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게네스-생애(제 1기)

 

15.1.1. 제 1기


203년부터 231년까지 교장으로 알렉산드리아에서 지낸 23년간은 그의 생애의 전반기에 해당한다.  에우세비우스는 그의 생활과 교수방법을 이렇게 묘사하엿다.  「그는 가르친 바를 실제로 실친하였고, 실천한 바를 가르쳤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의 생활을 모방하려했다.  그는 가능한 한 학문연구에 몸바쳤으며, 때로는 아주 적은 잠을 자고, 침대에서 자려 하지 않고 바닥에서 잤다.  복음의 말씀을 생각하여 두벌의 겉옷을 갖지 않고 신발도 신지 않앗고, 또 앞날을 걱정하지 말라는 권고의 말씀을 그대로 지키려 하였다」(교회사 6,3)  그리고 마태 19,12의 말씀을 문자대로 실천하기 위해 스스로 거세하여 고자(鼓子)가 될 정도였다.  오리게네스가 가르친 내용은 수사학,물리학,천문학,지리학,희랍철학 그리고 신학들 다방면이었다.  혼자서 이 모든 것을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그는 초급반을 헤라클레스에게 맡기고 자신은 상급반을 맡아 철학과 신학을 가르치는 데에 전념하였다.  212년 로마에 여행하여 그곳의 주교 제피리누스를 만나고, 또한 로마의 최고 신학자인 히폴리뚜스와 만나 신학적 교류를 가졌다.


215년에는 아라비아에 가서 로마 집정관을 가르쳤으며, 다시 알렉산델 세베루스 황제의 어머니 율리아 맘메아의 초청을 받아 안티오키아에 가서 가르치기도 하였다.  216년 카라칼라 황제가 자기 동생 제타의 암살에 격분하여 알렉산드리아를 파과하자 오리게네스는 팔레스티나로 피신하게 되었는데, 체사리아의 주교와 예루살렘의 주교등 지역주교들이 그에게 성서강의와 강론을 부탁하엿다.  그러나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알렉산드리아의 데메트리우스 주교는 평신도가 주교들 앞에서 가르치거나 강론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기 때문에 오리게네스는 이에 순명하여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15년 후 그는 데메트리우스 주교의 명을 받고 그레치아로 가던 중 체사리아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의 옛 친구인 예루살렘의 알렉산델 주교가 그에게 사제품을 주었다. 


그러나 데메트리우스 주교는 자발적으로 거세한 오리게네스가 받은 사제품은 무효라고 선언하고 231년에 열린 주교회의를 통해 그를 파문하였다.  그리고 오리게네스의 옛 보조자였다가 232년에 데메트리우스의 주교직을 계승한 헤라끌라스도 그를 같은 이유로 파문하였기 때문에 그는 할 수 없이 알렉산드리아를 떠나야 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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