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바노 8세 교황 Urban 8.

 274. 우르바노 8세 교황  Urban Ⅷ.  1623~1644

1623년 8월 6일 마페오 바르베리나(Maffeo Barberini)는 우르바노 8세라는 이름으로 교황에 선출되었다. 교황 우르바노 8세는 1568년 4월 25일 피렌체에서 출생하였으며, 예술과 학문의 애호가였다. 교황 우르바노 8세는 오랜 재임 기간을 통해 교황사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우르바노 8세가 교황으로 선출될 당시 30년 전쟁은 겨우 5년째에 접어들고 있었다. 이 전쟁과 관련해서 교황 우르바노 8세는 매우 애매한 태도를 취하였다. 프랑스 출신의 리셸리외(Richelieu) 추기경이 개신교를 신봉하던 스웨덴의 국왕 구스타브(Gustav Adolf)와 연합하자 교황 우르바노 8세는 가톨릭을 신봉하던 황제의 편을 지지하였다. 하지만 결정적인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그 결과 독일 제국의 상당한 지역이 개신교를 수용하게 되었다.


  교황 우르바노 8세는 점령 지역에 가톨릭을 신봉하도록 허용할 것이라는 구스타브 국왕의 약속을 믿었다. 하지만 구스타브 국왕은 자신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래서 교황 우르바노 8세는 양쪽 진영으로부터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려고 모색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중립적인 태도는 사실상 프랑스를 지지하는 것을 의미하였고 독일의 가톨릭 신앙을 손상시키는 것을 의미하였다. 교황 우르바노 8세는 자신의 생애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화평을 위해 노력하였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교황 우르바노 8세는 국제적인 회의를 소집할 것을 구상하였다. 하지만 전쟁에 임하고 있던 군주들은 교황의 구상에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였다. 그래서 상황은 아무런 변화도 없이 여전히 계속되었다.


  교회 내적으로 교황 우르바노 8세는 친인척 중용주의를 과도하게 실천하여 교회에 부담감을 안겨 주었다. 가까운 친척들을 돌보기 위해 막대한 재정을 지출하였다. 교황 우르바노 8세가 교황직에 등극한 그 자체가 비극이었다. 교황 우르바노 8세의 재임 기간은 실정으로 가득 찼고, 독일의 가톨릭 신앙에는 불행을 초래하였다. 교황 우르바노 8세는 1644년 7월 29일에 서거하였다. 교황 우르바노 8세의 서거는 교회를 위해서는 다행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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