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교: 그리스도교의 본질에 대한 성찰
우리의 그리스도론적 성찰을 끝맺으면서, 그리스도교와 이것의 근본적인 구조들 몇 가지에 관하여 보다 더 포괄적으로 숙고해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리스도적 구조는 역사의 나자렛 예수에 선행한다. 그리스도교라고 일컬어진 것이 당시에 없었다는 것은 이것이 실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다만 감추이고 익명적인, 그리고 잠재적인 양상으로 실재하였던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교는 단순히 보다 더 완전한 어떤 한 세계관아니 보다 더 탁월한 어떤 한 종교가 아니다.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적 구조 안에서 실천되는 구체적이고도 일관된 삶살이, 나자렛 예수가 사셨던 그것을 사는 것이다. 타자에의 개방성은 인간 존재들의 구원과 절대적인 좌절이 여기에 달려있을 정도로 결정적인 요건이 되기 때문이다.
만일 그리스도적 구조를 다른 말로 정식화한다면, 우리는 이것이 하느님의 한 제의에 대한, 책임이 수반된, 한 응답으로 나타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만일 그리스도교가 근원적으로 저 신적인 제의에 대한 응답과 더불어 존립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인간의 응답은 역사적으로 서로 다른 많은 방식으로 표출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한 특수한 ‘제도적’표현체로서 간주될 수 있고 또 그렇게 간주되어야 한다. 이는 교회가 자체의 성사들과 직무들 속에서 설교하고 보존하며 생활하는 그분, 그리고 교회가 자체를 그분의 비판에 복종시키는 그분 예수 그리스도와 맺고 있는 빈틈없고도 깨어질 수 없는 유대로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개진해 온 성찰을 통하여 우리의 입장ㄷ이 분명하게 드러났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스도는 인류 역사에서의 일탈이 아니라 그 역사의 의미요 절정이시다. 그분은 우리 역시 당신이 되셨던 그 모습이 되도록 운명지어졌다는 희망과 확신을 우리에게 가져다 주시기 위해서 이 여정의 종착지에 맨 먼저 도착한 분이신 것이다. 그리스도적 구조는 삼위일체적인 기원을 갖는다. 모든 것들은 무한한 성장에로 개방되어있다. 하느님의 존재가 사랑이요, 통교-전달이요, 무한한 개방성이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적 범신론’ 즉 ‘모든 것 안에 모든 것이신 하느님’이 아직 발생하지 않은 한 예수 그리스도는 계속해서 미래를 희망하고 또 갖게 된다. 그분의 형제들과 자매들, 그리고 인간의 고국은 아직 그분처럼 변모되지를 않았다. 이들은 아직, 이 세계에서 현시된 하느님 나라를 특징짓는 모호한 양면성을 겪으면서, 즉 약함과 떳떳치 못함과 고난과 박해속에서 길을 걷고 있는 중인 것이다. 이처럼 부활한 예수는 계속해서 희망 속에 살고 계신다. 그분은 끊임없이 인간 존재들 가운데서 당신의 나라가 성장하기를 희망하신다. 왜냐하면 그분의 나라는 죽음 이후에 실재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는 끊임없이 당신이 시작하신 저 혁명이 생각하고 행동하고 계획하는 인간적 구조들을 더욱 더 충만하게 관통하게 되기를 희망하고 계신다. 즉 이것은 모든 이들을 위한 무차별한 사랑과, 하느님이 당신의 결정적인 나라와 더불어 오실 저 미래를 향한 지속적인 개방이다. 또한 그분은 끊임없이, 미래의 인간 존재의 모습-형상이 비록 현재의 인간 존재에 있어서는 가려져 있지만 점점 더 베일이 벗겨져서 완전히 계시될 수 있기를 희망하신다. 예수는 끊임없이, 인간 존재들과 우주 세계를 위한 복된 미래에 대한 하느님의 ‘프로 미씨오(pro-missio;promise)곧 약속’ 가 실존적인 부조리 현상들의 한복판에서 펼쳐지는 삶에 있어서의 철저한 의미 구현을 위한 인간적 ‘미씨오’로 번혁될 수 있기를 희망하신다. 이 모든 것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동안에는 그리스도는 계속해서 희망을 간직하시게 될 것이다. 이에 부활한 예수는 또한 미래를 가지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미래는 아직 완전히 끝맺어지지도 실현되지도 않았으나, 다른 어떤 보다 엄청난 것을 실현시켜 줄 것으로서, 그분의 형제들과 자매들인 죽은 사람들의 부활과 모든 것들 자체간에는 물론 그것들과 하느님간의 사이에서도 이루어질 화해, 그리고 우주 세계의 변모가 그런 일들로서 나타내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계의 마지막은 어떤 한 우주 세계적 파국으로 표상되어서는 안되며 오히려 그것은 완치요, 목표이자 충만으로서의 마지막의 성취로 표상되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