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이레네오-생애

 

13. 성 이레네오




13.1. 생애


리옹의 주교 성 이레네오는 2세기 신학자들 중에 가장 뛰어나며, 영지주의 계통의 이단사상들에 대항하여 정통교리를 수호한 대표적인 분이다.그는 소아시아의 스미르나 출신으로 뽈리까르뽀의 제자였으며 당시 로마의 사제였던 그의 친구 플로리아농에게 보낸 편지에서 스승 뽈리까르뽀로부터 배우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고 있는데, 뽈리까르보 주교가 사도 요한의 제자였다는 점을 고려하면,이것의 그의 사도적 정통성과 권위를 나타내는 내용이다. 그의 출생연도에 대해 논란이 많으나 130-140년 사이로 추정된다. 그는 로마에 와서 오래 머물렀으며,이때 성 유스띠노가 세운 교리학교에서 공부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언제 무슨 이유로 리옹으로 가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177년에 리옹 교회의 특사로 로마의 에레우테루스 교황(174-189년 재직)을 방문하여 몬타니즘 이단에 대해 상의하고 리옹지방의 순교자들에 대해 보고하였다. 그는 몬타니즘 이단이 그의 고향 프리지아 지역에서 발생하였기 때문에 이에 대해 걱정이 남달리 컸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로마에 체류하는 동안 리옹의 주교 포티노가 순교하였으며,그가 리옹에 돌아오자 즉시 주교로 선출되었다.


한편 빅톨1세 교황(189-198년재직)이 부활축일의 일자에 대한 소아시아 교회의 관습을 단죄함으로써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사이에 분열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원래 동방 출신으로서 동방교회의 전통을 잘 이해하고 있던 이레네오 주교는 빅톨 교황에게 여러차례 편지를 보내어 불목을 청산하고 일치와 화해를 이루도록 종용하엿다. 에우세비오는 [교회사]5권24에서 그의 중재적 역할을 높이 평가하면서 그의 이름(이레네오는 희랍어로[평화의 사람]이난 뜻을 가짐)에 걸맞게 <평화의 사도>라고 부른다.후대의 문헌들은 이레네오는 202년 경에 순교하였다고 전하며, 교회는 그의 축일을 6월28일에 지내고 있다.


그는 많은 저서와 편지들을 썼지만,현재 전해오고 있는 것은[이단반론](異端反論)과 [사도적 가르침의 증명]뿐이다. 이레네오의 신학적 공헌은 영지주의적 각종 이단사상들의 정체를 적나라하게 폭로하면서 동시에 초기교회의 정통신앙을확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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