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 베네딕토 15세 교황 Benedikt ⅩⅤ. 1914~1922
1914년 9월 3일 추기경들은 교황 비오 10세의 후임으로 자코모(Giacomo Marchese della Chiesa)를 교황 – 베네딕토 15세 – 으로 선출하였다. 교황 베네딕토 15세는 1854년 11월 21일 제노바(Genua)에서 출생하여, 1878년 사제로 서품되었으며, 1882년부터 교황청의 외교 업무에 종사하였다. 1907년에 볼로냐의 대주교로 임명되었고, 1914년 추기경에 서임되었다. 교황 베네딕토 15세의 재임 기간은 제1차 세계 대전의 영향으로 점철되었다. 교황 베네딕토 15세는 전쟁에 대해 엄정한 중립적인 노선을 견지하였다. 바티칸이 아직 독립 국가로서 인정을 받지 못한 상태에 있을 때인 1915년 이탈리아가 전쟁에 개입함으로써 교황의 입장은 매우 곤란한 처지에 빠지게 되었다. 평화를 도모하기 위한 노력은 교황 베네딕토 15세가 1917년 황제 빌헬름 2세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교황 베네딕토 15세의 서한에 대해 빌헬름 황제는 답신을 보냈다. 이 답신에서 황제 빌헬름은 교황과 미국의 대통령 윌슨은 세상의 물정에 어둡다고 지적하였다. 1919년 8월 1일 교황 베네딕토 15세는 전쟁에 가담하고 있는 국가의 정부에 각서를 보냈고, 이 각서로 말미암아 각국은 격렬한 논쟁에 휘말려 들었다. 하지만 아무런 결론도 도출하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황 베네딕토 15세는 전쟁 포로에 대한 보호, 전쟁 부상들의 교환, 생활 필수품의 준비 등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완화시키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아울러 교황 베네딕토 15세는 전쟁 후의 어려움을 완화시키려는 노력도 경주하였다. 1917년 교황 베네딕토 15세는 젊은 에우제니오(Eugenio Pacelli) – 나중에 교황 비오 12세 -를 뮌헨 주재 교황 대사로 파견하였다.
교회 내적으로 1917년 교황 베네딕토 15세는 1983년까지 효력을 발휘하였던 새 교회법을 공표하였고, 특히 전쟁으로 점점 희박하게 된 세계 선교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다. 교황 베네딕토 15세는 자신의 생애 마지막 부분을 소련의 기아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보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였다. 교황 베네딕토 15세는 1922년 1월 22일 서거하였다. ꡒ세계 평화를 위해서는 우리의 생명마저도 기꺼이 희생시켜야 한다ꡓ는 것이 교황이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교황 베네딕토 15세는 정의와 평화를 실현시키기 위해 헌신한 교황으로 평가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