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성사-교의사적인 전개(중세초기,스콜라 신학)

 

3.3. 중세 초기: 주권 교체로서의 세례




중세 초기에 전교 방법이 근본적으로 바뀌게 된다. 유럽 북쪽의 민족들의 그리스도화된 것은 개인이나 개개의 가족 단위로 이루어진 회개를 통해서가 아니라, 통치자의 결정에 따라 전체 백성이 함께 개종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이 당시 세례신학을 위한 결정적인 성서 텍스트는 모든 민족에게 전교하라는 마태 28,19의 명령이었다. 세례는 주권의 교체라는 표상 안에서 이해되었다.  예를 들어서 9세기 경의 분도회 수사로서 당대에 존경받는 신학자인 라바누스 마우르스(Rabanus Maurus)는 세례를 새로운 주권에로의 이행이라고 표현하였다: “첫번째 성사는 세례인데,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세례성유로 도유되고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기 전에 그는 거룩한 재생으로 깨끗하게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세례지원자가 진정한 신앙을 고백함으로써 새로운 주인의 주권에 복종하고, 지금까지의 소유권자를 받드는 것을 포기한 후에 모든 악한 예속성이 그에게서 빠져나가고, 그래서 악령이 성령을 피하여 달아난다… 세례지원자가 세례수에서 올라오는 즉시 사제는 그의 이마에 세례성유를 바르고 이어서 새로 세례받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왕국에 속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한다.”1)


주권의 교체라는 비유적 표현은 원래는 정치적인 의미는 아니었으나, 전교와 정복이 얼마나 쉽게 연계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칼 대제(+ 814)에 의한 작센(Sachsen)지방의 강제적 전교는 이에 대한 악명 높은 예라고 하겠다. 이런 강제적 세례는 세례와 신앙 그리고 신앙과 자유의 관계에 대해서 새로운 고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칼 대제의 궁정신학자인 알쿠인(Alkuin + 804)은 강제적 전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대를 하였다: “어떻게 한 사람이 믿지 않는 것을 믿으라고 강요할 수 있단 말인가? 한 사람을 세례 받으라고 내몰 수는 있지만 신앙으로 내몰 수는 없다.”2) 이렇게 해서 신학은 그 당시의 전교 실천과 긴장 관계에 처하게 된다.




3.4. 스콜라 신학: 조직적인 성사신학의 맥락 안에서의 세례신학




스콜라 신학의 세례신학에서는 그 당시의 실천과 신학적 이론의 관련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12 세기 이래로 세례신학의 전면에 나타난 관심은 교부신학을 수용하고 매사를 철저히 숙고하여 조직하는 것인데, 이런 관심은 그 당시에 새롭게 유입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인과론에 영향을 받아서 “원인”과 “결과”의 카테고리를 적용하는 일반성사론과 맥락을 같이한다.


언제 세례성사가 제정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롬바르두스(Pertus Lombardus)는 여러 가지 입장을 전한다: 어떤 사람은 세례의 제정을 니코데모와의 대화(요한 3,5)에서, 다른 사람은 마태 28,19의 세례 수여 명령에서 본다. 대부분의 스콜라 신학자들은 여기에서 구별을 두려고 한다. 이런 시도에서 분명히 나타나는 것은 중기의 스콜라 신학이 매사를 원인-결과론에 의해 규정하려는 것이다. 후고(Hugo von St. Viktor)는 발생적으로 고찰하면서 세례성사 제정을 단계적으로 본다: “최초의 초안은 예수의 세례이고, 첫번째 권고는 니코데모와의 대화이며, 일반적인 제정은 사도들에게 내린 세례 수여 명령이다”. 그에 비해서 <Summa Halensis>( 1235년 이후 저술)는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인설을 바탕으로 조직적인 고찰을 시도한다: 요르단 강에서 예수의 세례는 “질료인”이고, 마태 28,19의 세례 수여 명령은 “형상인”이며, 니코데모와의 대화는 “목적인”이고3), 마르 16,16의 말씀은 “효과인”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우선 그 자신이 제정이란 말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설명하는데, 이 설명에서 성사의 효과성이 그에게 기본적인 중요성을 지닌다는 것이 드러난다: “하나의 성사는 그것이 효력을 낼 수 있는 힘을 받았을 때에 제정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세례성사는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았을 때 그 힘을 부여받았다. 그러므로 세례성사는 이때에 실제로 제정되었다… 그러나 이 성사를 받아야 하는 의무는 예수의 수난과 부활 이후에 비로소 인간에게 주어졌다.”4)


성사가 어떻게 효력을 내는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 세례성사는 성사의 사효적 효력(ex opere operato)에 대한 전형적인 예가 된다. 세례는 오로지 하느님의 행동에 근거를 두고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인간은 “fictus”(겉꾸밈으로, 즉 마음 속에는 신앙이 없거나 성사를 멸시하면서)로 세례를 받음으로써 하느님의 행동에 장애물을 놓는 수가 있다; 그렇지만 이런 경우라도 그가 장애물을 치우는 즉시 세례의 효력이 발생하게 된다; 왜냐하면 “세례성사는 하느님의 업적이지 인간의 업적이 아니기 때문이다.”5) 세례를 받을 때 신앙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토마스는 구분을 두면서 답한다: 성사가 단지 이루어지고 “인호”의 각인을 위해서는 신앙이 요구되지 않지만, 성사의 은혜(“성사의 마지막 효과”)가 도달되기 위해서는 신앙이 요구된다. “왜냐하면 성사는 인간의 의로움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능력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6)


이러한 성사신학의 배경에는 모든 성사는 단계적으로 효과를 낸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 표지 자체(tantum sacramentum 혹은 signum tantum)는 중간 효과(res et sacramentum)를 내고, 중간 효과는 원래 목표로 한 은총(res tantum)의 효과를 낸다. 세례에 있어서 중간 효과는 “인호”, 즉 소멸하지 않는 성사적 표시이다. “인호”가 내용적으로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스콜라 신학은 그저 형식적으로 얘기한다: 즉 인호는 반복해서 세례를 받을 수 없는 근거를 이루고, 또 겉꾸밈의 성사 수취자에게서 이미 받은 성사가 나중에 은총의 효과를 발생할 수 있는 원인이 된다. 은총 효과는 모든 죄와 벌의 사함과 성화 은총의 수여, 그리고 성덕(믿음, 희망, 사랑)의 주입에 있다. 이렇게 사물을 나열하는 듯한 방식 대신에 일부 스콜라 신학자들은 로마 6,1-11의 주제와 4,5세기의 교부신학의 근본사상을 수용하면서 – 매우 인격적인 방식으로 – 그리스도의 수난에 참여에 대해 얘기한다. 예를 들어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로마 6,8에서 따르면 모든 세례자들은 마치 스스로가 고난을 당하고, 죽은 것처럼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게 된다.7)


성사 수취자의 신앙이 은총 효과 발생의 전제조건을 이룬다고 할 때 자연적으로 유아세례에 대한 물음이 제기된다. 스콜라 신학에서는 유아세례의 정당성뿐만 아니라 필요성까지도 확신하고 있다. 이 문제에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우구스티노 이래로 관습화된 원죄론과 성사신학의 연결에서 출발한다. 어린 아이도 예외없이 아담의 죄를 물려받았고, 이 죄의 사함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은총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린이가 아직 신앙을 고백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유아세례는 “신앙의 성사”라고 토마스는 주장한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어머니 뱃속에서 어머니의 양분을 공유하듯이 어린이는 교회의 신앙을 공유한다, 즉 “어린이는 다른 사람을 통해서 믿는다.”8)


여기에서 토마스는 “다른 사람”이 무조건 아이와 직접적으로 관계된 사람만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 전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아이의 부모들이 믿지 않는다고 해서 아이가 구원을 못 받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전체 교회의 신앙이 교회를 일치시키고 한 사람이 소유한 선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성령을 통해서 아이에게 이롭게 작용하기 때문이다.”9) 토마스가 세례를 위해 필요한 신앙이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분리될 수가 있는가에 대해서는 유대인의 아이들이나 “다른 믿지 않는 이들”에게 부모들의 뜻을 거스려서 세례를 주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는 데에서 드러난다: 그는 분명히 여기에 대해서는 반대를 하지만, 반대 이유는 성사가 효력을 내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이것이 오로지 자연법에 거스리기 때문이라는 데에 있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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