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4. 종교개혁자들의 하느님 이해
종교개혁자들의 하느님 이해는 중세 후기의 하느님 이해를 배경으로 설명될 수 있다. 프란치스코회 신학자인 둔스 스코뚜스(Duns Scotus, +1308)은 아리스토텔레스-토마스적 사고에 포함된 인과법칙을 문제삼으면서, 무엇보다도 세상에는 신적인 지성에서 유래하여 그에 의해 규정된 질서가 있다는 생각을 거부하였다 둔스 스코뚜스에 의하면 세상이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꿰뚫어볼 수 없다는 것이다. 세상의 진행이 하느님의 뜻 아래 놓여져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하느님에게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실현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당신의 절대적인 능력을 항상 지혜와 사랑 안에서 행하시기는 하지만 세상의 법칙성을 받아들이고 형성하는 데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따라서 체험할 수 있는 세상 사물에서 거슬러 올라가 그 가능성의 조건으로서의 하느님을 추론하는 것은 불가하게 되었다.
스코뚜스의 사상에서 이미 의문에 처해졌던 이성과 신앙의 종합은 윌리엄 오캄(Wilhelm Ockham, +1347년 이후)의 이른바 유명론(唯名論)적 사고에서 결정적으로 깨지게 되었다. 그에 따르면 하느님의 유일성과 전능과 같은 본질적 속성은 철학적으로 철저하게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단지 신앙고백과 하느님께 대한 신앙만이 가능하게 남아있고, 인간은 하느님의 자유로운 뜻에 순종하면서 자신을 내맡겨야 한다. 하느님은 제한없이 초월적이고, 그분의 능력은 세상의 질서을 위에 절대적으로 서있으며, 세상의 질서를 항상 바꿀 수 있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546)의 사상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나는 종교개혁자들의 하느님 이해는 중세 후기의 전통과의 관련 속에 있다고 하겠다. 하느님의 위대함과 존엄성 때문에 인간은 하느님께 다가갈 수 없다는 루터의 가르침은 신비주의의 체험과 오캄주의와 유사하다. 인간은 하느님의 숨어있는 능력에 직접적으로 내맡겨져 있다. 하느님은 자신의 피조물을 자유로이 다룰 수 있고 그의 길을 조정할 수 있다. 하느님은 어떤 법규에도 매이지 않고 그의 결정은 헤아릴 수 없다. 죄는 하느님과 인간의 사이를 더 깊고 넓게 만든다. 오직 하느님의 구원 선행권(先行權)만이 인간을 이런 곤경에서 구원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전달하시는 하느님의 자기 계시는 하나의 약속으로서, 인간은 오직 신앙적 신뢰 안에서 이 약속을 붙잡아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느님은 인간의 이성에게는 숨겨져 머무른다. 믿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영광은 오직 십자가의 수치를 통해서 드러난다. 자신이 한 약속에 대해서 충실하신 하느님께 대한 믿음만이 자신의 계시 속에 숨어계신 하느님의 신원을 예감할 수 있을 뿐이고, 하느님을 직접 바라보는 것은 종말에 유보되어 있다. 이렇게 루터의 하느님 상에는 계시된 하느님(Deus revelatus)과 숨겨진 하느님(Deus absconditus) 사이의 긴장이 지속적으로 자리하고 있다.
루터 자신은 스콜라 신학과 구분되는 의미에서 자신의 신론을 개념적-조직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이 과업을 넘겨받은 것은 ‘루터파’ 신학자들이었는데 루터 신학 전체를 표현하는 데에는 그렇게 성공하지를 못하였다. 스콜라 신학의 모델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이미 필립 멜랑히톤(P.Melanchton, +1560)에게서 시작되었고, 이는 루터파의 정통신학에 분명하게 자리잡게 되었다. 쯔빙글리(H.Zwingli, +1531)와 칼빈(J.Calvin, +1564)은 전통적인 인과법칙을 수용하여서 예정론의 형태로 이끌어갔다. 칼빈에게서는 예정론적 신앙보다는 계약의 사상에서 나타나는 인격적인 신 이해가 더 강하게 대두된다.
하느님 신앙을 이성적으로 밑받침하는 것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을 지녔던 중세 후기의 신학적 경향은 루터로 하여금 성서에 증언된 하느님의 계시로 돌아가도록 이끌었다. 루터의 저서에는, 인간이 구원되고 의화되기 위해서 오로지 믿고 의존해야 하는 하느님의 은혜로운 자비의 위대함에 대한 실존적인 깊은 체험이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이런 실존적인 체험은 성서가 증언하는 인격적인 하느님 이해에 상응하는 것이다. 루터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하느님께서 자신의 약속에 충실하신 데에 있다고 보았다. 스콜라 신학의 신론에서 등장하는 형이상학적인 하느님의 속성에 대한 언급 대신에 자신을 계시하면서도 여전히 숨어계신 하느님의 역사적 능력에 대한 신앙이 자리하였다.
3.3.5. 근대의 인간 주체에로의 전환과 그에 따른 하느님 이해
16세기는 여러 측면에서 큰 전환의 시기였다. 근대는 ‘코페르티쿠스적 전환’, 즉 종래의 지구중심적 천동설에서 태양중심적 지동설에로의 전환과 함께 시작되었다. 근대의 사상가들은 기존의 우주론적 질서 구조의 사고가 붕괴하자 인간 자신의 의식에로의 결정적인 전환으로 응답하였다. 근대의 인간학적 전환은 인간을 세상과 하느님 인식의 출발점과 관련점으로 삼게 만들었다.
이는 프랑스의 철학자 테카르트(R.Descartes, +1650)에게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신 문제에서 테카르트는 안셀모의 논증을 수용하면서 인간은 완전한 존재라는 신 관념을 지닐 수 있다는 사실에서 이런 관념이 있도록 하는 유일한 원인, 실제로 존재하는 완전한 정신을 추론하였다. 이런 사고는 데카르트가 가장 기본적으로 확실하고 자명하다고 설정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로부터 시작한다. 데카르트는 “나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신은 존재한다”(sum ergo Deus est)라고 표현하는데, 여기에서 근대의 사상에는 초월적(transzendental) 사고, 즉 인간의 사고체험에서부터 그렇게 사고할 수 있는 가능성의 조건을 숙고하는 하는 방식이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런 숙고 방식은 나중에 칸트(I.Kant, +1804)와 밀접히 연결되어 나타난다.
칸트의 인식론적 철학은 직접적으로 인식의 대상을 향하지 않고 인간 주체 안에 놓여있는 인식 가능성의 조건에 대해서 묻는다. 유한한 인간의 의식은 경험세계에 속하지 않는 하느님을 인식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인간 의식은 경험 세계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칸트는 중세의 신존재 증명을 격렬하게 비판한다.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의 세 번째 길인 가능과 필연에서 취한 신존재 증명에 반론을 제기하는데, 인과법칙은 오직 경험의 영역에만 사용될 수 있기에 그것을 사용해서 하느님에게 이르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칸트는 순수이성의 측면에서 하느님을 인식할 수 없다고 하지만, 실천이성과 관련시켜서 하느님이 요청된다고 주장한다. 즉 인간 안에는 定言的 명령(kathegorischer Imperativ)으로 표현되는 무조건적인 도덕의식이 자리하는데(“네 의지의 원칙이 항상 일반적인 입법의 원리로 간주될 수 있도록 행동하라”), 그것의 대가로서의 행복이 이 지상에서는 반드시 보장되지 않는다. 그래서 하느님은 무조건적 도덕의식과 행복이 상응하도록 하는 조건으로서 요청된다는 것이다.
헤겔(G.W.Hegel, +1831)을 포함한 독일 관념론의 철학자들은 하느님을 더 이상 도덕적인 자기 실현에만 연관시키지 않고 정신(Geist)으로서의 인간의 자기 실현과 관련지어서 언급한다: 역사 안에서 정반합의 원리를 통해서 절대정신은 우선적으로 그리고 깊이 자신을 실현하는데, 절대정신을 파악하면서 그와 관계하는 것은 인간(주체적인 정신)에게 세계와 역사 안에서의 자신을 확인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절대 정신 안에서 즉 하느님의 삼위일체적 정신적 자기실현 안에서 자신을 이해한다; 하느님은 자신의 역사적인 자기 중개를 안에서 자신을 인식하고, 하느님의 자기 중개는 인간이 자기 자신에게로, 자신의 본래 모습에로 오도록 한다. 하느님의 자기 계시는 하느님 안에서 인간의 자기 계시이고, 하느님의 자기 계시는 인간과 그의 역사 안에 있다. 이렇게 헤겔은 유한의식과 무한의식을 동일시 하고 인간과 하느님을 동일시한다.
19세기 중엽에 산업혁명과 자연과학적-기술적 진보는 실증주의적 사고 방식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고 이와 함께 신론에 관련해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실증주의 철학자들에게 “신”이란 단어는 의미가 없고 이해할 수 없는 단어로 비추어졌는데, 왜냐하면 신이란 말은 실제의 체험을 통해서 파악되는 실재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고 그래서 “주어져 있는” 것을 대상으로 정확한 방식을 적용하는 학문적 이상에 부적합하기 때문이다.
이런 실증주의적인 확신이 팽배한 정신적인 바탕에서 근대적인 인간 자율(Autonomie)추구의 경향에 힘입어 여러 형태의 종교비판과 무신론이 형성되었다. 여기에서 두 가지 기본 형태가 구분되어야 한다. 자연, 사회, 인문과학과 같은 현대의 학문, 정치, 경제, 문화 등은 자율성을 주장하는데, 자신들의 영역에서 더 이상 “가설(假說, hypothesis)로서의 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적어도 방법론적으로 신의 존재 문제를 도외시하거나 혹은 더 나아가서 세상에 대한 관심이라는 명목으로 신의 존재를 명백히 부정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두 번째 형태의 무신론은 인간 자율성 획득의 노력에서 형성된 것으로서 인간의 품위와 그 실현이 신의 존재로 인해서 위협받는다고 간주하면서 적극적으로 종교를 배척한다.
루드빅 포이어바흐(Ludwig Feuerbach, +1872)는 현대 무신론 현대 무신론에 대한 참조: 한스 큉, 『신은 존재하는가』 I, 성염 옮김, 분도출판사, 1994, 273-585.
의 중심 인물로서 신개념은 인간의 투사물 외에 다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즉 인간은 자기 인간 본성을 자기 밖에 설정하고 그것이 마치 자기 밖에, 자기로부터 분리되어 존재하는 무엇으로 본다. 그래서 그것을 하늘에 있는 자립적 형상으로 투사(投射, Projektion)하고 그것을 신이라고 부르며 그에게 예배드린다. 신은 인간의 투사된, 실체화된 영상(暎像)으로 떠오르는데 사실 그 뒤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신적인 것이란 곧 후세에로 투사된, 보편적으로 인간적인 것이다. 신적인 본성의 속성들, 사랑, 지혜, 정의 같은 것은 사실상 인간의, 인류의 속성들이다. 바로 여기에 종교 전체의 신비라는 것이 숨어있다. 포이어바흐는 왜 투사가 이루어지느냐에 대해서, 인간 개개인은 제한된 시각을 갖고서 자신의 불완전성만을 보고 인류의 완전성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는 무신론적 인본주의를 통해서 종교가 폐지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포이어바흐에게서는 인간에 대한 통찰이 그릇되었기에 결국 인간에게 신성을 부여했다고 하겠다. 바로 이점을 칼 바르트는 명확하게 지적하였다. “만일 인간을 두고 오로지 실존주의적 개념으로 사유해야 한다면, 진짜 인간이란 개개 인간이어야 한다. 그 시대의 모든 신학자들이 그랬듯이 포이어바흐도 인간 전반을 놓고 논구하였다. 그런 인간에게 자기 나름의 신성을 부여함으로써 실재로 존재하는 인간에 관해 사실상 포이어바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포이어바흐에게는 [실존하는 개인과 인간 전반] 양자를 광범위하게 교차하는 존재로 만들려는 성향이 있어서, 개개 인간을 두고 이야기하면서 마치 개개 인간이 인간 전반인 것처럼 말하고 그러다 보니 개인에게 감히 신성을 부여할 정도가 되었다. 이것은 개인의 사악함이나 그 개인이 분명히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함에 있어서 신실하고 솔직하지 못했다는 사실과 긴밀한 연관이 있다. 만일 포이어바흐가 이 사실을 진정 의식하였다면 이렇게 일반화된 인간 개념이 가공(架空)적 성격을띠고 잇다는 사실을 간파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랬더라면 신을 인간, 그것도 실재적 인간, 말하자면 추상의 요소를 인간에게 제거해 버릴 때 거기 남는 인간과 동일시하는 일을 삼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대의 신학은 개인을 제대로 의식하지 못했거나 인간의 사악함과 죽음을 진지하게 숙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포이어바흐에게 그러한 관점을 가르쳐줄 수 없었을 것이다”. K.Barth, Die protestantische Theologie im 19.Jahrhunderts, 489; 한스 큉, 『신은 존재하는가』 1, 307-308에서 재인용.
칼 마르크스(Karl Marx, +1883)는 종교란 인간의 자기 소외라고 정의한 포이어바흐의 견해가 옳다고 보고서, 자기 소외의 사회적 경제적 원인을 고찰한다. 즉 종교란 인간의 시선을 불의한 사회, 경제 구조로부터 후세의 약속에로 향하게 함으로써 거짓 위한을 주고 현실 변혁의 의욕을 꺽어놓기 때문에 기만적이거나 환각제 같은 효과를 내는 데에 그친다, 그러므로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무신론적 사회주의를 통해서 기득권 유지에 이바지하는 종교가 소멸될 것으로 예상하였다.
프리드리히 니이체(Friedrich Nietzsche, +1900)의 “신의 죽음”이란 말도 사실은 포이어바흐의 투사설에 근거한다. 그 역시 신개념이란 인간 원의의 영상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서 인간다운 삶을 방해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에 의하면 그리스도교의 신개념은 인간 삶의 반대 개념이다. 즉 신개념은 현세의 삶을 비본래적이고 임시적인 것으로서 평가 절하한다는 것이다. 니체는 신개념과 세상의 윤리질서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고 간파하고는 신의 죽음으로 모든 윤리적 질서가 붕괴되어 허무주의로 향하는 것을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3.3.6. 무신론에 대한 제1차 바티칸 공의회의 대응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70)는 그리스도교의 교도권 역사상 처음으로 하느님의 존재에 대한 문제에 명시적으로 입장을 표명하였다. 공의회는 당시에 만연해있던 불가지론적, 무신론적 경향에 반대해서 신앙에 대한 교의적 헌장 “Dei Filius”의 카논 제1조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만일 누가 한 분이신 참된 하느님, 가시적이고 비가시적인 사물의 창조주이시며 주님이신 분을 부인한다면 파문될지어다”(DS 3021).
또한 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로마 1장 20절과 관련지으면서 창조된 사물들로부터 ‘자연적’으로 하느님을 인식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어머니이신 교회는 다음과 같이 고수하고 가르친다: 모든 사물의 근본이며 목표이신 하느님은 인간 이성의 자연적인 빛에 의해서 창조된 사물로부터 확실하게 인식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분의 보이지 않는 속성,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은 세상이 창조된 이래 그 지으신 것들을 통하여 이성(의 눈)에는 보이기 때문이다’(로마 1,20)”(DS 3004). “만일 누가 유일하고 참된 하느님, 우리의 창조자요 주님이신 분을 인간 이성의 자연적 빛에 의해서 창조물을 통하여 확실하게(certo) 인식될 수 없다고 말한다면 단죄될지어다”(DS 3026).
인간 이성을 통한 신인식의 가능성을 긍정한 것은 불가지론, 즉 자연과학적 방법론인 측정과 분석을 통해서 검증 가능한 것만을 분명한 것으로 인식할 수 있다고 간주하고 그것이 불가능한 것은 인식할 수 없다거나 심지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이다. 또한 이 결정은 가톨릭 교회 내의 소위 “신앙주의자들”, 혹은 “전통주의자들”들에 대한 반박이기도 하다. 19세기에 프랑스 가톨릭 철학자와 신학자들(L.G.-A. de Bonald, H.-F.R. de La Mennais, L.-E.-M.Bautein, A.Bonnetty)사이에서 인간 개개인의 이성은 확실한 종교적-윤리적 인식을 지닐 수 없다는 견해가 형성되었다. 이런 인식은 권위적으로 전통, 국민정신, 교회를 통해서 증거되는 신적인 계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견해에서는 계시 과정과 교회의 전통에서 인간이 자신의 이성을 통해서 책임성 있게 결단하면서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인다는 가능성은 거부된다. 그러나 하느님의 계시는 하느님의 부르심과 인간의 응답이라는 대화적 구조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인간의 품위와 영예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이런 견해에는 문제가 있다고 하겠다.
피조물을 통해서 신인식이 가르침은 물론 성서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지혜 13,1-9에 따르면 인간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통해서 하느님을 알아 볼 수 있다. 로마 1,18-21에 의하면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때부터 창조물을 통해서 당신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나타내 보이셔서 인간이 보고 깨달을 수 있게 하셨다. 사도 17,22-30에서는 이방인들도 하느님을 알아볼 수 있는 가능성이 인정된다. 교회의 전통에서는 이런 성서 구절이 반복되어 인용되었는데, 이미 교부들은 철학적 신존재 증명의 형태로 이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인간의 인식능력이 죄를 통해서서 파괴되지 않았는가, 사실상의 신인식은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가능하게 되지 않았는가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 이런 의구심은 20세기 개신교 신학의 거장 칼 바르트(K.Barth)와 루돌프 불트만(R.Bultmann)에 의해서 대표되었던 ‘변증법적 신학’(Dialektische Theologie)에 의해서 다시금 분명하게 대두되었다. 그들은 왜곡되지 않은 진정한 신인식은 오직 (성서 안에 증거된) 하느님의 역사적인 말씀의 계시와 그를 믿음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바르트는 특히 자신의 초기 신학에서 이를 분명하게 드러난다. “바르트에게 자연적 인간은 철저히 죄인, 그것도 이성과 책임을 갖춘 죄인이다. 이런 죄인인 인간의 이성은 하느님의 진리를 알아볼 수 없다! 분명 인간에게 종교성, 신인식이 가능하고, 인간은 이에 대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에 목적에 이르지 못한다. 왜냐하면 인간 이성이 자연적 신인식을 통해서 인식한 신은 -철학이든 신학이든, 세계의 종교에서든- 인간이 投射(Projektion)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즉 인간의 세계관적 환상의 산물이고 참된 그리스도교적 하느님이 아니다. 이는 우상이며 대용적 신(Ersatzgott)이고 反神(Gegengott)이다. 인간은 참된 하느님을 인식할 수 없다! 단지 하느님 스스로 자신을 알도록 하는 것외에는, 하느님이 자신을 드러내고 계시할 때 이것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계시없이는 인간이 하느님을 인식할 수 없다! 하느님 홀로 주도권을 지니고 있다. 그는 계시의 내용인 동시에 계시를 가능케한다”. H.Küng, Existiert Gott?, München, 1979, 568f.
이런 주장의 배경에는 인간 이성에 대해서 회의적인 태도를 지녔던 루터가 자리하고 있다. 루터는 인간 이성을 “창녀 이성”(Hure Vernunft)으로, 당시 신학에 중대한 역할을 하였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를 “사기꾼”이라고 깍아내렸던 것이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하느님의 존재와 인식 가능성에 대한 문제에만 입장을 표명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특성들을 나열함으로써 그분의 본질에 대해서도 서술하였다.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적인 로마 교회는 다음과 같이 믿고 고백한다: 참되고 살아계신 하느님은 한분으로서 그분은 하늘과 땅의 창조주요 주님이시며, 전능하고 영원하며 헤아릴 길없고 파악불가능하며 이해, 의지 그리고 모든 완전성에서 있어서 제한이 없으시다. 그분은 유일하고 자립적이며 아주 단순하고 불변하는 영적인 존재이시기에 그분은 세상과는 실제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그분 자체로 행복하고, 그분 외의 모든 것,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말할 수 없이 초월하신다고 선포해야 한다”(DS 3001). 이 결정은 당시의 범신론적, 불가지론적 경향에 반대해서 지금까지의 신앙 전통에서 믿어온 하느님의 본질적인 속성을 함께 엮으려고 시도한 것이라고 하겠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가 신인식이 원칙적으로 모든이에게 가능하다고 선포한 것은 엘리트적이고 비교(秘敎)적인 사고를 거부하였다는 점에서 큰 중요성을 지닌다. 신인식이 소수의 신비관리자나 전문가에게 유보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 전통의 전래된 가르침에 따르면 이른바 신존재 증명이 하느님의 말씀의 계시 이외에 하느님을 인식할 수 있는 적합한 길이다. 신존재 증명을 제대로 하려면 특정한 논리적 지식과 특정한 철학적 기본개념에 대한 이해가 전제된다. 이는 소수의 ‘지식인들’만 그들의 신체험과 신인식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식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 가지 신존재 증명은 단지 인간 실존의 초월적 기본 체험에 대한 개별적이고도 특별히 부각된 반추 형태일 뿐이다. 즉 모든 인간은 자신의 정신적 실존, 정신적 행동 중에 – 즉 무엇에 대해서든지 판단하고, 자유로이 결단할 때 – 하느님과 관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인간이 그가 판단하고 결단하면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을 ‘신’이라고 부르던지 혹은 다른 것으로 부르던지, 그것에 대해서 반추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그것에 대한 인식을 수용하고 긍정하던지 혹은 인정하지 않고 억압하던지, 인식의 과정 자체에서 볼 때에는 큰 상관이 없다.
일부 가톨릭 신자들은 실제로 두 단계, 즉 ‘자연적’ 단계 그리고 ‘초자연적’, 혹은 은총의 단계가 존재한다고 가정하면서 신인식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이해한다: 인간은 이성을 통해서 하느님을 일반적으로 인식할 뿐이고 비로소 말씀의 계시를 통해서 분명하고 정확하게 하느님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두단계 이론은 칼 라너의 신학적 노력 참조: H.Küng, Existiert Gott?, 571-575.
이후에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라너에 의하면 신자이든 비신자이든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사실상 초자연적 목표(지복직관)를 향해서 창조되었고 그래서 애초부터 초자연적으로 각인되었다(초월적 존재). 이는 인간 본성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실존적으로(초자연적 ‘실존’: übernatürliches ‘Existential’) 그러하다. 여기서 ‘자연’(natura)이란 개념은 실제 개념이 아니라 가상 개념으로서 하느님의 자유과 하느님 은총의 무상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은총에 불림을 받았고 오직 하느님 안에서 자신의 목표 달성한다. 다시 말해서 비신자까지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서 하느님 은총의 현존하여 작용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 결정문에 적용해서 얘기하자면, 이성의 “자연적 빛”이란 결코 말 그대로의 순수 인간의 능력에만 의존한 자연적 빛이 아니다. 하느님 인식은 어떤 경우든 인간의 인식인 동시에 그 인식을 앞서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모든 신인식은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계시에 의해서 가능하게 된 것이다
3.3.7.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신스콜라 신학 시대가 지난 후에 하느님 신앙의 근거를 마련하려는 신학적 노력은 분명한 “인간학적 전환”을 통해서 표현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두 문헌에서 신문제를 주제로 삼았는데 두 문헌 모두 현대세계의 도전에 의식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목헌장” 19-21장에서는 무신론적 사상과의 대화를 계속 전개하려고 시도한다. 사목헌장은 우선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이 하느님과 결합되기 위하여 불리었다”는 데에 있다고 전제한다(19항). 그리고는 하느님은 인간의 자유실현의 방해자로서가 아니라 인간 깊숙히 자리하는 구원, 선함, 생에 대한 갈망이 채워지도록 하는 최종적, 본래적 보증자로서 나타난다고 역설한다.
“교회는 신 긍정(神肯定)이 인간 존엄성에 결코 배치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인간의 존엄성은 하느님 안에 기초를 두었고 그분 안에서 완성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창조주이신 하느님께로부터 지성과 자유를 갖춘 사회적 존재로 창조되었고 더욱이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느님과의 일치와 그 행복에 참여하도록 불리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교회는 또한 세상 종말에 대한 희망이 지상 사명의 중요성을 감소시키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새로운 동기를 주어 지상 사명 완수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이와 반대로 하느님께 기초를 두지 않고 영생(永生)에 대한 희망이 없게 되면 오늘 흔히 볼수 있는 것처럼 인간의 존엄성은 심한 상처를 받을 것이며 생명과 죽음, 죄와 고통의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아 절망에 빠지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막연하게 인식한 미해결(未解決)의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사실 인간이면 누구나 일정한 시기에 특히 인생의 중대한 사건 앞에서 위의 의문을 피할 수는 없다. 이 의문에 완전하고 확실한 해답을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인간을 보다 높은 사색과 보다 겸허한 탐구에로 부르신 하느님 한 분 뿐이다“(21항).
이어서 사목헌장은 인간이 자신을 책임성 있게 그리고 성공적으로 실현하는 데에 하느님 신앙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오늘날 그리스도교의 하느님 선포에 결정적인 기준이 된다고 밝히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신인식의 가능성에 관해서는 제1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정을 반복한다. “거룩한 공의회는 ‘만물의 근원이시며 목적이신 하느님이 인간 이성의 자연적 빛에 의해서 창조물을 통하여 확실하게 인식될 수 있다’(로마 1,20 참조)는 것을 인정”한다(계시헌장 6항). 그러나 이 결정을 무신론자들을 단죄하기 위해서 사용하지는 않는다. 물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 원칙적으로 무신론을 배격하지만, 무신론의 발생에는 교회의 잘못도 일부 있었음을 시인한다. “무신론이란 전체적으로 보아서 자체 안에 그 근원을 가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러 가지 원인에서 생겨나는 것이며, 그 원인 중에서 종교에 대한 비판적 반동, 어떤 지역에 있어서는 특히 그리스도교에 대한 반항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무신론 발생에 적지 않은 책임을 신앙인들이 질 수도 있다. 자신들의 신앙 배양(培養)을 등한시하거나 교리를 잘못 설명하거나 종교 생활, 윤리 생활, 사회 생활 면에서 결점을 드러냄으로써 하느님과 종교의 참 모습을 보여 주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가려 버리기 때문이다”(사목 19항).
공의회는 무신론과의 대화에서는 인간 문제의 유일한 해답인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것에 역점을 두었는데, 세계 종교들과의 대화에서는 각기의 하느님 선포에서의 공통성과 특성에 대한 숙고를 요구하였다. “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Nostra aetate)은 우선 현대의 통신, 교통 수단을 통해서 인류는 날로 더욱 긴밀하게 결합된다고 전제하고는 모든 사람에게 공통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러 민족들은 단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전인류를 온 땅 위에 살게 하시었으니(사도 17,26 참조) 모든 민족들은 단 하나의 기원을 가졌고 또한 단 하나의 최후 목적이신 하느님을 모시고 있다”(1항). 이어서 실제로 여러 종교들이 각기 고유한 방식으로 인간의 최종 기원을 인정하고 경배한다는 것을 인정하고서, “가톨릭 교회는 이들 종교에서 발견되는 옳고 성스러운 것은 아무것도 배척하지 않는다”는 것을 선언한다(2항). 이 문헌은 모든 종교의 신앙인들에게 형제자매적 사랑을 호소하고, 사람이 혈통 혹은 종교 때문에 박해받는 것을 종결짓자고 하면서 끝맺는다. 이 호소는 다음과 같이 신학적으로 밑받침된다. “하느님 아버지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와 이웃 형제들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는 성경이 다음과 같이 말해주듯이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한다’(1요한 4,8)”.
이렇게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하느님 신앙의 중요성을 인간학적으로 근거지우는데 이는 20세기에 전개된 신학적 숙고에 바탕을 두고서 전개된 것이라고 하겠다. 이 신학적 숙고에서는 인간은 ―스스로 알든 알지 못하든― 구체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실현하는 가운데에 절대적이며 신적인 존재에 자신의 존재가 근거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대답한다는 것을 드러내보이려고 한다. 즉 하느님은 인간의 자유와 인식의 실현 가능성의 조건으로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하느님 선포가 믿을만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이런 초월적-인간학적 논거는 예수회원 요셉 마레샬(Josef Maréchal, +1944))의 이름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그는 근대의 인간학적 전환을 신학적 사고에 수용하려고 시도하였다. 많은 신학자들이 마레샬를 추종하였는데, 칼 라너, 요한 밥티스트 로츠(Johann Baptist Lotz), 베른하르트 벨테(Bernhard Welte), 막스 뮬러(Max Müller), 에머리히 코렛(Emerich Coreth) 등이 있다. 이들은 신문제에 관한 마르샬의 방법론적 접근을 받아들여 각기 자신의 방식대로 구체화한다.
2. 성서에 나타난 하느님 체험-(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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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 종교개혁자들의 하느님 이해
종교개혁자들의 하느님 이해는 중세 후기의 하느님 이해를 배경으로 설명될 수 있다. 프란치스코회 신학자인 둔스 스코뚜스(Duns Scotus, +1308)은 아리스토텔레스-토마스적 사고에 포함된 인과법칙을 문제삼으면서, 무엇보다도 세상에는 신적인 지성에서 유래하여 그에 의해 규정된 질서가 있다는 생각을 거부하였다 둔스 스코뚜스에 의하면 세상이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꿰뚫어볼 수 없다는 것이다. 세상의 진행이 하느님의 뜻 아래 놓여져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하느님에게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실현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당신의 절대적인 능력을 항상 지혜와 사랑 안에서 행하시기는 하지만 세상의 법칙성을 받아들이고 형성하는 데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따라서 체험할 수 있는 세상 사물에서 거슬러 올라가 그 가능성의 조건으로서의 하느님을 추론하는 것은 불가하게 되었다.
스코뚜스의 사상에서 이미 의문에 처해졌던 이성과 신앙의 종합은 윌리엄 오캄(Wilhelm Ockham, +1347년 이후)의 이른바 유명론(唯名論)적 사고에서 결정적으로 깨지게 되었다. 그에 따르면 하느님의 유일성과 전능과 같은 본질적 속성은 철학적으로 철저하게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단지 신앙고백과 하느님께 대한 신앙만이 가능하게 남아있고, 인간은 하느님의 자유로운 뜻에 순종하면서 자신을 내맡겨야 한다. 하느님은 제한없이 초월적이고, 그분의 능력은 세상의 질서을 위에 절대적으로 서있으며, 세상의 질서를 항상 바꿀 수 있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546)의 사상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나는 종교개혁자들의 하느님 이해는 중세 후기의 전통과의 관련 속에 있다고 하겠다. 하느님의 위대함과 존엄성 때문에 인간은 하느님께 다가갈 수 없다는 루터의 가르침은 신비주의의 체험과 오캄주의와 유사하다. 인간은 하느님의 숨어있는 능력에 직접적으로 내맡겨져 있다. 하느님은 자신의 피조물을 자유로이 다룰 수 있고 그의 길을 조정할 수 있다. 하느님은 어떤 법규에도 매이지 않고 그의 결정은 헤아릴 수 없다. 죄는 하느님과 인간의 사이를 더 깊고 넓게 만든다. 오직 하느님의 구원 선행권(先行權)만이 인간을 이런 곤경에서 구원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전달하시는 하느님의 자기 계시는 하나의 약속으로서, 인간은 오직 신앙적 신뢰 안에서 이 약속을 붙잡아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느님은 인간의 이성에게는 숨겨져 머무른다. 믿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영광은 오직 십자가의 수치를 통해서 드러난다. 자신이 한 약속에 대해서 충실하신 하느님께 대한 믿음만이 자신의 계시 속에 숨어계신 하느님의 신원을 예감할 수 있을 뿐이고, 하느님을 직접 바라보는 것은 종말에 유보되어 있다. 이렇게 루터의 하느님 상에는 계시된 하느님(Deus revelatus)과 숨겨진 하느님(Deus absconditus) 사이의 긴장이 지속적으로 자리하고 있다.
루터 자신은 스콜라 신학과 구분되는 의미에서 자신의 신론을 개념적-조직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이 과업을 넘겨받은 것은 ‘루터파’ 신학자들이었는데 루터 신학 전체를 표현하는 데에는 그렇게 성공하지를 못하였다. 스콜라 신학의 모델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이미 필립 멜랑히톤(P.Melanchton, +1560)에게서 시작되었고, 이는 루터파의 정통신학에 분명하게 자리잡게 되었다. 쯔빙글리(H.Zwingli, +1531)와 칼빈(J.Calvin, +1564)은 전통적인 인과법칙을 수용하여서 예정론의 형태로 이끌어갔다. 칼빈에게서는 예정론적 신앙보다는 계약의 사상에서 나타나는 인격적인 신 이해가 더 강하게 대두된다.
하느님 신앙을 이성적으로 밑받침하는 것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을 지녔던 중세 후기의 신학적 경향은 루터로 하여금 성서에 증언된 하느님의 계시로 돌아가도록 이끌었다. 루터의 저서에는, 인간이 구원되고 의화되기 위해서 오로지 믿고 의존해야 하는 하느님의 은혜로운 자비의 위대함에 대한 실존적인 깊은 체험이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이런 실존적인 체험은 성서가 증언하는 인격적인 하느님 이해에 상응하는 것이다. 루터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하느님께서 자신의 약속에 충실하신 데에 있다고 보았다. 스콜라 신학의 신론에서 등장하는 형이상학적인 하느님의 속성에 대한 언급 대신에 자신을 계시하면서도 여전히 숨어계신 하느님의 역사적 능력에 대한 신앙이 자리하였다.
3.3.5. 근대의 인간 주체에로의 전환과 그에 따른 하느님 이해
16세기는 여러 측면에서 큰 전환의 시기였다. 근대는 ‘코페르티쿠스적 전환’, 즉 종래의 지구중심적 천동설에서 태양중심적 지동설에로의 전환과 함께 시작되었다. 근대의 사상가들은 기존의 우주론적 질서 구조의 사고가 붕괴하자 인간 자신의 의식에로의 결정적인 전환으로 응답하였다. 근대의 인간학적 전환은 인간을 세상과 하느님 인식의 출발점과 관련점으로 삼게 만들었다.
이는 프랑스의 철학자 테카르트(R.Descartes, +1650)에게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신 문제에서 테카르트는 안셀모의 논증을 수용하면서 인간은 완전한 존재라는 신 관념을 지닐 수 있다는 사실에서 이런 관념이 있도록 하는 유일한 원인, 실제로 존재하는 완전한 정신을 추론하였다. 이런 사고는 데카르트가 가장 기본적으로 확실하고 자명하다고 설정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로부터 시작한다. 데카르트는 “나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신은 존재한다”(sum ergo Deus est)라고 표현하는데, 여기에서 근대의 사상에는 초월적(transzendental) 사고, 즉 인간의 사고체험에서부터 그렇게 사고할 수 있는 가능성의 조건을 숙고하는 하는 방식이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런 숙고 방식은 나중에 칸트(I.Kant, +1804)와 밀접히 연결되어 나타난다.
칸트의 인식론적 철학은 직접적으로 인식의 대상을 향하지 않고 인간 주체 안에 놓여있는 인식 가능성의 조건에 대해서 묻는다. 유한한 인간의 의식은 경험세계에 속하지 않는 하느님을 인식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인간 의식은 경험 세계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칸트는 중세의 신존재 증명을 격렬하게 비판한다.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의 세 번째 길인 가능과 필연에서 취한 신존재 증명에 반론을 제기하는데, 인과법칙은 오직 경험의 영역에만 사용될 수 있기에 그것을 사용해서 하느님에게 이르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칸트는 순수이성의 측면에서 하느님을 인식할 수 없다고 하지만, 실천이성과 관련시켜서 하느님이 요청된다고 주장한다. 즉 인간 안에는 定言的 명령(kathegorischer Imperativ)으로 표현되는 무조건적인 도덕의식이 자리하는데(“네 의지의 원칙이 항상 일반적인 입법의 원리로 간주될 수 있도록 행동하라”), 그것의 대가로서의 행복이 이 지상에서는 반드시 보장되지 않는다. 그래서 하느님은 무조건적 도덕의식과 행복이 상응하도록 하는 조건으로서 요청된다는 것이다.
헤겔(G.W.Hegel, +1831)을 포함한 독일 관념론의 철학자들은 하느님을 더 이상 도덕적인 자기 실현에만 연관시키지 않고 정신(Geist)으로서의 인간의 자기 실현과 관련지어서 언급한다: 역사 안에서 정반합의 원리를 통해서 절대정신은 우선적으로 그리고 깊이 자신을 실현하는데, 절대정신을 파악하면서 그와 관계하는 것은 인간(주체적인 정신)에게 세계와 역사 안에서의 자신을 확인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절대 정신 안에서 즉 하느님의 삼위일체적 정신적 자기실현 안에서 자신을 이해한다; 하느님은 자신의 역사적인 자기 중개를 안에서 자신을 인식하고, 하느님의 자기 중개는 인간이 자기 자신에게로, 자신의 본래 모습에로 오도록 한다. 하느님의 자기 계시는 하느님 안에서 인간의 자기 계시이고, 하느님의 자기 계시는 인간과 그의 역사 안에 있다. 이렇게 헤겔은 유한의식과 무한의식을 동일시 하고 인간과 하느님을 동일시한다.
19세기 중엽에 산업혁명과 자연과학적-기술적 진보는 실증주의적 사고 방식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고 이와 함께 신론에 관련해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실증주의 철학자들에게 “신”이란 단어는 의미가 없고 이해할 수 없는 단어로 비추어졌는데, 왜냐하면 신이란 말은 실제의 체험을 통해서 파악되는 실재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고 그래서 “주어져 있는” 것을 대상으로 정확한 방식을 적용하는 학문적 이상에 부적합하기 때문이다.
이런 실증주의적인 확신이 팽배한 정신적인 바탕에서 근대적인 인간 자율(Autonomie)추구의 경향에 힘입어 여러 형태의 종교비판과 무신론이 형성되었다. 여기에서 두 가지 기본 형태가 구분되어야 한다. 자연, 사회, 인문과학과 같은 현대의 학문, 정치, 경제, 문화 등은 자율성을 주장하는데, 자신들의 영역에서 더 이상 “가설(假說, hypothesis)로서의 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적어도 방법론적으로 신의 존재 문제를 도외시하거나 혹은 더 나아가서 세상에 대한 관심이라는 명목으로 신의 존재를 명백히 부정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두 번째 형태의 무신론은 인간 자율성 획득의 노력에서 형성된 것으로서 인간의 품위와 그 실현이 신의 존재로 인해서 위협받는다고 간주하면서 적극적으로 종교를 배척한다.
루드빅 포이어바흐(Ludwig Feuerbach, +1872)는 현대 무신론 현대 무신론에 대한 참조: 한스 큉, 『신은 존재하는가』 I, 성염 옮김, 분도출판사, 1994, 273-585.
의 중심 인물로서 신개념은 인간의 투사물 외에 다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즉 인간은 자기 인간 본성을 자기 밖에 설정하고 그것이 마치 자기 밖에, 자기로부터 분리되어 존재하는 무엇으로 본다. 그래서 그것을 하늘에 있는 자립적 형상으로 투사(投射, Projektion)하고 그것을 신이라고 부르며 그에게 예배드린다. 신은 인간의 투사된, 실체화된 영상(暎像)으로 떠오르는데 사실 그 뒤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신적인 것이란 곧 후세에로 투사된, 보편적으로 인간적인 것이다. 신적인 본성의 속성들, 사랑, 지혜, 정의 같은 것은 사실상 인간의, 인류의 속성들이다. 바로 여기에 종교 전체의 신비라는 것이 숨어있다. 포이어바흐는 왜 투사가 이루어지느냐에 대해서, 인간 개개인은 제한된 시각을 갖고서 자신의 불완전성만을 보고 인류의 완전성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는 무신론적 인본주의를 통해서 종교가 폐지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포이어바흐에게서는 인간에 대한 통찰이 그릇되었기에 결국 인간에게 신성을 부여했다고 하겠다. 바로 이점을 칼 바르트는 명확하게 지적하였다. “만일 인간을 두고 오로지 실존주의적 개념으로 사유해야 한다면, 진짜 인간이란 개개 인간이어야 한다. 그 시대의 모든 신학자들이 그랬듯이 포이어바흐도 인간 전반을 놓고 논구하였다. 그런 인간에게 자기 나름의 신성을 부여함으로써 실재로 존재하는 인간에 관해 사실상 포이어바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포이어바흐에게는 [실존하는 개인과 인간 전반] 양자를 광범위하게 교차하는 존재로 만들려는 성향이 있어서, 개개 인간을 두고 이야기하면서 마치 개개 인간이 인간 전반인 것처럼 말하고 그러다 보니 개인에게 감히 신성을 부여할 정도가 되었다. 이것은 개인의 사악함이나 그 개인이 분명히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함에 있어서 신실하고 솔직하지 못했다는 사실과 긴밀한 연관이 있다. 만일 포이어바흐가 이 사실을 진정 의식하였다면 이렇게 일반화된 인간 개념이 가공(架空)적 성격을띠고 잇다는 사실을 간파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랬더라면 신을 인간, 그것도 실재적 인간, 말하자면 추상의 요소를 인간에게 제거해 버릴 때 거기 남는 인간과 동일시하는 일을 삼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대의 신학은 개인을 제대로 의식하지 못했거나 인간의 사악함과 죽음을 진지하게 숙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포이어바흐에게 그러한 관점을 가르쳐줄 수 없었을 것이다”. K.Barth, Die protestantische Theologie im 19.Jahrhunderts, 489; 한스 큉, 『신은 존재하는가』 1, 307-308에서 재인용.
칼 마르크스(Karl Marx, +1883)는 종교란 인간의 자기 소외라고 정의한 포이어바흐의 견해가 옳다고 보고서, 자기 소외의 사회적 경제적 원인을 고찰한다. 즉 종교란 인간의 시선을 불의한 사회, 경제 구조로부터 후세의 약속에로 향하게 함으로써 거짓 위한을 주고 현실 변혁의 의욕을 꺽어놓기 때문에 기만적이거나 환각제 같은 효과를 내는 데에 그친다, 그러므로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무신론적 사회주의를 통해서 기득권 유지에 이바지하는 종교가 소멸될 것으로 예상하였다.
프리드리히 니이체(Friedrich Nietzsche, +1900)의 “신의 죽음”이란 말도 사실은 포이어바흐의 투사설에 근거한다. 그 역시 신개념이란 인간 원의의 영상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서 인간다운 삶을 방해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에 의하면 그리스도교의 신개념은 인간 삶의 반대 개념이다. 즉 신개념은 현세의 삶을 비본래적이고 임시적인 것으로서 평가 절하한다는 것이다. 니체는 신개념과 세상의 윤리질서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고 간파하고는 신의 죽음으로 모든 윤리적 질서가 붕괴되어 허무주의로 향하는 것을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3.3.6. 무신론에 대한 제1차 바티칸 공의회의 대응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70)는 그리스도교의 교도권 역사상 처음으로 하느님의 존재에 대한 문제에 명시적으로 입장을 표명하였다. 공의회는 당시에 만연해있던 불가지론적, 무신론적 경향에 반대해서 신앙에 대한 교의적 헌장 “Dei Filius”의 카논 제1조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만일 누가 한 분이신 참된 하느님, 가시적이고 비가시적인 사물의 창조주이시며 주님이신 분을 부인한다면 파문될지어다”(DS 3021).
또한 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로마 1장 20절과 관련지으면서 창조된 사물들로부터 ‘자연적’으로 하느님을 인식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어머니이신 교회는 다음과 같이 고수하고 가르친다: 모든 사물의 근본이며 목표이신 하느님은 인간 이성의 자연적인 빛에 의해서 창조된 사물로부터 확실하게 인식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분의 보이지 않는 속성,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은 세상이 창조된 이래 그 지으신 것들을 통하여 이성(의 눈)에는 보이기 때문이다’(로마 1,20)”(DS 3004). “만일 누가 유일하고 참된 하느님, 우리의 창조자요 주님이신 분을 인간 이성의 자연적 빛에 의해서 창조물을 통하여 확실하게(certo) 인식될 수 없다고 말한다면 단죄될지어다”(DS 3026).
인간 이성을 통한 신인식의 가능성을 긍정한 것은 불가지론, 즉 자연과학적 방법론인 측정과 분석을 통해서 검증 가능한 것만을 분명한 것으로 인식할 수 있다고 간주하고 그것이 불가능한 것은 인식할 수 없다거나 심지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이다. 또한 이 결정은 가톨릭 교회 내의 소위 “신앙주의자들”, 혹은 “전통주의자들”들에 대한 반박이기도 하다. 19세기에 프랑스 가톨릭 철학자와 신학자들(L.G.-A. de Bonald, H.-F.R. de La Mennais, L.-E.-M.Bautein, A.Bonnetty)사이에서 인간 개개인의 이성은 확실한 종교적-윤리적 인식을 지닐 수 없다는 견해가 형성되었다. 이런 인식은 권위적으로 전통, 국민정신, 교회를 통해서 증거되는 신적인 계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견해에서는 계시 과정과 교회의 전통에서 인간이 자신의 이성을 통해서 책임성 있게 결단하면서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인다는 가능성은 거부된다. 그러나 하느님의 계시는 하느님의 부르심과 인간의 응답이라는 대화적 구조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인간의 품위와 영예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이런 견해에는 문제가 있다고 하겠다.
피조물을 통해서 신인식이 가르침은 물론 성서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지혜 13,1-9에 따르면 인간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통해서 하느님을 알아 볼 수 있다. 로마 1,18-21에 의하면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때부터 창조물을 통해서 당신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나타내 보이셔서 인간이 보고 깨달을 수 있게 하셨다. 사도 17,22-30에서는 이방인들도 하느님을 알아볼 수 있는 가능성이 인정된다. 교회의 전통에서는 이런 성서 구절이 반복되어 인용되었는데, 이미 교부들은 철학적 신존재 증명의 형태로 이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인간의 인식능력이 죄를 통해서서 파괴되지 않았는가, 사실상의 신인식은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가능하게 되지 않았는가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 이런 의구심은 20세기 개신교 신학의 거장 칼 바르트(K.Barth)와 루돌프 불트만(R.Bultmann)에 의해서 대표되었던 ‘변증법적 신학’(Dialektische Theologie)에 의해서 다시금 분명하게 대두되었다. 그들은 왜곡되지 않은 진정한 신인식은 오직 (성서 안에 증거된) 하느님의 역사적인 말씀의 계시와 그를 믿음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바르트는 특히 자신의 초기 신학에서 이를 분명하게 드러난다. “바르트에게 자연적 인간은 철저히 죄인, 그것도 이성과 책임을 갖춘 죄인이다. 이런 죄인인 인간의 이성은 하느님의 진리를 알아볼 수 없다! 분명 인간에게 종교성, 신인식이 가능하고, 인간은 이에 대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에 목적에 이르지 못한다. 왜냐하면 인간 이성이 자연적 신인식을 통해서 인식한 신은 -철학이든 신학이든, 세계의 종교에서든- 인간이 投射(Projektion)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즉 인간의 세계관적 환상의 산물이고 참된 그리스도교적 하느님이 아니다. 이는 우상이며 대용적 신(Ersatzgott)이고 反神(Gegengott)이다. 인간은 참된 하느님을 인식할 수 없다! 단지 하느님 스스로 자신을 알도록 하는 것외에는, 하느님이 자신을 드러내고 계시할 때 이것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계시없이는 인간이 하느님을 인식할 수 없다! 하느님 홀로 주도권을 지니고 있다. 그는 계시의 내용인 동시에 계시를 가능케한다”. H.Küng, Existiert Gott?, München, 1979, 568f.
이런 주장의 배경에는 인간 이성에 대해서 회의적인 태도를 지녔던 루터가 자리하고 있다. 루터는 인간 이성을 “창녀 이성”(Hure Vernunft)으로, 당시 신학에 중대한 역할을 하였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를 “사기꾼”이라고 깍아내렸던 것이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하느님의 존재와 인식 가능성에 대한 문제에만 입장을 표명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특성들을 나열함으로써 그분의 본질에 대해서도 서술하였다.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적인 로마 교회는 다음과 같이 믿고 고백한다: 참되고 살아계신 하느님은 한분으로서 그분은 하늘과 땅의 창조주요 주님이시며, 전능하고 영원하며 헤아릴 길없고 파악불가능하며 이해, 의지 그리고 모든 완전성에서 있어서 제한이 없으시다. 그분은 유일하고 자립적이며 아주 단순하고 불변하는 영적인 존재이시기에 그분은 세상과는 실제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그분 자체로 행복하고, 그분 외의 모든 것,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말할 수 없이 초월하신다고 선포해야 한다”(DS 3001). 이 결정은 당시의 범신론적, 불가지론적 경향에 반대해서 지금까지의 신앙 전통에서 믿어온 하느님의 본질적인 속성을 함께 엮으려고 시도한 것이라고 하겠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가 신인식이 원칙적으로 모든이에게 가능하다고 선포한 것은 엘리트적이고 비교(秘敎)적인 사고를 거부하였다는 점에서 큰 중요성을 지닌다. 신인식이 소수의 신비관리자나 전문가에게 유보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 전통의 전래된 가르침에 따르면 이른바 신존재 증명이 하느님의 말씀의 계시 이외에 하느님을 인식할 수 있는 적합한 길이다. 신존재 증명을 제대로 하려면 특정한 논리적 지식과 특정한 철학적 기본개념에 대한 이해가 전제된다. 이는 소수의 ‘지식인들’만 그들의 신체험과 신인식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식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 가지 신존재 증명은 단지 인간 실존의 초월적 기본 체험에 대한 개별적이고도 특별히 부각된 반추 형태일 뿐이다. 즉 모든 인간은 자신의 정신적 실존, 정신적 행동 중에 – 즉 무엇에 대해서든지 판단하고, 자유로이 결단할 때 – 하느님과 관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인간이 그가 판단하고 결단하면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을 ‘신’이라고 부르던지 혹은 다른 것으로 부르던지, 그것에 대해서 반추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그것에 대한 인식을 수용하고 긍정하던지 혹은 인정하지 않고 억압하던지, 인식의 과정 자체에서 볼 때에는 큰 상관이 없다.
일부 가톨릭 신자들은 실제로 두 단계, 즉 ‘자연적’ 단계 그리고 ‘초자연적’, 혹은 은총의 단계가 존재한다고 가정하면서 신인식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이해한다: 인간은 이성을 통해서 하느님을 일반적으로 인식할 뿐이고 비로소 말씀의 계시를 통해서 분명하고 정확하게 하느님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두단계 이론은 칼 라너의 신학적 노력 참조: H.Küng, Existiert Gott?, 571-575.
이후에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라너에 의하면 신자이든 비신자이든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사실상 초자연적 목표(지복직관)를 향해서 창조되었고 그래서 애초부터 초자연적으로 각인되었다(초월적 존재). 이는 인간 본성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실존적으로(초자연적 ‘실존’: übernatürliches ‘Existential’) 그러하다. 여기서 ‘자연’(natura)이란 개념은 실제 개념이 아니라 가상 개념으로서 하느님의 자유과 하느님 은총의 무상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은총에 불림을 받았고 오직 하느님 안에서 자신의 목표 달성한다. 다시 말해서 비신자까지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서 하느님 은총의 현존하여 작용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 결정문에 적용해서 얘기하자면, 이성의 “자연적 빛”이란 결코 말 그대로의 순수 인간의 능력에만 의존한 자연적 빛이 아니다. 하느님 인식은 어떤 경우든 인간의 인식인 동시에 그 인식을 앞서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모든 신인식은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계시에 의해서 가능하게 된 것이다
3.3.7.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신스콜라 신학 시대가 지난 후에 하느님 신앙의 근거를 마련하려는 신학적 노력은 분명한 “인간학적 전환”을 통해서 표현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두 문헌에서 신문제를 주제로 삼았는데 두 문헌 모두 현대세계의 도전에 의식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목헌장” 19-21장에서는 무신론적 사상과의 대화를 계속 전개하려고 시도한다. 사목헌장은 우선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이 하느님과 결합되기 위하여 불리었다”는 데에 있다고 전제한다(19항). 그리고는 하느님은 인간의 자유실현의 방해자로서가 아니라 인간 깊숙히 자리하는 구원, 선함, 생에 대한 갈망이 채워지도록 하는 최종적, 본래적 보증자로서 나타난다고 역설한다.
“교회는 신 긍정(神肯定)이 인간 존엄성에 결코 배치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인간의 존엄성은 하느님 안에 기초를 두었고 그분 안에서 완성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창조주이신 하느님께로부터 지성과 자유를 갖춘 사회적 존재로 창조되었고 더욱이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느님과의 일치와 그 행복에 참여하도록 불리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교회는 또한 세상 종말에 대한 희망이 지상 사명의 중요성을 감소시키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새로운 동기를 주어 지상 사명 완수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이와 반대로 하느님께 기초를 두지 않고 영생(永生)에 대한 희망이 없게 되면 오늘 흔히 볼수 있는 것처럼 인간의 존엄성은 심한 상처를 받을 것이며 생명과 죽음, 죄와 고통의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아 절망에 빠지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막연하게 인식한 미해결(未解決)의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사실 인간이면 누구나 일정한 시기에 특히 인생의 중대한 사건 앞에서 위의 의문을 피할 수는 없다. 이 의문에 완전하고 확실한 해답을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인간을 보다 높은 사색과 보다 겸허한 탐구에로 부르신 하느님 한 분 뿐이다“(21항).
이어서 사목헌장은 인간이 자신을 책임성 있게 그리고 성공적으로 실현하는 데에 하느님 신앙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오늘날 그리스도교의 하느님 선포에 결정적인 기준이 된다고 밝히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신인식의 가능성에 관해서는 제1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정을 반복한다. “거룩한 공의회는 ‘만물의 근원이시며 목적이신 하느님이 인간 이성의 자연적 빛에 의해서 창조물을 통하여 확실하게 인식될 수 있다’(로마 1,20 참조)는 것을 인정”한다(계시헌장 6항). 그러나 이 결정을 무신론자들을 단죄하기 위해서 사용하지는 않는다. 물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 원칙적으로 무신론을 배격하지만, 무신론의 발생에는 교회의 잘못도 일부 있었음을 시인한다. “무신론이란 전체적으로 보아서 자체 안에 그 근원을 가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러 가지 원인에서 생겨나는 것이며, 그 원인 중에서 종교에 대한 비판적 반동, 어떤 지역에 있어서는 특히 그리스도교에 대한 반항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무신론 발생에 적지 않은 책임을 신앙인들이 질 수도 있다. 자신들의 신앙 배양(培養)을 등한시하거나 교리를 잘못 설명하거나 종교 생활, 윤리 생활, 사회 생활 면에서 결점을 드러냄으로써 하느님과 종교의 참 모습을 보여 주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가려 버리기 때문이다”(사목 19항).
공의회는 무신론과의 대화에서는 인간 문제의 유일한 해답인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것에 역점을 두었는데, 세계 종교들과의 대화에서는 각기의 하느님 선포에서의 공통성과 특성에 대한 숙고를 요구하였다. “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Nostra aetate)은 우선 현대의 통신, 교통 수단을 통해서 인류는 날로 더욱 긴밀하게 결합된다고 전제하고는 모든 사람에게 공통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러 민족들은 단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전인류를 온 땅 위에 살게 하시었으니(사도 17,26 참조) 모든 민족들은 단 하나의 기원을 가졌고 또한 단 하나의 최후 목적이신 하느님을 모시고 있다”(1항). 이어서 실제로 여러 종교들이 각기 고유한 방식으로 인간의 최종 기원을 인정하고 경배한다는 것을 인정하고서, “가톨릭 교회는 이들 종교에서 발견되는 옳고 성스러운 것은 아무것도 배척하지 않는다”는 것을 선언한다(2항). 이 문헌은 모든 종교의 신앙인들에게 형제자매적 사랑을 호소하고, 사람이 혈통 혹은 종교 때문에 박해받는 것을 종결짓자고 하면서 끝맺는다. 이 호소는 다음과 같이 신학적으로 밑받침된다. “하느님 아버지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와 이웃 형제들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는 성경이 다음과 같이 말해주듯이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한다’(1요한 4,8)”.
이렇게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하느님 신앙의 중요성을 인간학적으로 근거지우는데 이는 20세기에 전개된 신학적 숙고에 바탕을 두고서 전개된 것이라고 하겠다. 이 신학적 숙고에서는 인간은 ―스스로 알든 알지 못하든― 구체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실현하는 가운데에 절대적이며 신적인 존재에 자신의 존재가 근거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대답한다는 것을 드러내보이려고 한다. 즉 하느님은 인간의 자유와 인식의 실현 가능성의 조건으로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하느님 선포가 믿을만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이런 초월적-인간학적 논거는 예수회원 요셉 마레샬(Josef Maréchal, +1944))의 이름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그는 근대의 인간학적 전환을 신학적 사고에 수용하려고 시도하였다. 많은 신학자들이 마레샬를 추종하였는데, 칼 라너, 요한 밥티스트 로츠(Johann Baptist Lotz), 베른하르트 벨테(Bernhard Welte), 막스 뮬러(Max Müller), 에머리히 코렛(Emerich Coreth) 등이 있다. 이들은 신문제에 관한 마르샬의 방법론적 접근을 받아들여 각기 자신의 방식대로 구체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