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교의사적인 전개
3.1. 고대교회의 성찬례 형태: 감사제(Eucharistia)
성찬례와 보통의 식사는 2세기 초엽에 가서는 적어도 일부 지역에서는 완전히 분리되기 시작한 징조가 폰도와 비티니아의 총독 쁠리니우스 2세가 112년경에 트리야누스 황제에게 보낸 편지에 나타난다. 이렇게 성찬례와 보통의 식사가 분리되면서 유다인들의 회당 예배를 닮은 말씀의 전례가 고정 요소로 정착하게 되었다. 규칙적으로 구약성서의 말씀과 사도들의 편지가 낭독되었고 예수의 성찬례 제정의 말씀은 장엄하고 긴 감사기도(prex eucharistica) 안에 들어오게 되었다. 165년경 순교한 유스티누스는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태양의 일’이라고 하는 날(주일)에는 도시와 시골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집회를 열고 사도들의 해설집이나 예언서자들의 글을 시간이 허용하는 데까지 읽습니다. 독서가 끝나면 그 다음에 주례자는 방금 들은 아름다운 교훈들을 우리 생활에서 본받도록 권고하고 격려합니다.
그리고 나서 함께 일어나 기도를 바칩니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기도를 끝낸 후에 빵과 포도주와 물을 가지고 옵니다. 주례자는 온갖 정성을 다해 기도와 감사송을 바칩니다. 그러면 회중들은 ‘아멘’이라고 큰소리로 응답합니다. 그 다음에 감사의 기도를 바친 그 음식을 분배하여 참석자가 각기 그것을 받아 모시며 참여치 못한 이들에게는 부제들을 통하여 그것을 보냅니다”.1)
이런 성찬례 거행 과정은 우리 시대에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감사기도는 일정한 구조로 바쳐지기는 하지만 4세기 넘어서까지 주례자가 상당히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었다. 2세기 초반(110년 경)에 저술된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9-10장은 성찬례에서 얼마나 감사의 기도에 강조점을 두었는지, 그래서 성찬례를 “감사제(eucharistia)”라고 지칭했는지는 잘 드러내준다. 대략 기원후 100년 이래로 “eucharistia”란 단어가 성찬례를 표현하는 확고한 말마디가 되었다.
이 새로운 명칭의 유래에 관해서 가장 합당한 가설은 다음과 같다. 유다교 회식 시작 때 가장 또는 주빈이 빵을 들로 “찬양”(히브리어로 berakah) 기도를 드렸는데, 이를 그리스어로 옮길 때 찬양이라는 표현인 “εύλογια”로 직역할 수도 있지만 “감사”(εύχαριστια)로 의역할 수도 있다.2) 시편의 경우를 보아도 찬양시과 감사시는 그 구조와 내용이 거의 같다. 그래서 마르꼬 계열의 최후만찬 기사의 “빵을 드시고 찬양하신 다음”(마르 14,22 = 마태 26,26)이란 표현 대신에 바오로 계열에서는 “빵을 드시고 감사하신 다음”(1고린 11,23-24 = 루가 22,19)이라고 했던 것이다.3)
성찬례의 명칭은 매우 다양하다.4) 먼저 신약성서상의 명칭은 “주의 만찬”(Coena Dominica, 1고린 11,20)과 “빵을 나눔”(fractio panis, 사도 2,42; 루가 24,35)이다. “감사례” 혹은 “감사제”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ευχαριστια란 말은 최후만찬 때에 예수께서 빵과 잔을 들고 바치신 감사기도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Eucharistia는 이미 1-2세기부터 성찬례(이냐시오, 스미르나서 7,1), 성찬의 음식인 성체와 성혈(디다케, 9,5; 이냐시오, 스미르나서 7,1; 유스티노, 호교론 1권 66,1), 성찬기도(디다케, 9,1-3; 유스티노, 호교론 1권 65. 67)등 세가지 의미로 쓰였다.
가톨릭에서 성찬례의 대명사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미사”(Missa)는 파견(missio), 보냄(dimissio)을 뜻하는데, 이 말은 4세기 말 경에 모든 전례나 일반 모임 끝에 “Ite, missa est”라는 말로 해산을 종용한 데에서 유래한다고 추정된다. 미사가 성찬례의 고유 명칭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5세기 중엽이다.
성찬례의 핵심을 이루었던 감사기도의 구조는 구약성서와 유다교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이 기도는 근본적으로 하느님 아버지께로 향한 기도로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그 하나는 역사 안에서의 하느님의 구원업적을 찬양하면서 기억하는데, 이 기억을 통해서 하느님의 구원업적이 현재화된다(anamnesis의 부분). anamnesis는 히브리말 ‘기억’(zikkaron)의 번역인데, 히브리적 사고에 의하면 기억이란 과거의 일을 단순히 정신적으로 회상하고 기억한다는 의미 외에, 특히 예배에서는 과거의 일(출애급 사건)을 현재의 일로 재현하고 체험한다는 의미를 지닌다(참조: 출애 12,14-20; 신명 6,20-25).5) 다른 하나는 하느님을 부르면서 그분께서 당신의 백성 혹은 기도하는 이들을 계속 기억하시기를 청원하는 부분이다(epiclesis의 부분). 감사기도는 근본적으로 바로 이런 구조로 이루어졌고, 많은 경우 하느님의 구원업적에 관한 성서를 인용하여서 어느 한 부분을 확장하기도 하였다. 성서에서 인용된 성찬례 제정에 관한 예수의 말씀은 기억의 부분에 삽입되었는데, 그 말씀은 감사기도 흐름의 정점을 이룬다.
성서 인용을 통해서 현재화되는 특별한 사건은 최후만찬 그 자체라기 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행하신 하느님의 구원업적, 즉 예수의 죽음과 부활 안에서 이룩하신 파스카 신비이다. 찬미와 기억을 통한 하느님 구원 사건의 현재화가 목표로 하는 바는 일차적으로 성찬의 음식의 변화가 아니라 성찬례의 참석자들과 예수와의 유일무이한 일치, 즉 성찬의 음식을 중개로한 예수의 파스카 신비와 그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후대교회에서 제기된 질문, 어느 시점에서 성변화가 이루어지느냐는 질문은 적어도 초대교회 신자들에게는 낮선 질문이라고 하겠다. 그들에게는 감사기도(gratias agamus로 시작되는 감사송을 포함하는 anamnesis, 성찬례 제정 기사, epiclesis)는 성찬 음식을 향한 기도가 아니라 천주 성부를 향한 기도로서 이 기도 전체 안에서 빵과 포도주가 예수의 몸과 피로 변한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성찬례에서는 무엇보다도 “위에서” 선사된 구원을 감사하며 받아들였다. 그렇다고 해서 성서에 나타난 다른 강조점들, 즉 “빵을 나눔”, “함께 모임”, “친교”들을 통해 표현되는 ‘수평적 측면’이 약화되는 것은 아니다.『열두 사도들의 가르침』14장은 이를 뒷받침한다: “주님의 주일마다 여러분은 모여서 빵을 나누고 감사드리시오. 그러나 그 전에 여러분의 범법들을 고백하여 여러분의 제사가 깨끗하게 되도록 하시오. 자기 동료와 더불어 분쟁거리를 가진 모든 이는, 그들이 화해할 때까지는, 여러분의 제사가 더럽혀지지 않도록, 여러분의 모임에 함께하지 말아야 합니다”.6) 이것은 공동체 안에서의 분열은 주님의 성찬을 망치는 것(참조: 1고린 11,17-34)이라는 바오로 사도의 견해와 동일하다. 갈라져 다투는 것은 제물을 더럽히는 것이고, 공동체는 화해가 요구된다 (참조: 마태 5,23 이하).
『열두 사도의 가르침』에 따르면 두 부류의 교회지도자가 성찬례를 집전했다고 추정된다. 첫째 부류는 성령의 영감을 받아서 이 교회 저 교회로 다니면서 전도한 순회 은사자들이다 (11장의 사도들과 예언자들), 둘째 부류는 지역 교회에서 선출한 감독들과 봉사자들이다(15장). 순회 은사자들은 지역 교회에서 선출된 감독들과 봉사자들보다 존경을 더 받아 성찬 집전에서 주도권을 쥔 것 같다(10,7; 15,1-2).
3. 2. 고대교회의 성찬례 신학7)
초세기 교회에서는 그리스도교를 그 당시 세계에 ‘토착화’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성서에 나타난 성찬례에 대한 가르침과 당시 세계에 확산되어 있던 플라톤 사상과의 접근이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플라톤 철학 체계를 그대로 수용한 것이 아니라 그 철학의 사유방식과 언어를 사용해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더욱 명확하게 표현했다고 하겠다.
플라톤 철학의 세계관의 특징은 초월적이고 비가시적인 정신세계인 이데아(Idea), 존재의 단계 그리고 참여라는 개념으로 표현될 수 있다. 이데아의 세계는 진정한 존재의 세계인데, 그 이데아는 인간이 대하는 사물과 실재들 안에서 불완전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존재한다. 실재 전체는 하나의 단계로 이루어진 체계로, 피라밋형으로 구성된 존재와 가치체계로 이해된다. 이런 실재 이해의 지평에서 하나의 실재(模型)는 다른, 보다 고차원적인 또 하나의 실재(原型)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실재상징’(實在象徵’, Realsymbol)의 이해지평 속에서 하나의 실재는 한 차원 높은 다른 실재의 상징이라는 식으로 인간과 세상을 해석된다.
그러나 거기에서 상징이란 그저 비슷한 점을 발견하고 겉으로만 관련을 짓는 그런 의미로서가 아니고, 한 차원 높은 실재 자체가 그 보다 낮은 실재 안에서 비록 불충분하고 약화된 방식이긴 하지만, 자신을 나타내고, 그 안에서 현존하며 그를 통해서 작용한다는 의미로서의 상징이다”.8) 이렇게 모형은 원형을 실제로 담고 있는 실재상징이기 때문에 모형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원형에 참여하게 된다.
희랍교부들은 이런 플라톤 철학의 원형-모형 사고 형태를 사용하여서 하느님 앞에서의 기억을 통해서 과거의 사건들이 실제로 현존케된다는 성서적 신앙을 표현하였다. 원형인 현양된 주님 자신(persona)은 물론 그의 행동, 삶과 죽음(actio)이 모형인 성찬례 안에서 실제로 현존하는데, 신자들은 성찬례에 참여하여 성찬의 음식을 나눔으로써 그분과 친교를 이루고 그분의 구원업적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희랍교부들이 성찬례나 성찬의 음식이 현양된 주님의 “표상”(eikon), “상징”(symbolon), “모상”(typos, antitypos), “비유”(homoioma)라고 표현하는 것을 실재와는 관계 없다는 식으로 ‘단지 표상, 단지 상징일 뿐이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이와는 달리 모형 안에서 원형이 잠정적이고 숨겨진 방식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현존한다는 의미로, 즉 實在상징의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여기서 성찬례나 성체 안에서 그리스도와 그분의 구원 역사가 실제로 현존할 수 있는 것은 (플라톤 철학과는 달리)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인해서이다. 그래서 초기의 성찬례 신학에서는 성령의 임재를 청하는 기도인 epiclesis가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였다.
예수와 그의 구원역사가 성령의 힘으로 공동체의 성찬례 안에 현존한다는 데에 바로 성찬례의 희생제사적 성격이 자리한다. 즉 히브리서가 말하듯이 그리스도의 죽음은 구원의 능력을 지닌 유일한 희생제물인데, 성찬례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현재화함으로써 그 죽음의 희생제사적 성격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은 동방교회의 성찬전례의 한 기도문 안에서도 분명하게 드런난다.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를 우리의 신앙적 참여를 통해서 현재화함으로써 우리는 제사를 드리나이다”. 성찬례가 희생제사라는 것은 유일한 희생제사로서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현재화한다는 뜻에서이지 십자가 죽음과는 별도의 새로운 제물을 드린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원형-모형 사고 체계가 잊혀진다. 그래서 성찬례의 희생제사적 성격을 유일한 희생제사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죽음의 현재화라는 데에서 도출하지 않고 성찬례 중에 빵과 포도주를 직접 봉헌한다는 데에서 찾게 되면서 성찬례를 새로운 제사로 보게 되었다. 그레고리오 대 교황(590-604)의 말은 이를 분명하게 증언해준다 “거룩한 제물을 바치는 이 신비로운 예식에서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다시(iterim) 봉헌된다”(Dial. 4,58: PL 77,425). 이렇게 해서 ‘미사는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를 피흘림 없이 반복한다’는 후대의 문제성 있는 생각에로 가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초대교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공동체의 참여없이 사제 혼자 드리는 ‘개인미사’의 관행이 형성되었고, 이와 함께 사제는 신자들과는 명확히 구분되는 특수 신분으로 간주되었다.
라틴 교부들 중에서는 누구보다도 밀라노의 주교 암브로시오(+ 397)와 힙뽀의 주교 아우구스티노 (+ 430)가 성찬례 신학의 역사에 영향을 주었는데, 물론 서로 다른 특성을 갖고 있었다. 암브로시오는 빵과 포도주의 변화에 강조점을 두었다.
“축성 전에 빵은 그저 빵일 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말씀이 말해지는 즉시 빵은 그리스도의 몸이다… 포도주와 물이 든 잔도 그리스도의 말씀 전에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말씀이 있는 즉시 그것은 백성을 구원한 피가 된다”(Ambrosius, De Sacr. 4,23). “주 예수께서 스스로 ‘이는 나의 몸이다’[…]라고 말씀하시면 당신은 ‘아멘’이라고 대답하는데, 이는 ‘그것은 진실입니다’라는 뜻이다 (Ambrosius, De Myst. 54).
이에 비해서 아우구스티노는 성사의 상징적 특성을 강조하였다. 그의 관심의 대상은 무엇보다도 여러 분야와의 상징적 관련성이다: 빵 – 육체적 그리스도의 몸 – 교회 공동체.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올라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시는데 어떻게 그의 몸이 제단의 빵 안에 존재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아우구스티노는 대답하기를: “당신이 ‘그리스도의 몸’을 이해하기 원하면 (바오로)사도가 신자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했는가를 들어보시오: ‘여러분들은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의 몸이면[…], 여러분의 신비 [여러분이 그 신비이다]는 주님의 식탁 위에 놓여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신비를 받아모십니다. 여러분 자신인 것에 대해서 여러분들은 ‘아멘’하고 대답합니다[…] 당신이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들으면, ‘아멘’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가 되시오, 그래야 당신의 ‘아멘’이 진실하게 됩니다! (Augustinus, Serm. 272). 이렇게 특별히 ‘아멘’에 대한 해석에서 암부로시오와의 차이가 분명히 들어난다. 암부로시오에게는 빵과 포도주의 본질적인 변화에 대한 고백과 수긍이 주요 관심사였는데, 아우구스티노에게는 교회 공동체의 실현이 주 관심사였다.
아우구스티노에게 있어서 성찬례는 ‘전체 그리스도’(totus Christus caput et corpus)가 실제로 현존하는 성사이다. 즉 성찬례에서 한 인격체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가 현존하며 실재한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