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운데 나신 구세주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을 화해시켜
“천사는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너희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러 왔다. 모든 백성들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이다. 오늘밤 너희의 구세주께서 다윗의 고을에 나셨다. 그분은 바로 주님이신 그리스도이시다.”(루가 2,10-11)

이제부터는 하느님이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보내 주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천 년을 기다려 오던 구세주는 이 세상에 오셔야만 했고 또 실제로 오셨다. 그러나 하느님이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구세주가 바로 2천년 전에 유대 나라 베들레헴 고을에서 태어난 예수라는 사실은 하느님의 계시를 바탕으로 한 믿음으로써만 알 수 있다. 믿음이 없이는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예수는 바로 구세주이시다”라고 고백할 수 없다.

1. 예수의 탄생
마태오 복음서와 루가 복음서는 구세주 예수께서 탄생하셨던 당시의 상황을 매우 자세하게 묘사하였다(마태 1,18-25; 루가 1,26-2,21 참조). 이 두 복음서는 똑같이 예수님이 마리아라고 하는 처녀에게서 탄생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는 것은 우리의 이성으로써는 도저히 알아 들을 수 없는 신비이다. 그러나 구약의 이사야 예언자는 이미 임마누엘이 한 처녀에게서 태어날 것임을 예언하였고(이사 7,14), 신약의 마태오, 루가 두 복음서는 천사가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구세주가 탄생하실 것임을 예고하였다고 기록하면서 우리의 믿음을 요구한다.
마리아의 약혼자였던 요셉은 당시의 로마 황제 아우구스또의 호구조사령에 따라서 성신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여 만삭이 된 마리아와 함께 조상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갔다. 그곳의 외양간에서 마리아는 해산하여 아기를 구유에 눕혔다고 루가 복음서는 묘사하였다(2,1-7 참조). 이 아기야말로 “하느님이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신”(요한 3,16) 구세주였다.
“지극히 자비로우시고 지혜로우신 하느님께서는 세상 구원을 완수하시려고 ‘기한이 찼을 때에 당신 아들을 보내시어 여인에게 태어나게 하신’”(갈라 4,4; 교회 52) 인 것이다. 예수께서 탄생하신 날 밤에 하느님의 천사는 목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 “오늘밤, 너희의 구세주께서 다윗의 고을에 나셨다”(루가 2,11).

2. 말씀이 사람이 되시다.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예수님에게서 그 절정에 달한다. 예수님은 바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루가 1,32) 분이시고 “말씀이 사람이 되신”(요한 1,14) 분이시다. 그러기에 우리는 믿음으로써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성신으로 동정녀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심”(사도신경)을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요한 복음서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 인성을 취하셔서 사람이 되신 것은 하느님이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시기(요한 3,16)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하느님은 죄인들인 사람들과 당신 사이에 평화 혹은 상통을 성립시키기 위하여, 또 사람들 사이에 형제적 공동체를 실현시키기 위하여 우리 육체를 취하신 당신 아들을 보내심으로써 인간 역사 안에 새롭고 결정적인 방법으로 개입하시기를 결의하셨다. 이는 하느님이 당신 아들로 말미암아 인간을 암흑과 사탄의 세력에서 구해내시기 위하심이었고(골로 1,13) 당신 아들 안에 세상을 당신과 화해시키기 위하심이었다”(교회의 선교활동에 관한 교령 3). 하느님의 아들이 인성을 취하셔서 사람이 되신 것을 강생, 육화, 인화, 혹은 수육이라 한다.

가. 예수님은 참 사람이시다.
예수께서는 우리와 똑같이 역사 안에 태어나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참 사람이시다. 육체와 영혼이 있고 지성과 의지와 감정이 있는 그야말로 “죄를 제외하고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모든 일에 유혹을 받으신”(히브 4,15) 분이시다.
그분은 자라면서 부모에게 순종하셨고(루가 2,51) 때로는 배고픔을 느끼셨고(마르 11,12) 친구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셨으며(요한 11,35) 끝내는 십자가에 달려 고통과 죽음을 당하셨다. 만일에 예수께서 참사람이 아니고 오직 사람의 탈을 쓴 하느님이시라면 그분에게 순종과 배고픔과 죽음이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께서 우리와 조금도 다름없는 역사적인 한 인물이셨다는 점은 우리에게 무한한 친근감을 갖게 한다.

나. 예수는 참 하느님이시다.
우리는 예수께서 하느님이시라고 하는 점을 성경의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요한 복음서는 서두에 “맨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1,1)고 예수님의 신성을 말한다. 사람이 되신 예수님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이셨다. 그분은 하느님 아버지와 하나이시며(요한 10,30)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계셨던 영원한 분이시고(요한 8,58) 부활이요 생명이시다(요한 11,25). 모든 것은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고 이 말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골로 1,17). 그러므로 예수께서 참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생명가지라도 바쳐서 그분을 믿고 따를 수 있는 힘을 얻게 한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하느님이 아들이 인성을 취하셔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다는 사실은 그리스도 교회의 근본이 되는 신비이며 신앙 교리이다.

3. 예수님은 과연 12월 25일에 탄생하셨는가?
12월 25일이 되면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예외 없이 구세주의 탄생을 기뻐하며 서로 축하의 인사를 교환한다. 그런데 “과연 역사의 예수님은 12월 25일에 태어나셨는가?”하는 문제를 보는 것은 무척 흥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교회에서 처음으로 성탄축일이 제정된 것은 대략 2-3세기였다. 이것은 교회가 생일축제를 성대하게 지내는 고대 희랍과 로마의 관습에서 그 영향을 받은 것이라 본다. 고대 희랍인들이나 로마인들도 현대인들처럼 출생일에 생일축제를 지내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출생일이 아닌 다른 상징적인 날을 정해서 지내기도 했다. 그런데 태양신을 공경하던 로마인들은 12월 25일을 겨울철의 태양이 바뀌는 날이라 하여 기념제를 지냈었다. 예수님의 정확한 탄생일을 모르던 당시의 그리스도 신자들은 로마인들이 태양신을 공경하던 그날을 정의의 태양이신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정하여 축제를 지냈다. 즉 예수의 탄생을 새로운 태양의 떠오름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정하게 된 연유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탄생일이 정확히 언제냐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하느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상 우리 인간에게 가장 중대하고도 필요한 사건이었고, 이로써 인간은 구원받게 되었다. “하느님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단죄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시켜 구원하시려는 것이다”(요한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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