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캔터베리의 안셀모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사이에 가장 독특하고 중요한 신학자는 안셀모 성인이다. 그리스도교적 하느님 이해에 안셀모 성인이 공헌한 것은 적어도 세가지다.첫째는 소위 말하는 하느님 존재에 대한 “존재론적 논증”이다. 둘째는 빚-보속이라는 보상이론이다. 셋째는 하느님에게 있어서 세 위격 사이의 관계적 위치에서 서로 다르다는 것외에는 모든 것이 하나라는 원칙이다. 첫번째 점에 대해서 안셀모는 하느님은 더 큰 것을 상상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런데 만일 마음안에서 또는 이해의 영역에 존재하는 것이라고만 한다면, 실제적 실존은 더 이상 큰 것을 상상할 수 없는 것이상의 것으로서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큰 것이다. 그러므로 거기엔 그것보다 더 큰 것을 상상할 수 없는 이상의 것으로 존재하는 것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상상이나 또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와같은 논증은 후에 아퀴나스와 칸트에 의해서 거부되었다. 마음이나 상상의 질서안에서 진실인 것은 반드시 실제의 질서안에서 실제일수는 없다는 것이다.
두번째 점에 대해서 안셀모는 아담의 죄는 오직 충분한 댓가(보속)를 성부께 드려야만 용서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죄로 초래된 부채를 합당하게 해결할 수 있는 자는 단지 신적존재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하느님과의 우정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한다면 하느님은 인간이 되셔야 했다.
세번째 점에 대해서 안셀모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전승을 따라서 하느님은 세 위격간의 관계에 있어서 자리하고 있는 위치상 복수적인 위격으로 구분되었다는 점 이외에는 절대적으로 한분이시라는 점을 주장한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은 한분이신 하느님이시다. 단지 하느님은 낳음을 받지 않으셨으며, 성자는 낳음을 받으셨고,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 부터 내 불어졌다는 것이다. 신적 위격간의 상호 거주에 대한 이론을 위한 신학적 기초의 원리는 다음과 같다. :“성부는 항상 성자와 성령안에 계신다. 성자는 항상 성부와 성령안에 계신다. 성령은 항상 성부와 성자안에 계신다. 이러한 상호교환적 거주는 역시 circumincession (지속적순환)으로 알려지고 있다. 플로렌스 공의회(1442)는 ”야고버파를 위한 선언“이라는 데서 이 원리를 적용하고 있다. ”성부는 홀로 당신의 주체밖으로 성자를 낳았으며, 성자는 홀로 성부로 부터 낳음을 받았으며, 성령은 홀로 성부와 성자 양편으로부터 진행되어 나온다“. 이 세 위격은 한분이신 하느님이며 세 신이 아니다. 이 세 위격에게는 하나의 주체, 하나의 본질, 하나의 본성, 하나의 신성, 하나의 무한성, 하나의 영원성을 지니며, 그 위격안에 모든 것은 관계에 있어서 서로 대치하고 있는 곳이 아닌 곳에서는 항상 하나다.
마지막으로 보아야 할 것은 안셀모는 삼위일체의 하느님의 신비가 인간 지성의 모든 비젼을 초월하는 것, 즉 ” 그렇게 숭고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런 존재들이 어떻게 있는가 설명하려는 시도를 삼가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안셀모에게 하느님이 계시다는 지식안에서 안전하게 되는 것으로 충분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어떤 이성의 모순 없이” 있다는 것이다. 신학을 위해 이해하고자 하는 신학을 추구하였다.
5.9 교부들의 하느님 이해에 관한 종합적 결론
개략적으로 밖에 교부들의 하느님 이해를 살펴보았지만, 그래도 어떤 종합적인 것을 요약해 낼 수 있다고 본다.
1) 교부들에게 하느님 이해는 다양할 수 밖에 없다. 시대도 다르고. 글의 성격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 이해의 근거를 성서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성서를 바탕으로하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한분이신 하느님”, 즉 하느님의 유일성, 그러면서도 “세 위로 존재하시는 삼위의 하느님” 하느님의 삼위일체적 성격을 띤다. 이런한 하느님 이해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맥을 이루고 있다. 마태오 28, 19- 디다케 7,1 – 사도신경.
2) 하느님의 유일성은 유대교 신앙을 전해받으면서, 다신화의 경향을 띤 이방인들과 만나고 대결하는 가운데 교회 옹호적 입장에서 강조되고 있다. 이방인들, 특히 희랍사상에 젖은 사람들이 신을 지나치게 인간화하려는 사상과 거슬러 싸워야 했다. 2세기경에는 플라토니즘의 영향을 받은 이원론자들인, 영지주의자들과 대결해야 했다. 영지주의자들은 정의의 하느님과 사랑의 하느님, 율법의 하느님과 복음의 하느님을 구별하였다. 이레네오를 비롯한 교부들은 신구약의 일치성, 단일성을 거론하며 하느님의 유일성을 옹호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 역시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마니케이즘을 거슬러 대결해야 했다. 삼신론적 경향과도 대결해야 했다. 사벨리아니즘(모달리즘, 성부수난설)에 미혹되는 사제들에게 경고하는 알렉산드리아의 대주교 디오니시우스가 삼위의 구별을 강조하는 것을 두고 삼신론을 주장했다고 로마의 디오니시우스가 단죄한다. 여기엔 정확한 근거가 없다. 다만 로마의 주교 디오니시우스가 정치적인 배경에서 유주론, 유일 군주제의 합법성을 뒷받침해 주는 유주론의 경향에서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디오니시우스를 공격했다고 보여진다. 이러한 하느님의 단일성의 강조는 649년 라떼란 공의회를 거쳐, 675년 톨레도 공의회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우리를 위한 구세경륜적 삼위일체에 대해서 체험될 수 있는 것이 항상 무엇이든지 모두 세위격들에게 공통적으로 해당된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삼위일체가 우리 인간에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든지간에 공동으로 행한다. 삼위일체들은 그들의 존재와 역사속에서 서로 불가분리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와같이 하느님의 유일성 강조는 Monarchianismus 즉 유주론의 경향을 이끌기도 했다.
3) 다른 한편으로 교부들은 유주론과도 거슬러 대결해야 했다.Monarchianismus는 유일신론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절대적 초월성을 보전하는데는 공통적이다. 그러나 이초월적인 유주론적 경향은 유대교의 유일신성의 엄격성으로부터 유래한다. 이 유주론에는 두가지 노선이 있다. (1) 입양적인 유주론, (2)성부수난주의자들(Patripassianismus)와 사벨리아니즘(Modalismus)으로 알려지고 있는 양식론적 유주론이다. 말하자면 교부들은 하느님의 삼위일체적 성격을 강조하면서, 이런 유주론자들과 거슬러 그리스도론적 논쟁을 벌였고, 나중에 가서 삼위일체론적 논쟁을 벌이게 되었다. 이런 유주론자들과 대결하면서 처음으로 부딪히는 문제는 바로 그리스도의 신성이었다. 그리스도는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의 강림으로 하느님의 아들로 입양되었다는 주장이다. 나중에 아리아니즘으로 발전한다. 여기서는 뚜렷한 종속론의 경향을 보게된다. 다시말하면 성자는 성부보다 하급의 신, 하급의 존재요, 성령은 성부와 성자보다 하급의 신이라는 이론이다. 사벨리아니즘에서는 성자와 성령은 한분이신 하느님의 현현 양식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여러가지 탈(prosopon)을 쓰고 나타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부가 수난당하고 사망했다는 이야기가 가능해진다. 여기서 교부들은 성자와 성부의 동일본질성, homoousios라는 개념을 니체아 공의회를 통하여 채택하는데, 이 이론은 아리아니즘을 이단으로 단죄하는데 용이하긴 했지만, 사벨리아니즘을 도아줄 수 있는 개념이기도 했다. 동일본질의 개념으로서 사벨리아니즘은 성자가 단순히 현현양식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 언제가는 성부에 의해 완전히 흡수 되리라는 전망을 지니게 된다. 여기에 대해서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성부와 성자 사이의 구별이 오로지 역사적 체험 양식안에만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통용된다는 점에서 ’그의 나라는 끝이 없으리이다“라는 귀절을 첨가한다. 이렇게 영원성을 거론하면서 하느님은 인간체험과 동떨어진 사변속의 하느님으로 변모하게 된다. 이런 사변의 하느님, 영원의 하느님, 자신안에 폐쇄적인 존재의 하느님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은 중세기까지 이어진다.
어떻든 아타나시오는 성부와 성자의 구별과 동일성을 교회의 정통교리로 수용하게하는데 성공하였고, 까빠도치아의 세교부는 성령에게도 동일본질성을 배려함으로써 하나의 본질과 셋의 위격 (OUSIA, HYPOSTASIS)이라는 용어로써 삼위일체의 하느님을 교회의 정통교리로 수용케했다.
한편 서방교회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이미 테르뚤리아노가 확정한 바 있는 una substantia et tres personae라는 용어를 una essentia et tres personae 라는 라틴어 용어로 삼위일체 정식을 정립했다. 칼체돈 공의회(451)는 ousia를 phusis라는 용어로 대치한다.
4) 이상에서 보았듯이, 교부들로부터 우리 교회가 보존해야 하는 하느님의 이해는 종속론적 경향, 유주론적 경향, 삼신론적 경향을 모두 피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5) 인간의 지성으로 알아듣기 어려운 삼위일체의 신비에 대해서 (1) 지성주의 – 신비란 이성의 포착으로 제거될 수 있다는 경향과, (2) 신앙주의 내지는 비 지성주의- 신비란 도대체가 알아 들을 수 없고, 그저 믿어야만 한다는 경향으로 빠져들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 교부들은 제 3의 길을 택하였다. (3) 즉 신비는 결코 인식할 수 없다. 그렇더라도 신비에 대한 질문을 포기할 수 없다. 적어도 문제를 분명하게 하고, 어떤 이해의 기준에 도달하려는 희망을 지녀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이런 입장에서 교부들이 나름대로 삼위일체 신비를 인간의 이성에 이해될 수 있도록 여러가지 비유를 사용하여 시도하는 것을 보게 된다.이것은 삼위일체론에서 보게 될 것이다.
3. 초기교회 교부들의 하느님-(다)
이 글은 카테고리: catholicdictionary3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