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복음에 나타난 마리아

 

2.4. 요한 복음에 나타난 마리아


요한 복음에서는 여러 구절들이 “예수의 어머니”와 간접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다(요한 1,13; 6,42; 7,1-10; 7, 41-43). 신학적으로 중요한 것은 특히 가나의 혼인잔치에서의 마리아의 등장(2,1-12)과 십자가 아래서의 장면(19,25-27)이다.


(1) 마르코 복음에서 예수의 진정한 친척은 누구냐라는 주제와 관련해서 예수께서는 어머니에게 거리를 두려는듯한 말씀을 하시는데, 이와 유사한 것이 가나의 혼인잔치의 이야기에서도 발견된다. “마침 포도주가 모자라서 예수의 어머니가 그분에게 말하였다. ‘그들에게 포도주가 없구나.’ [그러자] 예수께서는 어머니에게 ‘부인, 부인이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직 제 시간이 오지 않았습니다’하고 말씀하셨다”(2,3-4).


“그것이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는 반문은 성서에 가끔 나오는 표현이다. (참조: 여호 22,24; 판관 11,12; 2사무 16,10; 19,23; 1열왕 17,18, 마태 8,29; 마르 1,24; 5,7; 루가 4,34; 8,28). 이 표현은 통상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 간의 관점의 차이, 의견의 불일치를 나타낸다. 그러면 예수와 모친 사이에 생긴 관점의 차이, 의견의 불일치는 무엇인가?


이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첫째 예수는 ‘시간’에 대해서 언급하는데, 요한 복음서에서는 예수의 ‘시간’은 곧 성부께로 귀환하는 수난―부활과 직결된 ‘때’를 전형적으로 가리킨다(7,30; 8,20; 12.23.27; 13,1). 둘째로 포도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서, 모세의 율법을 능가하는 그리스도의 새 율법, 계시의 말씀, 즉 복음을 의미한다. 이런 해석을 뒷받침하는 징후들이 많이 발견된다.1)


① 가나의 혼인 잔치는 율법이 수여된 시나이 산과 완전히 대칭을 이룬다.


      시나이                                       가나의 혼인 잔치


셋째날 야훼께서는 당신 영광을               사흘째 되던 날 예수께서는


모세에게 계시하셨고 또 백성은               당신 영광을 드러내셨으며 그분의 제자들은


그 역시 믿게 되었다(출애 19,11.9).            그분을 믿게 되었다(요한 2,1.11)


② “보관하다(teterekas)”(10절)라는 동사는 예수의 말씀, 계명(곧 아버지의 말씀과 계명)과 관련하여 요한이 사용하는 전형적인 단어이다. 요한은 이런 의미로 적어도 25번 언급하고 있다(요한 8,51.52; 14,23; 15,20; 17,6; 묵시 3,8 등등)


③ 예수께서 제공하신 포도주는 “유대인들의 정결예식”(6절)에 이용되는 여섯 개의 항아리 안에 담겨진 물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물은 예식용, 즉 모세 율법에 의해 정해진 정결례에 사용되는 물이다(레위 11-16; 20, 25-26; 신명 14,3-21 참조). 유대인들은 식사 전에 손을 씻음으로써 모세 율법이 불결하다고 규정한 물건들과의 접촉으로 말미암아 더럽혀진 상태를 씻어낼 수 있다고 여겼다(마르 7,3-4; 마태 15,2; 루가 11,38 참조). 바로 이 같은 물이 예수에 의해서 포도주로 변화된다. 이는 정화가 더 이상 무세 율법의 준수로부터가 아니라 새 포도주에 의해 상징되는 그리스도의 복음, 말씀으로써 이루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정화에 대한 요한의 가르침이 그러하다. 최후만찬 동안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른 그 말로 말미암아 여러분은 이미 깨긋합니다”(요한 15,3).          




그런데 예수의 계시의 말씀은 십자가와 부활 사건에서 충만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포도주란 “예수께서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넘어가는 때가 도착하게 되면 충만에 이르게 되는 말씀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때가 오면 그분이 누구이신지 드러나게 될 것이다”.2)


이렇게 볼 때 예수와 모친 사이의 견해 차이가 어디에서 연유된 것인지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마리아는 물질적인 포도주 곧 잔치 도중에 모자라게 된 포도주에 관해 말하고 있지만 예수께서는 당신이 수난하시고 부활하실 때 완전하게 성취될 당신의 계시의 말씀을 상징하는 포도주를 두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마리아는 잔치에 참석한 자들에게 부족한 물질적 술에 신경을 쓰고 있는 데 반해 예수는 화제를 다른 수준 안에 또한 죽음과 부활로 이해되는 자기의 때와 관련되는 수준에로 끌어올리신다. 다시 말해 가나의 대화 분위기에서 예수께서는 물질적 실재들의 수준으로부터 이 실재들이 표상하는 영신적 실재들의 수준에로 옮아 가신다. 그리고 이것이 무엇보다도 요한 복음 안에 그리고 공관 복음 안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의 설교가 지닌 특징이다(요한 4,31-34; 6,26-27; 11,11-14; 마르 3,31-35; 마태 12,46-50; 루가 2,48-49; 8,19-21 참조)”.3) 이렇게 볼 때 “그것이 저와는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는 예수의 반문은 마리아의 요청에 대한 직접적인 거절이 아니라 모친이 의도한 것과는 다른 차원의 것을 암시하는 말씀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예수께서 대화의 상대자가 이해했던 물질적인 측면에서 이 물질이 상징으로 나타내는 영적인 측면으로 대화를 옮기실 때 상대방은 이를 알지 못했다. 예를 들어서 예수께서 “당신 몸이 곧 성전”임을 가리켜 말씀하실 때에도 유다인들은 “예루살렘 성전”만을 생각했기 때문에 예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요한 2,19-22). 또한 야곱의 우물가에서 제자들이 주님께 “음식”을 드실 것을 권하자 예수께서는 “나에게는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먹을 음식이 있습니다”(요한 4,31-32)하고 대답하신다. 그러자 제자들은 누군가가 예수께 음식을 가져다 드린 것이 아닌가 서로 수군거렸지만, 예수께서 말씀하신 음식이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며 그분의 일을 다 이루는 것”(4,33-34)을 의미하였다.


예수께서는 마리아의 간청대로 잔치에 필요한 포도주를 마련해주시는데, 이는 다른 포도주, 곧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충만하게 될 그분의 복음을 가리키는 “표징”(2,11)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마리아가 아들의 의향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파악하지 못하였으면서도 그에게 매달린다는 것이다(참조: 루가 2,51). 마리아는 시중드는 사람들에게 “그가 무엇이든지 당신들에게 이르는 대로 하시오”(2,5)라고 지시한다. 이렇게 해서 마리아는 예수께 대한 신뢰하는 신앙을 스스로 실현한 것이다. “바로 이때가 곧, 마리아가 예수의 ‘어머니’이지만 표징이 명확해지기 전에 감추어져 있는 것을 향해 열려진 신앙 안에서 자신을 ‘여종’으로 드러내는 순간이다”.4)


이렇게 요한은 루가와 마찬가지로 마리아가 처음으로 예수를 믿는 이들 중의 하나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마리아의 이런 신뢰의 태도는 이스라엘 공동체와의 연결을 암시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시나이 산에서 야훼와의 계약을 체결하기에 앞서 일제히 큰 소리로 세 번 외친다. “야훼께서 말씀하신 것은 모두 그대로 실천하겠습니다”(출애 19,8; 24,3.7.). 이 충성 고백은 선민인 이스라엘이 그의 하느님이신 야훼께 발하는 서약이었다. 그런데 요한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에서 단언한 말과 똑같은 내용을 마리아가 발설한다. “그가 무엇이든지 당신들에게 이르는 대로 하시오”. “우리는 여기서 간접적이든 암시적이든 간에 이스라엘 공동체와 예수의 모친 사이의 동일화를 확인한다. 그리고 성서와 유대 전승의 언어 안에서 선민이 간혹 여인의 이미지로 표상되고 있으므로 예수께서 모친에게 모자간의 대화 중에 거의 사용되지 않는 ‘부인’이라는 낱말을 써서 말씀하신 까닭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명확하게 말한다면, 예수께서는 당신 모친을 메시아적 구원 여명에 당도한 옛 이스라엘의 화신(化身)으로 간주하신다. 또한 옛 모세 율법이 하사되기 직전에 이스라엘이 신앙을 고백하였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새 율법을 미리 상징하는 가나의 포도주가 선사되기 이전에 마리아가 성자의 뜻에 전적으로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었다: ‘그가 무엇이든지 당신들에게 이르는 대로 하시오’”.5)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나타난 마리아는 아들이 거부하는데도 어머니의 이름으로서 아들의 ‘등을 떠밀어서’ 무엇을 이루는 분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이 대목에서의 핵심은 마리아가 인간에게 부담을 주지만 해방의 힘을 지니는 구세주 예수의 말씀을 받아들이도록 당부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분명 마리아가 교회 안에서 어머니로서 맡은 역할의 가장 주요한 차원이라고 하겠다.


“마리아가 가나 혼인잔치의 심부름꾼들에게 지시한 것은 예수께서 모든 민족들과 관련하여 사도들에게 위임하시는 사명과 특이하게 흡사하다. ‘내가 여러분에게 명한 것을 모두 다 지키도록 그들을 가르치시오’(마태 28,20a). […], 우리는 교회가 이 구원적 권유를 반복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이 우리에게 명하신 바를 너희들은 준수하시오’. 그렇다면 이 말과 마리아의 가나에서의 권유 사이에 심오한 일치가 있음이 드러난다. ‘무엇이든지 그분이 시키는 대로 하시오’(요한 2,5). 그렇게 본다면 마리아와 교회는 한결같이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복음에로 인도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판명된다”.6)




(2) 자세히 살펴보면 가나의 혼인 잔치의 이야기와 요한 복음의 수난사는 언어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서로 연결되어 있다. 여기에서 가나의 혼인 잔치 때에 나왔던 “시간”, “부인”이라는 용어들이 다시 등장한다. 십자가 아래서 있는 어머니 마리아에게 예수께서는 “부인”(19,26)이라고 부르고, 제자들에게 이별의 말씀을 하시면서 “시간이 왔습니다”(17,1)고 하신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기 전에 당신이 사랑하시던 제자에게 당신의 어머니를 보살피도록 위탁하시고, 그래서 그 시간부터 그 제자는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다.


최근의 성서 주석학은 이 장면을 역사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類型論的(typological)으로 해석하는 것이 요한 복음의 전체적인 글 스타일에 가장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즉 요한은 이미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마리아를 예수에게서 구원을 기대하는 신앙인이라고 소개하였는데, 이제 마리아는 예수께서 모든 것을 위탁하는 제자에게로 갈 것을 지시받는다. 여기서 마리아는 이스라엘의 신앙인들을 상징하고, 예수께로부터 사랑받던 제자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상징한다. 즉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자신의 원천과 기원인 이스라엘의 신앙인들, 표상적으로 말하면 마리아를 상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리스도인들은 마리아 안에서 메시아를 통한 구원을 기다리는 자들이라는 뜻이 시사된 것이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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