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승씨의 「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창조는 ‘처음으로 만듦’ 또는 ‘신이 우주 만물을 지음’이라고 풀이되고 있다. 「철학대사전」(학원사편)은 창조를 ‘전혀 새로운 것의 산출을 의미한다. 창조하는 힘은 무한한 힘이므로 이 힘은 마땅히 신에게만 고유한 것이라 할 수 있다.’라고 설명한다. 이와 같이 엄밀한 의미에서의 창조 행위는 무한하신 신에게만 해당되는 것으로서 어떤 도구나 재료를 사용하여 무엇을 만들어 내는 제작과는 전혀 그 의미가 다르다. 이 우주 만물이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것은 계시의 힘을 빌지 않더라도 누구든지 다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맨 처음 무로부터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는 것은 우리의 자연적인 이성으로써만 알아 들을 수 없고 발달된 현대의 자연과학으로써도 증명할 수 없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도 이 창조의 개념을 인간의 자연적 이성만으로써는 알아들을 수 없다고 명백히 가르치고 있다.
창조의 개념은 오직 믿음 안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선 하느님 자신이 자연과학으로는 증명되지도 않고 증명할 수도 없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이사야 예언서 40장에서 55장까지에는 창조주이시며 만물을 다스리시는 야훼 하느님의 모습이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아라…너희는 모르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야훼께서는 영원하신 하느님, 땅의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40,26.28). 즉 이스라엘 민족으로서는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야훼 하느님께 추호의 의심도 가질 수 없다는 그들의 믿음을 나타내는 표현이겠다. 또한 욥기 38장에서 야훼 하느님은 당신의 창조 지혜가 불가사의한 신비임을 강조하시면서 욥에게 무조건적인 믿음과 복종을 요구하신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너는 어디 있었느냐? 그렇게 세상물정을 잘 알거든 말해 보아라”(38,4)
“네가 북두칠성에게 굴레라도 씌우고 오리온 성좌의 사슬을 풀어 주기라도 한단 말이냐? 네가 성좌들을 정한 시간에 이끌어 내고 대웅좌 소웅좌를 인도해 내기라도 한단 말이냐?”(38,31-32). 이 밖에도 성경은 곳곳에서 하느님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나타내고 있다(지혜 1,14; 7,21; 집회 18,1; 출애 20,11; 요한 1,1-3, 사도 4,24; 로마 11,36; 1고린 8,5; 골로 1,16; 히브 3,4; 묵시 4,11 등 참조). 시편의 저자는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 야훼의 이름밖에는 우리의 구원이 없구나”(시편 124,8)라고 노래했으며 우리는 사도신경 첫머리에서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믿나이다”라고 우리의 믿음을 고백한다.
창조는 어떤 도구나 재료도 사용하지 않고 무에서부터 어떤 것을 만드는 것이라고 앞에서 설명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란 무엇인가? 여기에 대한 설명은 극히 힘들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미 있는 언어와 문자를 가지고 없는 것을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2세기에 희랍적 우주관에 대항하여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옹호하던 교부들 중의 한 사람이 따시아누스는 무로부터의 창조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맨 처음에 하느님이 계셨다고 하는데 우리는 이 말을 ‘말씀’의 능력이 계셨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우주 만물이 아직 창조되지 않았을 적에도 그분은 이미 계셨으므로 우리는 그분을 우주 만물의 주인이라고 부른다…맨 처음에 하느님은 재료를 필요로 하시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하느님과 동등한 자격을 가진 존재가 그분과 함께 있었던 것도 아니다. 물질은 오직 창조된 것일 뿐이며 만물의 창조주 한 분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다.” 성 아우구스띠누스도 하느님은 그 절대적 자유 의지에 의하여 무로부터 세계를 창조하셨다고 하였다. 무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어떤 텅 빈 공간이 아니다. 텅빈 공간이라고 하면 우리는 이미 그 속에 아무것도 들어 있는 것은 없으나 어느 정도는 정돈된 공간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창조하시기 전의 무는 이 공간, 시간까지도 없는 것을 의미한다. 창세기는 이것을 “땅은 아직 모양을 갖추지 않고 아무것도 생기지 않았다”(1,2)고 당시의 표현 방식을 빌어 나타내고 있다. 그러니까 시간과 공간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시간과 공간까지도 배제하는 무를 이해할 수가 없다. 따라서 자연과학이 창조개념을 증명하지 못함은 지극히 당연하다. 우리는 오직 계시의 빛을 받아서 하느님께서 우주 만물을 -시간과 공간가지도- 무로부터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믿을 뿐이다. 교회는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들의 창조주를 믿으니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 즉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것, 육체적인 것과 영신적인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그분 안에서, 그분을 통하여 있나이다.”(1215년 리용 공의회).
“창조주 없이 피조물은 허무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뿐 아니라 어떤 종교이건 신앙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피조물들의 말 속에서 하느님의 계시와 말 소리를 언제나 들어 왔다. 더욱이 하느님을 잊어 버린다면 피조물 자체의 정체도 어두워지고 만다”(사목 36).
하느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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