸과 결혼하였다-저항하였다. 왜냐하면 이들이 합세하여 교황권에 간섭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교황 스테파노 3세는 칼만에게로 선회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교황 스테파노 3세는 자신의 태도를 바꾸었다. 왜냐하면 랑고바르드족이 교황에게 약속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랑고바르드족은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들이 교황권에 있어서 불안과 혼란을 초래하였다. 교황 스테파노 3세가 서거하기 얼마 전, 프랑크 제국에서는 결정적인 사태의 변화가 발생하였다. 즉 칼만이 요절하였다. 그 결과 칼은 단독으로 제국을 지배하게 되었다. 칼만의 미망인은 자신에게 남겨진 유산의 몫을 차지하기 위해 랑고바르드족의 도움을 요청하였고, 랑고바르드족은 도움을 보장하였다. 이에 대해 칼은 격분하여 랑고바르드족과의 관계를 단절하였다. 그리고 랑고바르드족 출신의 부인을 그녀의 아버지에게 되돌려보냈다. 스테파노 3세 교황은 772년 1월 24일 서거하였고 바티칸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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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6. 스테파노 3세 교황 Stephan Ⅲ.  768~772

    교황 바오로 1세 서거 후 두 명의 교황-즉 콘스탄티노 2세와 필립보-이 공존하였으나, 두 명 모두 로마 귀족 가문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오래 지탱할 수 없었다. 그래서 768년 8월 7일에 있었던 정상적인 교황 선거 절차를 거쳐 스테파노 3세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이틀 후 서품식을 치렀다. 교황 스테파노 3세는 프랑크 제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던 지금까지의 노선을 그대로 견지하였다. 769년 스테파노 3세 교황은 교황 선거를 위한 새로운 규정을 발표하였다. 이 규정에 따르면 오로지 성직자만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고, 오로지 주교 추기경과 사제 추기경만이 교황으로 선출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로써 교황 선출과 관련하여 평신도들의 영향을 배제시켰다.

      그사이 교황은 정치적인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었다. 프랑크 제국의 국왕 피핀의 서거 후, 그의 두 아들 칼 대제와 칼만이 제국의 통치권을 이어받았다. 하지만 두 아들은 서로 불화와 갈등의 관계에 직면하였다. 교황 스테파노 3세는 칼이 랑고바르드족에게 접근하는 것에-칼은 랑고바르드 국왕의 딸과 결혼하였다-저항하였다. 왜냐하면 이들이 합세하여 교황권에 간섭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교황 스테파노 3세는 칼만에게로 선회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교황 스테파노 3세는 자신의 태도를 바꾸었다. 왜냐하면 랑고바르드족이 교황에게 약속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랑고바르드족은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들이 교황권에 있어서 불안과 혼란을 초래하였다. 교황 스테파노 3세가 서거하기 얼마 전, 프랑크 제국에서는 결정적인 사태의 변화가 발생하였다. 즉 칼만이 요절하였다. 그 결과 칼은 단독으로 제국을 지배하게 되었다. 칼만의 미망인은 자신에게 남겨진 유산의 몫을 차지하기 위해 랑고바르드족의 도움을 요청하였고, 랑고바르드족은 도움을 보장하였다. 이에 대해 칼은 격분하여 랑고바르드족과의 관계를 단절하였다. 그리고 랑고바르드족 출신의 부인을 그녀의 아버지에게 되돌려보냈다. 스테파노 3세 교황은 772년 1월 24일 서거하였고 바티칸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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