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세르 협약 Emser Punktation

  엠세르 협약  ~協約   Emser Punktation

  교황 비오 6세는 1785년 바이에른의 선제후(選帝侯, Kurfürst) 칼 테오도르(Karl Theodor)의 요청에 따라 뮌헨(München)에 교황 대사관을 설치하였다. 이 무렵은 독일의 주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강하게 수호하고, 로마 교황청의 중앙 집권제를 불신하고 있던 시기였다. 또한 1763년 페브로니우스(Febronius: 트리어의 보좌 주교)의 저서가 출판되어 대단한 여파를 미쳤던 시기였다. 페브로니우스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교회는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주장하였다. 이 주장은, 주교들은 교황과 맞먹는 권리를 다시금 되찾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바로 이러한 사고를 토대로 해서 쾰른(Köln), 마인츠(Mainz) 그리고 잘츠부르크(Salzburg)의 대주교들은 뮌헨에 교황 대사관을 설치하려는 교황 비오 6세의 처사에 항의하였다.


  1786년 8월 25일 위에 언급한 교구의 대주교들은 ‘엠세르 협약’을 통해 로마에 대한 교구의 관계를 새롭게 규정하려고 시도하였다. 즉 교황이 반포하는 교서 또는 칙령은 그것이 효력을 발생하기 위해서는 각 교구 주교들의 동의를 얻어야 하며, 특히 오래 전부터 교황이 5년마다 주교들에게 위임하는 사면권은 폐기되어야 하고, 그 대신 교황의 위임 없이 주교들의 권한에 귀속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황제는 2년 이내에 독일 국가 공의회를 소집하여 위에서 제기된 현안을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황제는 주교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그 결과 ‘엠세르 협약’은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대주교들은 해마다 여러 차례에 걸쳐 자신들의 요구를 거듭 제기했으나, 1789년에 발생한 프랑스 혁명으로 말미암아 황제와 주교들의 관심사는 다른 문제로 선회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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