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제자 교육관 , 열두 사도

 

예수의 제자 교육관



Ⅰ. 서론


  우리는 이시대를 살아가면서 많은 종교를 알고 경험하게 된다. 그러한 종교중에서 그리스도교- 그리스도를 주님이라 고백하고 그분의 구원 업적을 기리는 그런 종교가 수적으로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현재의 모습이 그렇게 나뉘어지고 갈라져 있는 그리스도교지만 예수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결코 적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그러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따르게 된 것은 무엇때문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께서는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인간이 되시고 인간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그분께서는- 비록 지금도 교회를 통해서 당신의 교리를 가르치고 계시지만- 특히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부터 부활하시기까지 제자를 교육시키셨다. 이 글에서는 예수가 세상의 복음화를 위해서, 그리고 이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구현하기 위해 교육시키신 제자는 과연 어떤 사람들이었고, 예수께서는 이런 제자들을 어떻게 교육시키셨는가를 알아보고자한다.






Ⅱ. 제자들의 구성




1. 12제자


  예수께서는 당신의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아버지로부터 받은 당신의 사명을 같이할 제자들을 부르셨다. 그중 그분 곁에서 함께 생활하며 특별히 교육시킨 제자 무리가 있었는데 이무리를 12제자라 일컫는다. 이는 예수께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게 되도록 불림받은, 모범이요, 중심인물로서 12제자를 선택하신 무리였다. 즉 하느님의 새백성으로서 새이스라엘을 표상하는 12제자를 뽑으신 것이다.1) 12제자도 3그룹으로 나뉜다.2) 첫째그룹은 시몬과 안드레아, 그리고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다. 이들 모두는 갈릴레아의 어부로서 예수의 부르심에 모든 것을 놓아두고 즉각적으로 응답한 제자들이다. 요한 복음에서는 안드레아를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다고 언명하고 있다(요한 1, 40). 제베대오의 아들들은 ‘천둥의 아들’(보아네르게스)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불같은 격렬한 성격을 지닌 제자들이었다(참조. 마르 3, 13-19). 이 네 명의 제자들중에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은 예수의 거룩한 변모를 목격했으며, 겟세마니 동산에서 기도할 때 예수께서 셋만 앞으로 나오게 하는 등, 특별하게 예수와 밀접히 지낸 이들이었다. 두 번째 그룹은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 토마스, 마태오이다. 필립보는 안드레아의 친밀한 친구이고 바르톨로메오는 요한 복음에 나타나는 나타나엘이라 추정된다. 토마스는 외경의 전설에 따르면 예수의 쌍둥이라고 말해지고 있으며, 마태오는 세리였다. 세 번째 그룹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아들 유다, 열혈당원 시몬 그리고 유다 이스가리옷이다. 열혈당원 시몬은 말그대로 열혈당에 속해 있던 사람이다. 이들은 극단 애국주의자, 민족주의자로서 로마의 지배에 대해 테러를 일으키던 집단이다. 유다 이스가리옷은 두가지로 해석되는데 첫째로 케리옷에서 온사람이라는 뜻으로 12제자중 유일하게 갈릴레아 사람이 아닌 제자라 생각할 수 있다. 두 번째로 scarius, 즉 열혈당원과 연계된 민족주의 유대집단의 한 단원으로 추정된다.




2. 12제자에 속하지 않는 제자


  예수를 추종하던 사람들중에는 12제자에 속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는 예수의 치유를 받고 제자가 된 사람들(마태 20, 29-34; 마르 10, 46-52; 5, 1-20; 루가 18, 35-43)과 그 기적의 위대함을 목격하고 제자가 된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에는 니고데모와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등, 유대의 지도자 위치에 있었던 관리들도 있었다. 예수를 따른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요한나, 수산나, 글로파의 아내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 마르타, 막달라 마리아등으로서, 그들은 갈릴레아에서 그분을 시중들었고 예루살렘까지 함께 올라온 여자들이 있었다고 4복음서 저자는 전하고 있다.3)




3. 제자들의 바람, 능력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예수의 제자들은 유대의 지도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어부, 세리, 열혈당원, 거지, 등 가난하고 소외된 자로서 율법에 대한 교육을 받지 못한 무식한 사람들이었다. 제자들의 신분의 그러했다하지만 그들은 예수의 제자로서 특권을 누릴수가 있었다. 즉 예수와 함께할 수 있도록 부름을 받았고 예수의 모든 행적, 특히 예수께서 행하신 여러 기적들을 목격하였으며 바리사이와 율사들에 의해서 비난을 받았을 때 예수께서 그들의 방패막이 되어 주셨다.4) 예수께서는 친히 비유를 풀어 설명해 주시고 당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셨지만 그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무식 그자체였다. 예컨데 제자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비유를 이해하지 못함으로 인해서 꾸지람을 들었고(마르 4, 13) 예수께서 바다의 혼란을 잠재울 때 이해하지 못해서 어리둥절 했으며(마르 4, 41), 바리사이와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라는 말씀에 빵이 없음을 걱정하였다(마르 8, 15-18). 예수의 첫 번째 수난 예고에는 베드로가 반대하였고(마르 8,32), 두 번째 수난예고에는 묻기조차 두려워하며 서로 누가 높은지 다투었으며(마르 9,32-34) 세 번째 수난 예고후에도 제베대오의 두아들은 예수께 자신의 권력을 요구하였다(마르 10, 35-39). 그들이 이렇게 무식했던 것은 예수님의 행하시고 말씀하신 엄청난 것들을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문이 자신의 욕망에 의해서 굳게 닫혀 있었기 때문이다(마르 8, 14이하). 따라서 그들은 고난 받는 메시아로서의 예수를 이해하고 자신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 가를 이해하기 보다 메시아이신 예수께서 온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그날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위치에 몰두하고 있었다.




Ⅲ. 예수의 태도




1. 예수의 대중교육


  예수께서는 사람들의 병을 치유해주시고 악마를 쫓아내시는 기적, 즉 행동을 통해서, 전통에 사로잡혀있는 율사들과 바리사이들을 비판하심으로써 그리고 많은 대중에게 설교하심으로써 당신의 복음의 의미를 대중에게 가르쳐 주셨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언제나 비유로만 말씀하셨고 그 의미를 제자들에게만 깨우쳐 주셨다.(마르 4, 11-12)




2. 예수의 제자교육


  예수께서는 당신의 공생활을 이런 무식한 제자들과 함께 하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그들의 무지를 깨우쳐 주시려고 노력하셨고 모든 것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만 하는 제자됨의 의미와 인류를 위해 고난받을 사람의 아들에 관해 가르치려 노력하셨다. 하지만 예수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 강압적이 아니라 사랑으로, 이해심을 가지고 기다림으로써 제자들을 교육시키셨고 당신의 말씀이 곧 삶으로 드러나는, 즉 행동 그자체로 제자들을 가르치셨다.


첫 번째 고난 예언을 했을 때 깨닫지 못하는 제자에 대해서 예수께서는 그들을 ‘불러모으시고’ 제자가 되려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가르치셨다(마르 8, 34-38). 두 번째 고난 예언하는 중에 누가 높으냐는 말다툼한 제자들에 대해서 ‘앉으신 다음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고’ 첫째가 되려면 마지막이 되라고 가르치셨다(마르 9, 33-35). 예수를 따르지 않는 사람이 예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는 것을 막은 제자에 대해서 예수께서는 그냥 놓아두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자신의 권력에만 전심을 기울이는 제자들의 배타성을 질책하셨다(마르 9, 38-39). 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예수의 말씀에 반발하는 제자들에 대해서 예수께서는 그들을 똑바로 보시며 하느님께서는 가능하다고 가르치셨다(마르 10, 23-27). 예수의 세 번째 수난 예고에서 제배대오의 두아들은 예수께 권력을 요구하였고 이것에 다른 제자들이 화를 낸것에 대해 예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높은 자가 되고자 하면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함을 역설하신다(마르 10, 35-45). 이렇게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의 무지함에 대해 인내심을 가지고 차분히 가르쳐 주신다.


그분께서는 이렇게 제자들의 잘못된 부분을 깨우쳐 주셨지만 그들이 청하는 것을 들어주셨고(루가 11, 1-13:주의기도) 두려워하는 제자에 대해 용기를 주셨으며(루가 12, 32), 제자들의 파견을 걱정하셨고(마태 10, 16), 그들이 받을 박해를 준비시키셨으며(마태 10, 24; 10, 29-31), 임무를 마친 제자들의 외적, 내적 피곤함을 아시고 조용한 곳에서 쉴 것을 명하셨다(마르 6, 30-31)


이렇게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을 사랑으로 가르치셨다. 그분은 모든 것을 제자들과 함께함으로써 직접 그분의 행적을 목격하게 하시고 모든 것을 드러내 보이셨다. 이것들을 통해 예수께서는 미래에 당신의 사명을 수행할 사도로서 그들을 준비시키셨다.




Ⅳ. 제자들의 반응(교육의 효과)




1. 십자가의 죽음까지


  당신의 제자가 되려면 어떠해야 하는지를 그리고 사람의 아들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수없이 가르쳐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그들의 마음이 굳게 닫혀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3번째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동안 예수를 메시아로 여기는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한다. 제자들과 모든 군중들은 예수를 다윗의 자손으로써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로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분의 뜻은 그런 의미의 메시아가 아니셨다. 그래서 자신의 신원에 대한 이야기를 세 번에 걸쳐서 하셨던 것이다. 하지만 예수와 제자들의 이해의 골은 더욱 깊어져 베다니아 여인의 도유 사건에서 극적으로 갈라진다. 예수에 대한 여인의 도유는 그분의 장례를 위한 선한 일이 었지만 제자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여자를 나무랐던 것이다(마태 26, 6-13; 마르 14, 3-9). 이러한 제자들의 반감은 유다의 배반약속으로 이어진다. 결국 겟세마니 동산에서 예수께서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고 계셨을 때 그들은 잠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고 때가 이르렀을 때 모두 그분을 배반하고서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생각에는 메시아가 수난을 받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당신과 더불어 죽어야 할지라도 결코 당신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베드로의 장담도 오래가지 못했다.


이렇게 예수님의 3년간의 제자교육은 물거품으로 돌아가 버렸다. 하느님 나라의 기쁜소식을 모든 사람에게 선포해야할 그들이 예수를 떠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은 수난을 받고 부활하리라는 사실과 제자가 되려면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의 십자가를 져야하고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함을 가르치셨고 그보다도 제자들을 사랑으로 대하시며,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주신 예수님의 교육은 결국 허무한 것이 되어버렸다.




2. 부활후




다른 모든 제자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난 다음 십자가 곁에 서있던 사람은 여러명의 여인들이었다. 그들중 몇명은5) 그분의 장례를 위해 향료를 사서 무덤으로 향했다. 그들은 돌이 굴러간 것을 보았고 안에 들어갔지만 예수의 시선을 찾아볼 수 없었다. 거기서 흰예복을 두른 젊은이에게로부터 예수의 부활 소식을 전해 들었고 그들은 곧장 열한 제자에게 알렸다. 제자들은 달려 왔지만 두려워하여 무덤에 들어가지 못했고 베드로가 들어가서 그 사실을 목격한 후에 그 사실을 믿었다(요한 20, 3-8).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거라는 말씀을 깨닫지 못했다. 이러한 사실은 두제자가 엠마오로 떠난 사실에서 알 수 있다. 그래서 오직 여인들 만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뵐 수 있었다. 엠마오로 행하는 도중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에게 모든 것을 풀이해 주셨다(루가 24, 27). 그리고나서 그들이 그분과 함께 식사를 하는 도중 그분이 예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들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갔다. 또한 토마가 없을 때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내 보이시어 당신이 부활하셨음을 보여 주셨다. 이렇게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도 당신을 그렇게 배반해버린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당신의 부활을 가르쳐주셨다. 다른 제자들이 토마에게 예수를 뵌 사실을 말했을 때 그는 믿지 않았다. 결국 의심많은 토마에게도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드러내 보이셨다. 예수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신 다음에 성령을 약속하셨고 그들에게 성령을 내리셨다. 그래서 그들은 만방으로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제자들을 포기하지 않으셨고 그들을 모두 당신 복음의 선포자로 만드셨던 것이다. 당신께서는 또한 그리스도교인을 지독히 박해하던 사울을 부르시고 당신의 사명을 부여하셨다. 그리하여 바울은 이방인에게 3차에 걸친 전도여행을 통해 수많은 교회를 설립하고 이방인을 구원에로 이끌었다. 결국 ‘2세기에 그리스도교는 벌써 지중해 모든 연안지방에 전파되었고 거기서부터 로마제국의 먼 지역까지 퍼져 나갈수 있었다.’6)




Ⅴ. 결론




  예수의 제자들에 대한 자세는 몬테소리, 피아제와 같은 어떠한 현대의 교육자 보다도 뛰어나셨다. 그분께서는 사랑으로 제자들을 대하셨고 적절한 질책 또한 사랑으로 하셨다. 즉 그분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 그자체를 제자들에게 삶으로써 그대로 보여 주신 분이셨다. 그분은 하느님이시지만 사람이 되심으로써 자신을 제자들의 눈높이로 낮추셨고, 무능력하고 무지한 제자들을 끝까지 기다려 주셨다. 그러한 예수께서는 지금 십자가를 팽개치고 제뜻대로 걸어가고 있는 우리 또한  기다리고 계신다.


















───────《참고문헌》───────




과르디니, 로마노. 『주님』. 남현욱·박재순(역). 바오로딸, 1995.


한국신학연구소 성서교재위원회. 『함께 읽는 신약성서』. 한국신학연구소, 1994(4).


마르티니, C. M. 『루가복음』. 성염(역). 성바오로, 1990.


한국신학연구소 성서교재위원회. 『함께 읽는 신약성서』. 한국신학연구소, 1994(4).


Brown, Raymond E., et al.(eds). The New Jerom Biblical Commentary. London : Bath Press, 1990(2).


스니어, 도널드. 『예수는 누구인가』. 임정남(역). 풀빛,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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